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1841)

 


<colbgcolor=#292929><colcolor=#FFF> '''조선귀족 남작'''
'''김영철
金永哲 | Kim Yeong-cheol'''
'''이름'''
김영철 (金永哲)
'''출생'''
1841년 (헌종 7) 7월 11일
한성부 서부 반송방 미동
(현 서울특별시)
'''사망'''
1923년 3월 21일 (향년 82세)
'''본적'''
경성부 체부동
'''본관'''
광산 김씨 (光山)
'''자'''
문경 (文卿)
'''직업'''
관료, 정치가
'''종교'''
유교 (성리학)
'''작위'''
조선귀족 남작
'''약력'''
이조판서, 형조판서
공조판서, 예조판서
한성판윤, 시종원경
'''비고'''
친일인명사전 등재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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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영철(1841 - 1923)은 이조판서와 시종원경, 조선귀족 남작을 역임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관료, 일제강점기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는 문경(文卿), 본관은 광산이며 본적은 경성부 체부동이다.

2. 생애


1841년 (헌종 7) 7월 11일, 한성부에서 김보현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김보현여흥 민씨 일파에 속한 인물로 명성황후와 여흥 민씨가 집권하던 시기 고위직을 지냈고 김영철 역시 요직을 역임했다. 김보현은 선혜청 당상, 경기도 관찰사 등을 지내지만 1882년, 임오군란 때 당시 선혜청 당상이었던 민겸호와 함께 구식 군인들에게 살해당했다.
1872년, 과거에 급제해 병조정랑을 맡으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고 여흥 민씨 세력에게 신임을 받아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이조판서, 예조판서, 한성판윤 등을 역임했다. 1902년 시종원경이 되었다.
1910년에는 70대의 고령으로 기로소에 들어갔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술국치에 협력한 원로 관료로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23년 3월 21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남작 작위는 그의 아들 김영수에게 습작되었다.
이후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신의 작위를 습작 받은 아들 김영수와 함께 선정되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