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지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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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1981년 11월 11일, 보건사회부의 허가아래 수련병원으로 지정되어 정식으로 개원하였으며 이때에는 대전광역시 중구에 위치했다. 당시 위치가 산꼭대기였는데, 대전시가 버스노선을 적게 할당해 주어 진료받으러 다니는 것만으로 건강해지는 병원이란 묘한 평가를 듣기도 했다. 옛날 병원이었던 건물은 지금 의과대학 건물로 사용 중.
1983년, 서울보건대학교를 인수하며 규모가 커졌는데 충청권의 병원이 수도권에 속한 학교를 흡수하며 구성원의 족보가 미묘하게 꼬여, 대전광역시 본점[3] 에서 공부를 하고 노원을지와 강남을지 분점으로 팔려나간다고 자조하는 상황이다.
2004년, 정부대전청사 주변으로 이전하며, 본점답게 대규모 시설강화가 이루어져 을지재단 소속의 병원 중 가장 큰 규모인 전체 1,024병상의 지상 16층, 지하 3층 본관과 7층짜리 별관을 가지게 되었으나 2019년 기준으로는 의정부 병원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하였는지 500~600병상대로 크게 줄어들었다.
참고로 을지대학교병원은 과거에는 3차 상급종합병원이었으나 어느새 상급종합병원에서 탈락하여 2차 종합병원으로 분류된다. 대전광역시에서 3차 상급종합병원인 병원은 국립대병원인 충남대학교병원이 유일. 2017년 7월에 3차 상급종합병원 재승격을 위한 심사를 다시 신청하였으나 또 다시 탈락하였다. 2020년 현재 상황은 대전 을지대병원은 이대로 놔두고 경기도 의정부시에 새로 건설하고 있는 의정부 을지대병원에 집중투자할 생각인듯.
3. 위치
충청권의 중심인 대전광역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종합병원을 운용 중이고 을지재단쪽이 세운 분원이 수도권에 두 곳있어(노원을지병원, 강남을지병원) 대전 사람들은 잘 알고 서울 사람들도 상당수는 적어도 이름은 아는 병원이다.
1990년대 이전엔 그저 큰 병원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수도권에서 소개를 받아 입원하는 경우가 다수였고, 2000년대엔 다빈치와 같은 신규설비 도입이나 고난이도 수술로 알려진 뇌기저부[4] 수술, 폐이식과 간-신장 동시생체이식 등이 성공하여 입원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매우 부실한 권역외상센터 운영
2017년 12월 16일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 따르면 권역외상센터를 매우 엉망으로 운영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 전북대학교병원 문서에 작성된 2살 아이 사망 사건에서도 전북대학교병원에선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비교적 가까운 (시속 100km/h 정속으로 달려도 전주에서 대전은 1시간 이내로 도착 가능하다.) 대전광역시에 있는 권역외상센터인 을지대학교병원으로 아이와 외할머니를 이송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을지대학교병원에서 거부하면서 아이와 외할머니가 사망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방송에 따르면 권역외상센터라는 간판도 달아두고 정부 지원금도 그대로 받으면서 정작 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듯.
5. 연합뉴스 출자의 위법성 논란
2011년 을지재단 소속인 을지의료원이 연합뉴스TV에 출자를 하여 문제가 되었다. 의료원의 언론사출자가 위법이라는 의사단체들의 주장으로 시작된 논란인데 법률상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보건복지위원회에 소속된 주승용 민주당 의원 주체의 긴급토론회에서 을지의료원의 연합뉴스 출자가 의료법 위반이라는 이의가 제기되었는데, 투자금이 을지대학병원에서 직접 나오거나 병원 명의로 투자된 것이 아니라, 을지재단소속인 을지의료원이 의료원의 자산을 늘리고 분배치 않는 투자임으로 의료법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 을지재단의 주장이었으며 법조계는 비영리법인으로 분류되는 의료법인이 투자금의 높은 이익회수를 노리고 투자한 것에 대해 을지재단의 자산관리 방식에 대한 비판을 가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의료법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을지의료원의 투자가 합법이라 판단하였으나, 의료단체들이 계속해 의료법 위반이라 주장하자 국회 입법조사처에 직접 위법성 유무의 판단을 의뢰했고 의료법을 위반하지 않는 합법이라는 보건복지부의 회답이 돌아오며 연합뉴스 출자에 대한 위법성 논란은 종료되었다.
6. 높은 이직율
아래 기사 참조하여 내용 요약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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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과거 인턴(수련의) / 레지던트(전공의)의 급여가 전국에서 가장 적은 병원이라는 말도 있었다.
간호사 역시 급여 및 대우가 이러니 을지대 간호학과 졸업한 학생들도, 정작 모교에서 근무하기를 피하려고 하는 상황.
실제로 을지대학교 대전캠퍼스/성남캠퍼스 간호학과 재학생들도 자대병원인 을지대학교병원은 정말 다른 병원 모두 떨어지면 어쩔 도리 없이 들어가는 최후의 병원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의료 관련 직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직원 대우가 아주 비정상적인 병원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동네 개인병원에서 근무하는 게 더 낫다는 말도 나오며 그로 인해 2016년에도 장기간의 대규모 파업으로 병원 업무가 엉망이 됐었다.
2017년에도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었다.
2020년에는 간호사 확충이 되지 않아서 병상의 절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왔는데, 수도권에 투자하기 위해서[5] 직원 월급에 투자할 돈이 빼돌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관련 기사
7. 여담
박영하 산부인과라는 이름으로 개업하여 성장한 탓인지 산부인과 관련 진단에 대한 신뢰도는 비교적 높다.
서울보건대학교를 흡수한 후 여러 병원을 흡수하며 성장하였기에 전국최초의 의료센터 세분화 시스템을 추진했고 위에서 설명했듯이 간-신장 생체이식, 폐이식수술을 중부권 최초로 성공시켰다.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탓인지 국내 최초로 다빈치를 도입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국내최초는 아니지만, 중부권 최초로 다빈치도입을 성공했다.
흑역사도 하나 있는데 을지의대 설립 당시에 을지대 측에서 당시 대전광역시장이던 염홍철에게 인허가가 날 수 있도록 부정한 청탁을 한 일이 있었다. 이에 염홍철 시장은 구속되었으며 벌금 1천만원과 추징금 3천만원이 최종 확정되었다. 물론 을지대 측이나 염홍철이나 단순한 정치후원금이라며 반발한건 매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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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을지병원의 경우 사진처럼 매우 전위적인 모습으로 지어졌는데, 이 때문에 동아일보와 SPACE의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에서 16위(20위까지 선정)를 먹기도 하였다.
2014년 대전-충청권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됐는데 그 대가로 충남대학교병원에 이은 두번째 권역응급의료센터 자리는 건양대학교병원이 가져갔다.
2015년 본관 1층 응급의료센터의 증개축을 완료하였다. 본관 옥상 헬리포트의 전면 개조 및 병원 간판 교체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15층 병동의 외상병동 전환 작업이 진행중이다. 기존 원외 공원 부지에 암센터 건물이 2016년에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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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레슬러 영웅 김일 선수가 마지막 13년의 인생을 편안하게 지내시다 영면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온갖 정성을 기울여 치료하고 생활을 뒷바라지 해온 을지병원의 정성어린 배려가 있었다. 을지병원 박준영 이사장은 1994년 김일 선수가 일본 후쿠오카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듣고 국민적 영웅을 조국이 아닌 일본에서 비참하게 계시도록 하는건 국민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곧장 의사와 간호사를 대동하고 일본현지로 떠났다고 한다. 일본현지에 도착하여 김일 선수의 건강상태를 보니 목디스크를 앓는데다 하지 정맥류 증세로 왼쪽다리가 배처럼 부어 거동을 하지못한 상태에서 정신까지 멍한 상태였다 한다.
반신반의하는 김일 선수에게 간곡히 설득하여 모시고와 을지병원(서울시 노원구 하계동 소재)에 입원시켜 병실 하나를 따로 살림방으로 바꾸어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한 상태에서 의료진을 동원, 당뇨병, 고혈압, 하지부종 등 각종 질병을 무료로 정성껏 치료하는 등 극진하게 보살폈다[6] . 이러한 도움으로 건강을 빠르게 회복한 김일 선수는 그후 후배 양성과 레슬링 재건사업을 전개하는 등 보람된 말년을 보낼 수 있었다. 김일 선수 13년 모신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
8. 관련문서
[1] 종합병원으로 개원일이다. 로고에 사용되는 1951년 11월 11일은 재단의 전신이 되는 박영하 산부인과의 개원일이며 범석홀은 설립자의 호를 딴 것이다.[2] 분만실, 수술실, 응급실, 물리치료실 포함 2019년 기준[3] 농담이 아니라, 재학생들 조차 거론하는 말이다.[4] 두개골 믿바닥과 뇌의 아랫부분. 뇌간이나 연수,정맥동이라 불리는 중요한 혈관다발이 위치한 곳. 의사들에겐 금단의 영역이라 불렸다.[5] 의정부을지병원으로 추정된다.[6] 김일 선수의 한국 이송에는 2013년 타계한 부친 고 박영하 을지재단 명예회장의 의지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