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외교
1. 개요
일본 열도에 위치한 주권국가인 일본의 외교 관계.
일본은 동아시아의 선진국[1] 이자 강대국[2] 으로, 제1세계 내에서도 대표적인 친미 국가이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최우선 파트너이기도 하다. 오늘날 일본은 전범국의 멍에로 인해 정치·군사적으로는 적잖은 제약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3위 규모의 경제력과 오랜 기간 쌓아온 외교 역량[3] 을 바탕으로 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4]
2. 역사
2.1. 근대 이전
고대때에는 한반도 국가들과 중국과 교류가 많았다. 그리고 한반도 국가들과 중국을 통해 문물을 많이 받아들였다. 그외에도 동남아 국가들과도 교류가 일부 있었고 일본인들중에도 동남아에 정착해서 생활한 경우도 있었다.
조선, 베트남, 중국 등과 외교를 했다. 15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일본에도 진출하면서 천주교를 전파했지만, 기독교가 퍼질 것을 우려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가 생긴 이후 유럽인 탄압이 이루어졌고 네덜란드이외의 국가와는 무역을 하지 않았다.
2.2. 일본 제국
19세기 중엽 일본의 에도 막부는 쿠로후네 사건을 계기로 급격한 개화압력에 맞닥뜨리게 되나, 당사국인 미국이 남북전쟁을 치르는 사이 자국의 역량을 총결집하여 근대화를 이룩하고, 대정봉환·판적봉환을 거쳐 중앙집권적인 일본 제국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다. 신생 일본 제국의 당면 외교과제는 단기적으로는 '''서구 열강의 침탈에 맞설 자구책을 확보'''하며 장기적으로는 '''서구 열강들 사이에서 일본의 이해를 관철시킬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었다. 이에 답하고자 아시아주의부터 정한론과 탈아입구, 세계최종전쟁론(...)까지 온갖 사상이 난립하였으나, 일제는 주변국들을 침탈하여 스스로 제국주의 열강에 올라서겠다는, 어찌 보면 가장 쉽지만 가장 위험한 노선을 택하였다. 그 결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일제는 류큐 왕국을 오키나와로 편입하고, 청일전쟁 승리로 대만을 합병하였으며, 러일전쟁으로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에서 조선-대한제국을 보호국화한 데 이어 5년 뒤에는 식민지화한다. 뒤이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도 일본 제국은 승전국의 편에 서서 패전국의 일부 극동 식민지를 확보하였고, 이를 즈음하여 형식적으로나마 내부적인 제도 정비 역시 끝마치면서 국제적으로도 제국주의 열강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럴싸한 겉보기와는 달리 대다수의 일제 신민들은[5] 여전히 착취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국부(國富)나 과학·군사기술, 국민들의 근대화 수준 역시 서구 열강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급격한 근대화와 팽창의 결과 내부에서는 자치·독립을 요구하는 식민지의 민족주의 운동 및 평등·혁명을 요구하는 공산주의 운동이 동시에 터져나왔고, 1930년대 이후 일본 제국은 이를 군국주의로 억누르며 만주, 중국, 동남아시아, 태평양으로 연이어 무리한 팽창을 꾀하다가 끝내 미국의 원자폭탄 두 발에 패망하면서 대부분의 영토를 토해낸다.
2.3. 현대
패전 이후 일본은 7년여 간 미군의 통치를 받았고, 이후 55년 체제가 성립되었다. 냉전기 일본의 외교 전략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우위를 받아들이고 서방진영에 속한 국가들과 연대하여 북한·중국·소련을 견제하는 것'''이었으나, 동시에 자국의 경제적 역량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 및 인접 지역[6] 에서의 부분적 역내 패권 유지[7] '''를 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강력한 문화·산업 역량을 바탕으로 미국마저 위협하던 일본의 경제는 플라자 합의 이후 거품이 꺼지고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끝없는 경기 침체로 이어졌고, 그 사이 중국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일본이 구축해 둔 친일 네트워크가 하나하나 잠식당해가고 있다. 비록 냉전이 제1세계의 승리로 끝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해갈 수 있었으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일본 입장에서 위협적인 경쟁자인 중국 견제에 반드시 필요한 미일관계마저 흔들리고 있는 처지[8] 이다. 대한 외교 역시, 군사정권 시절에는 양국의 현실적 필요[9] 로 인해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국력도 신장되었으나 양국의 과거사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때문에 오늘날 일본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진국이자 경제 대국이라는 이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안보적으로 마냥 웃지만은 못하는, 다소 불안한 외교적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10]
2.4. 미래
20세기 전반기 내내 일본은 한국[11] ·중국[12] ·소련[13] 을 죄다 적으로 돌렸지만 영국, 미국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역내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비록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 일본 제국은 패망하였으나, 대일 승전의 최대 주주인 미국은 냉전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일본의 어두운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고, 중화민국은 국공내전의 패배로 인해 국력이 급격하게 쪼그라들면서 역시 별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반면 20세기 후반기 일본은 미국의 보호·감시 아래 다시금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결과적으로 패전 이후 미군정기 잠깐을 제외하면 100년 이상 세계 열강의 지위를 누려온 셈이다.[14]
그래서인지 일본의 외교 노선은 군국주의 시절을 제외하면 탈아입구로 일관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서구와의 긴밀한 관계는 사실상 일본을 아시아 최선진국이자 서구의 대변자 지위에 오르게 하였다. 아시아 주변국들과의 외교에서는 거의 대부분 갑의 위치에 있었고, 그래서 독일과 달리 상대적으로 과거사 청산에 대한 압박으로부터도 훨씬 자유로웠다.[15]
만일 지금 일본이 경제적 전성기처럼 역내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는 상황이었다면 그나마 진심어린 사죄가 통할 가능성도 있고, 일본 사회도 의외로 그런 사죄를 할 여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그로 인한 세계적 패권 경쟁과 동시에 한국이 한강의 기적으로 완전히 성장을 함과 동시에 한중일 패권 경쟁이 똑같이 진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국제적 초점이 일본의 과거사가 아니라 동아시아에서의 세력 다툼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그에 따라 일본의 과거사 문제도 순전히 역사와 도덕의 관점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조명되고 있다. 이런 국제 사회의 관성적인 인식을 뒤집는건 근미래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일본의 외교적 딜레마는 다시 '''아시아주의 대 탈아입구'''의 문제로 돌아간다. 일단, 대한민국, 대만[16] 등 같은 동아시아에 속한 국가들과의 과거사를 청산함으로써 독일 휘하의 EU처럼 북미, 동구권, 아랍권 등에 버금가는 강한 역내 파트너쉽 창설을 추구하는 길이 있다. 이는 과거 일본 제국의 아시아주의자들이 한국과 중국의 개화를 지원하고 독립을 보장하여 서구 열강들의 도전에 맞서야한다고 주장했던 것을 현대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 내 좌파들이나 황실의 평화주의자 세력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결국 이것이다. 궁극적인 연대의 대상은 문화적 동질감이 있는 아시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은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 제국이 걸었던 길이다. 그 당시의 일본은 '원숭이 놀음'이라는 굴욕적인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필사적으로 근대화했다. 그리고 대영제국의 지원을 받아 대국을 쓰러트리고 마침내 열강의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나 그 힘과 지위는 주변 영토를 강탈하고 침략 전쟁에 남용되었다. 다행이라면 다행히도 이 길은 현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본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선택지는 탈아입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길이다. 현재 일본은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적과 지금도 항상 사사건건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적과의 대결에 맞딱트린 상황이다. 그래서 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충돌할 여지는 적으면서 안보적인 이해관계도 일치하는 인도, 호주, 동남아시아와의 연대를 강화하여 역내 균형을 추구하는 것 또한 합리적인 선택지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계에 자국의 '합리성'과 '선진성'에 대조되는 한국·중국 등의 '불합리성'을 어필하여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압도적인 국제적 지지로 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을 정확히 판단하고,[17] 일본 정계가 스스로 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국내외적으로 유도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3. 국제사회의 인식
이스라엘과 동구권국가들을 제외한 독일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중국, 한국, 북한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일본을 좋아한다. 물론 국가와 국가간의 외교적인 이야기로, 일본인에 대한 감정 및 이미지와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를 바라보는 태도를 생각하면 되겠다.
한국, 중국, 북한의 입장에선 독일과는 달리 제대로 된 전후사과 없이 철면피로 세계무대에 나서는 일본이 원수와도 같지만, 영국이 과거에 인도나 아일랜드, 아프리카, 중동 등지를 식민지로 지배했다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현대 한국과의 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 것과 같다. 또 프랑스, 미국과도 병인양요, 신미양요같은 유혈사태가 있었지만 오랜 세월동안 해묵은 민족감정은 없으므로[18] '옛날에 그런 사건도 있긴 있었지.'하고 넘어가듯이.
일본은 아시아 유일의 G7 국가이기도 하고 미국, 중국 다음으로 명목상 GDP가 높기도 하며 역사적으로도 제2차 세계 대전당시 추축국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좋든 나쁘든 인지도가 세계적으로도 높은 대국이다.
국제적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미국을 축으로 하는 서방진영에 속한 국가중 하나이다. 특히 대서양에 영국이 있다면 태평양에는 일본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국가들에게 일본은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다.[19] 일본 역시 서방세계를 신경쓰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일본 입장에서 가장 신경쓰는 동맹국은 아무래도 당연히 미국이라 하겠다. 자세한 것은 하단 및 미일관계 참조.
유럽의 주요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독일과는 2차대전이라는 흑역사를 공유한다는 점, 내각제를 기본으로 총리가 국가의 수장인 점,[20]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이라는 이유와 과거사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여러 국가들의 거센 반대속에서 본인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유엔 상임이사국에 못 끼는 상황이 여러모로 닮았다.[21] 영국과는 섬나라 및 국왕과 천황이라는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북한을 제외한 모든 UN 회원국들과 정식으로 국교를 맺은 상태이다. 또한 비회원국인 니우에, 바티칸, 코소보, 쿡 제도와도 국교를 맺었다.
4. 비판
과거사의 불인정과 역사 왜곡등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잘못된 태도들은 단지 역사만이 아니라 현재 국가간의 외교에서도 상당한 갈등들을 꾸준히 유발 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한 동북아시아의 긴장감 유발이 대표적인 케이스.
포경에 대한 병적인 집착도 논란의 대상이다. 2019년, 일본은 국제포경위원회를 탈퇴하고 국가 공식적으로 포경을 재개하기로 발표, 포경선을 출항시키는 환영식까지 열었다. 이에 EU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비난이 쏟아졌으며, 여러 환경단체가 크게 반발했다. 이것 때문에 현재 호주와 일본에서 마찰이 생겼을 정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북서태평양 어장에 수백만 톤의 방사능 오염물을 배출시켜 생태계를 망친 주범이 또 다시 이런 국제 환경 보호에 역행하는 행위를 한다는 것도 논란의 대상. 다만 이는 일본 현지에서도 반대가 거세다.
5. 국가별 관계
5.1. 아시아
5.1.1.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여러가지 문제로 애증이 겹치는 나라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비유가 있듯이. 서로 교류도 의존도 많이 하지만 기본적으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서로 가장 지기 싫어하는 나라다. 여러 가지로 한국인들의 경쟁심을 돋우고 있다. 한국이 일본에 가지는 경쟁심 못잖게 일본이 한국에 가지는 경쟁심도 만만치 않다. 다른건 몰라도 한국에게 진다는 것은 자신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22]
일본 5060 중장년세대들은 옛 제국주의 시대를 살던 아버지 세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한국을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로 보는 성향'이 강하다. 제국주의 시절 일본인들의 조선인들을 보는 관점은 내선일체론과 동조동근론에 기반할 때, 자신들이 종가의 정실부인이 낳은 '도련님'이라면, 조선인은 첩이 낳은 방계 '서얼' 정도로 보는 경향이 강했기에, 자신들이 조선인들보다 모든 방면에 있어 우위에 서있는 것은 가부장적 전통상 당연하다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대로 현 5060이상의 남성들에게 대물림되어, 한국쪽에서 일본에 앞서는 부분이 생기면 굉장히 불쾌하고 자존심 상해한다.
반대로 정치와 민족사에 별 관심이 없는 1020젊은 세대들은 한국문화를 그저 하나의 즐길거리로 거리감 없이 향유하나, 이후 3040세대를 거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보수화되면서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와 마찬가지로 폐쇄적 민족주의 경향이 강해져 5060세대의 관점에 동화되어가는 현상이 짙어진다. 사실 이것은 어느나라나 다 마찬가지지만...
한일관계는 요즘 들어서 점점 악화되고 있다. 그나마 일본 문화 컨텐츠 덕에 엔터테인먼트를 교류하는 일은 있지만 만화와 한일관계는 다른 것이라서 일본 대중문화 작품들을 좋아해도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콜라와 햄버거, 할리우드 영화, 미국 드라마들을 좋아한다고, 삼국지와 서유기, 홍루몽, 초한지, 칭따오 맥주, 중화요리를 좋아한다고, 프랑스산 와인이랑 프랑스 영화, 블랑 맥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다 미국이나 중국, 프랑스를 좋아한다고는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노인들이나 중노년 세대들은 역사적인 관점으로 좋아하지 않거나 배척하는 성향이 있지만, 근대적인 이점을 받았다는 관점도 있기 때문에 친과 반으로 나뉜다. 하지만 6.3 항쟁과 한일 외교 복원을 강력히 반대한 일부와 부정적인 역사로 이루어진 역사 교육의 영향으로 반일과 배일 정서가 짙어있다. 반면 일본산 브랜드나 상품 등에 대해서는 "코끼리 밥솥" 등이 과거 인기를 끌면서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최근 한국 제품이 80~90년대에 비해 상당히 발전하며 더 이상 일본 제품이 과거같은 독보적 위치를 갖지 못하는 관계로 일본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또한 옅어졌다.
일본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극우 일본인들도 한일관계 악화에 큰 일조를 하고 있다. 원래라면 어차피 일반인들은 일본어를 못 읽기에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에 극우파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것도 몰라야 정상이지만 해외반응 사이트들에서 고맙게도 혐한들의 반응들을 번역해주어 일반인들의 눈을 뜨게 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문에 일본 내 일부 지역은 여행유의 및 여행제한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후쿠시마현이 그것으로, 현 전체는 여행유의, 제1원전 반경 30km 이내는 여행제한 지역이다.[23] 수입 역시 대부분 중단했지만 몇몇 것들은 계속 수입 중인 듯하다. 시멘트라든지.
두 나라는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지식수준은 90년대까지만 해도 무관심에 가까웠다고 한다.[24] 이게 어느 수준이었나 하면 북한과 남한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아는 일본인이 적었다. 물론 일본 자국 내에서 재일교포 문제가 다뤄지는 일이 적지는 않기 때문에 대강 재일교포들이 조총련과 민단으로 나눠진다는 건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어느 쪽이 북한 국적이고 어느 쪽이 남한 국적인지를 정확히 아는 이는 흔치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까지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한국민들의 반일정서와 배일(排日)정서가 짙었던 영향 때문에 일본문화는 일부 아동용 TV 애니메이션 등을 제외하고는 배척 및 봉쇄대상으로 그 당시까지는 J-POP이나 일본영화 등은 국내에 수입되거나 개봉하지 않았으며 청소년 위주의 애니메이션 대부분도 수입이 금지되었고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운다거나 일어 한 마디만 해도 거부감을 표하거나 '''매국노''', '''친일파'''라며 배척과 멸시를 당하기도 하였고 기타 여러가지 이유 등으로 일본에 대한 배척을 해 왔었다. 지금은 애들마다 앙 기모띠 거리는걸 생각하면 꽤 분위기가 바뀌었다. 굳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한국의 방송에 방영되었더라도 일본 분위기가 있거나 일본어 서체나 자막이 들어간 것은 모두 '''한국적인 분위기'''로 수정하였으며 이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인 대부분이 '''일본사람의 이름을 대부분 알지 못하였거나''' 굳이 알아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이토 히로부미''', 가토 기요마사, 와키자카 야스하루, 고니시 유키나가, 도조 히데키, 사이토 마코토 등과 같은 침략자들과 군국주의자들의 이름을 빼고는 연예인은 물론 성우까지도 지금에 비해서 잘 모르거나 존재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작 일본인이었음에도 대한민국의 독립에 공헌한 독립유공자인 후세 다쓰지 변호사나 전 천황인 아키히토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금은 2002 월드컵 공동 개최, 한류의 영향 등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었고 일본인들도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정도는 갖추고 있는 게 일반화되었으나, 아직도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해 수준이 20년 전의 큰 틀에서 벗어났다고는 보기 힘들다. 이건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의견 자체에 있어서는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데 일례로 한류가 일본에서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던 2010년에는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62%에 달했으나 양국의 독도 분쟁이 심화되고 일본에서 극우 세력의 떡밥이 가중화된 2012년에는 단 2년만에 한국에 대한 긍정 여론이 39%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2013년 현재에는 일본 내 한국에 대한 긍정 여론이 40% 내외로 아주 조금 회복되었다. 그러나 2010년에 한국에 대해 아는 바가 충분히 없다고 답한 13% 가량이 지난 3년간의 한일관계 악화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한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58%까지 치솟았다.
한국인들의 여론상에서도 2013년 기준으로 '''일본을 동맹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가 압도적이었다.[25][26] 한편 중국에 대해서도 '''동맹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가 강세였으며, 미국에 대해서는 '''동맹국이다'''라는 의견이 절대적 강세였다.
향후 여론조사에서도 현 기조가 유지된다면 한국인들의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 혐오적, 불신적인 인식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박근혜 탄핵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전임자(박근혜)같이 어영부영 넘어가지 않겠다는 강경 자세로 나오면서, 한국 사회의 반일 및 혐일 인식은 계속되고 있다. 참고로 박근혜정부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취임 이후 한 번도 일본 정상이나 고위급 인사 등과 직접 회담'''을 가지지 않았으며[27] 취임식 당시 부총리인 아소 다로와 만났던 것이 유일할 뿐이다. 일본의 정책이 바뀌지 않은 이상 박근혜 정부시절동안 한일간의 정상회담이나 고위급 회담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28]
SNS와 정보통신의 발달로 타국의 국민감정, 여론에 대해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되면서 일본내에 전통적으로 만연했던 혐한이 널리 알려지면서 과거사 문제와 별개로 일본에 대한 감정이 크게 악화되었다. 특히 이러한 일본의 몰지각한 한국 증오는 역사나 과거사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 과거사나 영토분쟁이 아니더라도 일본에 대해 불쾌한 반감을 가지게 하는데 아주 톡톡히 일조하고 있다. 이제 과거사, 영토분쟁만이 일본에 대한 반감의 주된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넷상에서의 반한 여론에 비하면 그동안 일반정서는 한국에 대해 적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29]
또, 아베 정권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우경화는 눈에 보이지 않게 물밑작업을 해왔으나,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본격적으로 우경화가 진행되면서 과거사, 영토분쟁 갈등이 점점 심해지면서 한국과의 관계 회복은 요원해지고 있다.[30] 거기에 아베노믹스를 위시한 정책들로, 전임 민주당에 비해 일본의 위상도가 많이 올라갔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의 지지도 상당히 높다.[31]
5.1.2. 북한과의 관계
5.1.3. 대만과의 관계
5.1.4. 중국과의 관계
'''한때''' 중국과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러 애증이 겹치며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바다 건너 마주보는 듯한 가까운 관계를 가'''졌'''지만 센카쿠 영유권 문제와 중국인들의 반일시위 및 성향 그리고 아시아 외교 무시풍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충돌하는 때가 많다. 특히 2001년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에 있어서는 한국과 같은 입장인 편.
게다가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히틀러의 나치 독일 못지않는 전쟁만행들을 저질렀기에 아무래도 관계가 좋아지기는 어려운 상황.
정책이나 외교적인 측면이 아닌 국민 차원에서도 중국은 매우 심한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하다. 일본의 중국 침략 후 난징 등에서 일본군이 벌인 학살의 규모가 엄청났던 데다가, 일본의 점령으로 인해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전통적인 자존심이 뭉개졌기 때문인 듯. 당연히 이것에 대해 일본 역시 중국을 싫어하는 나라로 꼽는데 재밌는 사실은 중국이 싫다는 의견이 한국이 싫다는 의견보다 거의 항상 더 높게 나온다는 점이다. 여기에 우리는 일본을 싫어하는 나라 1위로 꼽지만 일본은 중국을 싫어하는 나라 1위로 꼽는다.[32]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 현재 일본은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강대국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성장에 대해 급박한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해서 추진된 게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재무장화.[33]
아이러니한 건 상대적으로 중국에 대해 매우 유화적이었던 민주당(일본) 시절에 중국이 일본에 대해 강경모드로 나오면서 중일관계가 역대 최악을 찍었다. 이때 민주당이 중국과의 외교 정쟁을 수습하지 못하면서 민주당이 결국 처참하게 몰락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런데 2018년 이후 들어선 동아시아 외교상에서 대격변이 일어나고 재팬 패싱등의 논쟁이 붙고 TPP 등이 엎어지는 등 이전과는 달리 미일관계의 변화의 조짐이 보이자 중국에 어느정도 손을 내미는 형국도 보이고 일대일로의 참가 선언 등 밀월관계를 보이고 있다.https://news.joins.com/article/23441868
하지만 이 오월동주도 2020년대 들어 코로나 19의 세계적 유행과 일본에도 여파가 미침으로써 먹구름이 끼이고 미국과 중국간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다시 반중 포지션으로 돌아서면서 이전처럼 관계가 다시 악화되었다.
5.1.4.1. 홍콩과의 관계
5.1.4.2. 만주와의 관계
5.1.5. 몽골과의 관계
5.1.6. 오키나와와의 관계
5.1.7. 태국과의 관계
5.1.8. 베트남과의 관계
5.1.9.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5.1.10. 인도와의 관계
일본과 인도는 21세기 들어 외교관계가 매우 가까워졌다. 현 일본의 아베 총리와 인도의 모디 총리도 서로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고 인지하고 협력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세계 유일무이 초강대국 미국과 이에 맞서 패권도전에 나선 중국의 영향이 크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독자적인 패권을 행사하고 싶지만, 미국과 일본에 저지당해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본은 중국의 아시아 패권화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동시에 최근 중국을 인구, 경제력, 군사력 면에서 크게 위협하는 신흥 강자인 인도와의 협력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인도 또한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는 것을 당연히 반기지 않으며, 2017년에는 중국과 국경분쟁으로 인해 전쟁까지 갈 위험까지 감수했을 정도다. 더군다나 인도는 1962년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가슴아픈 역사가 있다. 따라서 현재 일본과 인도는 미일관계를 제외하면 신밀월에 가깝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5.1.11. 이스라엘과의 관계
일본과는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편에 속하지만, 일본의 일부 극우 단체들이 나치 독일을 옹호 하면서 하켄크로이츠를 들며 유대인을 비하하는 행보를 보이자 반발하기도 했다.
1952년 5월 15일, 관계가 수립 되었으며 일본은 과거엔 아랍연맹 회원국과 대부분의 무슬림 주요 국가들과의 무역을 이스라엘과의 무역보다 우선시 했었다. 그러나, 2015년 초 유가 하락과 일본의 국내 정치적 변화로 인해, 양국은 특히 기술창업과 방위 분야에서 연구, 경제, 문화적 유대관계를 증진시키고자 하고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일본의 관계는 크게 강화되었고, 양국간의 많은 상호 투자가 이루어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스라엘을 방문한 것은 2015년 한 차례, 2018년 두 번째이다.
2019년 6월 7일, 아베 신조 총리는 이란을 방문하기 전에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여 이란 정세를 두고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참조.
5.1.12. 이란과의 관계
5.1.13. 아랍 국가와의 관계
아랍권 국가들과는 유럽처럼 대체로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일본과 아랍권 국가들은 서로 교류하고 있다. 또한, 일본내에도 아랍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의 토요타에서 생산된 트럭이 아랍권 국가들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또한, 일본 기업들도 아랍권에 진출한 경우도 많고 아랍권에서 생산된 석유를 일본측에서도 많이 수입하고 있다. 거기에다 아랍권 국가들중에도 군주제국가들도 많다보니 일본과는 매우 우호적인 면도 있다.
일본과 아랍권국가들은 오래전부터 교류가 많고 이슬람과 관련해서 터키와 함께 교류가 많은 편이다.[34] 일본내에도 아랍어학과가 많이 있다. 또한, 아랍권내에서도 일본어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JLPT는 아랍권에서도 치뤄지고 있다.
오만과는 일본계 민간인과 오만계 왕실 혼혈 공주인 세츠코 덕분에 돈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일본내에 사우디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사우디의 살만 국왕이 탈석유를 위해 일본을 방문하는 도중에 일본과는 경제협력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 2018년에 사우디가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암살 사건으로 인해 비판을 받고있음에도 사우디에 대해 계속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예멘과는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일본내에도 소수의 예멘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한국과는 외교관계가 없는 시리아 역시 일본과는 1921년에 외교 관계를 맺은 이래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5.1.14. 터키와의 관계
위의 아랍, 이란과 마찬가지로 우호적인 편이다. 일본에도 터키인 공동체가 있다.
5.1.15. 부탄과의 관계
5.1.16. 방글라데시와의 관계
방글라데시와는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부터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내에도 방글라데시인 공동체가 존재해 있다. 2019년 5월 28일 ~ 31일까지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방일할 예정인데, 방일하면서 일본으로부터 3조원 규모의 경제지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방글라데시의 국기는 일장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5.1.17. 카자흐스탄과의 관계
5.2. 유럽
5.2.1. 유럽 연합과의 관계
EU와는 매우 우호적이고 협력을 자주 하고 있다. 그리고 EU회원국들과 일본과의 교류가 많은 편이다. 1990년 10월 30일에 일본 자동차의 대 유럽공동체 수출이 최종타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93년 1월 1일의 EC 단일시장 통합과 때를 같이하여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완전자유화될 것이라고 마르틴 방게만 EC산업정책담당 집행위원이 말했다.#
EU는 2011년이후에 수입규제한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2019년안에 완화(!)한다고 일본측에 밝혔다.# 그리고 EU는 후쿠시마산 콩 수입규제를 완화했지만, 수산물은 규제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유럽 연합 주요 국가들과 함께 코로나19 백신의 공동구매를 조정하고 있다.#
5.2.2. 프랑스와의 관계
세계 2차대전때 형식상 적국이였던 프랑스였지만, 군사적인 대립은 없었기 때문에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다. 현재 일본이 미국 다음으로 가장 교류에 힘을 넣고 있는 서양국가다.
두 나라의 정식적인 교류는 관계는 19세기 분큐통신사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일본은 프랑스 문화를 말 그대로 동경하며 문물을 거의 그대로 수입하는 입장이였고, 분큐통신사의 사절 중 한명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 문물의 우수함을 선전하여 탈아입구를 주장해 메이지유신을 이끌어 냈다. 이러한 일본의 불빠 기질은 19세기 때부터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일본은 프랑스와의 교류와 관계 유지를 위해 엄청난 금액을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파리에 있는 일본문화원은 무려 '''1,200억 원의''' 예산을 들여서 만들어졌으며. 이는 중국문화원의 3배, 한국문화원의 80배가 정도의 예산이다. 프랑스 역시 한국문화원의 10배에 이르는 일본문화원의 부지를 무료로 제공하였다.
몇세기에 걸친 이러한 일본의 노력으로 현재 프랑스는 유럽에서 꽤 큰 일본 문화 소비국이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로 가장 많이 방문하는 유럽국가와 가장 선호하는 유럽국가를 뽑으라고 하면 프랑스를 뽑을 정도로 서로의 관계는 매우 좋은 편이다.
추가로 미국과 더불어 일본이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 대대적인 로비를 펼치고 있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5.2.3. 독일과의 관계
독일과는 19세기에 외교관계를 맺는 관계로 독일과 일본은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정치, 경제, 문화, 법률 등에서는 독일의 영향을 받았고, 일본의 지배를 받은 한국에도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독일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 애니에도 독일어가 자주 나오기도 한다. 거기에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을 같이 일으키기도 했지만, 둘 다 패했다. 두 나라는 제조업과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공통점이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도 일본과 독일을 따라오기는 힘들 정도다. 유명 자동차 회사 브랜드는 일본과 독일 자동차 브랜드가 대다수다. 따라서 두 나라는 경쟁관계이면서도 협력하기도 하는 등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5.2.4. 영국과의 관계
일본과 영국은 여러모로 많은 부분이 닮았다. 우선은 두 나라 모두 섬나라라는 특징이 있으며, 예로부터 섬이라는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의 침입이 적었고 독자적으로 문화를 오늘날까지 잘 발달시켰다. 또한 두 나라 모두 문화력, 즉 소프트파워 강국이며, 군주와 총리가 별도로 존재하는 입헌군주제라는 점도 닮았다. 현 영국의 군주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고, 정치를 담당하는 총리는 보리스 존슨 총리이다. 현 일본의 군주는 나루히토 천황이고, 정치를 담당하는 총리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이다. 그 외에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였다는 점도 공통점을 갖는다. 영국은 과거 가장 많은 식민지를 둔 대영제국의 시절이 있었으며, 일본 또한 아시아에서 많은 식민지를 둔 일본 제국의 시절이 있었다. 따라서 일본과 영국 모두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두 나라 모두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5.2.5. 포르투갈과의 관계
일본에 대항해시대 이후 처음 도달한 서양인들이 포르투갈인이다. 그리고 일본은 포르투갈과는 대항해시대 때부터 외교관계를 맺었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에게 빵[35] , 튀김, 조총, 기독교(가톨릭) 등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일본어에도 일부 포르투갈어 차용어가 존재한다. 그러다가 17세기 이후로 종교적인 문제 + 무역적인 문제로 교역이 끊겼고 19세기 이후 다시 국교를 정상화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인 1942년 일본 제국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인 동티모르를 침공, 점령했고, 두 국가는 잠시동안 단교했으나 1953년 다시 관계를 회복한다.
포르투갈인이 일본에 정착한 케이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파울루 로샤의 사랑의 섬은 마카오를 거쳐 일본에 정착한 벤세슬라우 드 모라이스라는 작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당연하게도 일본에서도 로케이션을 했다.
일본도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았고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에도 참관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어를 가르치지만 대개 한국, 중국과 함께 브라질 쪽이 널리 알려져 있고 브라질 쪽 표현을 가르치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그래도 한국과는 달리 포르투갈 정부에서 주관하는 포르투갈어 시험인 CAPLE(유럽식)가 실시되고 있고 간혹 유럽식으로 배울 수 있는 책도 발행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일본의 선전포고를 받았으나 용케 중립을 지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포르투갈을 축구강국으로 여기고 있다.
5.2.6. 이탈리아와의 관계
5.2.7. 폴란드와의 관계
5.2.8. 네덜란드와의 관계
네덜란드와는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지만, 위안부 문제등의 역사적인 이유로 감정이 안 좋은 편이다.
5.2.9.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5.3. 아메리카
5.3.1. 미국과의 관계
19세기경 미국인 함장 매슈 페리가 이끌었던 함선이 미국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땅에 입항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이 때부터 미국과 외교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1941년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이 때부터 추축국과 연합국이라는 대립적인 관계로 적대지간이 되기도 하였다. 1945년 8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후임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트루먼의 지시에 의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제가 패망하게 되면서 이후로는 연합국의 자격으로 일본을 군정통치를 하다가 1952년 해제했다.
그러나 자민당 정권 시절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집착하듯 미일동맹을 빌미삼아 편향적인 친미 외교를 보여왔던 것 때문에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아시아 외교를 무시하고 경시했다는 악평이 쏟아지기도 하였다. 이런 경향은 아베 신조 이후 더욱 심해지면서 철저한 친미 외교로 일관하고 있다. 다만 경제에 관해서는 미국과 상당한 마찰을 보이고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TPP에서 탈퇴한 이후 미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 줄곧 환율 문제와 무역수지 적자 문제를 제기하며 양자 FTA를 압박하고 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5.3.2. 캐나다와의 관계
캐나다과는 매우 우호적이다. 그리고 캐나다와 일본은 둘다 입헌군주제 국가에다가 G7에 속해 있고 TPP에도 가입되어 있다. 캐나다내에도 일본계 캐나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토요타는 2022년부터 캐나다에서 렉서스NX를 생산한다고 밝혔다.#
5.3.3. 중남미 국가와의 관계
브라질을 포함해서 19세기부터 일본인들이 중남미에 많이 이주했다. 그리고 중남미에 거주하는 일본인 후손들은 나중에 중남미에서 동화되었다. 대체로 중남미국가들과 일본은 우호적인 편이도 일본 기업들이 중남미에 많이 진출해 있다. 일본에서도 스페인어를 가르치지만, 대개 중남미쪽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한, 일본내에는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인 커뮤니티도 많이 있다. 그리고 중남미 각국에도 소수의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5.3.3.1. 쿠바와의 관계
쿠바와는 1920년대부터 맺고 있으며 쿠바 혁명 이후에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5.3.3.2. 멕시코와의 관계
양국은 현재에도 경제협력을 포함한 여러 교류가 많은 편이고 매우 우호적이다. 그리고 19세기에 멕시코에 일본인들이 정착하면서 일본계 멕시코인이 되었다.
5.3.3.3. 브라질과의 관계
일본과 브라질의 관계는 매우 좋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브라질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매우 많으며, 브라질 사람들도 아시아인 중에서 일본인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다. 특히 브라질은 남아메리카 국가들 중에서 일본 문화 소비가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론 남미대륙 전체적으로 일본 문화를 많이 소비하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브라질은 독보적으로 많이 소비한다.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2020 도쿄 올림픽 프리뷰를 할 때 브라질인들의 반응이 매우 좋은 점에서 브라질의 일본 선호도를 알 수 있다. 이런 양국간의 선호도에 힘입어 세계 3대 경제대국이자 2위의 경제선진국인 일본과 브릭스이자 미래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은 브라질의 외교관계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5.3.3.4. 페루와의 관계
5.4. 아프리카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들과는 대체로 협력을 자주 하고 있다. 대체로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도 일본에 대해서 우호적인 편이다. 일본에도 나이지리아인 공동체를 비롯해 아프리카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2010년대부터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강화중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도 아프리카에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 1993년부터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라 하여 일본 정부 주도하에 유엔 및 아프리카연합위원회(AUC) 등과 공동으로 열고 있는 회의체도 있고 2017년 기준 아프리카 인프라 투자 투자기관/ODA 투자국 중 4위였고[36] , 3위에 해당하는 아프리카개발은행에서도 일본의 투표권은 3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도쿄에서 아프리카 50개국의 외무장관들을 불러서 국제회의를 열었다.# 2018년 11월 8일에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알제리, 가나에 닛산자동차가 새 공장을 지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육성하고 친일엘리트양성을 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아프리카 지역 10개국과 일본 기업의 현지진출을 지원하는 2국간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2019년 8월 28일부터 3일동안 요코하마에서 제7회 아프리카 개발회의가 개최되었고, 일본 기업 진출 환경을 만들기 위해 6년간 3,000명의 산업 인력 육성과 5,000명의 과학 기술 혁신 고급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아베 총리가 설명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진출을 할려는 일본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국가들과는 상아와 관련된 건으로 인해 갈등이 있는 편이다.# 또한, 아프리카 개발회의를 두고 중국과 일본은 신경전을 벌였다.#
5.4.1. 이집트와의 관계
이집트와는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이집트 문화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알려진 것도 있고 이집토마니아도 서구권의 영향으로 많이 생겨났다. 또한, 유희왕 등 고대 이집트와 관련된 애니메이션도 방영되기도 했다.
5.4.2. 나이지리아와의 관계
나이지리아는 1960년에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었고, 양국간의 관계가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경제 및 정치, 문화간의 협력도가 높다고 하며 양국민은 서로 우호적이다.
5.4.3. 세네갈과의 관계
세네갈도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일본에도 세네갈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5.4.4. 지부티와의 관계
지부티도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2011년, 일본 자위대의 '''전후 최초이자 유일한''' 해외 군사 기지가 설치 되어 있다. 그리고 지부티 공항 인근에 15헥타르 정도의 땅을 임대해 항공기 격납고와 보급창고, 숙소 등을 건설하였다. 수송기, 초계기등의 군용기와 약400명 정도의 자위대 병력이 주둔 중이다. 이 기지의 자위대 병력은 아덴만 해적 대책 및 위기시 일본인 구조 등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P3C가 2020년 1월 20일에 지부티 현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5.4.5. 모잠비크와의 관계
모잠비크는 일본과 독립 이후에 수교했다. 양국은 매우 우호적이다. 2020년에 일본은 모잠비크 LNG 개발에 총 144억 달러(약 17조원)를 융자하기로 했다.#
5.4.6. 모리셔스와의 관계
모리셔스는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모리셔스에도 일본인 관광객들이 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2020년 8월에 와카시오 호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나면서 양국간에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모리셔스 정부가 돌연 일본 정부는 사고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해 모리셔스를 방문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프라빈 주그노트 모리셔스 총리를 면담하고서 모리셔스의 경제 회복을 위한 중장기적 지원 의사를 표명하고, 면담 종료후 기자회견에서 300억엔(약 3천147억원) 규모의 엔 차관 제공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뜻을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5.4.7. 알제리와의 관계
일본은 냉전시절에 알제리와 수교했다. 양국은 경제적인 교류가 활발하며 일본 기업들이 알제리에도 진출했다. 알제리내에도 일본인 공동체가 존재하는데, 주로 경제적인 업무로 알제리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5.4.8. 모로코와의 관계
일본은 모로코와 1953년에 수교했다. 양국은 대사관을 두고 있으며 도쿄에 주 일본 모로코 대사관, 라바트에는 주 모로코 일본 대사관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모로코를 여행하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많은 편이다.
5.5. 오세아니아
5.5.1. 호주와의 관계
5.5.2. 팔라우와의 관계
5.5.3. 마셜 제도와의 관계
5.5.4. 나우루와의 관계
5.5.5. 미크로네시아 연방과의 관계
6. 지역별 관계
- 미일관계
- 한일관계
- 북일관계
- 러일관계
- 중일관계
- 대만-일본 관계
- 일본-오키나와 관계
- 몽골-일본 관계
- 태일관계
- 인도네시아-일본 관계
- 베트남-일본 관계
- 터키-일본 관계
- 이란-일본 관계
- 인도-일본 관계
- 부탄-일본 관계
- 카자흐스탄-일본 관계
- 우크라이나-일본 관계
- 독일-일본 관계
- 폴란드-일본 관계
- 영일관계
- 불일관계
- 네덜란드-일본 관계
- 스페인-일본 관계
- 포르투갈-일본 관계
- 캐나다-일본 관계
- 멕시코-일본 관계
- 쿠바-일본 관계
- 브라질-일본 관계
- 페루-일본 관계
- 나이지리아-일본 관계
- 호주-일본 관계
- 뉴질랜드-일본 관계
- 일본-팔라우 관계
- 일본-마셜 제도 관계
- 일본-나우루 관계
- 일본-미크로네시아 연방 관계
7. 관련 문서
[1] 일본은 흔히 선진국의 지표로 쓰이는 OECD와 G20은 물론 G7의 회원국이기도 하다.[2]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3] 일본은 유럽과 미주를 제외한 지역에서 가장 먼저, 가장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루었으며, 그만큼 국제 외교무대에 데뷔한 역사도 길다.[4] 한국, 북한,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일본의 대외적 이미지는 거의 세계 모든 지역에서 상당히 좋다.[5] 심지어 일본인 하층민들조차도 그러했으니 조선인, 중국인 등 식민지의 사정이야 당연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물론 중화민국 지역의 중국인들에 비하면야 내지의 일본인들이 나은 편이긴 했지만, 당대 중국은 내전 때문에 정말로 민생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반면 일본은 제국주의에 눈이 멀어 내부 모순을 방치한 것에 가깝다.[6]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남아시아 등[7] 물론 군사적인 팽창보다는 경제적인 종속의 의미이다. 최근 대한민국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비슷한 방향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8] 대표적으로 미국의 TPP 가입 철회가 있다. 사실상 미국의 보증으로 역내 친서방 국가들을 통합하여 중국에 맞서겠다는 복안이었는데, 미국이 떠나면서 형식적인 연대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되었다. 관세를 포함한 각종 경제적 압박은 덤이고. 물론 이러니저러니 해도 기본적인 일본의 국력이 있고 미일관계가 있으니 정도 이상으로 돌아설 리는 없지만, 플라자 합의 이후 미일관계에서 지금처럼 경제적인 대립이 심한 적도 없었다.[9] 일본은 공산권의 위협을 일차적으로 막아 줄 강력한 반공 동맹이 필요했으며, 한국은 경제 발전의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의 차관이 필요했다. 게다가 박정희와 전두환 모두 여러가지 이유로 일본 주류 정계와의 커넥션이 많았으며, 한일 간 가장 민감한 이슈인 과거사나 독도 이슈 역시 서로 꺼내들기보다는 덮고 가자는 쪽이었다. 비록 한국은 독재 정권인 반면 일본은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 정부였다는 차이는 있다지만, 추구하는 이념이나 정책 역시 비슷했고.[10] 비슷하게 전범국이자 패전국의 멍에를 뒤집어썼던 독일과 비교해보면 이 문제점이 두드러진다. 독일은 심지어 기존의 국가 체제가 완전히 엎어지면서 분단까지 되었고, 대륙국가의 지정학적 요건 상 안보 위협도 훨씬 큰 데다, 경제력 역시 일본에 미치지 못하지만, EU를 통해 오늘날 일본에 비해 훨씬 우호적인 외교구도를 조성하고 있다. 독일에 인접한 프랑스, 폴란드,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체코, 스위스 모두 독일을 공격할 가능성이 제로에 무한히 수렴하며, 오히려 외부에서 독일을 침략하면 대신 방파제가 되어 줄 위치의 국가이다. 게다가 주적이라는 러시아도 미국보다 유럽 연합과 그 수장국인 독일을 더 말이 통하는 파트너로 판단하고 있고. 반면 지리적으로 일본에 가까운 대한민국, 북한, 중국, 대만, 호주 중에서 일본에게 확실히 우호적인 나라는 호주, 조금 더 쳐줘서 대만 정도에 불과하며, 개중에서도 호주는 위치 상 방파제가 되어줄 수 없다. 한국은 중립은 지킬 수 있어도 유사시 일본을 위해 피를 흘려줄 생각은 전혀 없고, 북한과 중국은 일본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며, 두 나라 모두 한미일 진영과의 관계를 정립할 때 한일은 사실상 패싱하고 미국만을 유의미한 대화 파트너로 평가한다. 이것만 봐도 일본의 외교적 실패는 명확하다.[11] 경술국치로 인한 한반도 식민지화[12] 불평등 조약의 강요, 만주 사변과 중일전쟁[13] 러일전쟁의 앙금, 적백내전 당시 간섭군, 할힌골 전투 등의 국경분쟁[14] 장제스의 중화민국이 40년대 초 모든 불평등 조약을 해지하고 중일전쟁에서 승리하기 전까지는 서구 외교가에서 자대등한 열강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던 것과 비교된다.[15] 물론 독일이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식민지나 동구권 소수민족들에게 제대로 사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허나 어쨌든 독일은 적어도 양 옆에 있는 필요한 프랑스나 폴란드, 그리고 적국이었던 소련과의 과거사 청산은 철저하게 했다. 반면 일본은 적대든 우호든 자기네 대전략의 일부를 필연적으로 차지할 한국이나 중국, 동남아시아는 물론, 같은 진영에 속한 일부 유럽 국가들에게도 전쟁범죄를 부인하면서 어그로를 끈다.[16] 추가로 중국과 북한까지 같이 포함한다.[17] 대한민국의 외교 전략에서 일본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되느냐에 따라 일본이 어느 방향을 추구하는 편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달라질 수 있다. 겉보기에는 아시아주의가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예컨대 과거 아시아주의의 최대 지지 세력이 일본 내 공산주의자들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당시 북한과 중국에 연대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의미만은 아니었을 수 있다. 반대로 일본이 탈아입구에 기초한 전략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만일 모종의 이유로 인해 한일관계가 6~80년대 수준으로 다시 급격히 진전된다면 (일본 입장에서) 탈아의 대상에 대한민국까지 포함되어 중국을 포위 견제하는 개념이 될 수도 있고. 인간사에서도 대인관계가 손뼉이 맞아야 소리가 나듯, 외교도 결국 국가간의 합이 맞아야 하는 거다.[18] 애초에 이 사건들은 민족감정보단 개항과 척화, 서양과 동양의 충돌이라는 측면이 더 부각되어 상대적으로 민족감정이 희석되는 감이 있다. 애당초 스케일 자체가 소규모 국지적 충돌에 불과하기도 했고...[19] 일본과 관계가 약간 껄끄러운 서방국가는 네덜란드 정도가 있다지만, 그런 것도 전체적으로 보자면 어디까지나 지엽적인 문제다. [20] 단 독일은 공화정이다.[21] 일본은 한국 등 식민지배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게 피해를 입었던 아시아의 몇몇 국가들과 현행 상임이사국이자 과거 일제와 싸웠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고 있고, 독일은 상임이사국 국가들마다 지지와 반대로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일본과는 다르게 상임이사국 5개국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으나, 네덜란드, 폴란드, 체코, 덴마크, 불가리아, 노르웨이, 나미비아, 탄자니아 등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에게 전쟁 피해를 입었거나 독일 제국 시기 독일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유럽 국가들과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고 있다.[22] 외교 문제는 아니지만 일본이 한국에 열폭하여 큰 병크를 터뜨린 적도 있다. 후지무라 신이치 참조.[23] 그런데 후쿠시마는 원자력 발전 사고가 일어나기 이전에도 볼거리도 그렇게 많지 않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여행갈 때도 별로 많이 가지 않던 지역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터지기 전에도 주로 한국인들은 일본 여행을 할 때 홋카이도나 오사카, 큐슈, 시코쿠, 도쿄등을 더 많이 갔던 편.[24]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근현대사만 조금 배우더라도 결코 이 정도로 근현대사적 연관이 짙은 이웃국가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없을 테지만, 문제는 항상 문제시되듯 일본은 근현대사를 일부러 가르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 현지 중학교를 다녀 본 이의 증언에 따르면 학기 내내 고대사와 중세사만 중점적으로 배우고 20세기부터의 근현대사에 대해선 하루 수업으로 땡치거나 아니면 아예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25] 사실 이 의견은 잘못되었다고 볼 여지도 없는 것이, 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공식적으로 동맹관계가 아니다. 두 국가의 공통된 동맹국인 미국의 중재 하에 3국 간의 협력체제가 이뤄지는 것을 직접적인 양국 간의 동맹 관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26] 특히 반일감정 및 혐일 인식이 짙은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이러한 조사답변이 나왔다. 50대의 경우 1964년 6.3 항쟁에 참가하였거나 경험을 해봤던 세대였던만큼 일본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좋지 않은 감정을 보이고 있다.[27] 유사한 인물로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등이 있다. 이승만의 경우 본인이 원래 독립운동가 출신이라 반일 인식이 짙기도 하고 당시 일본과 국교관계가 없던 시절이라 일본 정상과 회담을 가졌던 적이 없으며 윤보선의 경우 박정희의 5.16 군사 정변 때까지 한일정상회담을 했던 경험이 없다. 또 최규하의 경우 박정희 사망 직후 대통령 직무권한대행으로 있다가 바로 대통령으로 격상되어 취임하였지만 전두환의 신군부 압박과 5.18 민주화운동 등 혼란스러운 정세와 짧은 임기로 인해서 재임동안 일본 정상 등과 회담을 했던 경험이 없다.[28] 한일관계는 기본적으로 양국 정치인들이 공조하며 오랫동안 서로에 대한 상호신뢰감을 가지고 협조를 해야 개선이 가능한 문제이다.[29] 일본에서 한국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북한, 중국''' 때문이다. 싫어하는 나라 1위 자리를 항상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한국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만 북한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실제로도 가장 싫어하는 국가 순위에서 북한을 싫어한다는 응답은 한국을 싫어한다는 응답에 비해 심할 경우 '''15~25%나 높게 나오는 일도 있으며''' 심지어 혐한세가 상당히 심한 니코동에서조차 2~3% 차로 북한이 앞설 정도다. 애초에 혐한초딩이란 말은 있어도 혐북초딩, 혐중초딩이란 말은 잘 안 쓰이니... 심지어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과 좌파들도 '''북한, 중국만큼은 경기가 날 정도로 매우 싫어한다.''' 역사 관련 대립을 뺀다면, 한국과의 대립은 독도 같은 걸 빼면 실질적인 대립은 거의 없고 단순한 감정적 대립이 대부분이다. 북한과의 대립은 민간인 납치 사건이나 미사일 발사 문제 같은 심각한 사안이 많이 때문.[30] 합리적인 외교 정책을 해오던 이명박 정부조차도 일본의 영토분쟁 도발이 워낙 거세져서 대응 강도를 높여야만 했다. 결국 이것은 현직 대통령 최초의 독도 방문으로 정점을 찍게 된다.[31] 일본 내에서도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에 대한 반발은 꽤 많은 편이지만, 아베가 적어도 동일본 지진 이후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던 민주당 정권에 비해 혁신가의 모습을 많이 어필했기 때문에 지지율 자체는 낮지 않다. 게다가 현재 일본 정치계에서 아베를 대신할만한 인물도 딱히 없다. 올바른 소리만 한다고 해서 무작정 나라를 맡기는 건 사실 국가에 해가 될 수 있는 일이다. 2014년 12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민주당을 개발살냈을 정도. [32] 다만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개인마다 편차도 커 호불호가 갈리는데(일본을 극혐하는 사람도 많은가 하면 관광, 유학, 야동, 만화, 제품, 음식,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은 또 아주 좋아한다는 얘기) 비해 중국에 대한 감정은 혐오국가 1위는 면했을지언정 좋아하는 사람이 일본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일본에 비해 '''싫어하는 쪽으로의 통일성'''은 이쪽이 더 크다. 거기에 애초 중국 역시 싫어하는 나라 2~3위에 있어 혐오수준이 일본에 준한다는것을 생각하면, 특정 세력을 제외하면 중국과 편먹는것도 있을 수 없는 일. [33] 일부에서 북한을 핑계로 삼지만 북한만 대상이면 일본이 재무장화할 필요조차도 없다. 한국, 미국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견제가 목적이다.[34] 오래전부터 이슬람쪽에서도 터키와의 교류가 활발한 편이었고 현재에도 활발하다.[35] 덕분에 한국까지 포르투갈어 '빵(pão)' 을 쓰게 되었다.[36] 출처: The Infrastructure Consortium for Africa(ICA) Annual Report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