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항일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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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소멸
3. 대표적인 출신인물
4. 관련 문서


1. 개요


東北抗日聯軍
중국 공산당동북 방면에서 운영하던 다민족 부대. 화북 방면에서 운용되던 팔로군과는 친척관계이다. 1933년 결성된 동북인민혁명군을 모태로 한다. 1935년 8월 1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8.1 선언을 통해 모든 민족, 모든 계층의 항일연합군 창설을 결의하였다. 그 결의에 따라 1936년 동북인민혁명군과 다른 항일조직들이 모여서 동북항일연군 제 1군 부터 11군 까지가 창설되었다. 시작은 공산당계열, 국민당계열, 토비(土匪)등의 연합이었지만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선 중국 공산당의 영도하에 있게 된다.

2. 소멸


팔로군과는 다르게 1941년을 전후로 관동군의 치안숙정공작으로 사실상 소멸되고 만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동북지방이 매우 추운 지역이라 생존환경이 열악했다는 것과 일본의 통치기간이 길어서 통제가 엄격했다는 사실, 일본군이 집요하게 항일연군과 농민들 사이를 분리시킨 것, 1930년대 후반 일본소련과의 분쟁(1938년장고봉 사건, 1939년노몬한 사건)으로 관동군의 치안이 강화되고 병력이 증강된 것 등의 여러 원인들에 의해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윤휘탁,]
항일연군 1~3로군의 지도부와 잔여 병력들의 상당수는 1941년까지 소련 영내로 피신하여 소련군 휘하의 제 88국제여단으로 편입되었는데 여단내 조선인 대대의 대대장을 맡던 사람이 김일성이었다. 여단장은 저우바오중으로 대체로 동북항일연군 때의 조직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3. 대표적인 출신인물


  • 강건 (제 5군)
  • 김일성 (제 2군)
  • 김광협 (제 2군)
  • 김책 (제 3군)
  • 리자오린(이조린) (제 6군)
  • 리홍광
  • 양징위(양정우) - 제1로군 총사령관
  • 저우바오중 (제 5군)
  • 최용건 (제 7군)
  • 최현(북한) (제 2군)
  • 허형식 - 제3로군 총사령관
  • 안순복(安順福), 이봉선(李鳳善) (제 5군) - 팔녀투강(八女投江)[1]이라는 전설을 만들어 낸 조선족 여군들.[2]
이들은 동북항일연군 제 5군 1사단에 소속된 30명의 항일 여성단원들이다. 1938년 10월 20일, 일본 관동군 약 1,000명에 의해서 수많은 동료들이 포위되자 중국인(한족) 동료 6명[3]과 함께 적들을 유인하며 교란하여 동료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성공적으로 포위를 뚫었다. 그러나 미처 자신들은 빠져나가지 못했고, 포위되어 생포될 위기에 처했다. 그녀들은 최후까지 저항하였고, 마침내 총알이 다 떨어지자 고립무원의 위기 속에서 차가운 오사혼하(烏斯渾河)[4]에 뛰어들어 순국함으로써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이들의 영웅적인 일대기는 1986년에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같은 해인 9월 7일에는 그녀들의 영웅적인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서 목단강시 사회과학원 인근 빈강공원 광장에 팔녀투강 기념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나중에 2013년에는 이것을 소재로 한 중국 드라마로도 제작되기도 하였다.

4. 관련 문서



[윤휘탁,] 2003 윤휘탁, 「항전시기의 화북과 동북, 항일전술과 투쟁환경의 비교고찰 -팔로군과 동북항일연군의 상이한 운명과 관련하여-」[1] 목단강에 투신하여 자결한 8명의 여성 열사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일본군에게 잡혀서 치욕적인 포로가 되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항일 여성 게릴라들.[2] 지금도 중국 현지에서 항일투쟁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현지 학자들에게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도 기념비와 이들을 기리는 전문적인 박물관까지 세워질 정도.[3] 분대장 랭운(冷雲, 본명:정지민, 鄭志民), 부분대장 양귀진(楊貴珍), 기관총수 호수지(胡秀芝), 소총병 곽계금(郭桂琴), 의무사관 황계청(黃桂淸), 척후 안내원 왕혜민(王惠民). 이들 중에서 랭운이 23세로 가장 나이가 많았고, 제일 어렸던 왕혜민은 겨우 13세였다고 한다. 또한 조선인 안순복은 피복공장장이었으며, 이봉선은 보급병이었다.[4] 목단강의 지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