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삼마르티노
1. 프로필
2. 일생
2.1. 레슬링 입문 이전의 삶
1935년 이탈리아 왕국의 피초페라토 출신의 브루노 삼마르티노는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어릴 때 전쟁의 공포에 시달린다. 공습 과정에서 어머니가 총에 맞기도 하고, 본인은 심각한 열병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고생을 했다가 전쟁이 끝나고 1950년 미국에서 돈을 벌고 있던 아버지의 초청을 받아 미국의 피츠버그로 이주한다.
당연히 영어를 할 줄 몰라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고, 이런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과 아마추어 레슬링을 시작하게 된다. 20대가 되었을 때는 이미 미국에서도 소문난 스트롱맨이 되어 1959년엔 565파운드(256kg)를 들어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
2.2. 레슬링 입문
1959년 피츠버그를 기반으로 하는 단체에 처음 들어가면서 레슬링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된다. 그 단체는 빈스 맥마흔 시니어가 운영하는 뉴욕 기반의 단체 CWC와 교류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인연으로 브루노는 CWC의 경기장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경기를 갖게 되고, CWC에 입성하게 된다.
2.3. WWWF 챔피언
1963년 당시 CWC는 NWA와 마찰을 겪던 단체중 하나였는데 당시 NWA 월드 챔피언과 관련된 정치 싸움이었다. 그러던중 CWC 소속의 버디 로저스[1] 가 루 테즈를 이기고, NWA 월드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당시 NWA 월드 챔피언을 획득한 단체는 총회에 당시로서는 거금인 25000 달러를 타이틀에 대한 권위의 상징으로 내야해서 문제가 생겼고, 결국 NWA를 탈퇴하고 단체의 이름을 WWWF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버디 로저스는 초대 WWWF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2]
하지만 18일 뒤인 1963년 5월 17일에 열린 라이브쇼에서 브루노가 버디 로저스를 단 48초만에 이기고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8년(2803일) 간의 오랜 챔피언 커리어를 시작한다.[3]
챔피언에 등극한 브루노는 경기를 통해서 고릴라 몬순[4] , 킬러 코왈스키[5] , 왈도 폰 에릭, 더 쉬크[6] , 자이언트 바바 등과 대결했고, 멕시코, 일본, 호주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경기를 갖기도 했다.
1971년 1월 18일 열린 경기에서 이반 콜로프에게 패배해 챔피언을 뺏기면서 첫번째 챔피언 커리어를 마감한다.[7]
2.4. 두번째 챔피언 커리어
1973년 브루노는 당시 페드로 모랄레스를 이기고 챔피언이 된 스탠 스테이시악이 챔피언에 오른지 9일만에 경기를 가져 다시 챔피언에 오른다.
두번째 챔피언으로 지낸 시간은 1027일로 그 동안 역시 수 많은 선수들과 경기를 치루게 되는데 한번은 1976년 스탄 한센과의 대결 중 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이 부상으로 인해 타이틀은 '슈퍼스타' 빌리 그레이엄에게 뺏기게 된다.
2.5. 제자와의 대립
1980년대에 들어가면서 그도 챔피언 전선에서는 한발자국 물러선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러던중 자신의 제자였던 래리 즈비스코와의 대립을 겪게 된다. 그 누구보다도 아꼈던 제자였기에 브루노는 즈비스코를 마치 유다와 같았다고 여겼고, 이 둘의 대립은 철장 경기를 갖으며 치열하게 대립했다.[8]
이 대립을 끝으로 브루노는 잠시 WWF를 떠나 일본에서 활동을 했다고 한다.
2.6. WWE와의 결별
1984년 다시 WWF로 돌아온 브루노였지만 이미 헐크 호건의 시대였다. 그가 할 수있는 것은 그의 아들인 데이비드 삼마르티노가 성장하게 도와주는 것이었고, 아들과 함께 경기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WWF가 아버지의 명성을 조금이라도 더 쓰기 위해 자신을 이용한다는것을 알고, 분노해 WWF를 떠나버린다. 브루노는 아들을 잡기 위해 많은 나이임에도 랜디 새비지, 폴 온돌프등과 대결했지만 결국 양쪽의 감정의 골만 깊어져서 WWF와는 완전히 척을 친 뒤 단체를 떠나버렸다.
2.7. WWE 명예의 전당 입성
굉장히 안좋게 헤어져서 1990년도 초에 터진 스테로이드 파동 때 빈스 맥마흔을 아주 잘근 잘근 씹었다고 한다. 그 이후 2000년대에 WWE가 과거 전설들의 DVD를 제작하려고 하는것도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2013년 마침내 화해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특히 트리플 H[9] 가 노력을 했다고 한다.
2015년에는 자신의 제자인 래리 즈비스코의 명예의 전당 입성의 헌액자로 나와서 그를 소개하기도 했고 현재는 완전히 풀려서 아주 가끔씩 WWE 행사에 나오곤 한다.
2018년 현지 날짜 4월 18일에 사망하였다.
3. 기타
- 레슬링에 갓 입문했을 때 경기하던 중 선수가 죽는 일이 있었다. 칙 가리발디란 선수와 1961년 경기 중 벌어진 사건인데 가리발디가 경기 중 갑자기 심장 마비를 일으켰고, 이를 몰랐던 브루노가 그를 바디슬램으로 매치면서 선수가 사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 아놀드 슈워제네거와는 절친한 사이인데 과거 보디 빌딩 시절 라이벌이자 친구였다고 한다. 그래서 2013년 명예의 전당 헌액 당시 소개도 그가 했다.
- 어렸을 때 이 선수를 닮아 아버지에게 이 선수의 이름을 따 별명을 받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자라서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 전설적인 선수였던 '킬러 코왈스키'[10] 를 가장 존경한다고 밝혔다.
4. 둘러보기
[A] A B 현역시절[1] 원조 네이쳐 보이로 릭 플레어가 그를 동경해 이 별명을 따라했다고 한다.[2] WWE에서는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열린 토너먼트에서 승리해서 얻었다고 하지만 당시 버디 로저스는 심장 마비 증세가 심해서 도저히 경기를 할 수가 없었고, 임명했다는게 정설이다.[3] 당시 버디 로저스의 심장 마비 증세가 심해서 브루노를 새로운 챔피언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WWE 챔피언십의 초대 챔피언을 브루노로 보기도 한다.[4] 1980년대에는 은퇴해서 아나운서로 활약[5] 트리플 H의 스승[6] 사부의 삼촌[7] 당시 콜로프가 승리하자 관중들이 모두 충격을 받고 얼어 붙었고, 폭동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거기다 브루노가 링을 빠져나가자 사람들은 단체로 대성 통곡을 했다고 한다[8] 이 대립은 동북부 프로레슬링의 역사적인 대립이었다고 한다.[9] 트리플H가 여러 자리에서 그전부터 브루노를 존경하는 레슬러로 자주 언급했고, 트리플H가 경영권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던 시점부터 꾸준히 브루노의 명예의 전당 입성건이 거론되곤 했었다.[10] 트리플 H의 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