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제4·8·10대 대전광역시장
염홍철
廉弘喆 | Yeom Hong-cheol
'''
'''출생'''
1944년 8월 6일 (79세)
충청남도 논산군 채운면
'''십이지'''
원숭이띠[1]
'''별자리'''
사자자리
'''가족'''
아내 이종숙, 슬하 2녀
'''신체'''
168cm, 77kg
'''혈액형'''
O형
'''본관'''
파주 염씨
'''학력'''
대전공업고등학교(현 한밭대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 /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학 / 석사)
중앙대학교 (정치학 / 박사)
컬럼비아대학교 (정치학 / 박사)
'''정당'''

'''현직'''
한남대학교 석좌교수
'''경력'''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청와대 정무비서관
남북고위급 회담 예비회담 대표
제4대 대전광역시장(관선, 차관급)
한국공항공단 이사장
한밭대학교 총장
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 회장
제8대 대전광역시장(민선)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장관급)
제10대 대전광역시장(민선)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행정특임행정촉탁위원
'''종교'''
개신교(침례회)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4. 퇴임 이후
5. 자기부상열차 대전 도시철도 2호선
7. 박성효 욕설 논란
8. 대전 시티즌 구단주
9. 소속 정당
10. 선거이력
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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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1944년 충청남도 논산군 채운면에서 태어났다.

2. 생애


대전공업고등학교(현 한밭대학교),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경희대학교 재학 중 대한민국 육군 으로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고 병장으로 만기제대하였다. 이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종속이론에 대해 연구한 권위자이기도 하다. 식민지가 식민지배국에 해방 되어 종속된다는, NLPDR 운동권들의 사상의 근간이 되는 그 종속이론 맞다. 교수 염홍철은 종속이론을 사실상 한국에 소개했고, 그를 통해 유명해져 정계에 입문하게 되었을 정도. 물론 종속이론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의성을 상실하게 되는데, 후에 "다시보는 종속이론"을 펴내기도 했다.

3. 정치 활동


1988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에 임명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리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대전직할시장(임명직, 차관급 정무직공무원)을 역임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홍선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전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이재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공항공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한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자유민주연합 홍선기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정외과 출신답게 학교 총장 당시 학교에 수많은 세미나를 유치했던 것이 승리의 요인이었다는 평이다.
2003년 청소년증 시행안을 받아들여 대전광역시에서도 청소년증 발급을 약속해 같은해 10월 서울특별시와 함께 대전광역시에서도 시범시행하게 되었다.
또한 시장 재직시절 싸이월드를 통한 대민소통에 열정적으로 나서서 호평을 받았는데, <시장님 우리 일촌해요>라는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SNS 정치의 조상 격.
2004년,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서울시장 등과 마찰을 겪다가 결국 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고 선거운동기간 이전에는 무난하게 압승을 거둘것으로 예측되었지만 박근혜 피습사건이후 판세가 역전되는 바람에 친박 정치인인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2] 이후 노무현에 의해 보은인사 격으로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장(장관급)과 국정자문위원으로 임명되어, 2008년 2월까지 해당 직책을 역임하였다.
2008년 2월 통합민주당을 탈당하였고 2009년 자유선진당에 입당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에게 설욕하였다.
2014년 충청권 광역철도 예산타당성심사를 신청, 같은해 국토교통부의 예비타당성 사업 확정을 결정적으로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충청권철도 예타신청…대전도시철도 2호선 탄력받나 대전광역시청 대전시, 충청권광역철도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 확정
그 후 새누리당 당적을 갖고도 제6회 지방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고, 정계은퇴로 받아들여졌으나 본인은 부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6회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중립을 넘어서 새누리당 박성효 후보가 아닌 새정치민주연합 권선택 후보를 적극적으로 밀었고 결국 당선시켰으니... 물론 이건 일종의 해당 행위지만 크게 문제 삼아지진 않았다.

4. 퇴임 이후


2014년 배재대학교 석좌교수로 임용되면서 정치쪽과는 멀어진 행보를 보이기는 했다. 전술했듯이 원래 교수 출신이다.
새누리당 당적은 유지하고 있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한창이었던 2017년 1월 16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2017년 4월 19일 19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지는 않았는데, 캠프 합류가 정치를 재개하려는 행보가 아니며, 문재인 후보의 삼고초려에 응했을 뿐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당적을 바꾸는 철새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으나, 들의 면면을 보면 업무능력만큼은 이만한 사람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여론 조사에서 선호도 1위를 차지하면서 좋은 경쟁력을 보여주었지만, 2018년 3월 2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지방선거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그는 “시민들의 과분한 사랑으로 임명직 한번, 선출직 두번 등 모두 세번의 시장직을 수행했는데[3] 더 이상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다”며 “훌륭한 분이 시장에 선출돼 침체한 대전발전은 물론 대전에 대한 시민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시정을 펼쳐주길 소망한다”고 썼다.*
2020년 12월 31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2021년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으로 부임하였다.

5. 자기부상열차 대전 도시철도 2호선


염홍철은 시장재임 당시 대전 도시철도 2호선자기부상열차로 건설하기로 하고 예비타당성조사 까지 통과시키고 권선택에게 사실상 시장직을 물려준 적이 있다. 그러나 권선택은 자기가 좋아하는 트램을 밀어붙어 소위 권트램이라는 별칭까지 붙는 등 시민들이 반대하는 트램을 밀어붙였다. 이에 따라 2017년 대전도시철도2호선 트램, 총선 앞두고 찬반논쟁 재점화, 염홍철을 주축으로 트램을 반대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 염 전 시장은 해당 세미나에서는 2호선 계획에 대해 대전시민 70% 이상이 반대했음에도 "전임자가 하던것을 후임자가 뒤집고 훼손하는것은 후진국적인 문화다"라며 강도 높게 깠다. 그럼에도 권선택은 우격다짐으로 밀어부치겠다라며 맞섰고 때마침 시장직 상실 판결을 받았다.

6. 을지의과대학교 사건


1998년 11월 27일,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는 대전 을지의대 설립인가를 받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염홍철 전 대전시장에게 특가법상 알선수재죄를 적용,징역 1년.집행유예 2년 및 추징금 3천만원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벌금 1천만원과 추징금 3000만원으로 감형되었다.
염홍철은 이에 대해 받은 은 정치 후원금이며 김대중 정부가 정치보복을 목적으로 표적사정을 한 것이라 주장했다.

7. 박성효 욕설 논란


원래 박성효 전 시장은 염홍철 시장 당시 대전광역시청 국장과 기획관리실장에 임명된 바 있고, 2005년에는 대전광역시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2006년 3월, 한나라당 시장선거출마를 위해 자신의 주군이던 염홍철을 배신하고 친박으로 전향하였다.
이로 인한 탓인지 2006년 5월 7일 오전 9시경 대전시생활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한밭운동장을 방문, 체육계 인사와 동호인 등에게 인사를 하는 과정에서 염홍철과 마주쳐 “초보운전이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라며 인사말을 건네자, 염홍철은 대뜸 ‘'''이 사람아'''’라는 표현을 써가며 “초보운전자가 그러면 되느냐? 나는 박 후보의 비리를 많이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박성효는 "강창희 전의원도 염 후보와 오랜 친구지만 그런 얘기를 하더라"라고 맞불을 놓자, 염홍철은 "'''나쁜××, 이××'''"라며 거칠게 욕을 했다. 이에 박성효가 "을지대 (수뢰) 사건은 사실이 아닙니까?"라며 묻자 염홍철은 "'''너 맞을래?"라며 주먹다짐을 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여''' 주변에서 말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
그러나 나중에 친박이 대대적으로 몰락하고 박성효가 대전광역시장으로 재임할 당시 염홍철 시장이 추진하던 로봇랜드나 근현대사박물관, 그리고 자기부상열차 시범사업 등 대전이 유치하고자 했던 사업들을 죄다 인천이나 마산 등의 타 지역에 빼앗기는 등 무능을 보여주어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커지게 한 것은 다름아닌 박성효였다. 인간관계 적으로 단순 상하관계 시절만을 고려하면 염홍철의 배신감도 그럴 수는 있겠다 싶지만 막말은 막말.

8. 대전 시티즌 구단주


"강등된다고 해도 대전 시티즌에 대한 시와 시민의 지원은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내 자식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나.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강등이 된다고 해도 충분히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만큼 대전 시티즌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내년도 예산이 반토막 났다는 소문도 있는데 이는 사실무근이다. 시 의회에서도 대전시티즌의 가치를 인정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격려하고 성원을 보내는 것이 시와 시민의 도리다."

[image]
대전 시장 시절 시민 구단인 대전 시티즌 구단주였는데, 2006년 시장 재직 당시 대전시티즌을 컨소시엄 형태로 운영하던 기업들이 경영난으로 모두 떠나자 시민구단을 제안, 대전시티즌을 시민구단으로 기사회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상당히 대전 시티즌 구단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지원과 투자를 했던 것으로 대전 팬들에게 고평가를 받고 있는데, 거의 매경기 대전의 홈경기를 직관했으며, 대전 구단의 이사진을 개편하고 기존에 없던 클럽하우스를 신축했고, 특히 2012년 최은성 방출 파문이 터졌을때 최은성을 불러 직접 최은성을 설득하기도 했었다.
2013시즌 대전이 2부 리그로 강등되었지만, 강등이 확정되기 이전인 10월에 강등 여부와 관계 없는 지원과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고, 이러한 대전 구단의 애정과 관심이 2014년 대전의 압도적인 K리그2 우승 및 승격의 및거름이 되었다.#

9.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3 - 1995
정계 입문

1995 - 1997
당명 변경

1997 - 2005
합당

2005
탈당

2005 - 2007
입당

2007 - 2007
당내 노선 차이로 탈당

2007 - 2008
입당

2008 - 2008
당명 변경

2008 - 2009
탈당

2009 - 2012
입당

2012 - 2012
당명 변경

2012 - 2017
합당

2017 -
탈당
정계 은퇴

10.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112,607 (20.93%)
낙선 (2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대전 서 을)

32,630 (34.86%)
낙선 (2위)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191,832 (46.61%)'''
'''당선 (1위)'''
'''초선'''[4]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217,273 (41.14%)
낙선 (2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276,122 (46.67%)'''
'''당선 (1위)'''
'''재선'''[5]

11. 둘러보기





[1] 마침 2010년 당선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마치 2006년의 낙선을 염두해 둔 것처럼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사람은 선거에 떨어지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속담을 언급했다.[2] 박근혜 피습 이후 그 유명한 '''대전은요?''' 발언이 나온 선거였다.[3] 연임이 아니다. 홍선기 전 시장만이 유일하게 연임하였다.[4] 2005년 탈당(열린우리당 입당)[5] 2012년 새누리당 입당(소속 정당 흡수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