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제자

 

1. 개요
2. 목록
2.4. 아니룻다
2.5. 수부티
2.6. 푸르나 마이트라야니 푸트라
2.7. 마하카트야야나
2.8. 우팔리


1. 개요


석가모니의 여러 제자들 중에서도 매우 특출나게 뛰어났다고 전하는 인물 10명을 일컫는 말. 공자공문십철, 예수12사도와 비슷한 존재들이다. 초기 불경에서는 10대 제자를 정하지 않았으나, 보통은 유마경에서 설명한 10대 제자 목록을 따른다.
이들 외에도 석가모니의 제자는 데바닷타앙굴리말라가 있었지만, 이들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1][2]

2. 목록



2.1. 사리풋다


'''智慧無窮,決了諸疑所,謂舍利弗比丘是。'''

지혜가 무궁하여 모든 의혹을 푸는 이는 바로 사리불 비구다. - 증일아함경, 제자품

지혜제일(知慧第一)
Śā'ri-putra. 흔히 '''사리불(舍利弗)'''이라고 한다. 본래 목건련과 함께 육사외도에 속한 현자 산자야를 섬기는 제자였다. 그러다가 불법을 접하고 목건련과 다른 산자야 신도 250명을 이끌고 석가모니에게 귀의했다. 반야심경에서 언급하는 '사리자(舍利子)'가 바로 이 사람으로 십대제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사리풋다 문서 참조.
목건련이 입멸한 뒤 고향 나알라다 촌으로 돌아가 입멸했다. 석가모니보다 먼저 입멸했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사리풋다 없는 좌중을 보고 허전하다고 말했다 한다.

2.2. 마하목갈라나


'''神足輕擧,飛到十方,所謂大目揵連比丘是。'''

신령스런 발을 가져 가볍게 들어 시방 곳곳을 날아다니는 이는 바로 마하목건련[3]

비구다. - 증일아함경, 제자품

신통제일(神通第一)
Mahāmaudgalyāyana. 목갈라나, 목련(目連), 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이라고도 한다. 산자야의 제자였으며 사리풋다와 동문이었으나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였다. 석가모니보다 먼저 입멸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뛰어난 신통력을 지니고 있어, 천안통으로 지옥을 보고 그곳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효심이 지극한 목건련 존자는 바로 석가모니에게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구제할 수 있는지 방법을 물어 어머니를 천도했다고 한다.
사리불목건련이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간주되었으나, 둘 다 석가모니보다 먼저 입멸한 후 석가모니는 자신의 뒤를 잇는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고 다만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후로는 좌장 격 인물이 있긴 해도 석가모니의 뒤를 잇는 정식 후계자는 나오지 않았다.

2.3. 마하카사파


'''十二頭陁難得之行,所謂大迦葉比丘是。'''

얻기 어려운 12두타를 행하는 이는 바로 마하가섭 비구다. - 증일아함경, 제자품

두타제일(頭陀第一).
Mahā'-kāśyapa. 마하가섭(摩訶迦葉). 부인과 함께 출가했는데, 교화를 받고 8일 뒤에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석가모니로부터 마음으로 전심을 받았다고 하며, 석가모니 사후에 모든 대중을 통솔하는 상좌로서 아라한 5백 명을 이끌고 부처님의 말씀을 모으는 제1 결집을 지휘했다. 고사성어 이심전심의 주인공.[4]
여기서 두타(頭陁)라 함은 의식주를 제한하는 불교의 수행법이다. 유명한 탁발도 두타에 해당되는 수행법인데, 고요한 곳에서 세속을 멀리하고, 언제나 걸식하여 공양을 따로 받지 않으며, 좋은 옷을 입지 않고 헌옷을 빨아 기워 입으며, 무덤 곁에 머물고, 나무 밑에 쉬고, 앉기만 하고 눕지 않는 등등 애욕과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신을 깨끗히 하는 수행법이다. 여기서 마하가섭이 제일 잘 닦았다.
이 때문에 선종에서는 마하가섭을 석가모니로부터 선종의 법을 전수받은 1대 조사로 간주한다. 선종에서 중국에 선종을 전한 달마대사를 천축(인도) 28대이자 중국 1대로 모시는데, 천축 1대에 해당하는 인물이 바로 마하가섭. 하지만 마하가섭이 선종의 법을 전수받았다는 것은 선종의 문헌에서만 뒤늦게 등장하는 이야기이므로 대체로 후대의 위작이라고 본다.
십대제자 중 석가모니의 수제자로 인정받던 사리불과 목건련이 죽고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마하가섭이 남은 제자들의 좌장 역할을 하여 1차 결집을 주관했다. 그런데 1차 결집에서도 마하가섭은 자기 앉은 자리 옆에 사리불과 목건련의 자리를 만들었다 하므로, 살아생전 사리불과 목건련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4. 아니룻다


'''天眼第一,見十方域,所謂阿那律比丘是。'''

천안이 제일이라 사방을 보는 이는 아나율 비구다. - 증일아함경, 제자품

천안제일(天眼第一)
Aniruddha. 아나율(阿那律). 석가모니의 친족으로 아난, 난타와 더불어 출가하였다.
지나는 길에 어느 과부의 집에 머문 적이 있는데, 과부가 그를 보고 음심을 일으켰다. 석가모니는 이 일로 아니룻다를 훈계하고, 부녀자와 함께 집에 머물지 말라는 계율을 정하였다.
부처님이 설법을 하는데 앞에서 졸다가 꾸중을 들은 일도 있었는데, 그 뒤 주야를 가리지 않고 수도정진하다가 그만 눈이 멀어버렸다. 하지만 육신의 눈을 잃은 대신 참다운 지혜의 눈인 천안통을 얻었다고 한다.

2.5. 수부티


'''恒樂空定,分別空義,所謂須菩提比丘是。志在空寂,微妙德業,亦是須菩提比丘。'''

공정[5]

을 즐기며 사리가 분별한 이는 수보리 비구다. 공적[6]과 미묘한 덕업에 뜻을 두고 있는 이도 수보리 비구다. - 증일아함경, 제자품

해공제일(解空第一)
공(空)에 관하여 깊이 이해했으며 공 사상을 다루는 금강경 등에 주로 등장한다. "세존께서 말하시길 수보리야 어쩌구 저쩌구" 하는 구절이 매우 많다.
Subhūti. 수보리(須菩提). 수보리는 십대제자 중 유일하게 코살라국 출신이다.[7] 코살라국 출신의 부호이자 바라문이었던 급고독 장자인 수보리의 큰 아버지는[8] 사업차 마가다국에 왔다가 여동생 부부로부터 부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에 깊게 감화되어 죽림정사를 서성이다가 결국 석가모니를 만나 법문을 들었다. 법문을 듣고 너무 감격한 나머지 마가다국을 떠나면서 석가모니에게 코살라국을 방문하여 주십사 청하였다. 사정하고 부탁하여 사리풋다와 함께 코살라국으로 돌아온 그는 막대한 돈을 사용하여 기원정사를 세웠다.[9] 기원정사는 기수급고독원으로도 부른다. 이때 수보리의 부모님도 불법에 귀의하고 수보리에게도 귀의하라고 열광적으로 권했으나 수보리는 반발심이 일어나 까칠하게 거절하였다. 옆에서 자꾸 억지로 권하면 하기 싫은 법이다. 결국은 산속으로 들어가 방황하다가 기원정사에서 처음 석가모니와 만났다.[10] 법문을 멀리서 듣고 감화되어 직접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지혜가 총명하여 누구도 넘어설 자가 없었다고 한다.
상좌부 불교팔리어 경장에서는 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 수보리를 소개하는 정도고 대승 불교 경전에 비해서 수보리의 비중이 작은 편이다.

'''如是我聞。爾時,世尊住舍衛城祇陀林給孤獨園。爾時,尊者須菩提近於世尊,結跏趺坐,持身正直,達無尋定而坐。世尊見尊者須菩提近己結跏趺坐,持身正直,達無尋定而坐。世尊知此已,彼時唱此優陀那 : 「尋被滅而內無殘,善能調整超執著,無色想而起四軛,斯人無赴再生事。」'''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사밧티 근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핀디카의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에 수붓티 장로가 세존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몸을 곧추 세우고 마음이 산만하지 않은 정신 집중[三昧]을 성취하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수붓티 장로가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몸을 곧추 세우고 마음이 산만하지 않은 정신 집중[三昧]을 성취하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때, 그것의 의미·중요성을 깨달으시고서 세존께서는 바로 그 순간 영감을 주는 이러한 게송을 읊으셨다.

 

"자기 내부에서 산만한 생각을 모두 태워 없애고, 자기 안에서 완전히 끊어버린 사람, 그 속박을 극복하고 그것이 ''''본래 형체가 없음''''을 지각하며 네 가지 구속을 이겨 내었으니, 그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네."[11]

- 팔리어경장, Udana(자설경), Subhuti sutta#[12]

여담으로 서유기에서는 도교적 인물 '수보리 조사'로 변형되어, 손오공의 첫 번째 스승으로서 등장한다. 서유기 드라마에선 손오공이 성불한후 수보리조사와 만났던 동굴로 갔으나 동굴은 비어있었다

2.6. 푸르나 마이트라야니 푸트라


'''能廣說法,分別義理,所謂滿願子比丘是。'''

잘 자세히 설법하여 하여 뜻과 이치를 분별하는 이는 만원자 비구다. - 증일아함경, 제자품

설법제일(說法第一).
Pūrṇá-maitrāyaṇī-putra. 만원자(滿願子) 부루나(富樓那). 분뇩문다니불(分耨文陀尼弗)이라고도 한다. 설법과 교화에 뛰어났으며, 수로나국 백성들이 포악하다는 말을 듣고 석가모니의 허락을 얻어 사람들 5백 명에게 설법하고 교화하였다고 한다.#

2.7. 마하카트야야나


'''善分別義,敷演道教,所謂大迦旃延比丘是。'''

선을 분별하고 도를 펴서 가르치는 이는 마하가전연 비구다 - 증일아함경, 제자품

논의제일(論議第一)
Mahā'-kātyāyana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 서인도 아반티 국의 왕족 계급 출신. 국왕의 명을 받아 부처님을 영접하러 갔다가 불법을 듣고 출가하였다.
석가모니가 처음 태어났을 때 "이 아이는 자라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던 아시타 선인의 외조카이다. 아시타 선인은 "내가 늙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때까지 살 수가 없다니." 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마하카트야야나에게 "훗날 부처가 일어날 터이니 너라도 가서 그분의 제자가 되어 그 설법을 들으라." 명했다고 한다.
말솜씨가 뛰어나 논리 정연하게 상대방의 주장을 꺾어 논의제일이라 칭송받았다. 외도와의 교리 논쟁에 지는 일 없이 논쟁으로 불법을 펼쳤다.

2.8. 우팔리


'''奉持戒律,無所觸犯,優波離比丘是。'''

계율을 받들어 범하지 않는 이는 우바리 비구다 - 증일아함경, 제자품

지계제일(持戒第一).
Upāli 우파리, 우발리. 본래 싯다르타 태자의 이발사로 천한 계급이었다. 바라문(브라만)이나 찰제리(크샤트리아) 계급으로 채워진 부처 십대제자들 중에서 '''유일한 수드라(노예 계급) 출신'''이다.
아난, 난타 등 석가족 남자들이 출가했을 때 그들의 머리를 깎아주었고, 자신은 출가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으나 석가모니는 우파리를 먼저 출가시키면서[13] 출가인들은 세속에 있을 때의 차별이 없이 평등하다고 말했다.
계율을 가장 잘 지키는 존자로 유명하였으며, 제1회 결집 때에 율(律)을 외워서 율장(律藏)을 결집하였다.[14]

2.9. 라훌라


'''不毀禁戒,誦讀不懈,所謂羅雲比丘是。'''

금계(禁戒)를 깨뜨리지 않고 송독(誦讀)을 나태하지 않은 이는 라운 비구다. - 증일아함경, 제자품

밀행제일(密行第一).
Rāhula. 라운(羅雲) , 나후라(羅睺羅)라고도 한다. 라훌라 존자는 부처님의 친아들이다. 15세 때, 석가모니가 카필라 국에서 설법을 펼칠 때 출가하였다.

2.10. 아난다


'''我聲聞中,第一比丘,知時,明物,所至無疑,所憶不忘,多聞廣遠,堪任奉上,所謂阿難比丘是。'''

나의 문중에서 제일 가는 비구로서 때를 알고 사물에 밝아 어디에 가나 의심이 없고 잘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많이 들어 아는 게 많고 어른을 잘 받드는 이는 바로 아난 비구다. - 증일아함경, 제자품

다문제일(多聞第一)
Ā-nandá. 아난(阿難)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의 친척으로 늘 석가모니의 곁에서 모셨기 때문에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난다 문서 참고.

[1] 앙굴리말라는 원래 다른 스승을 모셨는데 스승이 보복삼아 전수한 잘못된 가르침을 그대로 이행하여 99명을 살해했다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교화되었지만, 결국 탁발하러 가는 길에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이에게 돌을 맞아 죽었다.[2] 데바닷타는 석가모니한테 이제 나이도 꽤 들었으니 교단을 넘기라고 했을 정도로 오만했고, 석가모니가 이를 거부하자 앙심을 품고 그의 제자 500명을 데려다 새로운 종파를 만드는 하극상을 벌였지만 결국 이 제자 500명은 석가모니에 의해 다시 돌아갔다. 최후에는 석가모니를 암살하려 했지만 일이 꼬여서 결국 자기가 죽으면서 지옥으로 떨어진다.[3] 대목건련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대(大)는 불교에서 마하(摩訶)로 음차되니 그렇게 해석함.[4]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을 담은 이 고사성어는 부처와 마하가섭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염화미소 내용으로 알려진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위경이라는 설이 있다.[5] 사공정(四空定)을 말한다.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단계를 말하며, 각 단계마다 색(色), 상(想), 식(識), 비상(非想)을 버려 무한한 허공관을 가지는 선정(禪定)을 말한다.[6] 空寂, 만물은 모두 실체가 없고 상주(常住)가 없음.[7] 조민기, "부처님의 십대제자-해공제일 수보리"[8] 이름이 싯다르타 였다.[9] 코살라국에 정사를 세우기 위하여 사리불을 대동하고 부지를 찾아보았으나, 코살라국 제타태자의 숲(기타림 祇陀林)만이 조건을 만족하였다. 태자씩이나 되었으니, 돈이 아쉬울 것 없는지라 팔지 않으려고 '''''숲의 바닥이 보이지 않을만큼 금을 깔아주면''''' 판다고 말실수 을 하는 바람에 불심이 넘치던 장자는 기어코 금을 깔아버렸다.http://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43316850001 [10] 처음에는 성품이 악하여 모든 것에 성을 잘 냈으나, 부모 친족이 거부하는 자신을 싫어하자 집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갔고 부처님에게 인도되어 불법에 귀의한 것이다.[11] '돌아오지 않는다'는 표현은 영문번역에서는 윤회(rebirth)로 가지 않는다로 표현되었다.[12] 위 텍스트는 전재성 박사의 Udana 한국어 번역 인용[13] 석가족 남자 중 하나인 아누룻다가 "우리의 교만을 없애기 위해 우파리를 우리보다 먼저 출가시켜 달라." 말했다고도 한다.[14] 고대 인도에서는 경전을 암송시켜서 전승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의외로 신분이 낮고 배움이 적은 사람이 자주 선택되었다. 그 이유는, 배움이 있는 사람이면 자기의 의견을 덧붙여 암송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사전지식이 없이 무식하게 암송하기만 하는 사람이라야 경전이 올바르게 전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토인비도 언급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