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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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 남북조시대 북제(北齊)의 제2대 황제. 폐위가 되어서, 묘호가 없고, 시호는 민도왕(愍悼王)이지만, 고은이 폐위를 당한 뒤에 받았던 작위인 제남왕으로 주로 호칭되며 시호와 작위를 합쳐 제남민도왕으로도 불린다.
2. 생애
545년, 동위에서 할아버지 고환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태어났다. 문선제 고양과 문선황후 이씨[1]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은의 친동생으로 고양의 차남 고소덕(高紹德)이 있었다.
2.1. 즉위 이전
원래 할아버지 고환의 후계자는 큰아버지 고징이었다. 547년, 고환이 죽자 고징이 뒤를 이어받았고 고징은 곧 동위의 효정제로부터 황위를 빼앗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49년에 고징이 시종 난경(蘭京)에게 암살당했고, 아버지 고양이 그 뒤를 이었으며, 고양은 550년 효정제로부터 황위를 물려받아 북제를 건국했다. 즉위 후 고양의 아내 이씨가 한족이라는 이유로 황후가 되는 것을 몇몇 관료들은 반대했지만 고양은 이씨를 황후로 삼았고 고은을 황태자로 삼았다.
고은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사려깊었다. 예를 들어 그는 북궁에서 연회를 베풀어 사촌들을 초청했는데 백부 고징의 아들 고효완(高孝琬)은 초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효완의 아버지 고징이 바로 이 북궁에서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적으로 도덕적인 관료인 허산수(許散愁)를 포상하고 많은 비단을 주었으며 고은 역시 스스로 도덕적이고 학문을 좋아했다. 그래서 한족 학자들과 교류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면 때문에 부황 고양은 고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고은이 한족 문화에 영향을 받아 너무 유순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양은 고은을 폐위할까 생각도 했는데 한 번은 금봉대에서 고은에게 사형수를 직접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고은은 끝내 하지 못했고 채찍으로 얻어 맞았다. 이 사건 이후 고은은 공황장애가 나타나 마음이 떨리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후 고양은 술만 먹으면 동생 고연에게 황위를 물려준다고 주정을 부렸기 때문에 계승 문제가 일었다.
2.2. 고연이 대권을 손에 넣다
559년, 고양이 죽기 전, 고은이 너무 어리고 유순한 것을 걱정하면서 고연에게 황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고연에게 '''너 황제하고 싶으면 가져. 대신 내 아들만은 살려줘.'''라고 말했으나, 고은이 뒤를 이었다. 고양의 유언에 따라 조정은 그가 신뢰했던 관료들인 양음(楊愔), 고귀언(高歸彥), 연자헌(燕子獻), 정이(鄭頤) 등이 장악했다.
이 때 고연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고, 황태후 누씨도 고연이 황제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양음은 고연의 동생 고담(高湛)이 권력을 잡을까 두려워하여 그들의 권한을 빼앗으려고 했다. 고은은 할머니 누씨를 태황태후, 어머니 이씨를 황태후로 높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짓기 시작한 궁전 공사가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중지시켰다.
고은은 제2의 수도이자, 아버지가 머물던 진양(晉陽)에서 즉위했지만 560년에 업성으로 가려고 했다. 사람들은 숙부인 고연과 고담을 진양에 남겨두는 줄 알았으나, 진양은 재상인 양음과 그의 신하들에게 부탁했다. 황제 일행이 업성에 도착하자 제국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졌다. 양음 일파였던 가주혼천화(可朱渾天和)는 고연과 고담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고은의 황위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연자헌(燕子獻)은 황족 일파의 가장 큰 어른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태황태후 누씨를 가택에 연금시키고, 태황태후의 권한을 황태후 이씨에게 넘기게 했다. 그러는 동안 양음은 조정의 개혁을 단행해서 무능하거나 필요없는 관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짤린 관료들은 양음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고연과 고담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람을 불어넣었다. 양음은 고연과 고담을 지방으로 내보내 수도에서 축출하려 했지만 고은은 처음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양음은 황태후 이씨에게 편지를 써 보내 의견을 물었는데 황태후의 시종인 이창의(李昌儀)가 이 사실을 태황태후 누씨에게 일러바쳤다. 그녀는 이 사실을 두 아들 고연과 고담에게 알렸고, 두 형제는 고귀언(高歸彥), 하발인(賀拔仁), 곡률금(斛律金) 등과 함께 매복을 했다.
2.3. 고연에게 양위한 후 살해당하다
고연의 지방관 임명식이 열리는 날, 이들은 양음, 가주혼천화, 송흠도(宋欽道) 등을 구타한 다음 사로잡았으며, 고연은 궁으로 들어가 공식적으로 양음과 그 일파의 죄를 고하고 그들을 처형했다. 대권을 손에 넣은 고연은 곧 진양으로 돌아갔다. 가을, 고연과 태황태후 누씨는 황제를 폐위한다는 교서를 발표했고, 고은은 폐위되어 제남왕으로 강등되었으며 업성의 별궁에 유폐되었다.
561년 9월, 고귀언(高歸彥)은 고은이 힘을 길러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고연에게 고은을 제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말을 듣고 고연은 고은을 진양으로 소환하고 술에 독을 타서 고은에게 보냈다. 그는 술마시기를 거부했지만, 결국 교살당했다.
그의 아내 이씨[2] 의 고모는 고은의 모친 이씨로 이씨의 질녀였다. 고은의 아내 이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570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비구니로 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