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볼코프
1. 프로필
2. 소개
크로아티아 출신의 前 프로레슬러로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다.
3. 커리어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페루조비치는 20살 무렵까지 리프팅 선수로서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대회를 이용해 캐나다로 건너갔고,[1] 여기서 스튜 하트에게서 수련을 받았고, 1970년에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으로 건너온 페루조비치는 이내 뉴욕에 자리잡아있던 WWWF에 들어가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는 루 알바노의 매니징을 받으며 베포 몽골이란 링네임으로 게토 몽골과 태그팀으로 활동하면서 WWWF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타이틀을 잃으면서 팀은 해체되었고, 페루조비치는 현재의 니콜라이 볼코프로 링네임을 사용한다. 1974년 다시 WWWF로 돌아와서 당대 챔피언이었던 브루노 삼마르티노에게 도전했지만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고, 이후 새로운 챔피언에 올랐던 밥 백런드에게도 도전했지만 역시 월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데는 실패한다. 1976년 다시 단체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킬러 코왈스키, 빅 존 스터드와 팀을 맺어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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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말 WWWF를 떠나서 AWA에 들어간 페루조비치는 여기서는 보리스 브레제니코프란 이름으로 바비 하난의 매니징을 받으며 활동한다. 사실상 동일한 기믹이었지만 기타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챔피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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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WWF로 돌아와서 당대 활동하던 반미주의자 기믹을 맡고 있던 아이언 쉬크와 팀을 맺어서 서로를 이란의 최고, 소련의 최고라 치켜세우며 외국인 악역으로서 명성을 높인다. 둘의 어그로는 당대에 굉장히 높게 평가되었고, 그 덕분에 US 익스프레스를 레슬매니아 1에서 이겨 태그팀 챔피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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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이언 쉬크와 잠시 갈라져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당시 월드 챔피언이었던 헐크 호건을 상대로 플래그 경기를 가지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호건을 이기지 못했다.[2] 이후 핵소우 짐 더간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과 경기를 가지면서 활동을 했는데 아이언 쉬크와 함께 레슬매니아 3에서 킬러 비즈에게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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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보리스 주코프[3] 와 볼셰비키즈를 결성해 파워스 오브 페인, 부시웨커스와 대결한다. 이후 레슬매니아 6에서 하트 파운데이션에게 19초만에 패배하는 굴욕을 당하며 팀은 쪼개졌다가 합치는 일을 맡는다. 이후 싱글로서 서전 슬로터와 대립하는 등 각종 일을 수행한다. 그러다 세대교체가 시작되면서 활동은 거의 적어졌고, 결국 1995년 은퇴한다.
4. 은퇴 이후
WWF를 끝으로 레슬링계에서 은퇴한 볼코프는 이후 여러 인디 단체의 흥행에도 참여하면서 WWE와의 관계를 유지했는데 레슬매니아 17에서 열린 기믹 배틀 로얄에 출전해 서전 슬로터에게 탈락당한다.
2005년에 WWE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 이후 가끔씩 WWE에 출연했다.
2014년 9월 8일 RAW에 나와 루세프와 라나의 백스테이지 세그먼트 때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5. 사망
2018년 7월 29일에 사망했다.
6. 기타
- 생전에 공화당 지지자였으며, 2006년에 기초 선거에 나간 적도 있다.
7. 둘러보기
[1] 망명일 확률이 높은데 오스트리아는 냉전기에 중립국이었기에 공산국 인원도 여차저차하면 입국이 가능했다.[2] 당시 레이거노믹스 덕분에 이런 국수주의, 애국주의 기믹이 아주 성했다.[3] 실제로는 미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