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계엄령

 

1. 개요
2. 상세
3. 계엄령 기간에 있던 사건
4. 관련 문서


1. 개요


臺灣戒嚴令 / 台灣戒嚴令
대만 계엄령에 대해 알 수 있는 영상(중국어)
대만(중화민국)의 장제스 정권이 반공주의를 강화하고 민주화를 저지할 목적으로 1949년 5월 20일부터 1987년 7월 15일까지 대만 전역에, 1992년 11월 7일까지 진마 지구에 발령한 계엄령이다. 무려 40년 가까이 되는 대만흑역사.

2. 상세


1947년 2월 27일, 타이베이 시 위안환(圓環) 빌딩 안의 복도에서 과부 노파인 린장마이(林江邁)가 담배 노점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대만에서 담배는 정부만 독점으로 파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날 전매국 직원과 경찰이 이 노점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을 항의하면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해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 천원시(陳文溪)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일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2.28사건이라고 하는데, 이 사건으로 타이베이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 사건의 영향으로 3월 1일에는 대만의 대부분 지역으로 시위가 확대되었다. 중국 국민당군은 중국대륙에서 국공내전 중이었음에도 국민당은 3월 8일에 증원군을 중국대륙에서 대만으로 보내고 이후 3월 21일까지 대만 전역에서 대대적인 유혈진압이 시작되었다. 5월 16일이 돼서 이 때 내려진 계엄령은 해제된다.
1949년 5월에 국민당 정부는 대만 지역에서 호구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20일 오전 0시를 기해 천청의 명의로 대만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후 정부에서 위험분자로 간주한 이들이 체포되었다. 그 해 12월에 중국 국민당중화민국 정부가 국공내전에서 패배하면서 세력을 중국대륙에서 대만으로 옮겼고, 계엄령 선포 이후 내전을 반대하거나, 국공평화회담을 주장하거나, 평화건설, 민생문제개선, 민주화 등을 요구하면 공산당 간첩이나 용공분자, 혹은 친일-독립분자로 몰렸으며 중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국민당의 일당독재도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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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계엄령의 해제를 공식 발표하는 '총통부 공보'[總統府公報]. 장징궈 당시 총통의 명의이다.)
타이완섬의 계엄령은 장징궈가 총통으로 있던 1987년 7월에 해제되었고, 중국대륙과 가까운 지역(진먼 등)[1]은 1992년 11월에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그리고 일제가 대만을 지배할 때도 계엄령이 내려졌던 적이 있다. 이는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함대에 대만이 습격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 였다. 1905년 4월 13일펑후에, 그리고 5월 12일 대만에 계엄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7월 7일 해제됐다.

3. 계엄령 기간에 있던 사건



4. 관련 문서



[1] 중국대륙과 가까운 지역은 1948년부터 계엄령 선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