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에인세
1. 개요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포지션은 센터백과 왼쪽 풀백을 오갔다. 독일계 아르헨티나인이다.[1] 그래서 독일어가 가능하다고 한다. 독일어 독음은 가브리엘 하인츠.
2. 클럽
2.1. 초창기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14세에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96~1997년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후, 1년만에 스페인의 레알 바야돌리드로 이적하였다. 당시 팀은 재정난을 겪고 있었기에, 본래의 팀에서 계속 뛰기를 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야돌리드로 이적한 그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스포르팅 리스본으로 임대 이적을 한다.
임대 복귀 후 그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2001년 파리 생제르망 FC로 이적했다. 등번호는 2번을 배정받았다. 파리에서 그는 레프트 백이 아닌 센터백으로 활약했고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와 함께 철벽 수비를 선보였으며 그가 출장한 34경기는 24골만을 내주었다. 2003/2004 시즌 그는 팀의 쿠프 드 프랑스컵 우승에 공헌했다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4년 여름 에인세는 PSG에서의 활약을 눈여겨본 맨유의 제안을 받아들여 맨유에 입단한다. 등번호는 4번을 배정받았다. 그는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수비력으로 팀의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되었고, 강력한 대인 마크와 태클로 탄탄한 수비를 보여주면서 시즌 종료 이후 맨유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다.
그러나 2005-06시즌 초반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비야레알과 맞대결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입게 되어 시즌 아웃된다. 이후 맨유는 에인세의 공백을 느끼며 존 오셰이, 키어런 리차드슨, 필 바슬리 등을 기용했으나 모두 기량 및 경험 부족으로 실패하게 된다. 그의 공백은 2006년 1월 파트리스 에브라가 영입되어 자리를 꿰찼고 2006-07 시즌 에브라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로테이션 및 후보로 밀려나면서 맨유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지자 시즌 종료 이후 맨유와 결별을 선언한다.
그러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수비력이 아쉽던 욘 아르네 리세와 파비우 아우렐리우[2] 에 아쉬움을 느끼던 리버풀 FC가 관심을 보였고 에인세 역시 리버풀 이적을 맨유에게 강력 요청한다. 하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라이벌 클럽에게 선수를 팔 수 없다며 요청을 거절했고, 이 과정에서 에인세는 이적 요청을 거절한 맨유와 퍼거슨 감독과 마찰을 빚었다. 그 외에 07-08 시즌에 등번호 4번을 오언 하그리브스에게 빼앗기는 굴욕을 겪었기 때문에 그 전부터 악감정이 심해진 상태였다.[3][4][5]
2.3. 레알 마드리드 CF
결국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중재위원회에서 나서 중재에 나서 맨유의 손을 들어주었고 리버풀 이적이 무산된 에인세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등번호는 16번을 배정받았다.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그는 첫 시즌이었던 2007-08시즌에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지만 부상이 잦아지면서 서서히 기량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고, 특히 08-09 시즌 엘 클라시코에서는 리오넬 메시에게 영혼까지 털리는 굴욕을 맛봤다.
이후에도 레알 팬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해졌고, 결국 당시 유망주이자 브라질의 미래로 뽑혔던 마르셀루 비에이라의 성장세에 밀려 벤치로 밀려난다.
2.4. 이후
마르세유를 거쳐 AS 로마로 이적한 뒤 고향팀 뉴웰스 올드 보이스로 복귀하여 2시즌간 활약한 뒤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
2003년 리비아와 친선 경기에서 데뷔한 이후 2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다.
3.1. 2006 FIFA 월드컵 독일
시즌에 당했던 부상 탓에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해보였으나 월드컵에 출전해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팀의 8강행을 이끌지만 독일과 맞대결에서 패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다만 승부차기에서 패할 때 '''독일 선수들의 독일어 뒷담화'''를 알아듣고 분노하여 독일 선수들과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했다.
3.2.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팀의 주전 레프트백으로 출장한 그는 조별리그 1차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골을 넣어 팀의 승리를 이끌고 팀의 16강행에 일조하나 8강에서 다시 만난 독일에 4:0 참패를 당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4. 플레이스타일
투지가 넘치고 강인한 체력을 지녔으며 정확한 태클로 상대 공격을 무력화 시켰다. 주발은 왼발이며 왼발잡이지만 필요하다면 오른발로도 적절한 패스와 킥을 만들어내곤 했다. 다만 전문 레프트백이 아니다보니 풀백으로서는 공격 면에서 다소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역설적으로 맨유에서는 필요할 경우 에브라를 레프트윙으로 올리고 에인세를 풀백에 기용하며 수비력 강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2006-07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파트리스 에브라를 왼쪽 풀백으로, 에인세를 왼쪽 센터백으로 기용하기도 했었다. 다만 발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 단점이 레알 마드리드 시절때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다.
5. 여담
- 메시가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을때 에인세는 처음에 메시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메시의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에인세가 메시는 선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건방진 후배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인세가 메시의 성격을 알고 난 이후에는 메시와 화해하고 오히려 메시와 친분이 생겼다.
[1] 정확히는 독일계 러시아인[2] 경기에 나올때마다 밥값 이상 해주는 선수였지만, 워낙에 유리몸 기질이 심각하여 주전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심지어 아들과 축구하다가 부상을 당했을 정도였으니(...) [3] 오언 하그리브스가 4번을 달았을때, 가브리엘 에인세의 등번호를 14번으로 강제 변경시켰다.[4] 비슷한 사례로 윌리엄 갈라스의 13번이 있다. 첼시 FC에서 영입생인 미하엘 발락에게 13번을 빼앗기게 되고 첼시에서 3번을 주려는 만행을 펼치자, 갈라스가 참참못을 시전하고 아스날로 이적하였다. 그 이후로 갈라스는 3번을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아스날에서는 수비수임에도 10번을 받았는데, 이유는 아르센 벵거가 잘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갈라스 본인이 3번이 너무나 싫어서 10번을 달았다는 이유도 있다.[5] 하지만 이 이적요청은 팀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이긴 했다. 아무리 팀에서 나가고 싶어도 맨유와 오랜기간 라이벌을 형성해온 리버풀로의 이적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한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굉장히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팀의 관계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수준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리버풀 출신 공격수인 마이클 오웬이 다이렉트로 맨유로 간게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와 뉴캐슬을 거쳐서 리버풀을 떠난지 5년뒤에 맨유에 이적했을때도 쌍욕을 얻어먹었는데 에인세는 바로 리버풀로 이적하고 싶다고 한 것이었으니 만약 성사됐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