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열
金長烈
1899년 5월 24일 ~ 몰년 미상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9년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되었다. 이후 일본 니혼대학 전문부 정치과를 졸업했다.
귀국하여 완도군에서 노화학교, 금일학교, 서성학교를 설립하였다. 완도어업조합 이사, 동아일보 지국장, 조선일보 지국장 등을 지냈다. 민족독립운동으로 투옥되었다.
8.15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완도군 위원장을 지냈다가 경찰공무원이 되어 나주경찰서장, 전남경찰청 총무과장을 역임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전라남도 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관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국민당 정남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1899년 5월 24일 ~ 몰년 미상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9년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되었다. 이후 일본 니혼대학 전문부 정치과를 졸업했다.
귀국하여 완도군에서 노화학교, 금일학교, 서성학교를 설립하였다. 완도어업조합 이사, 동아일보 지국장, 조선일보 지국장 등을 지냈다. 민족독립운동으로 투옥되었다.
8.15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완도군 위원장을 지냈다가 경찰공무원이 되어 나주경찰서장, 전남경찰청 총무과장을 역임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전라남도 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관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국민당 정남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