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위스키
Torage Whisky.
1956년부터 1976년까지 생산되었던 위스키 향의 기타재제주.
6.25 전쟁 이후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들을 통해 우리 나라에 위스키가 처음 소개되는데, 이 때 미군부대 PX 등을 통해 소량이나마 위스키가 외부로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이 당시의 위스키는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유통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고, 그나마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위스키들도 대중들이 마시기에는 너무 비싸서 주로 상류층들을 중심으로 소량 유통되는 정도였다.
이 무렵 일본 주류 업체인 산토리에서 만들어진 "도리스 위스키"(Torys Whisky)[1] 가 미군 배급품들 사이에 섞여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고, 이것이 밀수가 성행하면서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낳자 부산시 서구 토성동에 있던 '국제양조장'이 일본에서 수입한 위스키 향료와 색소, 주정을 배합하여 1956년 5월 일본 도리스 위스키의 이름을 도용한 모조 위스키를 내놓게 되었다.
이 가짜 도리스 위스키는 곧바로 저렴한 가격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수입 위스키를 대체하는 대중양주로 자리잡지만, 1960년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결국 이름을 바꾸게 된다.
1960년 1월 15일 부산 국제신보는 '도리스 위스키'라는 이름이 왜색 불법 상표 도용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냈고, 이에 국제양조장은 "도리스 위스키는 국내 미장 특허 및 상표등록을 마친 적법한 상표"라며 부산일보에 반박 광고를 낸다. 결국 15일간 상표 분쟁이 계속되다가 국제양조장 사장이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결국 도리스 위스키는 판매를 중단하였다가 동년 2월부터 '''도라지 위스키'''라는 새로운 상표로 판매되었다.[2]
도라지 위스키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60년대 들어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천양주조가 "백양 위스키"를 내놓았고, 왕십리의 쌍마주조에서는 "쌍마 위스키"를, 성수동의 신우실업에서는 "오스카 위스키"를 내놓는 등 60년대 후반에는 모조 위스키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
60년대 후반 들어 국제양조장은 경기도 안양에서 재배되던 포도를 원료로 "안양원 포도주"를 생산하던 태진물산 주식회사와 합병하여 공장을 부산에서 서울 월곡동으로 옮기고, 1973년에는 회사명을 도라지양조 주식회사로 바꾸며 사세를 확대해 나갔다.
70년대에는 당시 다방에서도 판매됐다고 한다. 김성동 작가의 소설 만다라에서 땡중이 다방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묘사가 있는데, 작중에서 묘사된 '위스키'가 도라지 위스키일 수도 있다.
1970년대 들어서 스코틀랜드에서 수입한 위스키 원액을 첨가하여 만든 인삼위스키, 조지드레이크(백화양조), JR(진로) 등의 "진짜" 위스키들이 출시되면서 도라지 위스키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결국 1976년 보해양조에 주류 제조면허를 매각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후일담으로, 이 "진짜" 위스키들도 위스키 원액 100%는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20% 미만, 25%, 30% 등 원액의 함량을 높여가다가 8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원액 100%로 만든 위스키가 국내에 출시되어 80년대 후반 패스포트, 썸씽 스페셜 등이 큰 인기를 끌었고, 90년대에 들어서 윈저, 임페리얼, 스카치 블루 등의 국내 용 위스키가 출시되기에 이른다.
이름은 위스키이지만, 실제 위스키 원액은 단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물과 주정에 일본에서 수입한 위스키향과 식용색소를 첨가하여 만든 소위 '대중 양주'로, 이를테면 지금의 캪틴큐와 비슷한 술이었다. 그래서 분류도 기타재제주(지금은 일반증류주로 바뀌었다). 다만 알코올 함량은 실제 위스키와 동일한 40%였다.
도라지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 도라지는 함유되어 있지 않았다. '도리스(Torys)'라는 이름이 왜색 상표 도용으로 지목되어 상표를 바꿀 때, '도리스'와 비슷한 토속적 이름인 '도라지'를 썼기 때문. 그래서 영문 표기가 Torage로 되어 있었다.
근래에는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의 가사에 등장하면서 많이 알려졌다. 또한 타짜 1부에서도 잠깐 등장한다.
1. 개요
1956년부터 1976년까지 생산되었던 위스키 향의 기타재제주.
2. 역사
6.25 전쟁 이후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들을 통해 우리 나라에 위스키가 처음 소개되는데, 이 때 미군부대 PX 등을 통해 소량이나마 위스키가 외부로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이 당시의 위스키는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유통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고, 그나마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위스키들도 대중들이 마시기에는 너무 비싸서 주로 상류층들을 중심으로 소량 유통되는 정도였다.
이 무렵 일본 주류 업체인 산토리에서 만들어진 "도리스 위스키"(Torys Whisky)[1] 가 미군 배급품들 사이에 섞여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고, 이것이 밀수가 성행하면서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낳자 부산시 서구 토성동에 있던 '국제양조장'이 일본에서 수입한 위스키 향료와 색소, 주정을 배합하여 1956년 5월 일본 도리스 위스키의 이름을 도용한 모조 위스키를 내놓게 되었다.
이 가짜 도리스 위스키는 곧바로 저렴한 가격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수입 위스키를 대체하는 대중양주로 자리잡지만, 1960년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결국 이름을 바꾸게 된다.
1960년 1월 15일 부산 국제신보는 '도리스 위스키'라는 이름이 왜색 불법 상표 도용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냈고, 이에 국제양조장은 "도리스 위스키는 국내 미장 특허 및 상표등록을 마친 적법한 상표"라며 부산일보에 반박 광고를 낸다. 결국 15일간 상표 분쟁이 계속되다가 국제양조장 사장이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결국 도리스 위스키는 판매를 중단하였다가 동년 2월부터 '''도라지 위스키'''라는 새로운 상표로 판매되었다.[2]
도라지 위스키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60년대 들어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천양주조가 "백양 위스키"를 내놓았고, 왕십리의 쌍마주조에서는 "쌍마 위스키"를, 성수동의 신우실업에서는 "오스카 위스키"를 내놓는 등 60년대 후반에는 모조 위스키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
60년대 후반 들어 국제양조장은 경기도 안양에서 재배되던 포도를 원료로 "안양원 포도주"를 생산하던 태진물산 주식회사와 합병하여 공장을 부산에서 서울 월곡동으로 옮기고, 1973년에는 회사명을 도라지양조 주식회사로 바꾸며 사세를 확대해 나갔다.
70년대에는 당시 다방에서도 판매됐다고 한다. 김성동 작가의 소설 만다라에서 땡중이 다방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묘사가 있는데, 작중에서 묘사된 '위스키'가 도라지 위스키일 수도 있다.
2.1. 단종
1970년대 들어서 스코틀랜드에서 수입한 위스키 원액을 첨가하여 만든 인삼위스키, 조지드레이크(백화양조), JR(진로) 등의 "진짜" 위스키들이 출시되면서 도라지 위스키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결국 1976년 보해양조에 주류 제조면허를 매각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후일담으로, 이 "진짜" 위스키들도 위스키 원액 100%는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20% 미만, 25%, 30% 등 원액의 함량을 높여가다가 8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원액 100%로 만든 위스키가 국내에 출시되어 80년대 후반 패스포트, 썸씽 스페셜 등이 큰 인기를 끌었고, 90년대에 들어서 윈저, 임페리얼, 스카치 블루 등의 국내 용 위스키가 출시되기에 이른다.
3. 특징
이름은 위스키이지만, 실제 위스키 원액은 단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물과 주정에 일본에서 수입한 위스키향과 식용색소를 첨가하여 만든 소위 '대중 양주'로, 이를테면 지금의 캪틴큐와 비슷한 술이었다. 그래서 분류도 기타재제주(지금은 일반증류주로 바뀌었다). 다만 알코올 함량은 실제 위스키와 동일한 40%였다.
도라지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 도라지는 함유되어 있지 않았다. '도리스(Torys)'라는 이름이 왜색 상표 도용으로 지목되어 상표를 바꿀 때, '도리스'와 비슷한 토속적 이름인 '도라지'를 썼기 때문. 그래서 영문 표기가 Torage로 되어 있었다.
4. 매체에서의 도라지 위스키
근래에는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의 가사에 등장하면서 많이 알려졌다. 또한 타짜 1부에서도 잠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