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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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慶州 斷石山 神仙寺 磨崖佛像群. 삼국시대 7세기 초 무렵에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에 위치한 신선사에서 조성한 신라의 마애불상군 10구. 현재 경북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길 175-143(송선리)의 신선사에 소재 중이며, 대한민국 국보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본존 높이 8.2m, 보살상 높이 6m, 반가상 높이 102~116 cm.
경상북도 경주시 단석산(斷石山)에 조성되어 있는 7세기 초의 마애불상군으로, 당시 신라인들이 길이 약 18m, 너비 3m의 ㄷ자형으로 자연 석실 내부에 10구의 불보살상과 400여 자의 명문(銘文)을 새겨놓은 것이다.
해발 827.2m로 경주 내에서 가장 높은 단석산은, 경주 토함산(吐含山), 금강산(金剛山), 함월산(含月山), 선도산(仙桃山)과 함께 신라인들이 신성시한 오악(五嶽) 중에서 중악으로 불리던 산이다. 원래 이름은 월생산(月生山)으로 신라시대 화랑들이 이 산에서 수련했다고 전한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金庾信)이 17세 때 이 산으로 들어와 목욕재계하고 고구려와 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천지신명께 빌었다고 전한다. 이에 4일 만에 난승(難勝)이라는 한 노인이 나타나 신검(神劍)과 비법이 담긴 책을 주었는데 김유신이 그 칼로 무술을 연마하면서 바위들을 베자, 베어 놓은 큰 돌들이 산더미 같이 쌓였고, 그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산 정상에는 김유신이 베었다는 ‘단석’이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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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애불상군이 자리한 신선사는 7세기에 활동하던 신라 자장율사의 제자 잠주(岑珠)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높이 30m의 거대한 암석이 ㄷ자형으로 솟아 석실을 형성하고 있는데, 북쪽 바위 2개 중 구석 바위에는 거대한 여래상을 본존으로 하였고, 동쪽 바위에는 보살상을, 남쪽 바위에는 보살상과 명문(銘文)을 조각하여 3존(三尊)의 형식을 이루었다. 본존인 여래입상은 둥근 얼굴에 고졸한 미소가 가득하며, 머리 위에는 2단의 작은 육계(肉髻)가 솟아 있는데 법의는 통견(通肩)이며 U자형으로 트인 가슴 사이로 군의(裙衣)의 띠 매듭이 노출되어 있다.
동쪽 면에 새겨진 보살입상은 나형(裸形)의 상체에 보관은 생략되었으며, 왼손은 들어서 가슴에 대었고 오른손은 몸 앞에서 보병(寶甁)을 잡고 있다. 마멸이 심하여 분명하지 않지만 남면에도 광배가 없는 1구의 보살입상을 새겨 앞의 불보살상과 함께 삼존을 이루고 있다. 이 보살상의 동쪽 면에는 이 불상군을 만들 당시에 새긴 400여자의 경주상인암조상명기(慶州上人巖造像銘記)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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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하여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여래입상, 보관이 생략된 보살입상, 우견편단의 여래입상, 상체가 나형인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반가사유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왼손을 본존 쪽으로 내밀어 아래쪽의 인물상을 인도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특히 이 반가상은 고대 한국의 각석 마애반가사유상으로서는 유일한 것이라 가치가 매우 크며, 모두 보주형 두광이 있고 발 아래에 연화좌를 갖추고 있다. 아랫면에는 일렬로 서서 본존을 향하여 걸어가는 모습의 인물상 2구와 여기서 조금 동떨어진 곳에 동안의 여래상 1구가 새겨져 있다. 이 중 인물상은 모두 버선처럼 생긴 관모를 쓰고 긴 저고리에 통바지 같은 것을 입고 있어 신라시대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손에는 각각 손 향로와 나뭇가지형을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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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은 곧 미륵불을 뜻하는 것으로 신라시대 화랑들의 신앙 대상이었음을 생각할 때 ‘신선사’라는 절 이름에서부터 이미 단석산 일대가 신라 화랑들의 수도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마애불상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사원으로, 후대의 석굴암 등의 시원적 형식을 보여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7세기 초 삼국시대 당시 신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또한 암석에 새겨진 400여자의 명문은 고신라시대 문자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불상군은 고신라시대 불교미술과 신앙 연구에 귀중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으므로, 이에 1979년 5월 22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3. 관련영상
4. 바깥고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 두산백과 :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 한국어 위키백과 :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 미술백과 :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5. 국보 제199호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 중턱에 이르면 거대한 암벽이 ㄷ자 모양으로 높이 솟아 하나의 석실(石室)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서 석굴 법당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바위면에는 10구의 불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동북쪽의 독립된 바위면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높이 8.2m의 여래입상이 1구 서 있다. 둥근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며, 머리 위로 2단으로 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작게 솟아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U자형 주름이 선명하고, 트인 가슴 사이로는 띠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내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여 손바닥이 보이게 하고 있다.
동쪽면에는 높이 6m의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데, 상반신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으며, 왼손은 들어서 가슴에 대었고 오른손은 몸 앞에서 보병(寶甁)을 쥐고 있다.
마멸이 심해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남쪽면에도 광배(光背)가 없는 보살상 1구를 새겨서 앞의 두 불상과 함께 삼존상을 이루고 있다. 이 보살상의 동쪽면에는 400여 자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 ‘신선사(神仙寺)에 미륵석상 1구와 삼장보살 2구를 조각하였다’라는 내용이다.
북쪽 바위면에는 모두 7구의 불상과 보살상, 인물상이 얕게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왼쪽에서부터 여래입상, 보관이 생략된 보살입상, 여래입상,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반가사유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왼손을 동쪽으로 가리키고 있어 본존불로 인도하는 독특한 자세를 보여준다.
아래쪽에는 버선같은 모자를 쓰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한 공양상 2구와 스님 한분이 새겨졌는데, 신라인의 모습을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7세기 전반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이 마애불상군은 우리나라 석굴사원의 시원(始原)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당시 신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