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나라 덴노
1. 소개
일본의 제105대 천황. 고카시와바라 덴노와 가쥬지 후지코(勸修寺藤子)의 아들로, 이름은 도모히토(知仁). 일본 역사상 가장 빈곤한 천황으로도 알려져 있다. 예컨데 즉위식조차 할 돈도 없어 즉위 후 10년 뒤에나 겨우 즉위식을 하는 등 매우 안습함의 절정을 달렸다.
2. 생애
무로마치 막부 치하에서[1] 황실의 자금 사정이 좋지않아 즉위식을 치를 돈도 없어서 유력한 센고쿠 다이묘인 사가미 후호조씨(相模後北条氏)나 스오 오우치씨(周防大內氏), 스루가 이마가와씨(駿河今川氏) 등의 가문으로부터 헌금을 받아서 즉위한 지 10년 만에야 즉위식을 거행할 수 있었으며, 천황 자신도 자신의 어필(御筆)을 팔아서 황실 수입에 보탰다고 한다. 또 궁녀들이 매춘을 해대며[2] , 동네 아이들이 천황 본인을 무시하며 마구 돌을 던져, 그 돌에 맞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비단 고나라 덴노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의 천황이나 공경 등 귀족들의 삶이 이런 식으로 안습했다. 그나마 공경들은 알아서 장사에 뛰어들거나, 사무라이의 가신으로 들어가서 활약한다든지, 아니면 사무라이들에게 다도나, 시문, 예법 등을 가르치는 강사로 활약하면서 생계를 잇기도 했다.[3] 하지만, 황족들과 고셋케 구성원들은 체면 상 그럴 수 없어서 나무 젓가락을 만들고 서예를 해서 팔아다가 생계를 잇기도 하고, 돈이 없어서 밥을 굶거나 다 떨어진 옷을 기워서 입기도 했다고 한다(...).[4] 안습.
3. 기타
쇼기의 룰을 조금 바꾸어 현대 쇼기의 룰을 완성시키기도 했다. 현대의 쇼기는 일본의 고대장기인 헤이안쇼쇼기(平安小将棋)에서 시작되었는데 각행, 비차가 없는 것만 빼면 대부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무로마치 시기에 또다른 일본의 고대장기인 헤이안다이쇼기(平安大将棋)에서 각행, 취상, 비차의 3개의 말이 들어왔는데, 15세기에 말이 줄어듦에 따라 생기는 무승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말의 재활용이 도입되었고, 고나라 덴노에 의해서 취상이 빠지면서 현대의 쇼기가 완성된 것이다.
추호(追号)인 고나라(後奈良)은 51대 헤이제이 덴노의 별호인 나라노미카도('''奈良'''帝)에서 따온 것이다. 부황의 추호가 헤이제이 덴노의 부황 간무 덴노의 별호인 카시와바라노미카도(栢原帝)에서 따온 것을 고려하면 의미심장한 부분.
[1] 사실 전국시대 초기 메이오 정변 이후에는 무로마치 막부도 이미 힘을 거의 잃어버려서 사실상 끝장난거나 다름이 없었다.[2] 천황을 모시는 것 이전에 궁녀들의 대부분은 '''귀족 출신'''이었다. 즉 조선으로 치면 반가의 부인과 따님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몸을 팔았다는 소리다.[3] 심지어 일부 공경 가문은 이렇게 재미를 보고는 아예 직접 칼을 잡고 사무라이가 되어 "나는 다이묘요."하고 자칭한 자도 있었다고 한다(...).[4]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역사편에서는 이게 에도 막부의 일이라고 나오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에도 막부 시기에는 황족과 공경들이 쇼군가와 같은 고위 사무라이와 사돈을 맺고 영지를 제공받는 등으로 상당한 권세를 누렸기 때문에 절대로 이렇게 안습하게 살지 않았다. 만일 에도 막부 시기에 전국시대 마냥 애들이 지나가는 천황에게 돌을 던지며 무시했다간, 그 부모들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