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오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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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대 에우제니오 4세

'''제208대 니콜라오 5세'''

제209대 갈리스토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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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명'''
니콜라오 5세 (Nicolaus V)
'''본명'''
톰마소 파렌투첼리(Tommaso Parentucelli)
'''출생지'''
제노바 공화국 사르차나
'''사망지'''
교황령 로마
'''생몰년도'''
1397년 11월 15일 ~ 1455년 3월 24일 (57세)
'''재위기간'''
1447년 3월 6일 - 1455년 3월 24일 (8년)
라틴어: Nicolaus V
이탈리아어: Papa Niccolò V
영어: Pope Nicholas V
208대 교황.
약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1444년에 볼로냐의 주교가 되었고, 1446년에는 프랑크푸르트에 교황 사절로 파견되어 활동했다. 1446년 12월에 로마에 돌아가서 추기경으로 서임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에우제니오 4세의 후임자를 정하는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1448년, 니콜라오 5세는 프리드리히 3세와 (주로 교구장의 선출과 관련된 내용을 다룬) 빈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듬해 4월 7일에는 대립교황 펠릭스 5세가 퇴위하고 로잔에 모인 바젤 공의회의 잔당이 그를 유일무이한 교황으로 선언하고 해산함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
1450년에 니콜라오 5세는 로마에서 희년을 거행했다. 1452년 3월 그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프리드리히 3세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대관식을 집전하였고, 이는 로마에서 거행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마지막 대관식이었다.
1452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의 침략이 임박하자 도움을 요청하는 친서를 니콜라오에게 보냈다. 이에 니콜라오는 위기에 처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돕기 위해 그리스 출신 이시도로스 추기경 휘하의 지원군을 파견하고 함대를 편성하였으나 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었다.
니콜라오 5세는 로렌초 발라로 대표되는 인문주의자들을 후원했고 1448년에는 바티칸 도서관을 건립했다.
로마 시의 정비에도 관심을 기울여 시내를 정비하고 고대 로마의 아쿠아 비르고 수도교를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아쿠아 베르지네로 명명했다. 라테라노 궁전을 수리했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재건축을 계획하였으나 선종하여 무위로 돌아갔다.[1]
1455년 3월 24일 니콜라오 5세는 통풍으로 로마에서 선종했다.
[1] 이후 약 반세기 후인 율리오 2세 시절에 재건축에 착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