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랜드 라인

 

1. 소개
2. 배경
3. 듀랜드 라인의 선포
4. 현재


1. 소개


현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간의 국경선. 이 당시 영국령 인도 제국의 외무장관 모티머 듀랜드(Sir Mortimer Durand)와 아프가니스탄의 국왕 압두르 라만 칸이 체결해 그은 국경선으로 모티머 듀랜드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2. 배경


19세기 러시아 제국은 대외적인 세력확장을 노리다가 1856년 크림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한풀 꺾이게 되고, 방향을 돌려서 중앙아시아페르시아를 거쳐서 인도양으로 나갈려고 시도한다. 한편 세계의 제해권을 쥐고 있던 영국은 러시아의 대양으로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두 나라의 대립은 50년이상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벌어지는데 이것을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고 부른다.[1][2]

3. 듀랜드 라인의 선포


1877년, 영국령 인도 제국을 선포한 영국러시아중앙아시아로 나올 낌새를 보이자 선수를 치기로 하고, 1878년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서 영국은 아프간의 완전정복은 실패했지만, 영국에 우호적인 칸을 세우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데,[3] 러시아가 아랑곳하지 않고 히바 칸국을 1884년 병합하고 아프간 국경지대를 공격하는 등 남하할 기미를 계속 보이자 영국과 위기가 고조되었다.
한편 영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목적으로 조선의 거문도를 무단으로 점령했다. 여기에 충격받은 러시아는 동북아의 방위정책을 육군 중심주의로 전환하고, 중앙아시아로의 진출이 좌절된 상황에서 만주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만주 지역에 경제적 이권을 가지고 있던 일본의 불안감을 자아냈으며, 한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제국간의 충돌을 불러오게 된다.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남하와 영향력 확대를 달가워하지 않던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지원하였고, 결국 러시아는 혼란한 국내 상황과 맞물려서 패전한다. 결국 러시아는 소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모두에서 남하가 저지되면서 이전과 달리 꽤 약세에 처한 입장에서 영국과 협상을 맺고 중앙아시아에서의 영역권을 분할했다. 이것이 '''1907년의 영러협상으로 이를 계기로 50년 이상 지속된 영국-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은 종식'''되었다.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인도 제국에 완전히 병탄할 야욕을 품고 아프가니스탄을 찝적거렸으나, 이후 20세기 후반 소련을, 21세기 초반 미국을 물먹이게 될 '제국의 무덤' 아프간 전설의 서막을 알리는 결과만을 남긴 채 아프간 지배에는 실패하고 보호국으로 삼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리하여 영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영국령 인도 제국의 국경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고, 1914년 '듀랜드 라인'협정을 아프가니스탄의 압둘 라흐만 칸과 맺게되어 현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의 국경선이 되었다.

4. 현재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은 1893년에 영국이 설정한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일대에 거주하던 파슈툰족을 분열시킬 목적으로 파슈툰족 주 거주지역 중앙을 관통해서 국경선을 그은 거라 '''아프간의 3분의 1 가량의 영토랑 절반 이상의 파슈툰족 인구가 파키스탄에 편입되어버렸다.''' '''현재 파키스탄의 파슈툰족이 아프간의 파슈툰족보다 더 많다.'''[4][5] 즉 현재 파키스탄 북서부에 살고 있는 파슈툰족들은 졸지에 외세에 의해 파키스탄 사람이 되버렸으니 펀자브인들로 이루어진 파키스탄 중앙정부의 통치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지금도 스스로를 파키스탄 국민보다는 파슈툰족으로 생각하며 파키스탄 북서부에서 파슈투니스탄 분리주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6]
또한 파슈툰족이 밀집해 있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지대는 국경으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다. 파슈튠족의 정체성이 강한 북서부 파키스탄인들 한테는 바로 국경에서 맞대고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튠족들은 다른 나람 사람들이 아니라 친근한 동포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워낙 험준한 산악지대로 처음부터 두나라 중앙정부의 통제가 잘 미치지 않는 곳이다 보니, 그냥 두나라 파슈툰족들끼리 형님, 아우님 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이 통로를 통해서 각국의 이슬람 무자헤딘 지원병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고, 미국의 각종 전쟁물자가 지원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이 무자헤딘들이 탈레반, 알카에다 등 각종 무장조직, 테러단체를 만들어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양국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활동하고 있다. 당장 오사마 빈 라덴9.11 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파슈툰족이 살고 있는 국경지대를 통과해서 파키스탄으로 도피하였다. 이 통제되지 않는 퍄슈툰족 지역이야말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골칫덩이인 곳이다. '''결국 제국주의 서구 열강으로 인한 제국주의 폐해의 후유증이 돌아온 자업자득인 셈이다.'''[7]

[1] 결국 1905년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가 대양으로의 진출을 단념하고 1907년 영국과 동맹을 체결하면서 그레이트 게임은 종결된다.[2] 1885년 영국의 거문도 점령사건도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이다.[3] 이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귀국한 것으로 설정된 대표적인 가상인물이 존 왓슨이다. 100여년 전의 설정이 그대로 현 아프간 정세에 들어맞는단 점에서 아프간의 막장상태를 잘 알 수 있다.[4] 단 그럼에도 파키스탄 인구가 2억이 훨씬 넘는(...) 깡패라 파키스탄의 파슈툰, 즉 파크툰(Pakhtun)족은 15% 가량 되는 소수민족에 불과하다.[5] 반면 아프간의 파슈툰족은 파키스탄의 동족들 수의 반 이하임에도 거진 50%에 근접하는 국민비율을 보여준다. 즉, 파키스탄의 파슈툰인들만 따져도 파슈툰인을 제외한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민족을 모조리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아프가니스탄이란 국명이 왜 파슈툰의 나라라는 뜻인지 알 수 있는 부분.[6] 물론 아프가니스탄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라서 1947년 파키스탄이 독립할 때 듀랜드 라인의 무효화와 파키스탄 내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적이 있고,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간 영유권 분쟁이 있었다.[7]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안 좋아지게 된 원인도 되었고 파키스탄은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영국과의 관계는 안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