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image] '''바티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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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1] | '''바티칸 시국'''[2]
'''Sancta Sedes | Status Civitatis Vaticanæ(라틴어)
Santa Sede | 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이탈리아어)
Holy See'''[3] | '''Vatican City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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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상징'''
'''국가'''
''Inno e Marcia Pontificale''
''(교황 찬가 행진곡)''
'''역사'''
라테라노 조약으로 독립 1929년 2월 11일
'''지리'''
'''수도'''
바티칸 시
'''면적'''
0.44km²(133,100평) / 세계 254위
'''접경국'''
[image] 이탈리아[4]
'''인문 환경'''
'''인구'''
'''총인구'''
801명 / 세계 235위(2019)
'''인구밀도'''
2,003명/㎢(2018)
'''출산율'''
0명(2019)
'''공용 언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국교'''
가톨릭
'''군대'''
없음[5]
'''정치'''
'''정치체제'''
선거군주제, 신정
'''국가 원수'''
'''교황'''
프란치스코
'''정부 요인'''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주교회의장'''
주세페 베르텔로
'''경제'''
'''공식 화폐'''
유로(€, EUR)
'''ccTLD'''
'''.va'''
'''국가 코드'''
336, VA, VAT
'''국제 전화 코드'''
+379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1)
서머타임(UTC+2)
'''도량형'''
SI 단위
'''외교'''
'''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1963년 / 북한: 미수교
'''유엔가입여부'''
'''미가입''' (참관국 자격 참가)
'''주한 대사관 / 총영사관'''
'''주한교황청대사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26길 19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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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징
2.1. 국호
2.2. 국기
2.3. 국가
3. 지리
4. 역사
4.1. 교황권 역사
4.2. 바티칸 시 역사
5. 정치 행정
5.1. 국가행정조직
7. 군사
8. 치안
9. 문화
9.2. 시스티나 경당(시스티나 소성당, Sistine Chapel)
9.2.1. 소개
9.2.2. 촬영 관련 이야기
9.2.3. 벽화 감상 그리고 정숙
9.4. 바티칸 도서관 및 사도 문서고
10. 외교
11. 스포츠
12. 관광 정보
13. 기타
14. 창작물에서
1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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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σὺ εἶ Πέτρος, καὶ ἐπὶ ταύτῃ τῇ πέτρᾳ οἰκοδομήσω μου τὴν ἐκκλησίαν, καὶ πύλαι ᾅδου οὐ κατισχύσουσιν αὐτῆς.

Tu es Petrus, et super hanc petram ædificabo Ecclesiam meam, et portæ inferi non prævalebunt adversus eam.

마태오 복음서 16장 18절

'''바티칸 시국'''(Status Civitatis Vaticanæ, Vatican City State)은 남유럽에 위치한 도시국가로, 이탈리아 로마 시에 둘러싸인 내륙국이다. 로마 주교이자 전세계 가톨릭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을 지도자로 한다.
면적은 '''0.44 km²'''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 면적은 대한민국에 빗대자면 독도의 2.3배의 넓이이며, 행정동인 서울시 노원구 상계5동[6], 서울경복궁 면적의 1.3배의 넓이이며, 창덕궁의 면적인 '''0.55 km²'''보다 좁다. 여의도공원의 약 2배의 넓이다. 마라도의 1.5배 넓이다. 여의도 면적의 1/6 크기다. 인구밀도를 따지면 '''1,877명/km²'''로 '''세계 6위'''이다. 중국천안문 광장만한 크기다.
워낙 작고 특수성이 강한 국가이다보니 정치체제 역시도 비범한데, 선거군주국이자 사실상 신정국가라는 비범한 조합을 조랑한다.[7]
2011년 3월 2일 호주 매체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바티칸의 인구는 여성 32명, 남성 540명으로 총 572명이라고 한다.[8] 그러나 바티칸에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실제 인구'''는 223명에 불과하다.[9] 비록 이탈리아로마에 둘러싸인 형태[10]로 존재하지만, 이탈리아와 다른 나라로서 갖출 건 다 갖춘 어엿한 독립국이다. 특히 세계에 퍼진 가톨릭의 위상을 생각하면 국가 규모에 비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1984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청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정된 독립국가로서의 교황령을 지칭하는 명칭이므로 가톨릭의 최고 통치기구인 '''교황청'''(敎皇廳, Curia Romana, Roman Curia)과는 다른 개념이다. 따라서 국정을 운영하는 조직 자체도 별도의 추기경단이 따로 있다. 하지만 사실상 '''교황청''' 또는 심지어 '''로마'''(Roma, Rome)라는 말 자체가 바티칸 시국을 지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바티칸 스스로는 세속적인 의미가 강한 '바티칸 시국'도 아니고 엄밀한 의미의 '교황청'도 아닌 ''''성좌''''(聖座, Sancta Sedes, Holy See[11])를 대외적인 공식 국가명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를 경우에 따라 '교황', '교황청'으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따라서 성좌에 파견된 한국 대사는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로, 성좌가 한국에 파견한 대사는 '주대한민국 교황 대사'로 칭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에서 내려다본 성 베드로 광장.
광장은 하늘에서 볼 때 열쇠 구멍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베드로의 상징물이 열쇠, 정확히는 천국 문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광장 한가운데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제12왕조 시대인 기원전 20~19세기 헬리오폴리스에 세워졌던 것으로서, 이후 기원전 1세기 말 로마의 이집트 총독 코르넬리우스 갈루스(Cornellius Gallus)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의 포룸 율리움(Forum Julium)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칼리굴라 황제에 의해 로마 시로 이전되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성 베드로 광장' 문서의 오벨리스크 설명 부분 참조.) 그리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1586년까지 방치되던 것을 대성당 중앙으로 끌어와서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하는 거대한 십자가를 위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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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3일, 성지주일 미사, 교황 프란치스코 집전
베드로 성상, 주세페 데 파브리스, 1840년

2011년 6월 27일 뉴스 사이트 '바티칸 투데이'가 개설되었고(바로가기), 다음 날에는 트위터가 개설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직접 트위터를 통해 영어로 바티칸 투데이의 개설을 알렸다.

Dear Friends, I just launched http://news.va/en Praised be our Lord Jesus Christ!

With my prayers and blessings, Benedictus XVI

친구들, 저는 방금 News.va를 개설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합시다!

기도와 축복을 담아, 베네딕토 16세

바티칸 관련 뉴스는 바티칸 라디오를 참고하기 바란다.

2. 상징



2.1. 국호


바티칸이라는 이름은 이 나라 및 교황청이 위치한 지역의 이름인 바티칸 언덕(라틴어로 Mons Vaticanus, 이탈리아어로 Colle Vaticano)에서 따왔다. 바티칸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 이전에 이 지역에 있던 에트루리아인 마을 이름 Vatica 혹은 Vaticum에서 따왔다고 하며, 정원을 뜻한다.
현재 바티칸이라는 말은 교황청이라는 말과 혼용되지만, 엄밀히 말해서 바티칸 시국과 교황청, 교황령 등등은 모두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 로마의 바티칸 언덕에서 유래한 말로, 현재 교황이 세속적 권력으로 직접 통치하는 국가를 국제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1870년 교황령의 소멸 이후 한동안 교황의 세속적 영토 혹은 통치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1929년 교황 비오 11세무솔리니와 체결한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탄생하였다. 가장 흔히 교황청과 혼용되는 말이며, 이 항목의 전체적인 내용 역시 이 바티칸 시국의 본래 의미와 가장 가깝게 작성되어있다.
  • 교황령(Papal States): 754년부터 1870년까지 존속했던 교황의 세속적 영토. 교회의 재산소유와 양도를 허가한 321년의 콘스탄티누스 칙령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프랑크 왕국의 피핀이 교황 스테파노 2세에게 영토를 할양한 이른바 피핀의 기증에서 교황령 통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여타 세속적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영토 크기에 변화를 겪어 왔으며, 이후 1870년 이탈리아 통일 당시 이탈리아에 흡수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지금도 바티칸 바깥, 로마시에 바티칸의 영토로 인정되는 '건물'들이 좀 있다. 바티칸 영토이므로 이탈리아 법이 미치지 않는다.
  • 성좌(Holy See) 혹은 사도좌(Apostolic See): 원래는 세계 교회의 수도인 로마의 주교좌, 즉 베드로의 후계직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점차 의미가 확장되면서 교황청과 바티칸 시국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말이 되었다. 현재 교황청은 세속적인 의미가 강한 '바티칸 시국' 대신 '성좌'를 대외적인 공식 국가명으로 채택하고 있다.
  • 교황청(Roman Curia): 본래는 세계 교회를 통치하는 교황과 교황을 보좌하는 교회의 최고 행정기구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사실상 바티칸 시국의 영토가 교황청과 그 주변으로 축소되면서, 바티칸이라는 말과 거의 동일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2.2.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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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오른쪽의 문장은 베드로의 상징인 천국의 열쇠와 교황의 상징인 교황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마태오 복음서 16장 13-20절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너희들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었을 때 베드로만이 모범답안을 말해서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는 마태오 복음서의 구절에서 착안한 것이다. 덕분에 이 열쇠는 바티칸을 다룬 매체에서 자주 등장한다.
천사와 악마 영화판에서는 원작과 달리 궁무처장의 가슴에 찍히는 도장이 일루미나티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두 열쇠 모양으로 바뀌었다.
삼중관이라고도 하는 교황관은 교황 클레멘스 5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세 가지의 교황권을 상징하기 때문에 교황만이 쓸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교황관 대신 3줄의 금색 무늬를 새겨넣은 주교관을 쓰는 추세다. 자세한 내용은 교황관 문서 참고.

2.3. 국가




한국어-라틴어 번역본
국가는 Inno e Marcia Pontificale(교황 찬가 행진곡)이다. 곡은 구노의 아베 마리아로 유명한 샤를 구노(Charles Gounod)가 작곡한 것이며, 가사는 1949년부터 안토니오 알레그라(Antonio Allegra)가 작사한 이탈리아어 가사를 쓰다가 1991년에 라파엘로 라바냐(Raffaello Lavagna)가 작사한 라틴어 가사가 채택되었다.
가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와 번역이 많이 다르니 유의할 것.(출처: 위키백과)
가사 일부가 마태오 복음서를 인용한 구절이 있다.
라틴어
한국어
O felix Roma – o felix Roma nobilis:
Sedes es Petri, qui Romae effudit sanguinem,
Petri cui claves datae sunt regni caelorum.
Pontifex, Tu successor es Petri;
Pontifex, Tu magister es tuos confirmans fratres;
Pontifex, Tu qui Servus servorum Dei,
hominumque piscator, pastor es gregis,
ligans caelum et terram.
Pontifex, Tu Christi es Vicarius super terram,
rupes inter fluctus, Tu es pharus in tenebris;
Tu pacis es vindex, Tu es unitatis custos,
vigil libertatis defensor; in Te potestas.
VOX ACUTA, VOX ALTERA AB ACUTA
Tu Pontifex, firma es petra, et super petram
hanc aedificata est Ecclesia Dei.
VOX MEDIA, VOX GRAVIS
Pontifex, Tu Christi es Vicarius super terram,
rupes inter fluctus, Tu es pharus in tenebris;
Tu pacis es vindex, Tu es unitatis custos,
vigil libertatis defensor; in Te potestas.

O felix Roma – O felix Roma nobilis.
오 복된 로마여 - 오 고귀한 로마여
그대는 로마에서 피 흘린 베드로좌이며,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좌로다.[12]
교황님, 당신은 베드로의 후계자이십니다;
교황님, 당신은 당신 형제들의 신심을 굳건히 하는 선생님이십니다;
교황님, 당신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
사람을 낚는 어부[13], 양떼의 양치기,
하늘과 땅을 잇는 분이십니다.
교황님, 당신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요,
풍파 한가운데의 바위이십니다, 당신은 어둠 속의 등대이십니다;
당신은 평화의 옹호자이십니다, 당신은 일치의 수호자요,
방심하지 않는 자유의 수호자이십니다; 당신의 권위 안에 있나이다.
교황님, 당신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으로,
그 반석 위에 하느님의 교회가 세워졌나이다.[14]
교황님, 당신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요,
풍파 한가운데의 바위이십니다, 당신은 어둠 속의 등대이십니다;
당신은 평화의 옹호자이십니다, 당신은 일치의 수호자요,
방심하지 않는 자유의 수호자이십니다; 당신의 권위 안에 있나이다.
오 복된 로마여 - 오 고귀한 로마여.

3.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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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치오 주 로마 현의 전 행정구역을 표기한 그림. 여기서 빨간색이 '''로마 시'''이고, 로마 시 한복판의 '''아주 조그마하게 비어있는 부분'''이 '''바티칸에 해당한다.''' 로마 시 안의 구역들보다도 작은 셈이니 초미니 국가 중에서도 초미니 국가인 셈.
[image]
로마 시의 구역도. 1번, 13번, 14번에 끼어있는 부분이 바로 바티칸이다. 바티칸의 국장이 그려져 있는 부분으로, 로마 시의 구 중에서도 가장 작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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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의 리오네(rione)들과 붉은 색으로 칠해진 바티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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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의 대부분의 영토. 이곳 말고도 로마 시 이곳저곳에 바티칸령으로 되어있는 성당이나 박물관 등이 있다.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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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광신자, 우리는…"
"…교회를 파괴하고…"
"…너희에게 선고할 거다…"
"….역사의 뒤안길이라고."[15]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야!

4.1. 교황권 역사



동로마 제국이탈리아 반도를 탈환할 때 533년 로마 시에 세운 '로마 공국'이 교황령의 기반이 된다. 이탈리아 탈환 후 얼마 안가 568년에 랑고바르드족이 침입하면서 이탈리아에서 동로마 제국의 영역은 중부와 남부 끄트머리로 크게 한정되었다.
[image]
575년 이탈리아 반도의 모습
'''주황'''
동로마 제국
'''회색'''
랑고바르드족
[image]
동로마 제국과 랑고바르드족이 공존했던 이탈리아의 지도와 오른쪽 위 교황령의 지도
'''분홍'''
동로마 제국
'''주황'''
랑고바르드족
동로마 제국은 이러한 이탈리아에 584년 라벤나 총독부를 세워 로마 공국과 베네치아, 풀리아, 칼라브리아를 통치했다. 그러다가 동로마 제국의 지배권이 슬슬 약해지자 교황은 점점 로마 공국을 다스리는 한 독립 영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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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년 랑고바르드 왕국이 라벤나를 점령한 이후 이탈리아 반도의 모습
'''주황'''
동로마 제국
'''회색'''
랑고바르드 왕국
751년 동로마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가 결국 랑고바르드족에 의해 함락되면서 로마 공국은 동로마 제국 본국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752년 새로 선출된 교황 스테파노 2세는 랑고바르드족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중립을 선언하면서 비밀리에 프랑크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는 스테파노 2세에게 랑고바르드족을 몰아내는 대신 본인의 쿠데타를 묵인해 달라 요청하였다. 스테파노 2세의 묵인 하에 피핀 3세는 기존의 메로빙거 왕조를 몰아내고 새로이 카롤루스 왕조를 세울 수 있었다. 피핀 3세는 그 대가로 랑고바르드족을 옛 라벤나 총독부 땅에서 몰아내고 그 땅을 스테파노 2세에게 헌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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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년 ~ 817년 교황령
나중에 동로마 제국과의 마찰을 무마하기 위해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교황에게 땅을 내려주었다'고 했다. 이것을 법적으로 보증한 것이 그 유명한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이다. 이 문서의 원본은 지금도 박물관에 잘 보존되어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 이전부터 관습적으로 전해지던 교황과 교황청의 권리에 성문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던 이 문서가 위조됐음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추기경이었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훨씬 학문적인 방법으로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가 위조 문서임을 증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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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교황령
19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 통일(1861년 ~ 1870년) 과정에서 강제로 합병당하여(1870년) 이에 열받은 교황 비오 9세가 스스로를 "바티칸의 포로"임을 선언하는 등 신생 이탈리아 왕국과 한동안 정치, 사회적 대립을 하였으나 1929년 베니토 무솔리니라테라노 조약을 제안하여 결국 지금의 바티칸 시국의 영토와 형태가 성립되었다.

4.2. 바티칸 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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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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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로마 시 확장
'''빨간색 선'''
3세기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하늘색 선'''
9세기 교황 레오 4세가 세운 성벽(레오의 도시)
'''삐뚤빼뚤한 선'''
17세기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세운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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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의 도시
바티칸 도시의 모양은 교황 레오 4세가 무슬림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테베레 강 너머 성 베드로 대성당 둘레에 성벽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성벽은 테베레 강변의 산탄젤로 성에서 시작해 바티칸 언덕 주위를 빙 돌아 다시 테베레 강변에서 끝난다. 이후 로마의 정치 파벌들 간의 다툼을 피해 레오의 도시로 온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레오 4세가 세운 성벽의 제2망루를 높여 방어력을 강화했다. 현재의 바티칸 국경이 되는 성벽은 바오로 3세, 비오 4세, 우르바노 8세를 거치면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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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로마 시

5. 정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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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수장인 교황(敎皇, Pope)이 국가원수이고,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들 및 주교들이 행정을 담당한다.[16]
외교도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 여권도 이탈리아와 다른 것을 쓰는데, 이 여권이 상당히 레어 아이템이라는 듯. 독자적으로 우표도 발행하고 있고, 독자적으로 주조하는 동전도 있다. 화폐는 1999년 1월 1일부터 이탈리아와 같이 유로화를 쓰고 있다.
라틴어가 제1공용어이며,[17] 이탈리아어도 공용어로 쓰인다. 그리고 일상 회화로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가 '''모두''' 통용되는 나라다. 외교 언어로는 프랑스어가 주로 쓰인다.

5.1. 국가행정조직



6. 경제




7.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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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근위대가 전부다. 사진은 스위스 근위대원들로 중세의 재래식 군대 같지만 저렇게 전통 복장으로 근위임무를 서는 대원 이외에 실제 경호 임무를 맡는 대원도 있으며 이들에게는 현대식 화기가 지급된다. 그러니까 저건 그냥 의전용. 권총, 기관단총, 방탄복부터 중기관총, 대전차 미사일 등등 있을 건 다 있다. 추기경 등을 비롯한 교황청 주요 인물의 경호 업무도 맡고 있다. 스위스 용병부대에게 바티칸 방위 및 교황의 경호를 맡긴 것에서 시작한 것으로, 현대 스위스에서는 용병을 '불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치안 경찰'로 분류하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바티칸 유일의 군대이지만 실질적인 전력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으며, 헬기 같은 장비도 이탈리아군에게 빌리는 형식 등으로 지리적으로 밀접한 이탈리아에서 국방을 대행해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도시라 할 수 있는 수도 로마의 내부에 위치하고 있으니… 바티칸의 국방 불안은, 그보다 앞서 이탈리아의 국방이 불안해졌다는 의미다.
국방력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나 이탈리아 자체가 강대국 말석에 들만큼 국력이 강하고 12억 정도에 이르는 가톨릭의 총본산이므로 바티칸에서 국방력의 강약은 국가 유지에 큰 의미가 없다 할 수 있겠다.
옛날에는 평신도 무장 조직인 팔라딘검은 귀족 근위대가 있었지만, 교황 바오로 6세의 명령으로 이 둘은 해체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제 스위스 근위대가 유일한 바티칸의 군대로 남아있다.

8. 치안


바티칸 헌병대가 경찰 업무를 담당한다. 명칭은 헌병이지만 실제로는 경찰 업무를 하는 유럽식 국가 헌병대 조직이다.

9. 문화


'''유네스코''' '''세계유산'''
[image]
이름
한글
바티칸
영어
Vatican City
프랑스어
Cité du Vatican
국가·위치
바티칸 시국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4년
등재기준
(i)[18], (ii)[19], (iv)[20], (vi)[21]
지정번호
286
바티칸은 '''국토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로, 성전과 건물들은 물론, 곳곳에 위치한 조각상이나 기둥, 장식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티칸 내부의 건물로는 크게 바티칸 미술관, 시스티나 소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 등이 있다. 바티칸 미술관은 소위 말하는 세계 3대 박물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많은 예술품과 전시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9.1. 성 베드로 대성당


[image]
광장에서 바라본 외관
성 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은 흔히 영화에서 바티칸이 나오면 등장하는, 둥그런 광장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곳으로 '''기독교의 총본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처음에는 4세기 중반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세워진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이 있었지만 천 년이 넘도록 사용되면서 어지간한 보수 공사로는 더 이상 건물을 지탱하기 어렵게 되자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가 기존의 성당을 철거하고 새로운 성당을 짓기로 결정했다. 신축 당시 옛 성당이 초기 교회와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건물이니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자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율리오 2세는 이를 물리치고 기존의 건물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원했다. 이를 위해 도나토 브라만테를 시작으로 줄리아노 다 상갈로, 프라 조콘도, 라파엘로 산치오, 발다사레 페루치, 안토니오 다 상갈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자코모 델라 포르타, 카를로 마데르노, 잔 로렌초 베르니니 등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이 120년 동안 갈려들어간 끝에 1626년 교황 우르바노 8세 때 비로소 축성되었다. 건축 과정에서 막대한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레오 10세면벌부를 발행한 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완공 이후 수백 년 동안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이었다'''.[22] 정면에서 보면 3개의 발코니가 있는데 그중 가운데 발코니를 보면 창문 옆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곳은 교황 전용 발코니로,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다. 영화 천사와 악마의 마지막에 새로 선출된 교황이 등장하는 곳이 이 발코니다. 성당 내부에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조각한 성상인 '''피에타'''가 있기도 하다.
교황이 직접 나오는 성당이니만큼 들어가려면 몇 가지 복장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슬리퍼는 신고 갈 수 없고 대신 뒤꿈치가 막혀있는 샌들류는 괜찮다. 여자는 무릎 아래로 오는 옷을 입어야 한다. 치마든 바지든 상관없다. 하지만 남자는 무조건 긴바지를 입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또한 민소매 옷은 입고 들어갈 수 없다. 때문에 성당 근처로 가면 숄을 파는 상인들이 있기도 하다. 바티칸에서 한번은 어느 수녀를 문지기로 임명해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오는 관광객들 복장을 검사하게 한 적이 있었다. 여름 한철 동안 숱한 관광객들을 상대한 뒤 이 수녀는 신경쇠약으로 일을 사임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정면으로 놓고 오른편을 보면 건물이 하나 있다. 창문이 많은 건물인데, 교황의 집무실이 있는 사도 궁전이다. 오른쪽 맨 위의 창문이 집무실 창문이라고 한다. 만약 창문들에 덧문이 모두 내려져 있으면 교황이 출타 중이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유럽 미술의 대상이었던 기독교 신앙의 근원인 나라인만큼 국토 곳곳이 유명 미술작품 천지다. 시스티나 소성당만 해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있는 데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그 유명한 성상피에타가 있고… 이건 대표적인 것만 꼽은 것이고, 이 외에도 굉장히 많다. 그런 연유로 유럽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바티칸 박물관을 꼽을 만큼 유럽 여행 중 필수 코스로 여긴다.
이러한 관광수입은 이 도시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재정의 근간이며, 이 관광객들이 이탈리아를 통해 입국해 이탈리아에도 돈을 뿌려주고 가기 때문에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바티칸은 지역경제를 위해 초특급 대우가 아깝지 않은 나라다. 종교, 신앙적인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9.2. 시스티나 경당(시스티나 소성당, Sistine Cha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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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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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천장화의 일부중
아담의 창조

9.2.1. 소개


시스티나 경당(Sistine Chapel)은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도 나오는 콘클라베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안쪽의 벽면과 천장들이 전부 미켈란젤로가 그린 프레스코로 이루어져 있다. 천장에 있는 것이 천지창조[23], 입구 쪽의 큰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이 최후의 심판이다. 프레스코가 빛에 약하기 때문에 내부는 어두우며, 플래시를 막기 위해 안쪽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천사와 악마에 나온 그 장면은 직접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따로 세트장을 만들어서 찍었다. 일반 사진기조차 플래시 때문에 사용 금지인데 영화 촬영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9.2.2. 촬영 관련 이야기


2010년 기준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 복원작업 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제재하는 장면을 많이 보인다. 심한 경우는 경비원이 와서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압수'''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No pictures please"하고 다니고 있다. 대놓고 찍지 않으면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인물 사진 같은 것은 찍기 힘들다. 그런데 가이드들이 말하는 이유는 사실 저 프레스코화의 저작권이 복원을 한 일본의 모 회사의 소유가 되어서 바티칸 시국과 협의 후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대신 서점에서 사진집을 팔기 때문이라는 믿기 힘든 도시전설급 이야기를 한다. 동시에 그런 이야기가 단순한 루머라는 이야기를 하는 가이드도 많은데… 실제로 바티칸에서 시스티나 소성당의 벽화를 복원하면서 자금 문제로 고민하던 중 일본 NHK에서 자금과 기술을 대어주면서 겨우 해결되었는데, 교황청과 합의 끝에 NHK에서는 10년간 관련 저작권에 대한 독점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1994년 복원 작업이 끝난 뒤 10년이 지난 2004년이 되어서야 일본의 독점권이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청에서는 여전히 사진 촬영을 엄금하고 있다. 빛에 약한 프레스코화의 특성상 최대한 빛의 접촉을 막고 있고, 햇빛 역시 최대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비추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덧붙여 복원 작업에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원래 올 누드화였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종교개혁과 봉건사회 해체 등으로 인해 사회가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덕분에 르네상스로 인해 세속화되면서 느슨해지고 인본주의적 모습을 보이던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더욱 보수화되어가고 결국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모든 성화에 누드를 금지'''하는 결정이 내려진다. 따라서 기존에 르네상스로 인해 그려진 누드 성화는 파괴되거나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지게 되었는데 최후의 심판 역시 이러한 손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최후의 심판은 완성 당시부터 이단 논쟁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누드로 표현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파괴냐 수정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선 마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제자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중요부위(?)를 살짝 가리는 수정을 도맡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최후의 심판>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중요 부위(?)에 어디에선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천들에 의해 가려진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 덕분에 볼테라는 '기저귀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이 이뤄진 지 400여 년이 지난 후 일본에 의한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미켈란젤로가 그린 원본으로 복원해 보자!!'는 시도가 진행되었는데 이에 대해 "교회의 결정을 존중하라"는 교황청과 신자들의 반발이 있었고, 결국 일본 측에서는 거기에 굴복해 작업이 중지되고 그냥 때 벗기는 작업만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도 현재 <최후의 심판>의 등장인물들 중 총 6명은 초기 작업의 영향으로 올 누드 상태라고 한다. 들어가보면 벽 쪽에 커튼들이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다 '''그림'''이다.

9.2.3. 벽화 감상 그리고 정숙


워낙 유명한 곳이고 로마 관광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곳이라 언제 가도 사람으로 발디딜 틈이 없다.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계속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경비원들이 위에서 말한 카메라로 찍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 외에 조용히 할 것과 벽화를 계속 감상할 사람들을 가운데로 모으고 길을 만든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몰리고 작은 소리도 잘 울리다 보니 특별히 누가 떠드는 것이 아니어도 소란스럽게 느껴지는데, 어느 정도 소리가 커지면 신부님이 등장해 "가톨릭의 경건한 성당이자 문화재이니 조용히 감상해 달라"는 말과 방문자를 축복하는 기도를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대략 4~5개 언어로 하는 위엄을 보인다.
벽화를 감상할 목적으로 방문했다면 소성당 가운데로 가는 것보다는 의자에 앉는 쪽을 추천하는데, 성당 가운데 서서 천장 벽화를 보게 되면 얼마 안 가 목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의자가 벽에 붙어 배치되어 있는데 은근히 경쟁이 치열하다.

9.3. 사도 궁전


아테네 학당 등 벽화들과 유물들이 전시된 공간.

9.4. 바티칸 도서관 및 사도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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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에 있는 로마 교황청도서관이다. 세계 최고의 도서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귀중한 서적과 문서 등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1448년 교황 니콜라오 5세에 의해 도서관으로 개관되었다. 4세기경 교황 다마소 1세가 창설한 종교 문서관이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니콜라오 5세는 전임 교황들로부터 물려받은 350점에 달하는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의 고사본과 함께 여러 서적과 문서 등을 수집했다.1587년 식스토 6세가 새로운 건물을 지었고 1.5kg의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경을 비롯해 약 15만 권의 필사본을 포함, 150만 권 이상의 장서가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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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문서고 홈페이지
그중 비밀 문서고는 바티칸에서도 특히 중요한 곳 중 하나인데 수많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서와 비밀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다. 홈페이지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문서의 연대는 8세기 말엽까지 올라가며, 몇 차례의 동란으로 12세기 때의 교황 인노첸시오 3세 이전의 문서들은 상당한 수가 소실되었다. 17세기에 교황 바오로 5세의 지시로 바티칸 도서관에서 분리되어 다른 곳에 보관되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 때 상당한 양을 프랑스에 뺏겼으나 1817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후 1883년 교황 레오 13세가 1815년 이전의 문서들을 일반 학자들에게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이때부터 꾸준히 공개하는데, 만들어진 날에서 75년이 지나야 공개가 가능하며 몇몇 중요하고 민감한 문서는 영구 비공개로 지정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2012년에 바티칸 비밀문서고 400주년 기념으로 대거 공개하였다.기사
문서의 면면을 보면 중요한 히브리어, 라틴어, 아람어, 그리스어 고서들과 각 지역 가톨릭교구들과 신자들이 보낸 각종 정보 및 첩보 문서, 왕들과 귀족들과의 편지, 마르틴 루터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 기록 등등 이루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많은 희귀한 고서본들을 보관하고 관리하고 있다. 관련 기사1,관련기사2 개중에는 몽골네스토리우스교를 믿었던 군주들이 교황에게 보낸 편지나 남명의 마지막 황제 영력제의 모후 왕씨가 교황에게 보낸 구조 서한 등 온갖 희귀한 가치를 지닌 것들도 있다. 실로 보관된 문서들 하나하나가 모두 국보급이다. 그야말로 역사학자들과 역덕들에게 있어서 꿈의 성지.

10. 외교




11. 스포츠


IOCFIFA에도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림픽이나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서 스포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IOC 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고, 2019년에는 육상팀을 창설하는 등 장기적으로 올림픽 참가 목표로 보고 있다.
이탈리아 올림픽위원회와 파트너쉽으로 유럽 소국 게임, 유럽 유스 하계 올림픽 페스티벌에 2021년부터 참가한다.
그럼에도 축구 국가대표팀 정도는 있는 국가다. 바티칸 시국 축구 국가대표팀 참조.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도 있다. 축구 리그, 컵 대항전도 꽤 오래전부터 활성화되고 있다.

12. 관광 정보


성 베드로 대성당은 입장료를 받지 않으나, 바티칸 미술관은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다. 패키지 관광을 갈 때는 십중팔구 아침 일찍부터 입장 줄을 길게 서야 하는데, 가톨릭의 총 본산이자 성지인 데다, 국가 전체가 세계유산이기 때문에 곳곳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예약을 할 수 있지만 약속한 시간에 가지 못하면 취소되고, 패키지 관광 상품은 출발 하루 전날에도 고객이 들어오고는 하기 때문에 예매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를 감안해 최근에는 특전으로 사전예약을 넣는 상품이 늘고 있으며, 이런 상품은 출발 하루 전과 같은 임박한 시기에는 합류할 수 없으니 주의하자. 사람이 아주 많은 경우에는 예약한 사람들도 줄을 서야 한다. 일반줄보다는 훨씬 짧다.
주의할 점은, 줄이 워낙 길기 때문에 혼선이 올 수 있다. 일반 입장 줄인 줄 알고 섰는데 알고 보니 예매 줄. 이런 경우엔 줄이 갑자기 사라질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일반 줄에 본의 아니게 새치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 싸움이 붙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같은 한국 관광객들끼리. 잘 해결되기는 했지만… 주의하자.
또 새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나 새치기 같은 경우는 이탈리아인들도 꽤나 잘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보통 새치기는 안 들키려고 스리슬쩍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대놓고 당당하게 한다. 그래서 새치기 당해놓고도 '''"어…어?"''' 하다가 당하는 경우도 있다. 말빨 좀 되는 가이드가 항의하면 인정하고 물러나긴 한다.
주의할 점 또 한 가지. 줄 서는 곳에는 '''그늘이 일절 없다.'''[24] 바티칸 성벽을 죽 따라서 인도가 있는데, 그곳에서 줄을 서기 때문이다. 바로 옆은 그냥 찻길이다. 따라서 줄 서는 동안 따가운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한다. 여름철에 서면 진짜 무진장 덥다. 그래서인지 줄 주변에 보따리 장수들이 '1유로~! 2유로~!'하면서 싸구려 접부채를 팔고 있다. 이것은 여름철에 여행할 경우이고, 겨울에는 손난로나 각종 예술품을 판다.
의외로 외국인 범죄율이 높은 나라인데, 강력범죄가 아니라 주로 관광객/순례자들을 노리는 외국인 집시 소매치기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이탈리아와 붙어있고, 별도 입국심사 없이 바티칸에 입국이 가능한데다 이탈리아의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에 바티칸의 치안은 이탈리아의 치안과 궤를 같이 한다. 즉,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다른 외국인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셈.

13. 기타


바티칸을 완전한 국가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바티칸의 주화와 우표는 바티칸 우취 및 주화국에서 발행하며, 이 우표들은 종교 테마에서 매우 중요한 우표들이다.
관련 서적으로는 『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니노 로 벨로, 2001년, 생활성서, 6,800원)와 『바티칸 영혼의 수도, 매혹의 나라』(마이클 콜린스, 2009년, 디자인하우스, 40,000원),『인사이드 바티칸』(토마스 리스, 2004년, 가톨릭출판사, 18,000원) 등을 추천한다.
무한도전에서 길에 따르면 목사님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25]
재미있는 통계가 있는데, 2018년 3월 22일 기준 세계에서 1인당 스팀게임 숫자 1위 국가이며, 토탈 플레이타임이 많은 게임을 1위부터 꼽자면 순서대로 도타2, 카스 글옵, 하츠 오브 아이언 4, 유로파4, 토탈 워: 로마2이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그냥 국가 설정을 바티칸으로 해놓은 헤비 게이머가 많아서일 가능성이 있다.
'''의외로 철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주로 화물 운송 용도로 굴리는지라 직접 타볼 기회는 극소수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이걸 타고 바티칸에 가본 사람이 있다면 자랑해도 좋을 수준이며 여태까지 이걸 이용해 본 교황요한 바오로 2세 정도밖에 없다. 로마 산 피에트역에서 들어간다고 하는데 총 길이가 약 1.27km 정도 하고 바티칸에 속한 길이는 약 300m 정도 한다는 듯.

14. 창작물에서


각종 창작물에서는 왠지 초인들이 득시글거리는 무지막지한 전투집단으로 묘사되는 일이 잦다. 특히 일본 서브컬처 매체에서 이런 경향이 강한데, 이는 종교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일본인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단 판타지가 주가 되는 이 바닥에서 교황청의 이미지는 마녀사냥 때에서 멈춰버린 듯하다. 어느 작품에 등장하나 다 엇비슷하다. 대개 이단자나 악마, 괴물 따위를 처단하는 비밀기관이 있고, 여기서 근무하시는 성직자나 수도자 분들이 적극적으로 이단자와 흡혈귀 박멸에 열중하시거나 흡혈귀의 환생체이기도 하다. 거기다 마법은 기본.
  • 어쌔신 크리드 2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에서도 이곳이 등장한다. 전자의 경우 최종 보스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 = 로드리고 보르지아[26]라서 마지막 스테이지로 등장. 브라더후드는 주 무대 자체가 로마로 옮겨지기 때문에 바티칸 역시 갈 수 있다. 하지만 2편의 마지막 미션에서 갈 수 있는 시스티나 소성당에선 아직 프레스코화가 그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라서(1500년) 안타깝게도 볼 수 없다. 아무리 천장을 올려다보아도 시커멓게 나올 뿐이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당은 2편의 후속인 브라더후드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이 시간적 배경으로 사용한 1500년대가 아직 공사 중이던 해였기 때문. 단, 공사 중인 시기라서 그 현장만은 볼 수 있다. 바티칸 지역에 마지막으로 열리는 비밀 지역(로물루스의 소굴)이 바로 공사 중인 성 베드로 대성당을 탐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7][28]
  • 미션 임파서블 3에선 적의 조직 보스를 납치하기 위해 들어가는 장소로 나오는데 여기서 엄청난 옥에 티가 나온다. 바티칸에서 열리는 연회에서 여자들의 복장이 죄다 노출이 심하다.
  • 아르카나 하트시리즈에서 2편부터 나오는 수녀 캐릭터인 엘자 라 콘티, 클라리체 디 란차가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 [29]
  • 탑블레이드 무인편 중반부 '유럽편'에서 안토니오와 올리비에가 나타난 장소이다. 여기서 강민과 잠시 승부를 하기도 하였다.
>교회의 총본산에 앉아 있는 교황속세의 황제와 대립하고 있던 시절에는 황제를 눈이 펑펑 내리는 들판에 사흘간 내버려 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상대가 상인이라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
>늑대와 향신료 10권 中

>『대략 여기쯤이네요.』
>지도는 교황께서 계신 남쪽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
>늑대와 양피지 1권 中
  • 2012에 이탈리아 총리가 있었던 곳으로 대륙이동이 시작되자 대성당이 무너져 압사한 장면으로 나온다

15. 관련 문서




[1]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중심이자 대변자로서 대한민국 외교부가 인지하는 명칭[2] 세속적 영토 주권국가로서 대한민국 외교부가 인지하는 명칭[3] 유엔이 인지하는 공식 영문 명칭.#[4] 영토 전체가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다.[5] 스위스 근위대가 치안을 관리하며 국방은 이탈리아에 의존.[6] 상계5동은 행정동인 상계1~10동 가운데 가장 작다.[7] 전제군주국이라고 하기엔 다소 애매한데, 바티칸에서 교황의 권한이 강력하다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성직자와 평신자, 계급을 막론하고 가톨릭 신자들을 구속하는 법률의 기능을 하는 성경(Scriptura)와 성전(Traditio)이 있으므로, 전제군주국과 입헌군주국의 중간형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국사를 행함에 있어 전임 교황들이 공포한 회칙이나 교서, 공의회에서 반포한 헌장 등은 물론, 2천 년간 내려온 교황청의 소소한 관례 하나까지도 교황 독단으로 뒤엎기는 어렵다. 또한 교황이 전세계 추기경들을 임명하고 그 추기경들이 콘클라베에 관여하는 가톨릭 특유의 구조 때문에, 한 쪽이 폭주하기 어려운 정치적 환경이 조성된다. 가령 바티칸은 요한 바오로 2세를 시작으로 40년 넘게 비이탈리아인 교황을 두고 있는데, 이를 통해 바티칸이 이탈리아 바깥의 지역 교회들에게 강하게 묶여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민족주의의 전성기인 19세기때 (비록 교황들은 이탈리아 출신이었지만) 교황령은 이탈리아 민족주의와 거리가 멀었다.[8] 중고등학교 한 학년을 평균 400명이라 하면 총 1200명이므로, 바티칸 인구가 중고등학교 학생 수의 약 절반에 불과한 셈이다. 후술할 실제 거주 인구는 중고등학교 학생 수의 약 1/5~1/6(한 학년 학생 수의 대략 절반)에 불과하다.[9] 추기경이 되면 자동으로 바티칸 국적이 부여되는 등의 이유.[10] 어떤 나라의 수도에 둘러싸인 또 다른 나라의 수도로서는 유일하며, 어떤 나라의 수도에 둘러싸인 형태의 나라로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1990년까지 존재했던 수도의 예로 서독의 서베를린이 있었지만, 통일이 되면서 서베를린은 베를린 시로 통합되었다.[11] See는 '관구'를 특별히 격식을 갖추어 일컬을 때 쓰는 영어 단어인데, 그 의미가 좁혀져서 교황이 다스리는 관구, 즉 교황청을 의미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관구를 일컬을 때는 'province'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see'는 여기에서의 'Holy See' 외의 다른 용례를 보기 힘들다. 문장 중에 사용할 때는 정관사를 붙여야 한다("the Holy See").[12] 마태오 복음서 16장 19절[13] 마태오 복음서 4장 19절 참조.[14] 마태오 복음서 16장 18절[15] 2014~15년경의 한창 잘나가던 시기의 ISIL은 배포한 영상을 통해 '''우리는 신의 허락에 따라 가톨릭의 중심부인 로마를 점령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불과 3년도 못 가 자기들이 완전히 망해버렸다.[16] 교황청은 오직 종교에 관련된 업무와 각국 대사를 파견하는 일만 한다. 해당 문서 참고.[17] 세계에서 사어인 라틴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유일한 국가다.[18]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19]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0]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21]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22] 코트디부아르평화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어지면서 기록이 깨졌다.[23]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보았을, 하느님아담이 서로에서 손을 뻗고 손가락이 닿을락말락하는 그 그림이다. 사실 이 그림은 천지창조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그림 중 하나일 뿐이다. 이 그림만 천지창조란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참고할 것.[24] 여름철 대략 오후1시 이후부터 입구 쪽 줄에 성벽에 의한 그늘이 생기기도 한다. 계절과 태양 고도에 따라 달라진다.[25] 오호츠크 특집에서 하하와 지식배틀 중에 "옛 로마 제국의 수도가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한 말이다.[26] 게임상의 픽션이지만 로드리고 보르지아는 실존 인물이다.[27] 지도엔 로물루스의 소굴로 표시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선 로물루스와는 전혀 관계없다. 해당 미션이 '로마를 지배하는 보르지아 세력과 로물루스 추종자들의 연결고리를 가진 추기경을 추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뜰 뿐… 이 내용도 게임 스토리상의 픽션이다. 오해하지 말자.[28] 이 미션 초반에는 추기경들 사이를 은신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상하게 새빨간 차림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있는 추기경들이 새하얀 후드 차림의 에치오를 보고서도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경비병들은 눈치채고 의심한다.)[29] 본래의 출신지는 이탈리아 아브롯트주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