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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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영화 감독. 1966년 5월 23일 생으로 부산 출신.
2. 활동
데뷔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영화를 연출하는 충무로의 몇 안되는 다작 감독. 고신대 의대를 들어가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훌쩍 날아가 뉴욕대 영화연출과를 졸업했다. 뉴욕대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던 군대 영창을 소재로 다룬 '영창 이야기'를 통해 1995년 제2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TV 드라마 스텝으로 연출 공부를 하다가 1997년 '억수탕'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정식 데뷔했다. 억수탕은 박철수 감독과 윤인호 감독 등과 함께했던 제일제당 자회사 제이콤의 저예산 프로젝트 시리즈의 하나였다. 억수탕의 경우 한국영화에 대한 글은 쓰지 않겠다고 했던 감독 박찬욱이 자신의 저서에서 평론을 쓴 유일한 한국 영화며 호평을 해주었다.[3]
배우 김광규와 이시언을 발굴해낸 사람이다. 김광규는 단편영화에 출연했던 모습을 보고 닥터K에 캐스팅했으며, 이시언은 친구, 우리들의 전설에 캐스팅 시키면서 활동명도 직접 작명해 만들어 줄 만큼 상당히 신경 써 준 배우라고 한다.
몇몇 영화가 부산광역시를 배경으로 한다. 친구 이후로는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든다.
물론 대중적으로 유명한 것은 곽경택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 2001년작 친구로, 19세 영화로 818만 관객이라는 사상초유의 대흥행을 했다. 그러나 이후 친구만큼 사회적 현상급의 메가히트작을 만들지는 못하였다. 되려 흥행에 연이어 실패하며 잊혀지는 이름이 되는가 했다가 친구2나 극비수사가 그럭저럭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하지만 희생부활자가 흥행에 대실패하여 다시 침체기에 빠졌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2018년 10월 개봉한 암수살인이 손익분기점을 2배 이상 넘기면서 재기의 발판을 찾아낸 듯 하다. 하지만 2019년 9월 개봉한 장사리 가 제작비 대비 흥행에 대참패 하였다.
여동생이 기생충을 통해 아시아권 여성 영화제작자 최초로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한 곽신애 바른손E&A 대표이며, 남동생 곽규택은 검사 출신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이다.
3. 사건사고/논란
3.1. 100억대 사기 혐의
2016년 2월에 100억대 사기 혐의로 피소당했다. 기사.
3.2. 무단 각색 논란
'극비수사'→'암수살인', 곽경택 각본 공통분모…"3년 만에 또 들춰진 악몽"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인 암수살인의 제작과 극본에 참여했는데 실제 사건의 피해자나 유가족들에게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고 영화 제작을 진행하여 논란이 되었다.[4]
곽경택은 본인이 연출한 2015년작 극비수사가 암수살인과 똑같은 논란이 불거진 전적이 있음에도 또 이런 실화를 무단 각색한 영화를 제작했다. 실화 기반의 두 영화가 제작 단계에서 비슷한 잘못을 되풀이한 점은 단순히 실수라고 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법적으로 따지자면 이미 공개된 역사적 사실이나 실제 사건에 대해서는 사건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치는 않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는 동의를 했으나, 어머니가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따라서 이는 창작물에 있어서의 도의적인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4. 작품
- 1997년 억수탕
- 1999년 닥터 K
- 2001년 친구-연출
- 2002년 챔피언
- 2003년 똥개
- 2005년 태풍
- 2007년 사랑
- 2008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공동연출
- 2009년 친구, 우리들의 전설: 영화 '친구'를 원작으로 한 TV 드라마. 곽경택 본인이 직접 연출했고, 각본에도 참여했다.
- 2011년 통증
- 2012년 미운 오리 새끼-감독
- 2013년 친구2 - 감독
- 2015년 극비수사-각본 감독
- 2017년 희생부활자-연출
- 2018년 암수살인-각본
- 2019년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 공동연출
- 2020년 소방관 - 감독
[1] 당시'(정부 직할) 부산시'에서 '부산직할시'로의 개칭은 1981 4월 4일에 이루어졌다.[2] 출생당시 남구 민락동으로 영도구를 거쳐 동구와 중구에 유년생을 잠깐 생활하여 서구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다.[3] 억수탕이 받았던 저예산 프로젝트에 박찬욱 본인도 출품을 했지만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좀 고까운 마음으로 봤는데 정작 보고 나니 '''솔까말 내가 심사위원이라도 내가 낸 그 요상한 작품보다는 이 재미있는 억수탕을 뽑았겠다'''라고 생각했다.[4] 2차 피해, 트라우마, PTSD같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 본인이나 유가족은 평생 그 고통이 예상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올 수 있다. 그런 현실에서 자신이 겪은 고통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더욱 그런 일이 벌어지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