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성시

 


''' 역대 베니스 영화제 '''
[image]
'''황금사자상'''
''' 제45회
(1988년) '''

''' 제46회
(1989년) '''

''' 제47회
(1990년) '''
에르만노 올미
(영험한 애주가의 전설)

'''허우샤오센
(비정성시)'''

톰 스토파드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

''' 비정성시 ''' (1989)
'''A City of Sadness'''

[image]
'''원제'''
悲情城市
'''장르'''
드라마
'''감독'''
허우샤오셴
'''제작'''
구복생
'''각본'''
추티엔웬
우니엔젠
'''출연'''
양조위, 진송용, 신소분, 가오제, 이천록 외
'''제작사'''
3-H 필름
'''개봉일자'''
[image] 1989년 10월
'''편집'''
리아오 칭송
'''상영 시간'''
157분
1. 개요
2. 줄거리
3. 평가
4. 기타

[clearfix]

1. 개요


1989년 개봉한 허우샤오셴 감독 영화로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직후의 대만을 배경으로 하며 대만 현대사의 비극인 2.28 사건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 에드워드 양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차이밍량의 애정만세와 함께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공개된 해에 베네치아 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는데 아시아 영화로 39년만의 일이라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1]. 이 작품으로 양조위가 국내에게 알려지게 된다. 한국 개봉 당시, 상영시간이 길다고 40분이 넘게 잘려나가는 탓에 흥행에서 참패했으나 비디오로 나오면서 잘려나간 부분이 다 나오고 비디오 대여에서 꽤 히트를 친 바 있다.

2. 줄거리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전해지는 라디오 뉴스가 들리는 가운데 한 아이가 태어난다. 대만이 51년간의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는 날, 기륭시의 부자인 임아록 가문은 장손을 얻는 경사까지 겹쳐 두배의 기쁨을 누린다. 임아록은 네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문웅은 고향에서 아버지 임아록을 모시면서 장사를 하고 있고, 둘째 문상은 의사였는데 일본군 군의관으로 징병되어 필리핀 전선에 간 뒤 소식이 끊겼다. 셋째 문량은 중국에 건너가 일본군에 물자를 대는 장사를 하다가 일본 패전 후 고초를 겪고 미쳐서 돌아온다.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인 넷째 문청은 선량한 인물로 지우펀의 사진관에서 일하고 있다. 문청의 친구인 대만의 지식인 청년 관영은 해방과 국민당군의 진주를 환영했으나(영화 초반 친구들과 술집씬), 대만인들을 친일파로 몰아 점령군 행세를 하는 국민정부에 대한 반발심을 갖게 된다. 1947년 외성인본성인이 충돌하는 2.28 사건이 발생하자 관영은 사건 수습을 위해 타이베이로 떠나 임선생님(林老師)을 모시고 2.28 수습위원회에 참가한다. 이 때 문청이 관영을 따라 타이베이로 가던 중에 외성인에 대한 보복에 나선 본성인들에 의해 友敵 테스트를 받게 되고 귀머거리라는 것을 모르는 그들에게 두들겨맞을 뻔 하게 되나 관영이 사정을 설명하고 구해주고 문청에게 위험하니 지우펀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정부의 부패는 날로 심해지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국민들은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문량은 정신불안에서 회복된 후 국민당군을 따라 대만에 들어온 상하이파 폭력조직을 만나 거래를 트면서 마약 밀수에 가담하는데, 중국 대륙에서 쌀과 설탕을 수입하던 맏형 문웅의 화물에 이를 섞어 들여오다가 이를 우연히 알게 된 문웅이 노발대발하게 되고 그는 상하이파 조직을 찾아가 격렬하게 따진다. 그러자 문웅이 껄끄러운 상하이파 조직에서는 국민정부에 문량이 일제에 협력했다고 고발하였고 문량은 중화민국군에 의해 체포되어 끌려간다. 문량을 구하기 위해 임씨 집안 전원이 나서 문청은 친구 관영을 통해 힘을 쓰고, 문웅은 상하이파 조직을 찾아가 뇌물을 주어 문량을 석방시키지만 이미 이전에 한 차례 고문을 받았던 문량은 친일파 매국노로 몰려 가혹한 고문을 받고 완전히 미쳐버려 다시는 제 정신을 찾지 못한다.
그 사이 관영의 친구인 문청까지 대만인들을 친일파로 몰아(문량에 이어 문청까지 잡혀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제는 귀머거리까지 친일매국노로 잡아가느냐?"고 한탄하는 아버지 임아록의 모습이 압권) 학살하던 국민당군에 끌려가 처형당할 뻔 했으나, 맏형 문웅의 노력으로 간신히 석방되었다.[2] 일본군으로 출정해 소식이 끊겼던 둘째 문상의 유언이 적힌 혈서와 군화 등 유품이 집에 도착하고,[3] 그가 살아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던 가족들은 오열한다. 문웅은 화를 참고집안을 영위하기 위해 상하이파 조직과 만나 친분을 쌓으며 마작을 두고 있던 차에, 문량이 고발당한 데 대해 원한을 품고 있던 임씨집안 직원 '阿哥'가 화장실에서 상하이파 조직원과 시비가 붙었다가 불의의 습격을 당해 칼에 찔리면서, 그 상사인 문웅도 싸움에 휘말리게 되고 상하이파 조직 보스가 발사한 권총탄을 심장에 맞고 사망한다.
집안의 비극에 절망함과 동시에 감방에 끌려가 죽을 뻔 하면서 시국에 환멸을 느낀 문청은 반정부 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친구 관영은 2.28사건 수습위원회에 참가했다가 장제스의 학살을 간신히 피해 지우펀의 집으로 돌아왔다가 본격적인 반정부 활동을 위해 산간 지역에 숨어든 상태였다. 감방 동료가 형님에게 전하는 유언을 전달하기 위해 산간지방을 찾아간 문청은 관영에게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나, 관영은 생업에 충실하라고 조언하며 자신의 집안에서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려한다며 동생 관미와 결혼해줄 것을 부탁한다. 간호사인 관미는 오래전부터 오빠 친구인 문청을 좋아해왔다. 문청은 이를 거절했으나 맏형 문웅이 사망하여 장례를 치른 후, 관미와 결혼하고 지우펀의 사진관 운영을 통해 관영이 속한 단체에 비밀리에 자금을 대주며 생활한다. 문청과 관미 부부는 아들을 낳고 짧은 행복을 누리지만, 조직이 발각된 관영이 국민당군[4]에게 총살되고, 이 소식을 들은 문청은 미래를 직감하여 가족사진을 찍고 사흘 후 이를 현상하던 중 찾아온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어디론가 끌려가 행방불명이 된다.
마지막은 완전히 늙어버린 임아록과 미쳐버린 아들 임문량 그리고 장손(1945년 8월 15일 태어난 임문웅의 아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으로 끝난다. 일제 패망 후부터 2.28 사건 이후까지 대만 근현대사의 편지풍파를 거치면서 기륭의 부호였던 임씨 집안은 아들들을 모두 잃고, 가산까지 빼앗긴 상태가 되버린다.

3. 평가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하면서 호평받아왔던 허우샤오셴의 영화세계가 총집결된 영화로, 허우샤오센을 세계적인 감독으로 만들어준 영화기도 하다.
동시에 허우샤오센에게는 한 시기를 마감하는 영화기도 하다. 다음작 희몽인생부터 과거를 다루면서도 서사 전개가 느슨해지는 급진적인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
당시 대만에도 큰 충격을 준 영화라, 대만사에서도 중요하게 거론되는 영화다. 우선 1987년 대만 계엄령 해제 이후 2.28 사건을 다룬 초기 대만 영화이다. 이 영화는 많은 부분이 대만어로 촬영된 영화인데, 당시 대만 정부는 대만어 사용을 탄압하고 표준중국어 중시 정책을 펴고 있어서 대만어같은 방언은 1/3 이상 영화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행정원 신문국(行政院新聞局, 한국의 방통위에 해당)의 특례로 비정성시는 특별히 검열을 받지 않고 일본에서 후반작업을 마치고 베니스 영화제로 상영했다. 그리고 황금사자상을 받고 그대로 개봉했다. 당시엔 정책 위반으로 논란이 되긴 했지만, 영화의 성공으로 사멸 위기에 처했던 대만어가 주목을 받아 다시 부활하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출처

4. 기타


  • 문청의 캐릭터에 얽힌 비화가 있는데 당시 양조위는 홍콩 출신으로서 광동어만 쭉 써와서 대만어를 구사할줄 몰랐다. 하지만 영화에서 구사하는건 대만어였고 고심 끝에 감독은 양조위의 캐릭터를 벙어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 허우샤오셴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영화지만, 아직도 복원이 되지 않은 상태다. 비정성시 이전 영화들은 이미 복원된 상태.
  • 한적한 금광촌이었던 지우펀 역시 이 영화 때문에 대만에서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1] 1950년 아시아 최초로 서구권 국제영화제 대상인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는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라쇼몽[2] 바로 직전에 불려나간 감방 동료 2명이 총살당하는 소리가 들린 직후 문청이 불려나간다[3] 그가 군의관이었다는 점, 그리고 일제 패망 후 몇 년이 지나서 유서가 전달된 것 정황이나 그 내용으로 봤을 때 연합군 포로대우 등으로 기소되어 B/C급 전범으로 처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4] 영화에서 대만인들이 일관되게 대만어 혹은 일본어를 쓰는 것과 달리 이 때 관영의 산간조직을 일망타진하는 국민당군만 중국어를 구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