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
西域
1. 개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 서쪽을 부르던 말이며, 단어 자체는 '서쪽 지역'이라는 뜻이다. 실크로드를 장건이 본격적으로 개척한 한나라 때는 둔황 지역을 부르는 말이였고, 당나라 때는 현 신강 지역만을 부르는 말이다. 비슷한 의미로 현 신강 지역 사람들을 서역인이라고도 불렀으며, 나중에는 이 의미가 확장되어 중앙아시아와 중동 쪽 아라비아 반도나 멀게는 북아프리카인들도 서역인으로 통칭하게 된다. 예를 들어 경주시 원성왕릉에 있는 호인상을 서역인이라고 표현한다거나. 대개 아라비아 상인들의 동아시아 왕래로 두 지역이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유럽의 경우 남만이나 불랑기라고 호칭되었는데, 남만의 경우엔 유럽인들은 바다를 통해 동남아시아(남만)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와 동아시아와 교역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슬람권 사람들도 같은 바닷길을 많이 이용했지만 이들은 실크로드로 이어져 있어서 중국의 서쪽임이 잘 알려져 있었던 반면 유럽인들은 더 멀리서 와서 인식이 부족하다보니 남쪽에서 온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불랑기는 근세 이전까진 유럽인보다 동아시아와의 접촉이 많았던 아랍인들이 유럽인을 '프랑크인'이라는 뜻의 '파란즈(al-Faranj)'라고 부른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2. 주요 국가
3. 한국에서의 영향
- 백제 말기의 장수 흑치상지가 서역인이라는 설이 있다.
- 신라 시대 유물 가운데 중앙아시아와의 교역으로 전해진 거울과 유리로 만든 구슬등이 존재하며, 당시 유리가 얼마나 고가였는지를 시사하듯 부러진 유리병의 손잡이를 황금실로 감아서 땜빵을 해놓은 유물도 있다(...)
- 신라 시대 귀신을 보는 사람이라고 기록된 처용이 서역인이라는 설이 있다.[1]
- 원성왕릉에는 눈이 깊고 코가 크며 수염이 덮수룩한 무인상이 존재하는데 이는 서역인이다. 그중에서도 소그드인이나 페르시아인을 묘사했다고 한다.
- 고려 시대 벽란도를 중심으로 송 및 고려의 상인들과 서역 상인들 사이의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 고려 시대 가요 '쌍화점'에 "회회 아비"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서역인으로 추정된다.
4. 기타
어째 한국에서는 서양과 유사한 의미로 쓰이는 때가 잦다. 그래서 '서역인'을 '색목인' 및 '서양인'과 동의어로 취급하는 사례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흔하다. 그 영향으로 역사 창작물에서 서역인을 묘사할 때 금발벽안(...)으로 묘사하는 일이 종종 있다.[2] 이는 작가 스스로도 고증이 잘못되었음을 알더라도 '서역'이라는 인식을 확실히하기 위해 선택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1] 처용가에서 처용의 아내를 겁탈한 역신을 서역인으로 보는 설도 있다.[2] 그러나 금발벽안은 대체로 북서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및 러시아 북서부 부근으로 한정된다. 일반인들의 착각과는 달리, 서양인(유럽인)들의 대다수는 금발벽안이 아니다. 다만 반대로 이란이나 아프간, 터키 등지에서도 드물게는 혼혈 없이도 금발벽안이 나타나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