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철(야구)
1. 개요
해태-KIA 타이거즈에서 활동했던 前 야구선수. 친형 김주용도 성남고-고려대에서 야구를 했다.
2. 아마추어 시절
성남고 시절에는 당시 엄청난 우완 파이어볼러였다. 당시 최고투수 대구상고의 이정호와 2000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맞대결에서 9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다.[1][2] 그 청룡기 대회에서는 무려 혼자 5승이나 따냈다. 덤으로 새가슴류도 아닌 엄청난 유망주.
2000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도 국가대표로 참여했고, 당시에 같이 뛰었던 선수들은 추신수, 이대호, 정근우, 김태균, 이동현, 정상호 등 고교 무대를 내로라 하던 선수들. 물론 그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우승을 차지했다.
성남고 시절 엄청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장래성에 의구심을 받아서 이동현-황규택에 밀려 서울권 1차 지명을 받지 못했고, 2차 1라운드로 해태 타이거즈에 해태 역대 팀 내 고졸 최고액인 2억원[3][4] 의 ‘귀한 몸’으로 입단하게 된다.[5]
3. 선수 시절
프로에 입단한 김주철은 '''데뷔 첫 해 개막전 2차전 선발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과도한 부담감 때문인지 데뷔 첫 경기를 망쳤고, 결국 그렇게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140 후반대를 가볍게 던진다는 포텐셜로 코칭스태프와 많은 타이거즈 팬들이 기대했으나, 성남고 시절과는 다르게 프로에 와서는 빠른 볼을 제구하지 못하는 새가슴을 보이면서 실패했다.
결국 2005 시즌 이후 1군 경기에 등판하지 못했고, 2008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면서[6] 선수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4. 은퇴 후
기아에서 같이 뛰었던 김민철과 술집을 차렸다가 접었고, 현재는 사회인야구 지도와 유소년 야구 지도를 맡고 있다.
5. 연도별 성적
[1] 바로 전년도 대회에서 대구상고는 우승을 차지했고, 대회 2연패를 대다수가 예상했다.[2] 2000년 청룡기 우승 전 성남고의 마지막 우승은 1970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였다.[3] 계약금 1억 8,000만 원, 연봉 2,000만원. 당시 해태가 1997년 외환 위기로 망해가서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기 직전이라 돈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 정도 돈을 투자한 것으로 보아 엄청난 유망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참고로 이해 해태의 1차 지명을 받았던 투수 정원보다도 두 배나 더 많은 계약금을 받았다. 사실 이렇게 된 것은 이 당시 광주, 전남 팜에 눈에 띄는 선수가 딱히 나오지 않았던 것도 있다.[5] 사실 고려대학교에서 스카우팅 제의가 왔으나, 뿌리치고 입단했다고 한다.[6] 이 해를 끝으로 김주철과 같은 해 입단을 한 1차 지명 출신 정원도 임의탈퇴 공시되며 2001년 1차 지명, 2차 1번 지명으로 입단한 선수 둘이 나란히 옷을 벗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