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쿨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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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출신의 전직 포뮬러 1 드라이버이다.
턱선이 각져서 머리가 매우 네모스럽다. 오죽했으면 국내 유명 F1 블로거들은 이 분을 '네모 쿨싸드'라고 불렀고 보통 F1팬들은 '네모형'이라고 재미삼아 부른다. 선수 시절에 미하엘 슈마허와 으르렁거렸던 사이로 유명하다. 그리고 외국에서는 슈마허와 쿨싸드의 유별나게 큰 턱을 가지고 밈 소재로 만들기도 한다.
2. 선수 경력
2.1. 포뮬러 1
2.1.1. 로스만 윌리엄스-르노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이 그렇듯 F1의 하부 클래스에서 활약하다가, 1993년 윌리엄스의 테스트 드라이버로 F1 시트에 앉았고, 그 다음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아일톤 세나를 대신하여 정식으로 그랑프리에 데뷔하게 된다.[2] 그런데 윌리엄스는 그가 못 미더웠는지 시즌종반에 미국에서 인디카 우승하고 퍼질러 자고 있던 나이젤 만셀을 다시 데려왔다. 그리고 다시 쿨싸드는 테스트 드라이버로 복귀.
1995년에는 정식 드라이버가 되어 윌리엄스에서 뛰었지만 의가 상했는지[3] 1996년에 세나가 떠난 후 계속 빌빌 거리던 맥라렌으로 이적하여 미카 해키넨과 짝을 이뤄 팀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쿨싸드와 슈마허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2.1.2. 웨스트 맥라렌-메르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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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시절 그의 커리어를 말하자면 그야말로 미하엘 슈마허와의 악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는 1998년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39초 참조)
백마커였던 쿨싸드가 당시 1위로 달리고 있던[4] 슈마허와 박으면서 슈마허는 리타이어를 하고 만다. 빡친 슈마허는 피트로 들어오자마자 쿨싸드와 현피를 뜨려고 했지만 페라리 피트크루들이 막으면서 실패했다. 여기에 불난 집에 기름을 퍼붓듯이 쿨싸드는 슈마허한테 '''"바퀴 3개로 달리는데 나보다 빠르다니 놀랍다."''' 라고 해 티포시[5] 들의 뒷목을 부여잡게 했고 실제로 이탈리아 그랑프리를 앞두고 살해위협까지 받았다. 뿐만 아니라 슈마허가 포인트가 필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앞에서 쿨싸드가 슈마허의 앞길을 가로막았으니 그야말로 악연도 이렇게 질긴 악연이 없었다. 그야말로 안티 슈마허 클럽의 대표 회원이자 대부...[6] 그래도 맥라렌 시절 커리어 최고 성적인 2위도 하고 미카 해키넨과 더불어 1998년/1999년 맥라렌의 컨스트럭터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2.1.3. 레드불 레이싱과 F1 은퇴
맥라렌에서 8년을 활약하다가 당시 신생팀인 레드불 레이싱으로 이적하게 되는데, 지금이야 레드불이 상당한 강팀이지만 당시 레드불은 그저 안습이었다. 포인트를 따는 날보다 못 따는 날이 더 많았다. 물론 신생팀이라는 한계를 쿨싸드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성적에 신경쓰지 않았던 듯. 2008년에 레드불에서 은퇴했는데 팀에서 은퇴식도 해주고, 2009년에 테스트 드라이버로도 남았으며, 현재까지도 레드불의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현재 BBC의 해설위원을 맡고 있는데 해설위원이라도 레드불과의 관계는 유지할 거라고 하니 어찌보면 의리의 사나이이다.
또 지금은 슈마허와 화해한 듯 하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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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은 은퇴 경기도 여러모로 안습이었다. 2001년에 우승한 적이 있는 인터라고스에서 2008년 F1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펼쳐졌다. 이 날 경기는 풀 웻 스타트였는데, 그린 라이트가 들어오고 차들이 첫 코너 세나 S를 빠져나오자마자 어이없게도 스핀하고 말았고 윌리엄스 차를 들이받고 그대로 리타이어. 이게 쿨싸드의 F1 커리어 피날레였다.(...) 리타이어로 F1을 끝낸 것도 어이가 없지만 2008년 브라질 GP는 F1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라 할 정도로 반전의 반전을 거듭했던 챔피언 결정전이었기 때문에 이 분의 안습한 은퇴는 더더욱 묻혀버리고 말았다.
2.2. 독일 투어링카 마스터즈
포뮬러 1 은퇴 이후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뮉케 모터스포츠 소속으로 DTM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던 편.
2.3. 은퇴 후
이후에는 레이싱 커리어는 접고 F1 전문 코멘터리 또는 레드불이나 르노의 미디어 쪽 퍼포먼스 드라이버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SKY SPORTS를 오갔으며 F1이 스카이 스포츠 독점 방송으로 바뀐 뒤 메인 캐스터로 자리를 잡았다. 포디움 인터뷰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3. 기타
- 커리어 대부분 오른발 브레이킹을 사용해 왔으며, 커리어 말미에 와서야 양발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은 트랙의 한계가 명확한 시가지 서킷에서 더 편안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8] 그리고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그의 레이싱 헬멧에는 스코틀랜드 국기가 그려져 있다.
- 의외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모나코 서킷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실력자다. 2000년과 2002년에 우승했다. 당시에는 아직 미카 해키넨이 있었고, 해키넨이 은퇴한 2002년에도 페라리를 막아섰으니 페라리 팬들의 숙적이라 한들 실력 자체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듯.
- 2010년에 대영제국 훈장 5등급 작위(MBE)를 수여받았다.
- 2018년에 자서전을 하나 출판했다. 제목은 위닝 포뮬러(Winning Formula).
[1] /ˈdeɪvɪd ˈkoʊlθɑːrt/[2] 당시 테스트 드라이버였기에 탑기어 시즌 15 아일톤 세나 트리뷰트에서 세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3] 원래 그전에 이미 맥라렌으로 이적하려고 했으나 계약문제로 FIA에 승인하지 않았다.[4] 미카 해키넨과 치열하게 챔피언십을 다투던 중이라 엄청나게 치열했다.[5] 페라리의 팬들을 지칭하며 모터스포츠에서 페라리를 열렬히 응원하는 이들을 뜻함.[6] 잘 나갈적에 이 클럽의 회원으로는 니키 라우다, 데이먼 힐, 자크 빌르너브가 있었다.[7] BBC의 2011년 캐나다 그랑프리 레이스 전 영상에서는 슈마허가 서킷을 미니 카트로 돌 때 쿨싸드가 조수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유명한 벨기에 GP의 사고 장면이 자료화면으로 나온다. 또 이후 유럽 GP에서 펠리페 마싸와 트랙을 걷던중 지나가던 슈마허를 마싸가 불러 세웠는데 "예전에 날 때리려 찾아온 기억이 있어서 무서웠다"는 드립을...[8] 런오프가 있는 경우엔 어디가 트랙의 한계인지 알기가 어려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