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일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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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일본'''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2.2. 20세기
2.3. 21세기
3. 문화 교류
4. 대사관
5. 관련 문서


1. 개요


네덜란드일본의 관계에 관한 문서이다. 네덜란드와 일본은 역사적으로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점령하고 네덜란드 여성들을 위안부로 삼은 일을 계기로 한동안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일본과는 에도 막부때부터 관계를 맺었다. 당시 에도 막부는 기독교를 금지하면서 예수회를 추방시켰고 쇄국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기독교를 전파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일본과 제한적인 교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네덜란드는 데지마를 통해 에도 막부와 제한적인 무역 및 교류를 하면서 동시에 서양의 기술 및 문물들을 전파했다. 더해서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과 세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영향으로 일본내에서도 서양문물이 퍼지게 되었다. 또한, 일본어에도 네덜란드어 차용어가 들어가게 되었다. 네덜란드어로 된 일본어 사전도 나왔다. 네덜란드도 일본산 도자기를 많이 수입하여 큰 이득을 보았다.
데지마를 통한 네덜란드와의 교류는 1641년부터 1859년까지 이어졌다. 1868년에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고 새로운 조약(일화수호통상조약)도 체결되었다.

2.2. 20세기


2차 세계대전때 일본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1941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자 영국에 본부를 두던 네덜란드 망명 정부는 영국과 함께 일본에게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자 일본군남방작전을 통해 1942년에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현지의 네덜란드인들을 학살하고 여성들을 위안부로 삼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스마랑 사건까지 일어났었다.
1971년에 쇼와 덴노고준 황후 부부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많은 네덜란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며 쇼와 덴노고준 황후를 향해 야유하며 "히로히토 꺼져라"(HIROHITO GO!)라는 팻말로 항의했고 심지어 68혁명에 가담했던 신좌파들은 "부활한 일본 군국주의에 죽음을!"(DOOD AAN HET HERLEEFD JAPANS MILITARISME)이라는 플래카드로 조롱하기까지 했다. 쉴 새 없이 벽돌과 보온병이 날아드는 바람에 수행원들이 거의 죽어나갔다고 한다.
거기에다 1981년에 사가와 잇세이라는 일본의 유명한 식인종 남성에 의해 르네 하르테벨트(Renée Hartevelt)라는 여성이 인육으로 먹힌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날이 갈수록 악화되던 일본과 네덜란드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1986년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의 방일이 반발 여론으로 무산되기도 했으며, 쇼와 덴노가 사망하고 아키히토가 새 덴노가 되고 나서야 방일을 할수 있었다.
1989년 일본 쇼와 덴노의 장례식 때도 영국,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요르단,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등 많은 군주국들의 국왕, 왕자 등의 왕족들과 대사 등의 외교관들은 쇼와 덴노의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조전을 보냈지만 네덜란드 왕족들은 쇼와 덴노의 장례식에 불참했다.
쇼와 덴노가 사망하고 아키히토가 일본 새 덴노가 된 이후인 1991년에 일본을 방문한 베아트릭스 여왕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과 1956년 일-네덜란드 의정서에서는 배상 문제가 법적으로 국가 간에 있어서 해결되고 있는데도 궁중 만찬회에서 "일본의 네덜란드인 포로 문제는 고향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는 역사의 한장입니다"라면서 배상을 요구했다. 이후 일본은 아시아 여성 기금에 총액 2억 5,500만엔의 의료 복지 지원을 했다.

2.3. 21세기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일부 갈등이 있다. 네덜란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한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연대해서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
다만 이런 내용들을 보고 네덜란드-일본 관계가 안 좋다고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상술한 내용처럼 일본 황실을 격렬히 반대하던 건 68혁명의 분위기가 강하게 남아있을 때 얘기고, 현재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나라는 지금도 외교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교류가 상당히 많으며 일본과 관계가 좋은 국가를 꼽을 때 네덜란드는 거의 포함된다. 실제로 네덜란드에 가보면 친일 감정 역시 상당하단 것을 느껴볼수가 있다.
이후 2013년 나루히토 왕세자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방문 했는데 과거의 험악했던 반응에 비해 많이 사이가 많이 좋아진 덕이 있는지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다. 같은 해에 새로 즉위한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이 일본에 국빈 방문한 적이 있는데, 내각이 주최한 만찬에서 후쿠시마산 토마토로 만든 스파게티 요리를 대접받았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이를 보고 외교 결례라며 비판했다. 한국 네티즌들도 대한민국 대통령과 중국 총리가 후쿠시마산 오이를 대접받은 사건을 떠올리며 비난했다.
2019년 레이와 천황의 즉위식에도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부부가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전세계에서도 유래없는 훌륭한 자전거 인프라가 구축되어있다보니 세계 각지에서 네덜란드의 자전거 인프라를 벤치마킹하여 도입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는 일본센다이시가 있다. 센다이시역시 보도 옆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으며[1] 자전거 전용 신호등까지 도입하기 시작했다.

3. 문화 교류


문화적인 면에서도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편이다. 일본에서도 네덜란드어는 널리 가르치고 있다. 네덜란드어는 일본에서도 유럽언어 내에서 독일어 다음으로 많이 가르치고 있고[2] 네덜란드어책도 자주 발매되는등 일본에서의 네덜란드도 친근한 이미지이다.

4. 대사관


네덜란드는 도쿄에, 일본은 헤이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5. 관련 문서


[1] 우리나라의 자전거 도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애초에 일본은 자전거인구가 많다.[2] 이러한 이유로 교재와 커리큘럼이 부족한 한국에서 일본어로 된 네덜란드어 교재를 사기도 하고 네덜란드어 학과가 설치된 일본의 외국어대학교로 유학을 가는 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