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미 아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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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오릭스 버팔로스 소속의 플레잉코치 투수. 오랫동안 한신 타이거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오사카 가스에서 사회인 야구를 했는데, 부상으로 신음하며 실제로 등판한 적은 별로 없어서 '환상의 투수'라고 불렸다고 한다.
2004년 자유 획득으로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하였는데 입단 당시에는 즉전력감으로 평가받았지만 평균자책점 5점대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2007년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건너간 이가와 게이를 대신하는 좌완 선발로 꼽혔지만 두 달도 못 버티고 털려서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한편 2012년 이가와는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해 오릭스로 갔다.
이후 2군 투수 코치 호시노 노부유키의 조련으로 투구폼을 바꾸면서 서서히 각성하여 2009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면서 28경기 165이닝 1완투 1완봉승 13승(공동 4위) 9패 154탈삼진(2위) 평균자책점 2.62(4위)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10년에는 12경기 62⅓이닝 8승 무패 평균자책점 2.60의 성적을 남겼다. 많이 등판 못한 것은 부상 등 컨디션을 조절하지 못한 탓이 크다.
2011시즌에도 한신의 제 1선발이자 에이스 활약하였으나 팀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투고타저 시즌이어서 1~3점을 내주고도 패전투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평자점도 낮았음에도 승리보다 패전이 늘어나기도 했다.
2011년 8월 9일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대결에서 선발로 나서 8이닝 118투구 1피안타(!) 13탈삼진 4사구 라는 우수한 기록으로 시즌 6승째를 기록 역시 슬라이더, 체인지업으로 우수한 기록을 남겼다.
2011년 페넌트레이스 기록은 29경기 200⅓이닝(4위) 5완투(공동 2위) 1완봉승 12승(공동 4위) 9패 1홀드 1홀드포인트 186탈삼진(2위) 방어율 2.52
2012 시즌에 29경기 27선발, 182이닝 WHIP 1.07, 센트럴리그 최다 탈삼진[1] 인 '''172탈삼진''', 방어율 2.42, 완봉승 2번으로 역시 한신의 에이스다운 성적을 거두었지만 막장 타선[2] 때문에 꼴랑 10승 10패에 그치고 말았다.
2013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대표[3] 로 뽑혀 갔고, 결국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개막 선발은 랜디 메신저가 맡게 되었고 당분간 노미는 휴식을 취했다. 시즌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복귀하여 역시나 에이스다운 투구를 해 줬다. 다만 손톱 문제로 시즌 중에는 고생이 좀 따른 듯. 총 25경기 모두 선발로 나와 180⅔이닝 투구, 6완투 2완봉 및 127탈삼진, 방어율 2.69를 기록하고 '''11승 7패'''. 그나마 경기당 평균 7이닝은 너끈히 넘어갔다는 것이 위안거리. 여담으로 커리어 첫 홈런을 치기도 했다.
2013년 종료 시점에서 통산 9년간 성적은 211경기 133선발 17완투 7완봉 64승 44패 12홀드 987⅓이닝 방어율 3.03 WHIP 1.20이다.
2014년 3월 28일 도쿄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 선발 투수로 나와서 '''4⅔이닝 10실점 10자책점'''을 기록하며 대폭발하고 만다.[4] 요미우리가 개막후 5경기 동안 '''77안타 44득점'''을 기록하는 등 타격 페이스가 좋았고, 본인의 컨디션도 좀 안 좋았던 듯했다. 4월 3일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6이닝 3실점으로 첫승을 따냈다. 그러나 14시즌 자체는 생각보다 부진한 상황이다. 그러고도 마지막 클라이맥스 시리즈 때는 안타를 좀 많이 맞긴 했지만 자기 역할은 충실히 해냈다.
15시즌에도 한신의 토종 선발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현실은 팀내 최다패 단독 1위... 7월 9일 기준으로 5승 9패 '''88이닝 101피안타 41자책 ERA 4.19'''로 좋은 편이 아니다. 이 성적은 후지나미 신타로는 물론이거니와 이와타 미노루 앞에서도 명함 못 내밀 수준으로 부진하는 중. 시즌 최종 성적은 27경기 11승 13패 ERA 3.72로 2년 연속 세리그 최다패 투수가 되었다.
2016년에는 26경기 8승 12패 평균자책점 3.67의 성적으로 3년 연속 패왕이 되었다.
2017년에는 역력히 힘이 떨어진 모습에 승운도 안따르며 6승에 머물렀다. 첫승을 6번째 선발등판인 5월 8일에서야 올렸다.. 5,6이닝만 던지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 노디시전을 많이 기록, 6패로 패왕에서 벗어난게 위안 아닌 위안이다. 최종성적은 6승 6패 1완투 128 1/3이닝 방어율 3.72.
포스트시즌에서는 10월 17일 요코하마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최종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했으나, 1아웃밖에 못잡고 4피안타 2사사구 3실점으로 탈탈 털리며 팀 광탈의 1등공신이 되었다.
2018시즌에도 선발요원으로 시즌을 맞이했으나, 등판한 3경기에서 좋지않은 모습을 보이며 결국 6월부터 불펜으로 전향했다. 불펜에서는 그럭저럭 안정된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2018년 6월 28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원정경기에서 8회에 등판하여 NPB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 NPB에서는 135명째이며, 사상 두 번째로 늦은 39세 1개월에 도달하게 되었다. 8월 16일 히로시마전에서는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2019년은 풀타임 불펜으로 시즌을 출발. 51경기 44이닝 1승2패 18홀드 방어율 4.30을 기록했다. 주로 추격조~좌완 원포인트로 활약하며 후지카와 큐지와 함께 한신 철벽계투진에서 40세 듀오를 이뤘고, 한신이 시즌후반 불펜야구로 기적같은 CS진출을 이뤄내는 데 힘을 보탰다. 다들 나이가 나이다보니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불펜으로 기적같은 부활을 이뤄낸 시즌.
20년도 41세 나이로 1군 불펜에서 스타트. 시즌초 방어율은 6점대로 좋지 않으나 좌완불펜이 필승조 이와사다를 빼면 노우미밖에 없어서 패전조에서 원포인트까지 등판 기회는 많이 얻고 있는 중이다.
이후 적당적당한 1.5군급 선수로 1군과 2군을 오가며 패전조로서 평범한 성적을 남기며 활약했다. 9월 25일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로 인해 긴급히 재콜업, 의외로 7경기 연속 무실점 활약을 펼치기도 하며 30시합 방어율 4.98로 나름 42세라는 나이와 패전조라는 롤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으나, 10월 22일 구단으로부터 전력외통고를 받아서 구단과 결별이 확정되었다. 성적이 나쁘지 않은데 예상외라는 반응.
같이 전력외통고를 받은 후쿠도메 코스케와는 달리 이쪽은 성적이 그다지 나쁘지 않고, 희소성이 있는 좌완불펜이라 아직 패전조나 원포인트로서는 가치가 있어 비록 나이는 많지만 현역생활 연장을 원한다면 갈 팀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 다만 이쪽은 데뷔후 한신에서만 선수생활을 해온 원 클럽 맨이라 이대로 은퇴를 택할 가능성도 있고 가능성은 말 그대로 반반이다. 일단 선수 본인은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여러분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 이라고 애매모호한 코멘트를 남겼다. 현역생활 연장을 원하기는 하는데 아직 결단이 안 서서 좀 망설임이 있는 듯.
그 와중에 전력외통고를 받고 22일 경기에 등판해 1이닝 삼자범퇴로 막고 내려갔다.
2020년은 34경기 24.2이닝 1승 1세 4홀 4.74로 역시 원포인트 및 패전조로서는 쏠쏠한, 41세인 나이를 생각하면 뛰어나다고 해도 과하지 않은 좋은 성적을 찍었다. 시즌후 후쿠도메 코스케,우에모토 히로키 등과 함께 공식적 퇴단처리와 함께 현역속행을 희망한다는 기사가 나왔고, 같은 오사카의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결국 12월 8일 오릭스 버팔로즈 1군 투수코치 겸 선수로 입단이 확정되었다. 기사 링크(일본어)
뭐 사실 노미가 아무리 잘 해도 나이가 많기 때문에 선수로서 기대한다기보다는, 플레잉코치 입단을 보면 알 수 있듯 은퇴후 코치로서의 역할을 더 기대한 영입.
스리쿼터 투구폼에서 나오는 평균 140km/h대 초반, 최고 151km/h의 직구와 슬라이더, 포크볼,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구사한다. 파워피쳐 타입의 투수로 보기는 어렵지만 탈삼진율은 상당히 높은 편.
특히 우타자를 상대로 몸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는 그의 최고의 무기로 꼽을 수 있다.
1. 상세
현 오릭스 버팔로스 소속의 플레잉코치 투수. 오랫동안 한신 타이거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였다.
2. 선수 생활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오사카 가스에서 사회인 야구를 했는데, 부상으로 신음하며 실제로 등판한 적은 별로 없어서 '환상의 투수'라고 불렸다고 한다.
2004년 자유 획득으로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하였는데 입단 당시에는 즉전력감으로 평가받았지만 평균자책점 5점대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2007년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건너간 이가와 게이를 대신하는 좌완 선발로 꼽혔지만 두 달도 못 버티고 털려서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한편 2012년 이가와는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해 오릭스로 갔다.
이후 2군 투수 코치 호시노 노부유키의 조련으로 투구폼을 바꾸면서 서서히 각성하여 2009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면서 28경기 165이닝 1완투 1완봉승 13승(공동 4위) 9패 154탈삼진(2위) 평균자책점 2.62(4위)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10년에는 12경기 62⅓이닝 8승 무패 평균자책점 2.60의 성적을 남겼다. 많이 등판 못한 것은 부상 등 컨디션을 조절하지 못한 탓이 크다.
2011시즌에도 한신의 제 1선발이자 에이스 활약하였으나 팀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투고타저 시즌이어서 1~3점을 내주고도 패전투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평자점도 낮았음에도 승리보다 패전이 늘어나기도 했다.
2011년 8월 9일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대결에서 선발로 나서 8이닝 118투구 1피안타(!) 13탈삼진 4사구 라는 우수한 기록으로 시즌 6승째를 기록 역시 슬라이더, 체인지업으로 우수한 기록을 남겼다.
2011년 페넌트레이스 기록은 29경기 200⅓이닝(4위) 5완투(공동 2위) 1완봉승 12승(공동 4위) 9패 1홀드 1홀드포인트 186탈삼진(2위) 방어율 2.52
2012 시즌에 29경기 27선발, 182이닝 WHIP 1.07, 센트럴리그 최다 탈삼진[1] 인 '''172탈삼진''', 방어율 2.42, 완봉승 2번으로 역시 한신의 에이스다운 성적을 거두었지만 막장 타선[2] 때문에 꼴랑 10승 10패에 그치고 말았다.
2013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대표[3] 로 뽑혀 갔고, 결국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개막 선발은 랜디 메신저가 맡게 되었고 당분간 노미는 휴식을 취했다. 시즌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복귀하여 역시나 에이스다운 투구를 해 줬다. 다만 손톱 문제로 시즌 중에는 고생이 좀 따른 듯. 총 25경기 모두 선발로 나와 180⅔이닝 투구, 6완투 2완봉 및 127탈삼진, 방어율 2.69를 기록하고 '''11승 7패'''. 그나마 경기당 평균 7이닝은 너끈히 넘어갔다는 것이 위안거리. 여담으로 커리어 첫 홈런을 치기도 했다.
2013년 종료 시점에서 통산 9년간 성적은 211경기 133선발 17완투 7완봉 64승 44패 12홀드 987⅓이닝 방어율 3.03 WHIP 1.20이다.
2014년 3월 28일 도쿄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 선발 투수로 나와서 '''4⅔이닝 10실점 10자책점'''을 기록하며 대폭발하고 만다.[4] 요미우리가 개막후 5경기 동안 '''77안타 44득점'''을 기록하는 등 타격 페이스가 좋았고, 본인의 컨디션도 좀 안 좋았던 듯했다. 4월 3일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6이닝 3실점으로 첫승을 따냈다. 그러나 14시즌 자체는 생각보다 부진한 상황이다. 그러고도 마지막 클라이맥스 시리즈 때는 안타를 좀 많이 맞긴 했지만 자기 역할은 충실히 해냈다.
15시즌에도 한신의 토종 선발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현실은 팀내 최다패 단독 1위... 7월 9일 기준으로 5승 9패 '''88이닝 101피안타 41자책 ERA 4.19'''로 좋은 편이 아니다. 이 성적은 후지나미 신타로는 물론이거니와 이와타 미노루 앞에서도 명함 못 내밀 수준으로 부진하는 중. 시즌 최종 성적은 27경기 11승 13패 ERA 3.72로 2년 연속 세리그 최다패 투수가 되었다.
2016년에는 26경기 8승 12패 평균자책점 3.67의 성적으로 3년 연속 패왕이 되었다.
2017년에는 역력히 힘이 떨어진 모습에 승운도 안따르며 6승에 머물렀다. 첫승을 6번째 선발등판인 5월 8일에서야 올렸다.. 5,6이닝만 던지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 노디시전을 많이 기록, 6패로 패왕에서 벗어난게 위안 아닌 위안이다. 최종성적은 6승 6패 1완투 128 1/3이닝 방어율 3.72.
포스트시즌에서는 10월 17일 요코하마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최종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했으나, 1아웃밖에 못잡고 4피안타 2사사구 3실점으로 탈탈 털리며 팀 광탈의 1등공신이 되었다.
2018시즌에도 선발요원으로 시즌을 맞이했으나, 등판한 3경기에서 좋지않은 모습을 보이며 결국 6월부터 불펜으로 전향했다. 불펜에서는 그럭저럭 안정된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2018년 6월 28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원정경기에서 8회에 등판하여 NPB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 NPB에서는 135명째이며, 사상 두 번째로 늦은 39세 1개월에 도달하게 되었다. 8월 16일 히로시마전에서는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2019년은 풀타임 불펜으로 시즌을 출발. 51경기 44이닝 1승2패 18홀드 방어율 4.30을 기록했다. 주로 추격조~좌완 원포인트로 활약하며 후지카와 큐지와 함께 한신 철벽계투진에서 40세 듀오를 이뤘고, 한신이 시즌후반 불펜야구로 기적같은 CS진출을 이뤄내는 데 힘을 보탰다. 다들 나이가 나이다보니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불펜으로 기적같은 부활을 이뤄낸 시즌.
20년도 41세 나이로 1군 불펜에서 스타트. 시즌초 방어율은 6점대로 좋지 않으나 좌완불펜이 필승조 이와사다를 빼면 노우미밖에 없어서 패전조에서 원포인트까지 등판 기회는 많이 얻고 있는 중이다.
이후 적당적당한 1.5군급 선수로 1군과 2군을 오가며 패전조로서 평범한 성적을 남기며 활약했다. 9월 25일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로 인해 긴급히 재콜업, 의외로 7경기 연속 무실점 활약을 펼치기도 하며 30시합 방어율 4.98로 나름 42세라는 나이와 패전조라는 롤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으나, 10월 22일 구단으로부터 전력외통고를 받아서 구단과 결별이 확정되었다. 성적이 나쁘지 않은데 예상외라는 반응.
같이 전력외통고를 받은 후쿠도메 코스케와는 달리 이쪽은 성적이 그다지 나쁘지 않고, 희소성이 있는 좌완불펜이라 아직 패전조나 원포인트로서는 가치가 있어 비록 나이는 많지만 현역생활 연장을 원한다면 갈 팀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 다만 이쪽은 데뷔후 한신에서만 선수생활을 해온 원 클럽 맨이라 이대로 은퇴를 택할 가능성도 있고 가능성은 말 그대로 반반이다. 일단 선수 본인은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여러분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 이라고 애매모호한 코멘트를 남겼다. 현역생활 연장을 원하기는 하는데 아직 결단이 안 서서 좀 망설임이 있는 듯.
그 와중에 전력외통고를 받고 22일 경기에 등판해 1이닝 삼자범퇴로 막고 내려갔다.
2020년은 34경기 24.2이닝 1승 1세 4홀 4.74로 역시 원포인트 및 패전조로서는 쏠쏠한, 41세인 나이를 생각하면 뛰어나다고 해도 과하지 않은 좋은 성적을 찍었다. 시즌후 후쿠도메 코스케,우에모토 히로키 등과 함께 공식적 퇴단처리와 함께 현역속행을 희망한다는 기사가 나왔고, 같은 오사카의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결국 12월 8일 오릭스 버팔로즈 1군 투수코치 겸 선수로 입단이 확정되었다. 기사 링크(일본어)
뭐 사실 노미가 아무리 잘 해도 나이가 많기 때문에 선수로서 기대한다기보다는, 플레잉코치 입단을 보면 알 수 있듯 은퇴후 코치로서의 역할을 더 기대한 영입.
3. 피칭 스타일
스리쿼터 투구폼에서 나오는 평균 140km/h대 초반, 최고 151km/h의 직구와 슬라이더, 포크볼,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구사한다. 파워피쳐 타입의 투수로 보기는 어렵지만 탈삼진율은 상당히 높은 편.
특히 우타자를 상대로 몸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는 그의 최고의 무기로 꼽을 수 있다.
4. 연도별 성적
[1] 스기우치 도시야와 타이 기록으로, 스기우치도 완봉승 2번을 기록했다.[2] 2012년 한신 타선은 타격코치 출신인 와다 유타카가 감독으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빈타를 기록했다.[3] 다만 푸에르토리코와의 준결승 경기에서 알렉스 리오스에게 승부에 쐐기를 박는 2점 홈런을 맞은 것은 옥의 티였다.[4] 다행히 그 다음날 랜디 메신저가 복수를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