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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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무직 공무원.
2. 생애
1913년 경상남도 용남군 서면(現 통영시 태평동 22번지)[2][3] 에서 통영군 광도면장을 지낸# 김채호(金采鎬)의 아들로 태어났다.[4] 고향 통영에서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주오대학 전문부 법학과에 입학, 1934년 졸업과 동시에 주오대학 본과 법학부에 입학했다.
1939년 대학을 졸업한 뒤 1940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1941년부터 경성지방법원 및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사법관 시보, 검사대리를 거쳐, 1943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청진지방법원 예비판사 및 판사로 근무했다.#
8.15 광복 후 1946년 변호사 개업을 했으며, 1949년 주 홍콩 총영사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주 호놀룰루 총영사, 주 일본 공사, 주 프랑스 공사, 주 제네바 공사, 주 영국 대사, 주 필리핀 대사 등을 지냈다.
1963년 제10대 외무장관, 1964년 주유엔대사, 1970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외교담당 특별보좌관, 1971년 제15대 외무장관, 1973년 제3대 국토통일원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1995년 3월 31일에 서울중앙병원에서 사망했다.
3. 여담
동생 김용익(1920~1995)은 소설가로 유명하다. 재미 한국인으로서 영어 소설을 쓰고 몇 작품이 '외국인이 쓴 우수 단편'에 선정되기도 했다. 노년에 귀국한 후에는 미국에서 쓴 영어 소설을 직접 번역했다. 대표작으로 '꽃신(The Wedding Shoes)'이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합격과 그 이후 경력으로 인하여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