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어윈
1. 소개
데니스 어윈은 아일랜드의 전 축구선수이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왼쪽 수비수.
90년대 맨유 황금기의 주전 레프트백으로서 맨유의 부흥을 이끌던 당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이자 EPL과 맨유의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하나로 꼽힌다. 훌륭한 수비력과 함께 상당한 공격능력을 갖췄으며 윙백이라는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답지않게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현역 은퇴 이후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2.1. 초기 경력
1983년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데뷔를 하였다. 데뷔한지 1년 만에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주전을 확보했고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986년에 올드햄 애슬래틱으로 이적한 이후 올드햄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주전 레프트백으로서 활약을 했었다. 1990년 FA컵 준결승때 데니스 어윈은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때의 상대팀이였던 맨유의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이였다.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최고의 풀백, 팀에게 없어서는 안 됐던 선수'''
그렇게 어윈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들어왔고 62.5만 파운드라는 당시 파격적인 금액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에도 퍼거슨 감독의 신임을 받아 부동의 레프트백으로 활약했다.
1992-93 시즌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1993-94, 1995-96, 1996-97, 1998-99 시즌 리그 타이틀을 거머쥔다. 그 외에도 FA컵, 채러티실드 등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특히 1999년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게리 네빌, 야프 스탐과 함께 뛰어난 수비를 하여 맨유의 우승에 일조했다. 해당 시즌 트레블을 기록했다. 이 때까지 거의 매 시즌 30경기를 소화했고 철강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복도 없었으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공격 기여도 좋아서 공격포인트도 잘 올렸다.
당시 맨유는 전성기를 달렸고 리그 순위가 매우 떨어졌던 epl을 다시 원 위치로 올렸다.
2001-02 시즌까지 맨유와 함께했는데 풀백으로선 할아버지 나이인 만 35세에 접어든 1999-00 시즌부터 기량저하와 부상으로 출전 수가 점차 줄어든다. 그래도 팀을 떠나지는 않고 로테이션 멤버로 1999-00, 2000-01 시즌 리그 우승을 함께했다.
그의 빈자리는 미카엘 실베스트르와 가브리엘 에인세를 거쳐 최종적으로 파트리스 에브라가 이어받아 주전으로 활약한다.
2.3. 이후
2002년 여름 어윈은 2부리그 팀이였던 울버햄튼으로 이적하여 20년만의 프리미어 리그 승격에 일조하였으나 다음 해의 울버햄튼은 바로 20위로 강등되고 어윈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수상 경력
3.1. 우승 기록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0/91 - 2001/02): 20회 우승
- 프리미어리그 (7) : 1992/93, 1993/94, 1995/96, 1996/97, 1998/99, 1999/00, 2000/01
- FA컵 (3) : 1993/94, 1995/96, 1998/99
- 풋볼 리그 컵 : 1991/92
- 커뮤니티 쉴드 (5) : 1990, 1993, 1994, 1996, 1997
- UEFA 컵위너스컵 : 1990/91
- UEFA 챔피언스리그 : 1998/99
- UEFA 슈퍼컵: 1991
- 인터컨티넨탈컵 : 1999
3.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팀 (2) : 1993/94, 1998/99
- 프리미어리그 10주년 베스트팀 선정 (1992/93-2001-02)
- PFA 세기의 팀 선정 (1997-2007)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선정 (2016)
4. 국가대표 경력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데니스 어윈은 주전 레프트백을 맡았고 아일랜드 팀 자체가 강팀이 아닌지라 월드컵, 유로에 출전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A매치 56경기에 나섰다.
그래도 4골을 넣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국가대표팀의 주축이었다.
5. 맨유 앰버서더
맨유 앰버서더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맨유 행사에서 가장 자주 얼굴을 내비추는 앰버서더다. 맨유 앰버서더는 데니스 어윈 전후로 나뉘는데, 어윈 이전의 보비 찰튼, 데니스 로는 발롱도르 위너인 세계적인 레전드들이며, 팀의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또한 퍼거슨 감독 이전에 활약했었다. 데니스 어윈은 퍼거슨 감독 재임 이후 선수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맨유 앰버서더에 선정되었다. 이후 많은 은퇴한 선수들이 맨유 앰버서더로 선임되었는데, 찰튼과 로처럼 발롱도르 위너나 그에 근접한 선수들은 오히려 앰버서더에서 배제되고[2] 맨유의 해외 마케팅을 위해 주로 잉글랜드 바깥 출신 선수들 위주로 앰버서더가 선정되고 있다. 어윈은 앰버서더들 가운데 상병과 같은 중고참 역할을 맡고 있다. 찰튼이나 로는 맨유의 상징적인 큰 행사 말고는 거의 얼굴을 비추지 않으며, 맨유의 중간 규모 행사에는 데니스 어윈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윈과 함께 이후에 선임된 후배 앰버서더 중 한명, 주로 잉글랜드 출신의 앤디 콜 같은 이들이 어윈과 함께 행사장에 얼굴을 내비추는 경우가 많다.
또 맨체스터 지역 언론에서 해설가, 축구평론가로서 맨유의 경기를 전문적으로 해설, 평론하고 있으며, 맨유 지역지에서 그의 평가는 상당히 비중이 크다.
6. 박지성 비판
데니스 어윈이 국내에 알려져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박지성을 직설적으로 비판했었기 때문이다. 어윈은 해설가로 활동하던 2009년 10월 초 맨체스터 지역 언론에 칼럼을 통해 박지성을 혹평했다. 어윈이 박지성을 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지성에 대한 혹평에 이어 어윈은 박지성과 포지션이 겹치는 나니에 대해 “비록 체력적인 면에서는 박지성보다 떨어지지만 측면에서의 크로스 패스와 기회를 포착해 쏘는 슈팅의 정확도는 나니가 훨씬 뛰어나다”면서 나니가 박지성보다 팀의 공격력에 기여하는 점이 더 높다고 평가했다. 또한 역시 박지성의 포지션 경쟁자인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가브리엘 오베르탕에 대해서도 “상대 수비수와의 일대일 돌파 능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선수”라고 칭찬했다.한국의 축구 팬들은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박지성은 맨유에게 있어 아시아 마케팅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할 뿐 맨유가 경기에서 승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다. 박지성이 뛰어난 지구력을 갖췄고 커버플레이가 뛰어나며 공간을 활용하는 능력이 출중하지만 최전방 공격수에게 골 찬스를 만들어주는 침투 패스가 전혀 보여지지 않았고 본인의 골 결정력 또한 좋지 못한 편이다.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라면 수비적인 면보다는 공격적인 면에서 팀에 기여하는 점이 높아야 하지만 박지성은 득점은 커녕 도움도 별로 기록하지 못하는 선수이다. 차라리 박지성에게는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보다 센터백 포지션이 더 어울리는 듯 하다. 박지성 정도의 기량을 가진 선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너무 흔하다. 맨유는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만 그라운드에서 뛰게 하는 팀이다. 차라리 박지성이 맨유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클럽으로 이적했다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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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인 포지션은 왼쪽 풀백이지만 오른쪽 풀백도 겸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원래는 오른쪽 풀백이었으나 팀의 상황과 본인의 양발 능력 때문에 왼쪽으로 포지션을 옮긴 케이스. 참고로 제이미 캐러거는 맨유의 베스트11을 선정할때 게리 네빌을 뽑기 싫었는지 왼쪽 풀백에는 파트리스 에브라를 놓고 오른쪽에 데니스 어윈을 두는 묘수를 뒀다(...).[2] 맨유 앰버서더를 맡게 되면 감독, 코치 등 지도자나 축구행정가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은퇴 선수들이 맨유 앰버서더 직을 거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