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275호'''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陶器 騎馬人物形 角杯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토기
'''수량/시설'''
1점
'''지정연도'''
1993년 1월 15일
'''제작시기'''
삼국시대(5세기)
[image]
1. 개요
2. 내용
2.1. 발견 및 국보 지정 경위[1]
2.2. 상세
3. 바깥고리
4. 국보 제275호


1. 개요


陶器 騎馬人物形 角杯.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삼국시대 가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인물형 토기다.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가야의 도자기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자, 신라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와 함께 고대 한반도의 기마인물을 묘사한 대표적인 걸작 토기로 꼽힌다. 또한 가야의 유물 중에서는 2020년 현재까지도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정식적인 학술 조사를 통한 발굴을 거쳐 발견된 유물이 아닌지라 이와 관련된 정보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추정이긴 하지만,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지역이나 제작 양식 등으로 미루어 봤을 때 5세기 경 가야의 토기로 보인다. 또한 본 유물은 천 년 이상 된 아주 오래된 토기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파손된 부분이 있을 뿐 보존상태가 대단히 양호하다.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1993년에 국보 제27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2.1. 발견 및 국보 지정 경위[2]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데[3] 정확한 출토지나 출토 시기와 같은 정보는 알 수 없으며, 아마도 불법적인 도굴로 유출된 유물일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이미 1970년대에 골동품 시장에 올라와 이리저리 떠돌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만 해도 일단 보기에는 가야의 유물 같긴한데 보존상태가 워낙 좋아서 위작이 아니느냐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화랑에서 본 토기를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던 것을 문화재 수집가인 국은(菊隱) 이양선(李養璿)씨가[4] 보고는 얼른 구입하였다. 이양선씨는 본업은 의사로서 의료활동과 병행해서 19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문화재 수집을 이어 왔는데,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자신의 수집품 666점을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렇게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된 유물 가운데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이 있었는데, 국립경주박물관장을 역임한 바 있던 한병삼씨는 기증된 본 토기가 가야의 진품 유물임을 확신하여 당국과 관계자들을 설득해서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한병삼씨의 이와 같은 노력으로 본 토기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어 가야의 귀중한 유물임을 인정 받아 1993년 국보로 지정될 수 있었다.[5]

2.2. 상세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높이 23.2cm, 폭 14.7cm, 길이 13.1cm, 바닥 지름 9.2cm의 인물형 토기로 전체적으로 녹갈색을 띄고 있으며, 으로 보이는 무기와 방패를 들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전신에 마갑을 두른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즉 완전히 무장한 중장기병을 묘사하고 있다.
본 토기의 전체적인 형태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맨 아래의 나팔 형태의 받침과 가운데의 말을 타고 있는 무사 그리고 두 개의 뿔로 이루어진 잔이다.
나팔 형태의 받침은 전형적인 가야식 나팔형을 보여준다.[6] 받침의 표면에는 약간 볼록한 띠를 두 줄 둘러놓아 총 세 단을 이루게 되는데, 바닥과 닿는 맨 아래의 단을 제외한 상단 두 개의 단에는 폭은 좁고 위아래로 길쭉한 구멍을 둘러가며 뚫어놨다. 그리고 구멍과 구멍 사이는 세로로 배열된 점무늬를 촘촘하게 새겨서 장식해놨다. 구멍과 점무늬의 형태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세로 점무늬를 먼저 새긴 뒤에 구멍을 냈을 것으로 보인다. 나팔 받침과 인물상 사이에는 직사각형의 판이 만들어져 있어서 이 판 위에 말탄 인물이 올라가 있다. 이 판의 한가운데에는 아래 나팔 받침과 연결되는 큰 구멍이 하나 뚫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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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우측면
가운데 무사의 경우, 인물상도 조형 상태가 훌륭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타고 있는 말 자체의 묘사도 상당히 섬세하다.
우선 말은 직사각형의 판 위에 올라가 있는데 말의 네 다리는 판의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다. 말은 마갑을 쓴 모습으로, 직사각형의 작은 판들이 세로로 다섯 줄을 이루면서 말의 전신을 두르도록 되어 있는 마갑이다. 다만 말의 궁둥이와 우측 뒷편의 마갑은 깨져서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이렇게 깨진 부분으로 인해 본 토기의 제작 방식을 유추 할 수 있는데, 애초부터 통짜로 마갑을 두른 형상을 한 말 모양을 만든 것이 아니라 먼저 말 모양부터 만들고 마갑 장식을 붙여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실제 말에 마갑을 씌우듯 말이다.
마갑을 두르지 않은 부위로는 말의 머리가 있는데 이 역시도 대충 만들고 넘어가지 않았다. 말 머리에는 실제 말처럼 눈, 코, 입, 귀를 모두 만들어놨다. 말은 입을 살짝 벌리고 있으며, 두 귀도 서 있는 모습이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왼쪽 귀는 부러졌다. 이뿐만 아니라 말의 목등(목의 뒷부분)에는 직선으로 곧게 서 있는 말갈기도 묘사되어 있다. 말 머리 위까지 갈기가 이어지는데 갈기 끝 부분은 부러져서 없다.[7] 말 목의 앞부분에는 삼각형의 무늬가 둘러져 있는데, 이는 말의 목을 보호하는 마갑 부분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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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좌측면
말 위에 올라가 있는 무사는 전신에 갑주를 두르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창으로 생각되는 무기를,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데 무기를 방패에 바짝 붙인 채로 정면을 향하고 있다. 마치 마상창시합 시에 말을 타고 창과 방패를 들고 돌진하는 기사의 모습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무기의 앞부분은 부러지고 없어서 창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 등을 봤을 때는 창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왼손에 들고 있는 방패는 육각형이며 무사의 몸체를 거의 다 가릴 정도로 큰데, 표면에는 직선과 사선으로 된 여러 줄의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이 방패는 가야의 방패가 어땠을지를 알려주는데, 이는 현전하는 유물로서는 아직까지도 유일한 것이다.[8]
또한 무사는 전신에 갑주를 착용했는데 갑주로 둘러 쌓이지 않은 유일한 부분인 얼굴의 묘사는 말의 묘사와는 다르게 상당히 간략하다. 무사가 입은 갑옷은 허벅지까지 내려와서 전신을 보호하게 되어 있는데 이 역시도 세부 묘사가 명확하지는 않아서 그 형식을 판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9] 다만 어깨부터 목 뒤까지 둘러져 있는 일종의 칼라#s-2가 눈에 띄는데, 이는 목을 보호하는 경갑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무사는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는데, 이 투구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묘사되어 있다. 하나는 정수리의 꼭지가 위로 치솟았으며 앞이 긴 챙으로 이루어진 부분과 다른 하나는 머리를 감싸는 부분으로 이 둘은 따로 만들어져서 조합되어 있다. 본래 가야의 투구가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지, 아니면 토기 제작 과정 상 부득이하게 두 부분으로 나눈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또한 말을 타고 있는 무사이니만큼 마구#s-3도 갖춰야하는데, 이 역시도 자세하게 묘사하진 않고 양 다리를 내려서 등자에 발을 얹는 정도로만 간략하게 만들어 놨다. 무사의 등 뒤에는 막대기 같은 것이 부러진 흔적이 남아 있는데 정확하게 무엇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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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중장기병
정확한 세부묘사에서는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과 차이가 있고 가야가 아니라 신라의 중장기병을 묘사한 그림이기는 하지만, 본 토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가야 무사의 전반적인 모습은 아마도 위의 그림과 유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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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후면
말의 둔부에는 위로 솟은 뿔 모양의 잔이 양 옆으로 두 개가 붙어 있다. 두 잔 모두 윗 부분에 두 단의 폭이 넓은 띠를 두르고 띠에는 격자 무늬를 새겨놨다. 다만 액체 등을 따라서 실제로 마실 용도로 이 잔을 만든 것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이 잔들은 액체를 담는 기능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토기의 형태 상 음용을 위한 목적으로 쓰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12] 따라서 뿔 모양의 잔은 장식을 위해 붙인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의례용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13]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비록 출토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의 형태가 정교하고 뛰어나 높은 조형 수준을 보여주는 등 완성도가 높고 보존상태도 대단히 좋아서 그 가치도 아주 높다. 또한 본 유물과 같이 말을 탄 인물을 묘사하는 유사한 사례로는 금령총에서 출토된 신라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가 있으나,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실제 가야 무사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가야의 마구와 무기 그리고 복식 등을 자세히 알려주는 대단히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며, 1992년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소재 마갑총에서 함안 마갑총 출토 말갑옷 및 고리자루 큰 칼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가야 무사의 형태를 짐작 할 수 있는 유일한 유물이기도 했다.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은 이와 같은 가치를 인정 받아 1993년 1월 15일 국보 제275호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국보 제275호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높이 23.2㎝, 폭 14.7㎝, 밑 지름 9.2㎝의 인물형 토기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팔모양의 받침 위에 직사각형의 편평한 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말을 탄 무사가 올려져 있다. 받침은 가야의 굽다리 접시(고배)와 동일한 형태로, 두 줄로 구멍이 뚫려 있다. 받침의 4모서리에는 손으로 빚어 깎아낸 말 다리가 있다.

말 몸에는 갑옷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고, 말갈기는 직선으로 다듬어져 있다. 말 등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잡고 있는 무사가 앉아있다. 무사는 머리에 투구를 쓰고 오른손에는 창을,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데 표면에 무늬가 채워져 있다. 특히 지금까지 실물이 전하지 않는 방패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주목된다. 무사의 등 뒤쪽에는 쌍 뿔모양의 잔을 세워놓았다.

이 기마인물형토기는 가야의 말갖춤(마구)과 무기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1] 본 단락은 전적으로 KBS 천상의 컬렉션 가운데 '가야 기마인물형토기'의 내용과 두산백과의 이양선 항목을 주 텍스트로 삼아 작성되었다. 출처 : KBS 천상의 컬렉션 - 가야 기마인물형토기, 두산백과 - 이양선[2] 본 단락은 전적으로 KBS 천상의 컬렉션 가운데 '가야 기마인물형토기'의 내용과 두산백과의 이양선 항목을 주 텍스트로 삼아 작성되었다. 출처 : KBS 천상의 컬렉션 - 가야 기마인물형토기, 두산백과 - 이양선[3] 출처 : 한국 미의 재발견 고분미술 - 기마인물형 토기[4] 참조 : 두산백과 - 이양선[5] 출처 : KBS 천상의 컬렉션 - 가야 기마인물형토기[6] 출처 : 한국 미의 재발견 고분미술 - 기마인물형 토기[7] 이 부러진 부분은 뿔과 같은 영수(纓穗)를 묘사해놨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8] 사실 가야뿐만이 아니라 고대 한반도 국가들의 방패 형태를 전하는 유물이 거의 없기도 하다.[9]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10]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11] 아마도 후대 일본 무사들의 사시모노처럼 군기 깃대를 달았을 가능성이 있다.[12] 출처 : 고고학사전 - 기마인물상토기[13] 출처 : 한국 미의 재발견 고분미술 - 기마인물형 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