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노부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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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일본프로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 現 오릭스 버팔로즈 1군 투수코치.
'''120km대의 속구와 80km대의 커브볼'''을 던지는 느림보 투수로 유명했다.[1] 삼성 라이온즈의 성준이나 전병호, 두산 베어스의 유희관 등 '흑마구' 투수들과 비슷한 스타일. 다만 그 엄청 느린 슬로커브뿐만 아니라 직구와 거의 구속차이가 나지 않는 포크볼 또한 주무기였다. 느린 구속에 비해 그 많은 탈삼진[2] 은 오히려 포크볼 덕을 많이 보았다.
얼마나 공이 느렸나 하면, 1990년 도쿄돔에서 열린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경기에서 배터리를 이뤘던 포수 나카지마 사토시[3] 가 호시노 노부유키의 공을 '''맨손'''으로 받아낸 적이 있을 정도. 또한 경기중에 가끔 직구의 구속이 130km를 넘어가면 오히려 중계진으로부터 '호시노 선수 오늘 컨디션이 나쁜가보군요'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입단 후 2년간은 별 활약이 없었으나 1986년 9승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1991년 16승을 올린 것을 포함해 1987년부터 1997년까지 '''11년 연속 두자리 승수'''를 거두며 사토 요시노리, 노다 코지[4] 등과 함께 선발진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스즈키 이치로, 다구치 소, 후지이 야스오 등과 함께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끄는 블루웨이브의 1995년, 1996년 퍼시픽리그 우승과 1996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70kg 전후의 비리비리한 체구에 순해보이는 인상[5] 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잔부상도 별로 없이 수 년간 꾸준히 많은 이닝을 소화하였다. 한큐-오릭스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1985년부터 1999년 중 150이닝 이하를 소화한 시즌은 단 4번에 불과하며 140이닝 미만을 소화한 시즌은 단 2번에 불과하다. 통산 129경기를 완투했고, 최다 완봉을 기록한 해가 2번(1987, 1992)이나 있었다.
2000년 FA를 선언해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지만 부진하였고, 결국 2002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통산 성적은 427경기(384선발) 2669.1이닝 176승 140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64 2041탈삼진. 느린 공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A급 성적을 낸 뛰어난 선발 투수였다.
잠시 야구 평론가로 지내다가 2005년부터 한신 타이거즈의 2군 투수코치로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직. 그 동안 매년 노우미 아츠시 등 꼬박꼬박 영건을 만들어냈다.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으로 부임한 오카다 아키노부를 따라서 친정팀 오릭스로 적을 옮겨갔다.
현재는 오릭스 버팔로즈의 1군 투수코치로 부임하고 있다.
해설자로 활동하던 2005년에 미국에서 후배였던 스즈키 이치로가 출전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호시노가 이치로에게 홈런 더비를 안 나가냐고 물어봤었는데, "선배가 강속구 콘테스트에 안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이치로가 말하였다고 한다. [6]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에서는 94부터 9결정판까지는 현역으로, 그 이후로는 OB선수로 나오는데 변화구 칸수가 후덜덜하며 키레4라는 특능도 있고 컨트롤도 만점. 하지만 최고구속이 132km에 불과하다. 저 최고구속도 최고 컨디션인 절호조 상태에서 직구를 X보턴 죽어라 연타해서 전력으로 던져야 저정도다. 통상적인 직구는 126km 전후. 사실 코나미에서 저 구속도 후하게 준것인데 130km 이하로 해버리면 게임상에서 아무리 투수의 파란특능을 도배해도 속절없이 맞아나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호시노 노부유키는 현직 코치이기 때문에 OB 선수로 표기될때 연도표기가 없다. 따라서 어레인지로 페넌트레이스에 활용하면 18세로 시작한다. 속구파(별4칸정도) 코치 붙여서 죽어라 키우면 어떻게든 150km까진 만들수 있을것이다. 다만 괴물성적을 내야한다는 전제가 뒷받침된다.
前 일본프로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 現 오릭스 버팔로즈 1군 투수코치.
1. 현역 시절
'''120km대의 속구와 80km대의 커브볼'''을 던지는 느림보 투수로 유명했다.[1] 삼성 라이온즈의 성준이나 전병호, 두산 베어스의 유희관 등 '흑마구' 투수들과 비슷한 스타일. 다만 그 엄청 느린 슬로커브뿐만 아니라 직구와 거의 구속차이가 나지 않는 포크볼 또한 주무기였다. 느린 구속에 비해 그 많은 탈삼진[2] 은 오히려 포크볼 덕을 많이 보았다.
얼마나 공이 느렸나 하면, 1990년 도쿄돔에서 열린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경기에서 배터리를 이뤘던 포수 나카지마 사토시[3] 가 호시노 노부유키의 공을 '''맨손'''으로 받아낸 적이 있을 정도. 또한 경기중에 가끔 직구의 구속이 130km를 넘어가면 오히려 중계진으로부터 '호시노 선수 오늘 컨디션이 나쁜가보군요'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입단 후 2년간은 별 활약이 없었으나 1986년 9승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1991년 16승을 올린 것을 포함해 1987년부터 1997년까지 '''11년 연속 두자리 승수'''를 거두며 사토 요시노리, 노다 코지[4] 등과 함께 선발진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스즈키 이치로, 다구치 소, 후지이 야스오 등과 함께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끄는 블루웨이브의 1995년, 1996년 퍼시픽리그 우승과 1996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70kg 전후의 비리비리한 체구에 순해보이는 인상[5] 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잔부상도 별로 없이 수 년간 꾸준히 많은 이닝을 소화하였다. 한큐-오릭스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1985년부터 1999년 중 150이닝 이하를 소화한 시즌은 단 4번에 불과하며 140이닝 미만을 소화한 시즌은 단 2번에 불과하다. 통산 129경기를 완투했고, 최다 완봉을 기록한 해가 2번(1987, 1992)이나 있었다.
2000년 FA를 선언해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지만 부진하였고, 결국 2002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통산 성적은 427경기(384선발) 2669.1이닝 176승 140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64 2041탈삼진. 느린 공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A급 성적을 낸 뛰어난 선발 투수였다.
2. 은퇴 이후
잠시 야구 평론가로 지내다가 2005년부터 한신 타이거즈의 2군 투수코치로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직. 그 동안 매년 노우미 아츠시 등 꼬박꼬박 영건을 만들어냈다.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으로 부임한 오카다 아키노부를 따라서 친정팀 오릭스로 적을 옮겨갔다.
현재는 오릭스 버팔로즈의 1군 투수코치로 부임하고 있다.
3. 여담
해설자로 활동하던 2005년에 미국에서 후배였던 스즈키 이치로가 출전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호시노가 이치로에게 홈런 더비를 안 나가냐고 물어봤었는데, "선배가 강속구 콘테스트에 안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이치로가 말하였다고 한다. [6]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에서는 94부터 9결정판까지는 현역으로, 그 이후로는 OB선수로 나오는데 변화구 칸수가 후덜덜하며 키레4라는 특능도 있고 컨트롤도 만점. 하지만 최고구속이 132km에 불과하다. 저 최고구속도 최고 컨디션인 절호조 상태에서 직구를 X보턴 죽어라 연타해서 전력으로 던져야 저정도다. 통상적인 직구는 126km 전후. 사실 코나미에서 저 구속도 후하게 준것인데 130km 이하로 해버리면 게임상에서 아무리 투수의 파란특능을 도배해도 속절없이 맞아나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호시노 노부유키는 현직 코치이기 때문에 OB 선수로 표기될때 연도표기가 없다. 따라서 어레인지로 페넌트레이스에 활용하면 18세로 시작한다. 속구파(별4칸정도) 코치 붙여서 죽어라 키우면 어떻게든 150km까진 만들수 있을것이다. 다만 괴물성적을 내야한다는 전제가 뒷받침된다.
[1] 그런데 또 투구폼은 꽤나 하이키킹해서 던지는 폼이라..불같은 강속구를 생각하며 보다가 체인지업같은게 날아가고 알고 보니 그게 패스트볼이였단걸 깨닫게 되면 꽤나 뭔지 모를 괴리감이 생긴다(..)[2] 2011년 시점에서 역대 18위.[3] 무려 2015년까지 현역이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도 아닌 '''한큐 브레이브스'''의 유니폼을 입어본 적이 있는 최후의 현역선수로 남았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1군 배터리 코치를 겸임하며 교체할 포수가 소진된다거나 하는 긴급 상황에서 백업 포수로 간간히 출장했다. 게다가 이쪽은 전성기에 올스타전의 스피드왕 콘테스트에서 '''146km/h'''를 찍기도 한 강견의 포수로 유명했다.[4] 포크볼러로 일본프로야구 1경기 최다탈삼진(19개) 기록 보유자이다. 2위는 다나카 마사히로이며 18개를 기록했다.[5] 80년대 말 세이부의 와타나베 히사노부, 닛폰햄의 니시자키 유키히로, 긴테쓰의 아와노 히데유키 등과 함께 달달한 인상으로 여심을 울리는 퍼시픽 리그의 '트렌디 에이스'들 중 하나로 언론에 다뤄질 정도였다.[6] 그 이치로는 1996년 올스타전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141km/h의 속구를 던진 적이 있다. 그 공에 아웃된 타자는 당시 야쿠르트의 마무리 투수 타카츠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