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慶州 九十八號 南墳 琉璃甁 및 盞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분류'''
유물
'''수량/면적'''
일괄
'''지정연도'''
1978년 12월 7일
'''제작시기'''
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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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단은 유리병, 좌하단은 잔②, 중하단은 잔③, 우단은 잔①이다.
1. 개요
2. 내용
3. 관련영상
4. 바깥고리
5. 국보 제193호


1. 개요


慶州 九十八號 南墳 琉璃甁 및 盞.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은 발굴 당시 98호분으로 불리던 황남대총의 남분에서 발견된 로만글라스 스타일의 유리과 잔으로, 유리병 1점과 유리잔 3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병의 높이는 약 25 cm, 유리잔은 각각 잔①은 높이 13 cm, 잔②는 8.4 cm, 잔③은 9.6 cm이며 잔들의 입지름은 대략 10 cm정도이다. 제작 스타일로 미루어보아 실크로드나 바닷길을 통해서 서역에서 전래된 유물이라 추측하는 학자들이 대다수이다.[1]
본 병과 잔들은 황남대총 발굴 당시 모두 다 산산조각나서 깨진 채로 발견되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원형을 거의 복원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깨진 파편들을 이어 붙여서 재조립한 것인지라 파손된 흔적은 어쩔 수 없이 남아, 복원된 유물들을 보면 죄다 표면에 금이 잔뜩 갔고 일부는 이가 빠지고 조각이 없는 부분이 있다.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은 일괄 세트로 묶어서 국보 제193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이다.[2]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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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이 사진상으로는 병의 색깔이 눈에 띄지 않는다.
유리병은 전체적으로 연녹색을 띄는 병으로 몸체는 동그란 계란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는 전형적인 로만글라스의 형태로, 4-5세기 로마 제국의 영역이던 그리스시리아 등 동부 지중해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리 제품들과 형태가 아주 유사하다. 동로마 지역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온 불기 기법대로, 열을 가하면서 관의 한 쪽 끝에 액화유리를 붙여 놓고 다른 한 쪽으로 숨을 강하게 불어서 병을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병의 목과 받침은 고대 그리스에서 포도주를 보관할 때 사용한 항아리 오이노코에(oinochoe)의 형태 혹은 페르시아 계열 병의 양식과 유사한데, 이로 미루어보아 유리병이 동부 지중해 지역이나 페르시아 지역에서 전래했다고 추정한다. 병에 부착된 장식은 청색 줄인데, 유리에 색을 입혀 가늘게 뽑아 표면에 붙인 것이다. 본 병의 목에는 줄 10개를, 병 주둥이에는 줄 1개를 장식했다. 이처럼 병을 줄로 장식하는 것은 초기 비잔틴 시기에 유행했던 방식이라고 한다.
병의 손잡이는 ㄱ자로 꺾인 진한 파란색 유리인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손잡이가 금실로 감겼다는 점이다. 유리병이 황남대총에 부장되기 전에 손잡이가 파손되자 수리한다고 실을 감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이 유리병을 수입한 당대 신라에서는 유리가 금만큼이나 희소하거나 혹은 금보다도 더 귀했고, 황남대총 같은 거대한 무덤에 묻힐 정도로 고위인물일지라도 유리를 구하기가 힘들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유리가 파손되자 대체품을 찾지 못하고, 유리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대로 귀한 금실로 적당히 때운 것이다.
본 문서의 상단 사진 속 유리병을 보면 색이 다른 부분이 있는데, 이는 발굴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보존 과학부에서 에폭시를 사용해 복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에폭시가 누렇게 변색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각을 맞추지 않고 적당히 형태에 맞춰 붙여놓기만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결국 2014년에 에폭시를 제거하고 모든 파편의 형태를 맞춰 재복원 및 보존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미처 결합되지 못한 채 수장고에 있던 유리 파편들도 제 위치를 찾아 빈틈없이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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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①. 여기저기에 조각이 빠진 부분이 보인다.
잔①은 유리병과 마찬가지로 연한 녹색이고 청색 줄로 장식되었다. 잔의 입과 몸체에는 한 줄 씩 청색의 줄이 덧붙여져 있다. 잔의 몸체 중상부에 붙여진 청색 줄은 물결 무늬이다. 잔 몸체 아래쪽은 따로 색은 입히지 않은 격자 무늬로 장식했다. 잔①은 유리병과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되었고 출토 당시 서로 매우 가까이 놓였으므로 잔①과 유리병은 세트를 이루었다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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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 잔②, 우측 : 잔③
잔②과 잔③은 세부에서 약간 다를 뿐 거의 동일한 형태이다. 잔②도 녹색인데 색은 아주 연해서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투명색에 가깝기도 하다. 잔의 입은 넓고, 전체적으로 도드라지는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잔 바닥의 가운데는 오목하게 약간 들어갔다.
잔③도 녹색이고 잔②보다는 그 색이 더 진하다. 잔의 입 주변은 둥글게 말려서 볼륨감이 느껴지고 잔의 몸체보다 더 진한 청록색을 띈다.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은 서역에서 수입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유물들로, 경주 노서리 상감 유리구슬, 경주 월성 안계리 유리잔, 경주 월성로 유리잔, 경주 월지 유리잔,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 금관총 유리잔, 금령총 유리잔, 서봉총 유리잔, 서봉총 유리팔찌, 식리총 상감 유리구슬, 천마총 유리잔, 황남대총 남분 유리잔, 황남대총 남분 유리제곡옥부 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유리구슬 거푸집,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북분 커트장식 유리잔 등과 함께, 당시 신라 시대에 서역과의 유리제품 교역 활동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또한 이 유물들을 통해 고대 한반도에는 유리 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유리가 금만큼이나 귀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당대 신라에서 서역과 교역이 행해졌음을 입증하는 유물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1978년 12월 7일 국보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3. 관련영상





4. 바깥고리



5. 국보 제193호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병 1점과 잔 3점의 유리제품이다.

병은 높이 25㎝, 배지름 9.5㎝이고, 잔① 높이 12.5㎝, 구연부 지름 10㎝ 잔② 높이 8㎝, 구연부 지름 10.5㎝ 잔③ 높이 10.5㎝, 구연부 지름 9.5㎝의 크기이다.

병은 연녹색을 띤 얇은 유리제품으로 타원형의 계란 모양이다. 물을 따르기 편하도록 끝을 새 주둥이 모양으로 좁게 오므렸다. 가느다란 목과 얇고 넓게 퍼진 나팔형 받침은 페르시아 계통의 용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목에는 10개의 가는 청색 줄이 있고, 구연부에는 약간 굵은 선을 돌렸으며, 손잡이에는 굵은 청색 유리를 ㄱ자로 붙였다. 손잡이에는 금실이 감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무덤에 넣기 전 이미 손상되어 수리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잔①은 병과 같이 연녹색 유리를 사용했고, 위는 넓고 밑은 좁아진 컵 모양이다. 구연부 주위는 속이 빈 관(管)모양으로 돌리고, 그 위에 청색 유리띠를 한 줄 둘렀다. 몸체의 윗쪽에는 청색 유리로 물결무늬를 두르고, 밑쪽에는 격자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잔②는 색은 연녹색이고 구연부가 넓다. 구연부 주위는 약간 도톰하게 돌기가 있으며, 밑면의 가운데 부분이 약간 들어가 있다.

잔③ 역시 연녹색이고 구연부가 넓은 원통형이다. 구연부 주위는 관(管) 모양이고 위와 아래에는 약간 청색을 띠고 있다.

모두 파손이 심한 상태로 발굴되었으나 다행히 원형을 알아 볼 수 있게 복원되었다. 병과 잔①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아 세트를 이루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유리의 질과 그릇의 형태 색깔로 미루어 서역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정되어, 그 당시 서역과의 문화 교류를 알게 해 주는 자료이다.


[1] 이렇게 서역에서 전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제 유물은 신라 고분에서 종종 발견되는데, 이 중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는 본 문서에 서술된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을 비롯하여 천마총 유리잔(보물 제620호)과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보물 제624호) 등이 있다.[2]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국보 제191호부터 제194호까지 연달아서 지정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왜 제193호만 문화재명에 황남대총 대신 굳이 98호분이라 칭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