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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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전투원'''
'''탈레반 정권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국기'''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단체'''
'''단체명'''
'''탈레반, 탈리반'''
'''(영어:Taliban)'''
'''(파슈토어:طالبان‬)'''
'''지도자'''
'''Hibatullah Akhundzada (2016 ~ 현재)'''
'''기간'''
'''1994년 ~ 현재'''
'''활동내역'''
'''아프가니스탄 내전(1992~1996)'''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1996~2001)'''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2020)'''
1. 개요
2. 역사
3. 조직 구성
3.1. 아프가니스탄계 탈레반
3.2. 파키스탄계 탈레반
4. 사건/사고
4.1. 1996년 ~ 2001년(집권기)
4.2. 2007년
4.3. 2009년
4.4. 2010년
4.5. 2011년
4.6. 2012년
4.7. 2013년
4.8. 2014년
4.9. 2015년
4.10. 2016년
4.11. 2017년
4.12. 2018년
4.13. 2019년
4.14. 2020년
5. 현재
5.1. 탈레반과 아편
6. 평가
6.1. 비판
6.2. 옹호(?)
7. 전망
7.1. 이들의 근황
8. 같이보기

'''여자와 아이를 죽이는 것이 어찌 '지하드'인가?'''

- 아흐마드 샤 마수드


1. 개요


탈레반[1]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다. 이름의 기원은 파슈토어로 '학생들'이라는 의미로, 아랍어원의 단어 탈리브(طالب) 의 주격 복수 형태다. 흔히 탈레반을 아랍어 단어로 착각하고 있지만 '탈리반'은 아랍어로 '학생 2명'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탈레반 조직을 파키스탄 북부 및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 산재한 마드라싸[2][3]의 교육 체계를 이수한 신학생들이 내전으로 인해 막장 상황이었던 아프가니스탄에 내전을 무력으로 종식시키고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위해 결성한 단체였고, 이들이 자기들의 단체 이름을 '학생들'이라는 의미인 '탈레반'으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막장 상황을 종식시키겠다고[4] 들고 일어나서 지금까지 막장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은 함정이다.[5]
대체적으로 파슈툰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이슬람 이전부터 있어왔던 파슈툰족 전통 교리인 파슈툰왈리(پښتونوالی)와 자기들이 해석한 이슬람 율법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는다.
초기에는 비교적 상식적인 이슬람 율법 적용과 엄정한 규율, 파슈툰족 사이의 혐하자라족 감정을 등에 업고 오랜 전쟁과 기존정부의 무능에 지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아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국토 상당 지역을 점령하면서부터 빠르게 미쳐가더니 순식간에 반인륜적 무리로 돌변했다.[6] 그리고 현재는 이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이 엉망인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이슬람 순니파 하나피파에 속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이비 종파라고 보면 된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하나피파는 하나피파의 기원이 되는 아부 하니파부터가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는 중 신체 일부를 노출해도 상관없다"는 율법 해석을 내렸음에도 불구, 탈레반은 "여성은 의사가 돼서도 안 되고 남성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안 된다"는 사이비 파트와를 내렸다. 심지어 중세시대 파슈툰족 관습법보다도 퇴보한 점이 많은데, 파슈툰왈리에서는 '불의를 보면 참지 말고 적극적으로 저지하라'는 구절이 있는데, 문제는 탈레반은 파슈툰족 여자와 다른 부족의 남자가 결혼하는 것을 불의로 여겨서 '''여자를 죽인다'''. 파슈툰왈리에서는 '여성의 명예를 수호하고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여자를 죽이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일이지만, 정작 탈레반 정권 당시 운전 중 실수로 부르카를 입은 상태에서 팔을 약간 노출한 여성이 근본주의자에게 맞아죽은 일이 있었으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라크 내전 이전까지는 알 카에다와 함께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그 범위가 범세계적이며 가장 위험한 테러 단체로 손꼽혔다. 비록 다에시와 그들의 따까리를 자처하면서 준동하기 시작한 보코 하람에 의해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현재도 탈레반은 매우 위험한 조직이며 테러 공격으로 수많은 희생을 초래하고 있다.

2. 역사


탈레반의 사상적 기원은 이슬람 근본주의 신학자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신학에서 출발한다.[7] 자세한 내용은 파키스탄 이슬람 회의 문서 참조.

마우두디는 여성이 시장이나 대학, 극장이나 식당에 오가며 남성 무슬림 눈에 보이는 것이 도덕적 타락을 조장한다고 생각했었지요. 또한 예술, 문학, 음악, 영화, 춤, 화장은 부도덕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 이르판 무함마드

마우두디는 여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집 밖으로 외출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로 이는 히잡으로 가리지 못한 손이나 얼굴, 혹은 눈 등이 부도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여성의 참정권이나 정치 참여를 이슬람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사상을 계승한 파키스탄 군부의 어용 정당 파키스탄 이슬람 회의의 지원에 힘입어 탄생한 탈레반은 모하메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이며, 1994년 아프가니스탄 내전 중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구성 멤버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의 무자헤딘 출신과 마드라사에서 근본주의 신학을 주입받은 전쟁고아들, 그 중에서도 남부 파슈툰족 출신들이 모여서 결성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많은 지방군벌 출신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처음에는 하자라족 완전 박멸을 주장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8]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전국에 난립하는 군벌들을 하나하나 제압해 가며 혼란스러운 아프가니스탄 내전상황을 종식시키고, 1996년 9월에는 수도 카불에 입성,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90%[9]를 통치하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선포하며 정권을 수립하기까지 이른다.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전세계, 심지어 이슬람권 국가들마저 경악할 초강경 샤리아를 펼치며 공포정치를 펼쳤다.
2001년 9월 11일에는 9.11테러를 일으킨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의 인도를 요구한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다가 결국에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 미국의 지원을 받는 북부동맹에게 전세가 역전, 아프가니스탄 남부로 쫓겨나거나 많은 수가 파키스탄으로 도망을 갔다.
2003년은 탈레반에게는 천운의 기회였는데, 이라크 전쟁이 터지며 미국의 관심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북부동맹 출신의 내각은 단결이 잘 되지 않았으며 무능하고 부패했기에 탈레반은 다시 세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3. 조직 구성



3.1. 아프가니스탄계 탈레반


이슬람 원리주의를 믿으며 '''무력을 사용하여 극단적인 신정일치 종교 사회를 창조하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경전(쿠란샤리아)을 현실정치에 적용한다면서도 막상 쿠란의 뜻 자체를 곡해하고 온갖 비도덕하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일삼는 것이 이들의 실상이다. 게다가 일부는 쿠란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1999년 한겨레 신문사의 정문태 기자가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모하메드 오마르를 만났을 때 탈레반의 꼴통스러움을 여과 없이 보였다. 정 기자가 쿠란을 공부하여 반박했는데[10], 결국 말이 막힌 오마르는 '''"무슬림도 아니면서!"''' 라고 버럭거리곤 말문을 막고 나가라고 했다.[11] 정 기자도 책자에서 "오마르 그놈을 만나 이야기해보니, 제대로 미친 광신도였다"라고 혐오감을 감추지 않고 비난했다. 무슬림 지인들에게 이 일을 말하자 그들도 "탈레반이 그만큼 미친 놈들이다"라고 이해해줬을 지경이라고 했으니.
덕분에 주류 이슬람 세력에게도 이들은 반쯤 이단시당하며,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정권 구성을 추구하는 이들의 사상은 태반이 왕정인 아랍 이슬람 국가들에게 외면당했고, 이란은 시아파가 국교였기 때문에 수니파 꼴통인 이들을 멀리했다. 단순히 소원한 관계가 아닌 말 그대로 적대 관계로 이란은 아프간 전쟁 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묵사발내는 꼴을 보고서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람보 3에서 나오는 무자헤딘들처럼 탈레반이 소련과 싸운 독립투사라는 '''잘못된''' 인식이 국내에서 횡행한 바 없지 않으며, 탈레반들도 그렇게 주장하지만 소련과 싸운 것은 탈레반 총사령관 <믿음의 군주> 물라 오마르 뿐이며, 탈레반 조직 자체는 무자헤딘 연립정부 결성 이후 파키스탄 부족 지역에서부터 세를 확장하기 시작한 신생 조직이다. 사용하는 무기는 소련 침공 때 미국이 지원해준 미군의 제식병기들로 미국으로서는 자기들이 준 무기 가지고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
1994년 내전에 빠진 무자헤딘 연립 정권을 각개격파하는 방식으로 1996년 수도 카불까지 장악하는 등 아프간 영토의 80%를 수중에 넣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세웠으나, 어디까지나 파슈툰족이 주류를 차지하는 아프간 남부의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제압했을 뿐 우즈베크[12]타지크[13], 하자라족[14]이 주류를 이루는 북부 일부는 끝내 점령하지 못했으며, 이렇게 소수민족들이 무장한 세력을 통틀어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이라고 불렀다. 2001년 당시 UN 의석은 여전히 북부동맹 정부가 가지고 있었지만, 탈레반 정권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대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 직후 단교당했다.

3.2. 파키스탄계 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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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현황 '''

정부 통제 구역

탈레반 영향권

탈레반 간접통치 지역

탈레반 점령지
파키스탄 서북부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지역 중에서 '''오직 초록색만이 정부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는 지역이다.''' 이것을 보면 '''사실상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근처만 제외한 서북부 지역은 탈레반의 영토나 다름없다.'''
사실 탈레반의 지지 기반인 파슈툰족이 아프가니스탄에만 사는 게 아니라 파키스탄 서북부에도 살기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번 축출된 이후에는 다시 세력을 모아서 파키스탄 서북부를 장악했다. 사실 파키스탄과 탈레반의 밀월 관계 역시 반쯤 사실이었던지라 파키스탄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성전하러 간다든지, 아프간 탈레반들을 숨겨준다든지 하는 일도 많았다. 물론 탈레반이 세력이 커진 이후에는 파키스탄 군사독재 정권도 발등이 찍혔었는데[15], 해당 지역의 파슈툰인들은 펀자브인 위주로 돌아가는 파키스탄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도 종교적으로 미친 놈들인지라 파키스탄 탈레반에서는 서구식 학교를 전부 폐쇄하며 여자들은 집 밖에도 못 나오게 하고, 심지어 탈레반에 동조하는 여성들을 부르카를 씌우고 앞장세워 서양 물품들을 파는 가게를 "이슬람을 타락시킨다"며(...) 우루루 몰려들어 파괴하고 다니는 미친 짓을 벌인다.[16]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에서 뛰쳐나온 일부 여성들은 파키스탄 탈레반에 의한 위협을 피해서 하루하루 숨 죽이며 살아가는 지경이다.
거기다 이 정도 협박과 폭력에 그치치 않고 각종 영상매체 상점, 전통 음악인들과 가수들, 서구식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문 닫으라고 협박 편지를 보내며, 극장과 서구식 전자제품 가게 등지에 폭탄 테러를 해대고, 심지어 가정용 텔레비전조차도 샤리아에 어긋난다며 금지시키려 하기도 한다(!).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있는 스와트 주에서 탈레반이 득세하며 이젠 '''소아마비 예방접종도 서구의 산물이라고 금지하라'''는 막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건 부모들이 "아이들을 죽이는 짓"이라고 결사반대했고, 탈레반 내부에서도 '아니 우리 아이들도 아플 수 있는데 이건 뭐야?'라고 반발이 거세서 '''이 부분에서만''' 물러났다. 사실 이건 탈레반 전체가 아니라 일명 라디오 물라라고 하는 탈레반 이름을 내세운 또라이 일부가 하던 주장이라, 파키스탄 탈레반 내에서도 "아이들을 죽이려고 작정했냐"며 반발이 거셌다고.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까지 은밀히 받고 있다. 실제로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무장 분쟁에 투입하기 위해 만든 여러 개의 무장단체가 탈레반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빈 라덴의 휴대전화에서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의 수장들과 통화한 내역이 나왔다. 미국은 당시 파키스탄 정부에 항의했지만 파키스탄은 무시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으로서도 별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이들 지역을 파키스탄군이 공격하자면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꼴로 내전이 벌어진다.[17]
파키스탄 정보부가 아프가니스탄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탈레반을 비롯한 여러 무장단체를 지원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들고 나온다면 보급로가 끊기고, 탈레반에 대한 지원 역시 더 많아질 것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은 탈레반이 파키스탄에 위협적인 존재임을 계속 강조하며 파키스탄이 미국에 협력할 것을 계속 주문하고 있다.
사실 이 파키스탄 탈레반이 가장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파키스탄 정부가 전복되고 탈레반의 파키스탄이 건국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파키스탄의 핵무기와 기술이 탈레반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여태까지 해왔던 테러와는 차원이 다른 핵테러 같은 것을 계획하고 행동에 옮길 수도 있기 때문에, 서방세계와 인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위험해진다. 같은 이슬람 국가조차 등지고 자기들만 정의라고 외치는 미치광이들이 전세계를 핵으로 심판하겠다고 떠드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탈레반의 거점은 거진 다 지하나 오지에 꽁꽁 숨겨져있는데다 점조직 형태로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설령 핵으로 보복하려고 해도 어느 지역에 어떻게 보복해야 할지 마땅치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키스탄의 핵이 탈레반에게 탈취당하는 상황은 굉장히 골때리는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4. 사건/사고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꼬라지를 보자면 '''도무지 이것들이 인간이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

4.1. 1996년 ~ 2001년(집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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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9일 전세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였다. 이교도 잔재 청산이 명분이었는데, 이는 레콘키스타 당시 스페인/포르투갈이라는 골수 가톨릭 국가들이 이슬람 문화유산인 알 함브라 궁전이나 메스키타 등에도 하지 않았던 짓거리로 엄연한 문화재 반달리즘이다.
사실 탈레반이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같은 나라의 와하브파 성향 수니파 나라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면서도 이슬람 기준으로 소위 '완벽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으로는 인정 못 받는 게 바미안 석불 파괴 때문인데, 이슬람 이전 문물은 존중해주는 쿠란의 교리[18]를 우상 파괴 교리를 앞세워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간에도 불교 문화가 스쳐지나간 흔적으로 암벽에 조각한 석불들이 남아있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했는데, 이 불상들을 탈레반이 죄다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리는 장면을 CNN에서 포착했던 것이다. 동굴 내 불화도 전부 화염 방사기로 반달해버리는 것은 물론, 아프가니스탄 박물관 내에 있는 유적들을 도끼로 박살내서 사막에 갖다버렸는데, 당시 박물관 직원들이 필사적으로 뜯어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문맹이 많았던 탈레반 대원들이 이를 듣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전에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게 탈레반의 실상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전세계가 탈레반의 악랄한 실상을 똑똑히 보게 된다. 사실 잘 보면 불상 폭파되기 전 사진에서도 얼굴이 이미 반쯤 날아가 있는데, 19세기 이전부터 이 지방을 지배한 독실한 무슬림들은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했다. 유명한 것은 무굴 제국의 이슬람 광신도 황제로 유명한 아우랑제브로, 무려 대포를 쏴서 바미안 석불을 날려버리려고 했다. 몇 번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팔, 다리, 머리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면 가즈니 왕국투르크인 정복자 무함마드도 이를 날려버리려 했다.[19]
다시 말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탈레반은 위대한 황제 아우랑제브도 부수지 못한 석불을 날려버리는 대단한 위업을 달성한 것.
탈레반 정권이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려 한다는 소식이 나오자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비롯한 몇몇 대형 박물관은 "돈을 주고 사겠다"고 애원했지만 소용 없었다.
그리고 세계불교도연맹이나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물론 태국이나 스리랑카 같은 불교 국가들은 일제히 비난 성명을 냈다. 불교 전통이 깊은 일본에서도 "석불을 파괴하지 마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슬람 국가들도 파괴하지 말 것을 탄원했고, 후원자인 파키스탄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게다가 스스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이란도 "제발 이슬람 이미지 그만 말아 먹으라"고 했지만 쇠 귀에 경 읽기였다. 결국 이란 정부는 공식적으로 "탈레반은 '''사이비 종교'''[20]이다"라고 선포했다. 사실 이란에도 쿠샨 왕조 시절 불교 흔적들과 페르시아 시절 조로아스터교 흔적이 많고, 지금도 이란 중부의 야즈드에는 조로아스터교가 남아 있으며, 야즈드 조로아스터교도나 북부의 아르메니아 정교회 신자들은 호메이니 정부가 들어서고도 전혀 박해받지 않았다. 아예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 상류층을 차지하기까지 했다.[21] 애초 그 호메이니조차 페르시아 전통을 없애려다 페르시아 자부심이 가득한 이란인들에게 넌씨눈 소리나 듣고 까였던 그런 나라가 이란이다. 그러니 이란은 종파도 다르고 자신들을 사이비 취급하며 호전, 배타적인 탈레반과 손절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란과 아프간은 탈레반이 무너지는 2001년 이전까지 적대 관계를 유지했고,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
폭파 이후에 중국과 일본은 공식 성명을 통해서 이 만행을 규탄했고, 유네스코유럽연합도 비난을 쏟아부었지만, 탈레반은 "돌과 바위 좀 부쉈는데 왜들 저리 호들갑이지?"라고 세계의 반응에 매우 의아해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국제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인정해줄 것을 촉구하며 바미안뿐만 아니라 아프간 전역의 모든 불상을 때려부쉈다.
이 때 탈레반 내부에서도 극렬주의자들을 빼면 '이건 역사에 죄를 짓는 미친 짓이야'라고 혀를 내둘렀지만 그들의 주장은 철저히 묵살되었다.
그리고 탈레반은 파괴된 현장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자랑하는 지거리를 했다. 더 웃기는 건 이런 돌상 파편 조각을 해외 불상 수집가들이 돈 주고 산다니까 몰래 빼돌려 일부를 팔아버린 탈레반도 있다는 것.
모하마드 오마르 에 의하면 "사실 어차피 아프가니스탄에 불교도가 남아있는 것도 아니니 처음부터 파괴할 생각은 없었는데, 서양인들이 민중보다 석불에 더 신경쓰는 것 같아서 파괴했다"고 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에도 극소수 불교도와 힌두교도, 시크교도가 엄연히 남아있었고, 그들은 노란색 터번을 쓰라고 강요당하며 차별받았다. 그래서 인도로 도망가거나 한 사람도 많았다. 시아파 무슬림도 차별은 마찬가지라, 수니파 파슈툰인들의 터번과 다른 색상과 모양의 터번을 강요당하고 북부 일대 거주지를 벗어나지 못하게 억눌렸었다. 몽골계 유목민족 튀르크계가 대게 시아파인지라 아리아계 백인종인 파슈툰인과는 인종 차이까지 더해져 더욱 차별받았다.
이런 막장 문화재 파괴 행위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해외에서 떠돌아다니는 국보급 유물도 상당하다. 그 중 한 예로 신라 금관과 유사한 양식성으로 주목된 틸랴테페 금관을 비롯한 고대 아프가니스탄 유물들. 이 유물들은 수십 개 국가를 떠돌고 있는데, 2016년에는 한국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었고 현재는 경북 경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된다. #
그 중에서도 인권침해 부분이 극심했는데, 수니파 이슬람 이외의 모든 종교를 탄압한 것은 물론 모든 언론과 방송이 중단되고, TV와 라디오는 오로지 한 채널로 24시간 쿠란만 방송하게 되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 것에서부터 아래에서 설명할 온갖 막장 세계가 현실이 되었다. 이러니까 결국 미군카불에 들어섰을 때 시민들은 탈레반이 카불을 지배한 1996년부터 몰래 숨겨둔 인도 드라마, 인도 영화이란 영화 녹화본과 주변 나라들인 인도, 파키스탄 연예인 사진을 다시 팔았다. 진짜다. 아프간도 인도문화권이라 인도 발리우드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고 이웃 이란 영화도 인기였는데 탈레반이 영화 자체를 못 보게 했기 때문이다.[22]
이슬람 극단주의를 제외한 모든 대중 매체, 타종교, 대중문화, 가치관, 인권, 복식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모조리 금지했다.
이들의 막장행각은 '''인류사에 둘도 없다고 할 정도인데''' 노래, , 카드놀이, 체스, 영화 감상, 화장품, 장신구 착용, 그림 그리는 것까지 모두 금지되었다. 영화나 그림은 '''형상을 묘사한 것이니 우상숭배'''라는 또라이 같은 논리[23]를 폈는데, 심지어 아랍어로 그림처럼 그리는 대중문화인 핫(Hat)조차도 금지했다. 천여 년 동안 이슬람권에서 인정받아오던 핫을 금지하면서 대대로 핫을 그리고 새기던 장인들은 격분했지만, 이들도 따르지 않으면 구타 및 구금, 사형을 당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모든 아프간인들이 평생동안 탈레반 정권에 아무 불만없이 사는 실사판 1984식 사회였다.'''[24]
서구식 학교도서관, 극장, 박물관 등을 모조리 폐쇄하고, 텔레비전과 영화필름 및 문화유산들을 모조리 불태우거나 남김없이 부수고 파괴했으며, CD와 DVD는 거리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전통 음악가들과 시인들, 예술가들을 모조리 탄압하고 구타하고 처형했다. 이들이 무슨 록 음악 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니고, 중세 이슬람 시기부터 번성했던 시문학이나 전통 음악들을 하는 문화유산 전수자들이자 장인들인데도 탈레반에게는 이들마저 때려죽여야 할 타락한 놈들로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가수들의 무덤에 가서 총을 난사하는 미친 짓도 저질렀다. 절도범들은 전통적 이슬람 형벌에 따라 손목을 잘랐고, 재범일 경우 발목을 잘랐다.
여성의 근로권, 복장 자유권 등 모든 기본적 권리를 박탈하고 의료, 교육, 법률의 권리마저 빼앗았다. 여성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면 여성 변호사만을 선임할 수 있지만, 여성에 대한 교육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여성 변호사가 있을 수가 없고, 여성의 몸은 여성만이 진료할 수 있는데 여성 의사가 있을 수 없는 식이었다. 심지어 남녀공학 학교를 공격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당시 무자헤딘들에게 거의 망해가는 형국이긴 했지만, 그래도 비이슬람적 사회주의 성향이던 무하마드 나지불라 정권[25]의 여성인권 우대정책으로 인해 카불에는 교육받은 여대생만 '''8,000명'''이 있었고, 아프간 내의 의사들의 40%, 공무원들의 50%, 교사의 70% 가량이 여성이었는데, 탈레반들은 이들의 일과 학업을 모조리 강제 중단시키고 집에만 있기를 총칼로 강요했다. 당연히 말할 것도 없이 이들 여성들은 모조리 빈민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26]
그뿐만이 아니었다. 부르카를 여성들에게 무조건 강제로 입게 하고, 안 입으면 사형시킨 것도 모자라 여성 혼자 밖에 나가는 것조차 금지했다. 남자 가족과 동행하지 않고 '''혼자서 돌아다니는 여자는 부르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개 패듯이 구타하는 게 일상이었다.[27] 수도 카불의 경우는 이런 통제가 더 심해서 '''집 안의 갓난 아기가 아파서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간 여성을 보고 탈레반들이 수상하게 여기고 저격해서 살해하는 경우마저 보고되었다.''' 또 여성이 매니큐어를 칠하다 걸리면 '''손가락을 잘랐다.''' 남자들에게도 아프간 이슬람식 전통 복장과 터번을 강요했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말을 걸거나 웃어도 처벌을 받기가 일쑤였다. 전후 과부가 많던 상황속에서 과부들의 경제활동을 사실상 봉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의 1인당 소득은 단연코 전세계 최하위를 달렸고, 법률 또한 완벽히 마비되어 이슬람 샤리아의 전통적인 형벌들이 법률을 대신했다. 심지어 아이들이 하늘에 연을 날리는 것조차도 '알라의 하늘을 더럽힌다'며 처벌 대상이었다고 한다. 연날리기하다가 걸려서 맞아 죽은 아이들까지 실제로 있었다. 또한 '''현대적인 치약의 사용을 금지'''했는데, 이유가 가관인 게, 무함마드는 7세기에 현대식 치약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나무뿌리로 양치를 했기 때문에 치약은 비이슬람적이라는, 그야말로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이유였다.[28] 실상은 치약조차 제대로 공급이 안 돼서 불만이 나오자 내린 조치다. 탈레반은 "발전소가 없어서 전기가 부족하다"는 불평이 나오자 "선풍기는 사탄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는 파트와도 발표했는데, 나중에 탈레반 정권이 전복되고 나서 보니 탈레반 주요 인사들 집에는 에어컨하이파이 스테레오 시스템이 있었고, 모하마드 오마르 집 마당 축사에는 선풍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북부동맹 병사가 "오마르가 국민들을 가축만도 못한 취급을 했다"며 분노하는 모습이 잡혔다.
또한 남성들은 일절 수염을 자르지 말아야 했고, 면도하는 이들을 공개처형할 정도로 막가파 살인마들이었다. 최소한 턱 밑으로 주먹 한 줌 정도는 긴 수염이 되어야 처벌을 면했다. 진짜다. 이 때 몽골계 인종인 튀르크하자라인키르기즈인 남성들은 몽골계 혈통 상 도저히 인도아리아계 파슈툰인이나 타지크인들처럼 덥수룩한 수염을 못 길러서 이들만 어느 정도 예외 취급을 받았을 뿐이다.[29]
'''그 밖에도 그때그때 자기들 배알 꼴리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다가 축구 경기장에 몰아넣고 처형하는 게 일상'''이었다.
관계서적의 증언에 따르면, 광신에 미친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했던 1995년에 일어났었던 끔찍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도 있다. 어떤 탈레반 대원이 카불 동물원에 쳐들어가서 우리에 뛰어들어 곰의 코를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 이유란 게, "곰은 수염이 짧기 때문에 형벌을 집행했다는" 것. 그런가 하면 또다른 탈레반 대원은 자기들이 원하는 이슬람 샤리아의 지옥도가 카불에서 펼쳐지는 걸 보고 너무나 자신감에 도취되어, 사자 우리에 뛰어들어서 '''"나는 사자다!"'''라고 외치다가 사자에게 물려죽었다고 한다. 탈레반은 이 사자에게 수류탄을 던져 눈을 멀게 했고, 코잘린 곰, 눈먼 사자, 늑대 2마리가 당시 카불 동물원에 남아있던 유일한 동물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놓고 동물 학대를 저지르는 잔혹함을 보인 것으로 이것이 알려지자 전세계의 공분을 샀다.[30]

이 다큐멘터리는 BBC에서 2018년 카불의 불안한 치안상황을 취재한 영상인데, 영상 13분 17초경에 위 서술에 나왔던, 탈레반 대원을 물어죽이고 수류탄에 눈이 멀었던 사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1995년에 탈레반 대원을 잡아먹었던 해당 사자는 마치 영웅처럼(...) 재건된 카불 동물원 안에 동상까지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슬람이 가장 패권주의적이고 억압적인 모습을 보였던 맘루크 왕조오스만 제국그리스 식민통치 시기[31]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유일하게 허용되는 스포츠가 권투였는데 문제는 면도하면 사형(...)이라 권투 선수들이 면도를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얼굴에 난 상처로 채점하는데 지장이 된다고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OCA)가 이걸 받아주지 않자 아시안 게임도 불참한다.
다른 스포츠는 스포츠 경기는커녕 선수들 생존도 어려운 상황이라, 죄다 망명하거나 살해당했다.
여성 선수는 탈레반에서 금지 정책을 내려 이보다 더 심했으며, 이렇다보니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조차 탈레반의 여성 탄압을 구실로 올림픽 참가를 금지시켰다.
축구는 예외적으로 허용하는데, 축구 경기장 자체를 처형장으로 사용하고, 경기가 있는 날에도 축구 경기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처형을 집행한다. 오히려 사람이 많을 때 처형 장면을 공개함으로써 공포 정치를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이 크다.
더 황당한 것은 나체의 인간이 그려져있는 의학교과서는 '''음란물'''이라고 의학교과서를 모아서 불태워 버리는 바람에, 탈레반 아래에서 공부한 의사들은 책 없이 학교 교수의 기억력과 구전에 의지해서 공부했다고 하는 믿기 힘든 이야기까지 있었다.
사실 어디건 극단주의자들은 이렇긴 하다. 이를테면 더 극단적인 사례로는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가 벌어져서 지식인 계층이 전멸했던 이후 초등학교에서 과학 실험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좀 더 온건한(...) 미국인 목사이자 정치인인 앤소니 컴스탁도 바로 이랬다. 컴스탁 덕분에 19세기 미국에서 해부학 그림을 음란하다고 우편으로 보내는 게 금지되었고, 대학에서조차 이런 의학서적을 금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러다보니 시사 만화로 알몸인 아기를 낳은 임신부도 음란하다고 고소하는 컴스탁이라고 신랄하게 가는 만화까지 나올 지경까지 갔다. 마크 트웨인이나 조지 버너드 쇼, 헨리 제임스 같은 내로라하는 당대 미국 문인들에게 미친 원숭이라느니, 진화가 덜 된 종교쟁이라고 비난받았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는 플라밍고 그리기를 좋아하는 화가에게 플라밍고의 다리가 음란하다고, "플라밍고에게 옷을 입혀 점잖게 만들든가 죽든가를 택일하라"고 고문하는 장면도 나온다.
민간인 처형도 빈번하였고, 변방으로 밀려난 현재도 여전하다. 무고한 비 파슈툰 부족민들을 미국과 협력했다며 학살해 놓고서는 "이슬람을 수호했다"며 자화자찬해서 자기네 사이트에 동영상까지 올린다. 이는 현재진행형 악습이다.

4.2.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참고.

4.3. 2009년


[image]
심지어 2009년 10월 11일에는 '''파키스탄 육군 사령부'''를 공격하는 짓도 벌였다. 단 수십 명의 공격으로 사령부는 쑥대밭이 되었다.
2009년 12월 30일에는 자폭테러로 CIA요원 7명을 죽였다.기사

4.4. 2010년


2010년 1월 1일에는 파키스탄 북서부의 배구장에서 자폭테러를 일으켜 80여명이 사망했다.기사
2010년 2월 20일에는 아프간 연합군의 헬만드 주 공세 8일 만에 본부로 추정되는 기지를 점령했다고 한다.기사
2010년 3월 26일에는 파키스탄군이 탈레반 반군 24명을 사살했다고 한다.기사
2010년 4월 3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독일군이 아프간군을 탈레반으로 착각하여 차량에 총격을 가해 아프간 군인 6명을 사살했다고 한다.기사
2010년 4월 5일에는 페샤와르에 있는 미국영사관이 집중공격을 받아 경호원과 테러범 등 적어도 7명이 사망했다고 한다.기사
2010년 4월 12일에는 아프간 주둔 나토군이 오인사격을 하여 아프간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고 한다.기사
2010년 5월 19일에는 탈레반이 카불 소재의 바그람 공군기지를 공격했다고 한다. 탈레반 대원 7명이 사망했고 ISAF 소속 외국군 5명이 사망했다.기사
2010년 6월 30일에는 탈레반이 나토군 기지를 습격했다고 한다. 탈레반대원 8명이 사망하고 나토군 2명이 부상을 당했다.기사

4.5. 2011년


2011년 5월 22일에 해군기지인 메흐란을 공격하여 파키스탄 해군에 다수의 인명 피해를 내게 하고, P-3 대잠 초계기 1대 완전 전소, 1대를 대파시켰다.
2011년 12월 5일자 소식으로는 파키스탄 탈레반이 미군의 무인기 공습과 파키스탄 정부군의 공세로 100개 파벌로 쪼개졌으며, 자금도 고갈되는 중이라고 한다. 다만 아프가니스탄에서 그 세력은 여전하다.
그 와중에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땅굴 탈옥 사건이 일어나 미군과 아프간군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
2011년 5월 2일에 미군이 오랜 세월 동안 추적해왔던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당했다.

4.6. 2012년


2012년 10월, 탈레반 지배하에서 압제받는 아동 인권, 여성의 교육권 수호를 주장하던 14살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32]에게 총격을 가해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뜨렸다. 기사. 이것은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시위 행동을 겸한 보복이었지만 큰 실책이었다. 되려 전세계가 이 행위에 공분했고, 아랍권과 이슬람 세계에서조차 분노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유사프자이는 이후 영국에서 치료받고 생명을 건졌다. 그리고 이 소녀는 2014년 세계 최연소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수상과 동시에 각종 극단주의 단체에서 테러 예고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신변에 문제가 생긴 상황. 그녀 말고도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과 친척 일부[33]도 탈레반을 강력하게 비난했으며, 아버지가 운영하던 학교에 대하여 경고 테러를 감행하던 터에 그녀 식구들도 위험했다.
그래서 말랄라와 온 식구와 친척 몇몇[34]도 영국에 이민 가서 거주하면서 말랄라 펀드를 만들어 이슬람 여성교육 확대 및 교육제한 철폐운동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관찰자인 외부에서와 다르게 탈레반을 대하고 살아야 하는 서북부 파키스탄 현지에서 유사프자이에 대한 평가는 갈리는데, "괜한 뻘짓으로 공동체에 화를 불러왔다"는 비난과 "용감한 행동이었다"는 칭찬을 동시에 듣는다. 현지에서는 전자가 더 우세하다. 그 이유는 말랄라가 살던 지역이 바로 위에서 나오는 스와트 주로, 원래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좀 더 보수적이거니와 근본주의자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4.7. 2013년


2013년 6월 22일에는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 산 베이스 캠프에 총격을 가하여 외국인 9명을 비롯한 등산객들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 무인 폭격기의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고 하지만, 애시당초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해쳤다는 점에서 평생까임권만 더 추가됐다. 당시 아시아 산악연맹의 이인정 회장이 파키스탄 정부에 항의하면서 "이런 테러에 대하여 파키스탄 정부 책임이 크다"며, "국제산악연맹과 손잡고 테러위험국가로 파키스탄 등정을 금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정도였다. 이에 파키스탄 장관이 애원하면서 중무장 호위 병력을 낭가파르바트 곳곳에 두며 등산객 안전에 만전을 가하기로 했다.

4.8. 2014년


2014년 6월 8일, 대담하게도 테러범 10명이 파키스탄의 대도시인 카라치 진나 공항에 폭탄 테러와 로켓, 수류탄 등을 동원하여 테러를 감행, 총 28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 탈레반은 미국의 드론 공격과 카라치 공항이 미군의 군수물자를 공급, 관리하는 물류기지의 역할을 하기에 해당 테러를 자행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기사.
2014년 9월, 탈레반 대변인이 트위터를 하다가 실수로 위치정보를 노출했는데, 아프간이 아니라 파키스탄 남동부에 있었다. 기사.
2014년 10월, 파키스탄계 탈레반 조직 다수가 ISIL에 충성을 맹세하고 병력을 보내기 시작했다. 약 1,500명의 병력이 이미 시리아-이라크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2월, 파키스탄 페샤와르 주 초등학교에서 이들이 들어와 총격전과 학살극을 벌여 어른 및 아이들이 140여명 이상이 죽거나 다치는 참극이 벌어졌다. 피해자 대다수가 10살 초반 아이들이라 여론이 분노하고 있고, 탈레반도 부랴부랴 "아이들을 제외한 테러를 가하려고 했다"(...)고 변명이나 찌질거렸는데, 이건 뭐 총알이나 폭탄이 어른들만 맞게 할 수 있다고 알라에게 빌었다고 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들이 테러를 자행한 곳이 파키스탄군에 부속된 군인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인 점을 볼 때, 그들의 변명과는 달리 '''고의성이 다분하다.'''[35] 결국 이 사건 이후로 파키스탄 탈레반은 "앞으로도 파키스탄군이 계속 우리들의 여자와 어린이를 공격한다면, 우리도 공격 대상을 구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
2014년에도 계속해서 테러를 일으켰으며, 2015년 2월에는 아프간 동부 로가르 주 풀리알람의 경찰서에 자폭 테러를 가해 10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당했다.
[image]
아프가니스탄대통령 선거는 위의 사진처럼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서 후보자를 찍는 형식인데, 탈레반은 이것을 악용하여 2014년 대통령 선거에 투표한 자들을 색출해냈고, '''그들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기사

4.9. 2015년


2015년 2월 13일에는 페샤와르의 이슬람 시아파 모스크를 공격해 20명을 죽이고 50명을 부상시켰다.[36]
2015년 3월에도 펀자브 주 라호르 지방의 가톨릭 성당개신교 예배당에 연쇄 폭탄 테러를 저질러 90명을 죽였고, 자신들이 이번 공격을 주도했다며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집행하는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혀, 분노한 기독교인 수천명이 폭력적으로 반발 시위까지 벌여대는 참극이 발생했다. 기사.
2015년 5월 13일에는 파키스탄의 대도시 카라치에서 탈레반들이 오토바이를 나눠 타고 일반 버스를 강제로 세우게 한 뒤, 버스를 둘러싸고 '''무차별 총기 난사'''를 자행해 무고한 민간인 43명이 학살당하고 13명이 부상당했다. 정황상 시아파 예배를 드리러 사원으로 가는 버스를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계속해서 민간인과 타 종교, 타 종파에 대한 악랄한 공격이 멈추지 않고 있어 국제사회의 공분과 우려를 사고 있다. 기사.
2015년 4월 20일에는 탈레반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하늘 아래 2명의 칼리프가 있을 수 없다"라는 명분으로 서로에게 지하드를 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6월 22일, 수도 카불로 쳐들어가 아프가니스탄 의회 의사당을 공격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 의회 건물 주변에서 6차례 폭발이 발생했으며,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트위터에 "탈레반 조직원 여럿이 의회 건물에 들어가 전투가 진행 중"이라고 글을 올렸다.
탈레반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아프간 정부에 따르면 2년 전인 2013년에 파키스탄 카라치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결국 탈레반이 오마르의 사망 사실을 시인했으며, 새 지도자로 2인자이던 아크타르 물라 만수르를 추대했다.
그러나 오마르의 아들인 야쿠브 오마르가 반발하면서 야쿠브 지지파와 만수르 지지파가 격렬한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한다.
2015년 9월 28일, 탈레반이 미군 침공 이후 14년만에 북부 주요 도시를 장악했다. 공격 개시 12시간만에 학교와 병원, 법원 등을 장악하고 교도소 내 탈레반 수감자들을 석방시키는 등 깽판을 치고 있다.
10월 1일, 아프간 정부가 쿤두즈를 탈환했다고 밝혔으나 탈레반은 부인하는 등, 아직까지도 혼전의 양상을 거듭하고 있다.

4.10. 2016년


2016년, 파키스탄 탈레반이 부활절을 맞아 어린이 공원에 몰려 축하하고 있던 기독교 신자들을 목표로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이 끔찍한 공격으로 최소 72명 사망에 300여명이 부상당했다. 희생자들 중에는 특히 여성어린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격을 주도한 세력은 파키스탄 탈레반에서 분리되어 나간 강경파 조직인 '자마툴 아흐랄'이 벌인 짓이라고 한다.
2016년 3월 28일에는 아프간 국회의사당에 탈레반이 로켓포 공격을 가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4년에 취임한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에 강경대응 천명 및 파키스탄도 강경대응에 동참할 것을 발표했다. # 2016년 5월 21일에 탈레반 지도자였던 만수르가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아프간전 개입 및 확대를 시작했다. #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만수르의 사망은 아프간에 평화를 찾아오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쿤두즈 장악에 이어, 2016년 9월 7일에 아프간 남부의 타린코트을 장악하려고 공세를 넓혀갔다. # 하지만 2016년 10월 4일에 아프간 정부는 "나토군의 도움을 받아 탈레반을 몰아내고 쿤두즈를 다시 탈환했다"고 밝혔다. #
2016년에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9월과 10월에 2차례 만났고, 10월 18일에 카타르에서 비밀리에 평화협상을 재개했다. # 하지만 탈레반측은 아프간 정부와 평화협상을 비공개 진행했다는 것을 10월 19일에 부인했다. #
2016년 11월 30일에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에 "국가 인프라를 보호하겠다"는 주장을 했으나 아프간 정부는 이를 의심했다. #

4.11. 2017년


2017년 4월 18일 파키스탄 탈레반의 대변인 에사눌라 에산이 파키스탄 정부군에 투항했다.#
2017년 파키스탄 탈레반 대원 3명이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농업 교육기관을 총격테러를 가해 학생 12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당했다. 탈레반 대원 3명은 출동한 파키스탄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모두 사살되었다.#

4.12. 2018년


2018년 2월 12일 파키스탄 탈레반의 2인자 칼리드 마수드가 미군의 무인기 공격에 사살되었다.#
2018년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 탈레반 수장에 대해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2018년 2월 21일 아프간 국방부는 "아프간 서부 파라주에 있던 탈레반 은신처를 공습하여 탈레반 사령관 2명을 포함한 32명의 반군을 사살했고, 17명을 부상입혔으며, 그들의 폭탄 수송 차량 2대를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2월 28일에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을 합법단체로 인정(!)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2018년 3월 4일 미국 국무부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의 새 평화협상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2018년 아프가니스탄 정보요원 4명이 동료 16명을 죽이고 탈레반 세력에 합류했다고 한다.기사
2018년 6월 15일, "파키스탄 탈레반의 수장 물라 파즈룰라가 미군의 드론 공격에 사살되었다"고 아프간 국방부가 발표했다.#[37]

4.13. 2019년


2019년 6월 24일에 "아프간의 탈레반은 아프간 언론들이 우리에 대한 정부의 반아프간 선동보도를 중단하지 않으면,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격을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탈레반을 캠프 데이빗으로 초청해서 평화 협상을 하려던 계획이 불발되었다. 탈레반이 미군 병사와 민간인들이 희생된 자살 폭탄 테러가 자신들의 행동이라고 주장했기 때문. 그런데다가 탈레반을 미국 영내로 데려오려는 데 반발한 의원들도 있었다.

4.14. 2020년


2020년 1월 27일, 전세계가 코로나19로 난리인 마당에 미국과의 전쟁을 자제하긴커녕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수송기를 격추시켜 탑승자가 전원 사망했다는 충격과 공포의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2020년 2월 29일, 1주일간의 휴전을 거쳐 미국과 탈레반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BBC 기사
다만 4월 포로 협상이 결렬되고 6월부터 다시 아프간군과 충돌을 빚는 중이다.
아프가니스탄의 10대 소녀가 부모를 살해한 탈레반 무장대원들 2명을 사살해 SNS에서 영웅으로 떠오르며 환영을 받았다.#
8월 22일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5. 현재


미-아프간 전쟁이 너무 길어진 통에 2010년부터 탈레반 거점을 뿌리 뽑기 위한 NATO군과 미군의 집중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CIA가 탈레반 잡겠다고 날린 미사일이 며칠마다 오폭을 하지 않나, 수복된 마을 주민들이 탈레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탈레반 깃발을 걸어두질 않나 등등 미친 상황만 벌어진다[38]
아프간인들은 애초에 부족 단위로 생활하기에, 부족이 탈레반에 친화적이면 적대시하지 않고 그 반대라면 힘든 식으로 생활해왔다. 때문에 탈레반을 적대시는커녕 좋게 보는 사람도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이들의 경우 오히려 미군이 탈레반과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더욱 피폐해졌다고 생각할 정도다. 이는 탈레반의 구성원인 파슈툰 부족들 사이에서 강하다.
게다가 미국은 장차 자신들이 아프간에서 발을 빼고 아프간은 아프간인들이 알아서 하라는 정책을 펴려고 하고 있는데, 이건 베트남 전쟁 때 시행했다가 통렬하게 실패한 바로 그 전략이다. 게다가 아프간 현 정부의 부정부패도 남베트남과 비슷한 수준이다. 군벌들의 이권 쟁탈로 미국의 지원비가 극소수 주머니로 들어가고,[39] 아프간 정부군이 월급이나 사기의 문제로 되려 적수인 탈레반보다 열악하게 살기 때문에 거꾸로 탈레반에 들어가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이 나오는 막장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당장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 되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이다.
한편 아프간인 상당수는 양귀비꽃 재배로 자금을 모으는데,[40] 이걸 막고자 제시한 방법인 재배는 워낙에 수익이 나지 않고[41] 정부군과 경찰의 엄청난 부정부패 속에 검문소마다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밀이나 농작물을 팔 수도 없으니, 아예 거기 안 가고 탈레반을 통하여 양귀비를 파는 게 훨씬 이득이 컸다.
재배도 쉬운 양귀비꽃에 비해 은 재배가 까다로워서 민중들에게 무시당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무작정 양귀비밭을 불태웠더니 탈레반 지지만 늘어나는 점도 미군과 중앙정부의 고민이다. 심지어 미군이 양귀비를 일단 구입한 뒤 전부 불태워 없애버리는 작전까지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마약 재배를 권장한다"는 비난을 당하고 이 작전을 그만뒀으며, 이후에도 마약 재배는 계속되고 있다. 물론 아프간 내 마약 중독자가 급증하면서 아프간인들도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것도 나름 먹고 사는 게 가능해야 해결될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도 현 중앙정부 지도자 카르자이의 형제들이나 친척들이나 반 탈레반 군벌들까지도 상당수가 아편 사업으로 돈 벌어들이면서, 탈레반 제거랍시고 미국 및 국제사회에 돈을 요구하는 이중적 모순 속에서 아편을 없앤다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이런 시궁창스러운 현실이 탈레반 돈주머니까지 채우고 있기에, 미국이 주도하는 탈레반의 돈줄 끊는 방법 또한 어렵다.
아시아 쪽에선 주로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남아시아 지역이나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남부 등 무슬림 지역에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42] 아예 파슈툰 부족들이 대다수라 무정부나 다름없는 통제불능 파키스탄 서쪽 국경에선 탈레반 세력이 정부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지역도 많아 아직도 파키스탄 정부군과 탈레반 간의 전투와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 중이다.
이 외로 일본 쪽에서 활동한 적이 있고 일본인 탈레반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미국과 일본이 협정을 맺어서 무차별적으로 단속해 2008년에는 대규모 검거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 때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튄 탈레반들이 붙어 있다시피한 이웃 대한민국에 잠입해 탈레반 세력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2010년에 결국 신분을 위장한 채로 대한민국에 입국해 3~40여명으로 구성된 탈레반 세력을 구축하던 것이 국정원에 의해 적발되어, 정보를 넘겨받은 경찰청에 의해 체포되었다.
물론 이쪽은 한국 특성상 무슬림이 적고 광신 무슬림은 더 적어서 남아시아에서 활동 중인 탈레반 세력 급의 규모는 아니고, 옴진리교식의 테러 조직을 만들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어쨋든 경찰청 수사국과 지방경찰청 외사수사대에 의해 전원 적발된 이들은 100% 경찰에 검거되어 구속된 뒤 추방당했다.
그 외에 2008년 탈레반이 한국에서 일본산 마약 재료를 수입하여 헤로인을 재조하려다가 걸려서 검거되기도 했다.
홍콩에서도 2002년 조직원 일부가 홍콩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어[43]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같은 거대 무슬림 벨트가 포함된 동남아시아에도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사실 동남아시아의 경우 이미 인도계 무슬림이 상당수인 싱가포르도 있고 대놓고 이슬람을 믿는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말레이시아나 남부 필리핀 등도 있어서 얼마든지 탈레반이나 ISIL 등이 급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실존했으며 덕분에 각국 경찰당국이 이들의 씨앗을 잘라버렸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44] 이때 오히려 탈레반을 잘했다며 칭찬하는 인간들도 있는데,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이들의 자업자득과 막장도도 크긴 컸다지만 그렇다고 납치와 살인을 밥 먹듯이 저지르며 국가를 상대로 협박을 일삼는 테러단체의 저 행위 자체를 칭찬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특히 지구상의 테러단체 중에도 탈레반이 원탑급으로 막장이란 걸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여하튼 미국이 탈레반을 상당수 뭉갤 기회를 이라크 전쟁이라든지 여러 가지로 빗나가면서 탈레반은 완벽하게 부활했고, 오죽하면 이라크 한 언론이 '탈레반은 이라크인들이 대신 죽어나가고 미군을 죽여가며 미국의 돈을 날리게 한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 우리 희생 덕분에 네놈들이 부활했다'라고 아주 차디차게 미국과 탈레반을 비아냥거리는 컬럼을 싣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막장짓에 대한 응보를 그나마 받은 것도 하필이면 데리고 있던 오사마 빈 라덴9.11 테러로 미국의 정면공격을 받을 짓을 했기 때문이다. 미군의 목표도 사실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박살내는 게 1차였고, 탈레반은 이들을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드로 박살.
한때 아프가니스탄의 거의 전역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미국의 공격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게다가 실제로 아프간인들도 탈레반의 미친 짓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기에, 미군을 반기지 않더라도 최소한 탈레반을 어떻게든 해주길 바라며 협력을 요청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 지역의 전쟁이란 게 원래 겨울이 되면 다들 무기 숨기고 적당히 집에 가서 민간인 노릇하다가 싸울 때가 오면 알아서 다시 모여 무기 들고 무자헤딘 노릇을 하는 스타일이었기에 완벽히 적과 아군을 구분 짓기도 힘들고 공격할 목표도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공격이 어려운 산악지대에 은거하고 있어서 미군의 공격으로도 뿌리 뽑지는 못했다. 한편 탈레반한테는 천만다행으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정말 '''뜬금없이''' 이라크 전쟁을 감행하면서 미군의 전력이 분산된 것도 탈레반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큰 이유다.
아울러 폭정으로 민심이 자신들에게 떠나버리고 미국 및 북부동맹에 참패하면서 정권을 상실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자신들의 통제 지역에서 이슬람 율법을 보다 부드럽게(?) 적용하는 편이라고 한다. 전쟁 전에는 부르카 안 쓰고 나오는 여성은 즉각 처형이었지만, 요즘은 그냥 경고 한 번 하고 넘어가준다던가... 하긴 전쟁 중에 저 막장짓 하면 조직의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론 이전보다는 덜해졌다는 것이지 아주 안하는 것은 아닌데, 일례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선거에 투표했던 사람들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적이 꽤 있다.
젊은이들의 연애 문제를 해결해주는 '''탈레반 연애센터'''를 설립해서 젊은이들의 사랑 고민을 '''무력으로 해결'''해준다고 한다. 어떤 연인은 여자 쪽 부모가 결혼을 반대했는데, 탈레반이 그 부모에게 찾아가서 협박을 해주는 바람에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그러나 이 탈레반도 2013년 ISIL이 좀 멀리 떨어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흥하면서 차츰 ISIL에 밀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ISIL은 파키스탄 탈레반에서 주요 간부 등 사람들을 빼가며 탈레반의 원한을 샀으며 이후 탈레반은 알 카에다와 손잡고 ISIL에 전면전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신흥단체로 석유 생산지를 낀 ISIL이 빵빵한 자금력과 이라크군에게서 노획한 미국제 무기 등을 앞세워 탈레반을 밀어붙였으며 현재 파키스탄 북부 등에선 이 둘이 서로 죽고 죽이는 쌈박질을 진행 중이다. 자연히 탈레반은 존재감도 사라지는 중이다.

5.1. 탈레반과 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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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탈레반 장악 혹은 활동지역'''
'''아프가니스탄 양귀비꽃 재배 현항'''
탈레반이 마약사업을 한다고 보통 알려져 있지만 그건 탈레반 붕괴 후의 일이고, '''원래 탈레반 집권시에는 마약업자의 손을 자르는 등 초강경책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약사업은 거의 근절되었다.''' 이때의 탈레반은 정말 순수한(?) 근본주의 꼴통이라서 마약을 금지했었다. 문제는 9.11 테러 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탈레반이 붕괴하면서 그나마 존재하던 행정력이 막장이 되자 농민들이 먹고 살기위해 너도나도 양귀비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북부동맹을 비롯한 군벌들.탈레반까지 마약산업에 뛰어들어 현재의 막장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심지어 CIA도 마약사업을 한다는 소문이 있으며, 관련 이야기가 미국 드라마에서도 등장할 정도이다.
탈레반이 마약을 금지하던 집권시와 달리 마약 사업에 뛰어든 것은 우선 자금 확보가 가장 중요한 이유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초기의 탈레반과 현재의 탈레반의 인적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초기 탈레반은 그야말로 근본주의에 물든 광신도들이었다면 현재의 탈레반은 사실상 아프간 군벌들의 연합체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에는 적대시했던 북부동맹 군벌들도 탈레반에 있을 정도이다. 이 군벌들중에는 탈레반 등장이전 부터 마약 사업을 해온 부류도 있고 띠리서 탈레반도 이들의 영향 아래 자연스럽게 마약 사업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남부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양귀비 재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은 정부의 영향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탈레반의 묵인 하에 수많은 농가가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다. 문제는 탈레반이 이 양귀비로 아편을 제조하여 전쟁자금을 충당한다는 것인데 이는 현재까지도 탈레반이 세계최강인 미군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주 이유이다. 영문기사
이 때문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군경과 합동으로 양귀비꽃 재배를 단속하며, 보상금을 주고 전량 폐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미 아편으로 돈을 만져본 주민들인 만큼 효과가 크지는 않다고 한다.단속 현장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재배량은 조금씩의 변동은 있을지라도 전체적으로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래프
문제는 이런 식으로 생산된 아편이 전쟁자금 충당을 넘어서 수많은 부수적인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것인데...

'''이미 자국민 수백만을 아편 중독자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의 종교는 마약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아편은 아프간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자료 정말 다른 의미의 테러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에서 미국만큼 마약이 사회로 전반적으로 퍼져 있으며, 또 이걸 구매할 만한 소득 수준은 있는 황금 마약 시장이 따로 없고, DEA를 비롯한 국내 수사 기관들은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 가며 온갖 인종 차별 혐의를 비롯한 공무 집행 잡음을 일으키면서까지도 국내의 사설 감옥에 사람들을 마구 때려 넣는 반면, 막상 CIA를 비롯한 대외 정부 부처는 오히려 저런 국제 마약상들이 군벌들과 결탁하여 신나게 장사할 여건을 만들어 주는 자승자박적인 멍청한 짓거리를 했다. 이 짓거리도 한 10년 넘게 한 결과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증발해버린 정부에 대한 신뢰, 갈수록 분열되어 가는 사회, 갈수록 더 심해지는 주 정부들과 공공기관들의 재정 결핍, 방향성 없는 대외 정책 같은 문제들이 상징하는 2010년대 현대 미국의 허울만 좋은 세계 패권 아래 있는 암울한 쇠퇴해가는 패권 국가의 사회상을 만들어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게다가 아프간의 경우에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나마 미군은 마약상들과 적대 관계에 있었지, 이 짓거리를 처음 하기 시작한 베트남전 당시 동남아 골든 트라이앵글이나 80년대 레이건 정권 당시 이란-콘트라 사건이 대표하는 중남미에서 내정 간섭할 때는 정직하게 CIA가 나서서 마약 군벌들에게 돈과 훈련 장소, 군수 물자 퍼주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수많은 양귀비꽃이 재배되고 있으며, 탈레반은 자신들의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자국민 및 자기들의 전쟁 상대인 미국 뿐 아니라 참전하지 않은 수많은 다른 나라에게까지 피해를 주고있는 실정이다.

6. 평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부족, 종파간의 연립과 갈등 관계가 종횡으로 얽혀 이들에 대한 태도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알 카에다오사마 빈 라덴과도 관련이 깊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지도자를 지닌 독립된 세력이다. 양측의 연관 관계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 항목 참조.
이슬람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인으로 9.11 테러 이후 이슬람에 관한 인식의 대표성을 알 카에다와 이들, 그리고 2013년부터 떠오른 신흥단체 ISIL에게 부여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하지만 사실은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차별받으며 울분이 싹튼 인도 무슬림들을 제외하면 주류 이슬람권과 아랍권에서도 타도해야 마땅할 적, 사이코 이단 테러리스트 단체로 여기는 일이 잦다.
애초에 탈레반이라는 단체는 아랍인과는 인종적 관련이 없다. 아랍인이 아닌 아리아계 백인종, 정확히는 인도-이란계인 파슈툰족 주도의 극단주의 조직이며, 이는 북아프리카 하우사족이 만든 나이지리아보코 하람도 마찬가지이다. 혹시나 파슈툰족이 아랍인인 줄 알고 착각해 아랍인에게 탈레반 드립 치는 사람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랍인들 중에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탈레반과 사고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으나, 아랍인과 파슈툰족은 민족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유념하자. 파슈툰족은 오히려 인도인 중에서 북인도인과 더 혈통적으로 가깝다. 인도에서도 카슈미르 지역에 파슈툰인들이 살 정도이다.
그러니까 파슈툰인은 인도 계통으로 아랍계와는 무관하다. 아예 인종이 다른 몽골계 유목민족인 투르크와는 100% 다르다. 어차피 남아시아중앙아시아는 서로 피가 섞이긴 했지만 엄연히 근간이 되는 인종들은 서로를 다르게 본다.
일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를 이념으로 내밀고 있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되는 헤로인을 잡고 있는 마약 카르텔에 더 가깝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슬람의 주류인 와하브파를 따르는 것을 보면 범죄단체, 즉 조직폭력배의 성격과 극단주의 교단의 성격을 같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ISIL의 전신이던 유일신과 성전도 마찬가지로 유일신과 성전 역시 요르단인 폭력전과자 알 자르카위가 사우디아라비아 조폭들과 이라크 북부 토착 조폭들을 이슬람의 이름으로 긁어모아 만든 일개 갱스터에 불과했다. 알 자르카위의 고국인 요르단 경찰조차 이들을 단순 조폭으로 보았다.
한국 대학생이 이란 테헤란 대학생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한국 학생들이 한 "탈레반을 뭐라고 생각해요?" 라는 질문에 다들 "비행기로 들이박고 애꿎은 민간인을 죽이는 쓰레기들이죠.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영웅이라고 할 지 알았어요? 우리도 미국이 죽어라 싫지만 정 그러자면 어디 백악관이나 들이박던지 할 것이지[45] 세계무역센터부시가 있답니까? 하여튼 그런 놈들 때문에 이슬람이 탈레반으로 몰리는 것 같더군요"라면서 심한 불쾌감을 표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란인의 비판 같은 경우는 시아파로써 수니파인 탈레반을 교리적 이유로 타 종교인들보다 더 증오한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물론 그래도 이슬람 내에서조차 탈레반이 손절 대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탈레반에 대하여 이슬람권 주류에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교리 해석 때문에 그렇다기 보다는[46] 아랍인들이 역사적으로 파슈툰족을 한 수 아래로 보는 인종주의적인 이유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 파슈툰인은 물론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출신 무슬림들은 대부분 현대에도 중동 아라비아 반도의 석유 졸부 국가들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곤 하기 때문에 아랍인들의 무시는 현재진행형이다.
아랍인 말고도 투르크계 또한 이들과 무척 사이가 나쁜데, 아프가니스탄에서 튀르크계 군벌도 탈레반과 원수지간이며 터키가 튀르크계 군벌을 지지하면서 더더욱 탈레반과 사이가 나쁘다. 애초 투르크는 시베리아 남부와 중국 대륙 북서부 알타이에서 기원한 몽골계 기마민족에서 출발했으므로 인종부터 원래 다르며 유목민족답게 모든 종교에 관대한 성향을 갖고 있었던지라 이슬람 원리주의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터키만 해도 에르도안 이후 종교화된다고는 하지만 탈레반이나 ISIL같은 미친 극단주의는 알아서 손절당하고 ISIL은 자꾸 때려잡으며 여기 동조하는 터키인도 없고, 되려 시아파가 기본에 불교/힌두교/조로아스터교와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섞인 알레비파가 상당수일 정도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구소련권에 속하는 투르크 원본 국가들은 아예 히잡 같은 거 안 쓰고 라마단도 대충대충 지키며 보드카 등 술도 많이 마실 정도다. 이 사람들은 돼지고기만 안 먹는다.
탈레반의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은 사우디파키스탄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란은 탈레반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과 비슷하지만, 종파가 달라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단 취급하는 데다, 비록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이지만 일단은 테러리즘 자체는 반대하는 이란과는 탈레반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테러리스트 반란군이기 때문에 결국 서로가 적이다. 이란은 탈레반이 집권하던 내내 탈레반 치하 아프가니스탄과 적대 관계였으며, 다른 적국인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두들겨 패는 것도 묵인했고, 튀르크계 북부동맹은 오히려 도와주었다. 사실 이란 지도부가 아무리 근본주의 성향의 반미주의라 해도 저런 '''정신나간 미치광이'''들을 받아줄 리가 없다.
참고로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을 제일 때려잡고 싶어하던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이란과 리비아였다. 이란은 아예 빈 라덴을 공개처형해 버릴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빈 라덴과 알 카에다 그리고 탈레반을 극혐했다. 현재도 ISIL 토벌에서 가장 많은 지분은 이란군에 있었다.
우습게도 하단에 기술될 탈레반의 비정상적인 정체(正體)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對) 중동 정책을 반대하는 입장, 혹은 극단적 반미를 표방하는 세력으로부터 '''영웅시''' 되는 견해가 있었고 꾸준히 있어온다. 그러나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10년이 넘는 장기전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아랍권의 현실과 이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조금이나마 세계적으로 고양되어, 비(非) 아랍권에서 이런 인식은 다행히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에 있다.
한국에서도 이들을 독립투사들과 비교하는 꽤 많이 보이는데, 이들을 독립운동가에 빗대는 건 손병희, 김구, 윤봉길, 신채호, 김좌진, 홍범도, 여운형 같은 일제강점기 때 활동했던 '''한국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최악의 모독'''[47]일 뿐이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에 활동했던 무자헤딘은 독립운동가, 아프간판 독립군이라 해도 합당하다.[48][49] 하지만 이들은 소련이 이미 물러간 뒤에 결성되었다.[50]
또한 독립운동가는 압제, 억압하는 국가, 세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뜻하지, 이들처럼 아무런 상관 없는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극단적인 원리주의로 국민들을 핍박하고 살해하는 놈들을 뜻한 게 아니다. 애초 한국독립운동이 세계적인 지지를 받아 장제스의 강력한 요구로 카이로 선언이 있게까지 된 이유가, 일본인 민간인들을 전혀 해치지 않고 철저하게 일본 제국의 수뇌부와 일본군만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일본 군부나 정치 수뇌부 등 미쳐돌아가는 군국주의자들만 표적으로 삼고 일본 민간인들의 피해는 전혀 없었기에 세계적으로 테러리스트가 아닌 엄연한 무장 독립투쟁으로 각인될 수 있었다. 무고한 미국 민간인을 쳐죽이자며 선동하는 이런 돌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6.1. 비판


이들의 극단적인 해석은 현대 사회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데 무슬림들 스스로도 동의한다. 또한 탈레반 치하의 여성 인권 문제도 심각하다. 이슬람 여성의 저서 <My Forbidden Face>에 의하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정복한 이후로 이슬람 율법[51]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당한 뒤 살해당하고 그 시체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리고 몰래 학교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나이에 상관 없이 역시나 강간하고 살해했다.[52][53] 또 특정 여성들을 강제 할례[54]시켰다. 이 글에서는 단순히 표현했지만 그 저서 내용을 읽어보면 더 잔인하고 잔악하며 극악무도한, '''도저히 위키에 소개할 수가 없는 방법으로 살해당한 여성들이 수도 없이 많다.''' 아프가니스탄계 작가가 쓴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어보면 삶이 제한 투성이이다.
남성 의사가 여성 환자를 치료할 수 없게 해버렸기 때문에, 아픈 여자는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런 경우를 생각해서 몇 가지 제한 조건을 둬서 치료를 허용하게 함으로써 최악의 사태를 피하곤 하지만, 애시당초 그런 생각을 할 머리가 있었으면 탈레반이 쫓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외에도 이들은 교리에 없는 것은 그냥 임의로 해석해서 더 시대와 동떨어진 개념을 만들어낸다. 미군의 무인 감시 카메라의 영상은 탈레반 '전사' 들이 '''수간 행위'''를 저지르는 장면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으며, 자카트[55]를 20~30%로 강요하였다. 이러한 '''범죄 행위'''는 이슬람 율법에 없으니까 오히려 더 막장을 만들어내는 것.
별칭은 '''탈뇌반'''이다.

6.2. 옹호(?)


'''그런 거 없다.'''
아프간전 이후 탈레반이 했던 만큼 통제가 안된다고 미국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도널드 럼스펠드 등을 위시한 병크로 인해 미군은 작전 지역에 치안이나 민생 업무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대가로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그 이후 이라크에서까지 치안불안 무법지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로인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고착 상태로 접어든 이후 국내 언론사에서는 미군정을 비난하고 탈레반 정권 시기의 안정적인 통치를 옹호하는 뉴스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군의 한심한 전후처리 역시 욕 먹어야 마땅한 건 사실이나, 억압과 폭력을 통하여 수치상으로만 안정화되어 있는 범죄율이나 사회 안정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또한 탈레반 정권 시기 겉으로 안정적으로 보이는 사회 내부에서는 이들에 의해 위에 나열된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 같은 삶 그 자체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직도 이들을 사악한 서구 제국주의에 맞써 아프간 민족의 전통을 지키려는 좀 폭력적이지만 아름다운 독립군(...) 식으로 미화하는 국내 언론인이나 정치가 그리고 사회운동가 등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미 위에서도 나왔듯이, 이들은 전통이고 뭐고 없는 극악스런 악당일 뿐이다. 특히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고 강간하거나, 그저 자신들과 싸우는 국가의 주민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이들을 끔찍하게 살해한다는 점에서 이미 인간이길 포기했다.
그러나 아직도 잘못된 정보를 취하거나 반미주의에 심취한 사람들에 한해서 은근슬쩍 탈레반의 치부를 가리는 주장은 적지만 계속되고 있는데, 탈레반이 벌이는 만행과 비행이 미군의 심리전이니 가려서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오폭이나 해대면서 아프간에서 미움 받고 있는 미군이나 탈레반이나 도찐개찐이다'''' 식의 양비론을 몰고 가면서 반미여론에 편승해 은근히 탈레반을 사악한 미군보다는 낫지~ 식으로 필요악 정도로 내세우는 주장이 요즘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이들이 이용하는 자료는 미군이 애용하는 드론 공격의 사망자 대부분(90%)은 무고한 아프간 국민이라는 사실. 일부에서 이를 과장이라고 분석도 있으나, 과장이 있었을지언정 탈레반을 공격하면서 무고한 드론 피해자가 상당히 많이 생기는 것은 이미 전직 드론 파일럿들의 증언으로 상당히 드러난 상태이다. 이는 고스란히 아프간 국민의 반미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다.[56] 이런 아프간인들의 반미감정 때문에 미군의 막강한 전력에도 전과를 내지 못했으며, 아무리 탈레반이 악당들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프간인들이 미군에 지지를 보내지는 않고 있다.
물론 미군이 포기하다시피 한 상태라도 미군 침공 이전이나 지금이나 아프간의 극단주의 막장 상황은 다를 바 없는 것을 보면, '''탈레반은 미군 침공과는 관계없이 설립 당시나 지금이나 시대착오적인 막장 광신도 집단이 맞다.''' 다만 미국이 정말로 아프간 국민들을 이들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했다면 좀 더 조심스러운 작전을 펼쳤어야 했는데도, 미군이 그렇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일단 이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미군의 오폭이 계속되는 건 맞으며, 뚜렷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전란에만 휩싸이게 하는 데다 막장 병사들이 사고 치고 돌아다니는 판이니 아프간 주민들 측에서도 반미감정이 굉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미군은 단체로 맛이 간 집단은 아니다. 당장 탈레반이 민심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덜해보이는 것이지 집권 당시 그들의 끔찍한 행태를 떠올려보자.
이와 관련해 "탈레반의 성장세를 단순히 총칼의 위협에 의해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미국이 배포하는 선전으로 판단하는 관점일 뿐이다."라는 식의 탈레반 옹호론도 존재한다. 즉 아프가니스탄 주민들 중 자발적으로 탈레반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탈레반이 아무리 흉악하다 한들, 그들은 민심을 얻기 위한 절대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슬람'''이다. 이 아프가니스탄 지방은 산지 지방 특유의 보수성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이슬람에 대한 지지도도 다른 이슬람교도 다수 국가들보다 매우 높다. 기독교의 정교일치 신정정치나 다름없는 샤리아 법에 대한 지지율이 그 어느 이슬람교도 다수 국가들보다 높은 99%가 나오는 곳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레반이 저렇게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모두 탈레반을 지지한다"는 주장도 타당한 주장은 아니다. 더욱이 이것을 미국의 선전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모든 원흉은 미국"이라는 반미적인 관점일 뿐이다. 위에 서술했듯,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라고 무조건 탈레반에 환장하고 지지하는 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항목도 그렇고 이 항목에서도 "원래 여기는 탈레반 지지도가 높았다"라는 주장이 나오는데, 사실 이는 위에서 나온 "탈레반이 반미 영웅이다"라고 조작질하는 입장과 차이가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여러 종족과 복잡한 역사 속에 각 부족 갈등도 크기 때문에, 탈레반의 기반인 파슈툰 족에 대한 적대적인 부족 역시 기본적으로 다수 존재한다. 더욱이 탈레반이 수도인 카불을 장악하고 지배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는 탈레반이 다시 자신들이 사는 도시를 점령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전쟁이 길어지고 탈레반이 저지르는 테러가 싫지만, 갈수록 위축되는 미국의 영향력을 보자면 아프간 사람들은 누굴 따르는 게 나을까? 이들이 갈 곳이 있단 말인가? 상당수 지역에서 부활하는 탈레반을 겉으로라도 지지해야 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7. 전망


결과적으로 탈레반은 15년간에 걸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미 2015년 9월 정부군의 요충지 쿤두즈 시를 일시적으로 점령했다가 철수한 바 있으며, 12월에는 헬만드 주를 점령, 2015년에만 아프가니스탄의 30%를 점령했다고 한다. 미국은 2016년 완전 철수하기로 했으나, 쿤두즈 전투 이후 2017년 이후로 철수를 미루었다. 사실상의 괴뢰정부인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미군이 철수하면 바로 붕괴하고 사이공 1975가 재연될 것임을 우려한 것이다. 2017년은 바로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서는 해이며, 이는 오바마가 자신의 재임 과오로 기억될 수 있는 탈레반 재집권을 다음 정권으로 떠넘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간에 탈레반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하고, 2017년이나 2018년에 재집권하리라는 것이 서방 각국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ISIL과는 달리 탈레반은 확장주의적인 성향은 없기 때문에, 9.11처럼 서방의 어그로를 끌지 않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서만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를 펼치며 조용히 지낼 것으로 보인다. 대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는 지옥이 열리겠지만.
2017년에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탈레반과의 전쟁을 선포함에 따라, 2017년에 재집권한다는 전망은 빗나가고 말았다. 트럼프 정부는 미군을 아프간에 추가로 파병하며 탈레반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에 들어갔다. 특히 트럼프 정부 때부터 미군은 아프간에 버락 오바마 정부 때보다 3배나 많은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2018년 미군의 중부군 사령관 조지프 보텔 중장은 "탈레반과 공격적으로 전쟁을 치룰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근 ISIL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라크나 시리아 대신 아프가니스탄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영향력을 확장 중에 있다. 이에 따라 탈레반의 영역에 대한 침범도 서슴지 않고 있나본지, IS의 1주년 축하 서신에 서방 세력을 물리치는 데 무슬림이 분열돼선 안 된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단일된 지도력'을 언급, 묘한 뉘앙스로 IS를 견제하거나, 오사마 빈 라덴 등 지하드 지도자와 유력 성직자들이 아프간 탈레반 지도부를 인정했다"며 종교적 정통성을 부각하고, 자신들이 구소련의 침략부터 수십년간 변함없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면서 '신생조직' IS를 공격하기도 하며,[57] "이슬람 안에서 우리의 형제인 당신들(IS)의 선의를 바란다"면서도 "당신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마찬가지로 우리 일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선을 분명히 그었고, 당신들과 관계맺은 자가 이슬람 에미리트(탈레반)에서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면 무슬림은 모두 불행해질 것"이라면서 IS의 '조직원 빼내기'를 간접적으로 경고하는 문장을 집어넣기도 했다.아프간 탈레반, IS에 '뼈있는' 1주년 축하 편지
하지만 IS에게는 통하지 않았고 결국 지난달 25일엔 아프간 서부 파라 주에서 탈레반과 IS 추종세력이 충돌해 양측에서 최소 25명이 숨지는 등 두 조직의 세력 다툼이 유혈 충돌로 번지고 있는 등, 미군이 아직 완전히 철수하지도 않았는데도 미리 미묘한 기싸움을 시작하여 미군이 철수한다고 아프간 전토가 쉽사리 탈레반의 손에 들어오지 않을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7.1. 이들의 근황


2016년에 들어 빠르게 탈레반 세력의 현대화가 이뤄지는 바람에 중국제/노획한 미국제 군장과 노획한 야간투시경을 사용하는 탈레반 병력이 아프간 정규군을 상대한다고 한다. 때문에 무장을 잘 갖춘 자칭 특수부대 '레드 그룹'의 경우 장비와 전술이 굉장히 택티컬 하다.#, #, # 왠만한 개발도상국 군대보다도 야시장비나 방탄복등의 장비를 더 잘 갖추고 있을 정도.[58]
2019년에 화웨이가 2000년부터 탈레반에게 통신기술을 지원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탈레반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파키스탄에 이어서 탈레반을 지원하는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 후진타오장쩌민 시절에는 탈레반과는 선을 긋고 은근 슬쩍 미국의 탈레반 견제를 방해했지만, 시진핑은 자기가 추진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위해서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점령지를 지나가야 하니까 일대일로 정책을 위해 아예 탈레반과 시진핑이 어느정도 손을 잡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8. 같이보기


[1] د طالبانو اسلامي غورځنگ[2] مدرسة, 이슬람 신학교.[3] 원래 마드라사는 아랍어로 학교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오늘날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학교로 의미가 변질되었다. 오죽하면 '''지하디스트 양성소'''라고 불릴 지경. 마드라싸의 학비는 이슬람 기금으로 지원되며, 후술할 말랄라 유사프자이 같은 인물이 서구의 스파이라는 식의 썰 같은 것을 뿌리는 원흉이다.[4]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 상태는 1979년 12월 소련아프가니스탄 침공부터 시작되었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폐허가 된 것은 1988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후 자기들끼리 내전을 벌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5] 아프가니스탄에 지하 자원이 풍부하긴 하지만 개발이 무척 어렵다.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크고 작은 산들을 파헤쳐야 한다. 그래도 원래는 농업도 그럭저럭 되는 땅이고,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중앙아시아인도양을 오가는 길을 빌려주고 통행료만 받아먹어도 그럭저럭 살 수는 있는 곳이다. 하지만 모든 산업을 망쳐놓는 것도 부족해서 산업 발전의 원동력인 인적 자원 개발마저 크게 저해시키고, 가만히 앉아서 벌 수 있는 돈인 통행료조차 못 벌게 하고, 정부군과의 전쟁으로 쓸 데 없이 국방비, 치안유지비 지출을 폭증시켜 아프가니스탄 경제를 뿌리부터 흔들어대고 있다.[6] 이러한 과정은 이슬람 국가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7]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근본주의 신학은 사이드 쿠틉이슬람주의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으므로, 탈레반 또한 사이드 쿠틉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8] 로힝야족 박멸을 주장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미얀마 공산 독재자들과 비슷하다 하겠다.[9] 북동부는 비파슈툰계 반탈레반 군벌들이 모여 만들어진 북부동맹이 통치하며 탈레반에 저항하고 있었다.[10] "너희들이 해석하는 쿠란은 일반적 쿠란 해석과 다르다. 원래 쿠란에도 없는 행위를 만들어서 정당화하는데, 이건 범죄자들이 쿠란을 조작하는 거랑 차이가 뭐냐?"[11] 사실은 통역사가 꽤 순화하면서 통역한 탓에 그나마 나가라고 한 것이다. 통역사가 나중에 정 기자에게 "당신, 나까지 죽이려고 작정했어요? 당신이 하던 말 그대로 통역했다면 우리 둘 다 곱게 못 죽었다고요!"라고 했을 정도.[12] 차가타이 칸국을 이루었던 튀르크계 민족.[13] 이란계 민족.[14] 아프간을 점령한 몽골군의 구성원인 타타르인 후손. 시아파라서 탈레반에게 학살과 탄압을 겪기도 했다.[15] 현재 파키스탄은 민주주의 국가이다.[16]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그 유명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자신의 저서에서 직접 증언한 내용이다(...).[17] 특히 파키스탄카슈미르 문제로 인도와 대립하고 있으며, 카슈미르에 많은 병력을 투입한데다 독립을 요구하는 발루치족 무장단체들을 토벌하고 있다.[18] 정확히는 "우상 파괴는 축복이 따르는 행위이지만, 우상 파괴를 통해 비무슬림들을 흥분하게 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다. 또한 이집트피라미드나 여성의 나체를 조각한 조형물들의 같은 경우에도 역시, 꾸란에 언급된 과거의 역사에 대한 증거자료라는 이유로 무함마드의 교우들이 주가 되었던 이집트 정복군조차 이집트 유적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19] 가즈니 왕국은 인도를 정복한 첫 이슬람 국가로, 이 때부터 힌두교이슬람교의 대립이 시작되었다.[20] 사실 이란은 시아파가 주류라 수니파도 이단 취급하기는 한다만 사이비종교 급으로는 아니다. 오히려 수니파에 차별받는 게 시아파라, 미러링에 가깝다. 그러나 탈레반이나 훗날 등장하는 ISIL은 대놓고 이란 신정체계도 부정하는 관계로 체제유지를 위해 사이비로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한 예로 오사마 빈 라덴이 죽기 전 사실 미국보단 이란과 리비아가 그를 더 잡고 싶어했다. 이란은 아예 빈 라덴을 공개처형할려고까지 했을 정도였다.[21]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안드릭 테이무리안이 아르메니아인이다. ~안으로 끝나는 성씨가 아르메니아어 성씨로 러시아어의 ~프/ ~바, 폴란드어의 ~스키/~스카에 해당한다.[22] 수니파 근본주의 이슬람은 영화에 적대적이라 사우디아라비아2019년 이전까지 극장이 없었다. 그래서 영화 보고싶은 사람은 이웃나라 바레인에 가서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오곤 했다.[23] 이는 사우디카타르에 만연한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인 와하비즘 교리의 일부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그래서 바레인에 가서 몰래 극장 다녀오는 사우디인이 그렇게 많았다.[24] 1984의 사회도 분위기가 억압적이라 그렇지, 문화 예술을 금지하는 미친짓은 안했다. '''현실이 소설을 뛰어 넘은 것이다.'''[25] 참고로 정권 수장이었던 나지불라 본인도 탈레반을 과소평가하고 유엔 구역으로 피신해 있다가 탈레반에 붙잡혀 잔인하게 공개처형당했다.[26] 정의길 저, <이슬람 전사의 탄생>, 259p.[27]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묘사에 따르면, 운이 정말 좋으면 "왜 남자 없이 다니느냐"고 점잖게 꾸짖는 정도고, 일상적인 것이 걷어차이고 욕설을 듣는 것이었다고.[28] 정의길, <이슬람 전사의 탄생>.[29] 물론 키르기즈나 하자라, 우즈벡, 투르크멘 등 투르크계 차별은 여전했다. 그래서 결국 이들 투르크 종족들이 일심단결해서 북부동맹을 구성하고 페르시아인 혈통의 타지크인들을 끌여들였다. 타지크인들 역시 파슈툰인에 차별받는 처지였다.[30] 정의길 저, <이슬람 전사의 탄생>, 259p.[31] 아니, 오히려 오스만 제국 전성기에는 그리스인들이 꽤나 우대받았다. 그리스인들은 2등 신민으로 인정받아 식민지 총독 및 고위대신으로 임명되면서 비무슬림/ 비투르크인 중에서 가장 대접이 좋았다. 이슬람을 믿던 아랍인들조차도 비투르크인이라 3등 신민으로 취급되어 그리스인들보다 밑이었다. 오스만은 심지어 정교회 최고 수장도 그리스인들에게 맡겼고, 동방 정교회라는 이름도 그리스 정교로 묶어버렸으니 불가리아세르비아 같은 다른 정교회 나라들은 반발했지만 그리스야 좋아라 했고, 이후 독립 후에 서로 발칸 전쟁 및 여러 갈등도 벌어졌지만 이건 이전부터 서로 사이가 나쁜 점도 작용한 것이었다. 여하튼 오스만의 힘이 약해지면서 19세기 그리스 독립이 이뤄질 당시 상당수 그리스인들도 그리스 독립에 거부반응을 보였는데, 라틴인들의 동로마 제국도 "그리스인들이 주축을 이루던 기나긴 역사를 오스만 안에서도 못할 게 없을 텐데 섣불리 독립이라니?" 이랬을 정도이다. 이처럼 확실히 관대한 편이었지만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오스만 제국에 튀르크 민족주의가 판치면서 아르메니아 학살을 비롯하여 아시리아인, 아랍 무슬림 학살이 벌어졌다. 더구나 그리스인-오스만리(서부 투르크인)은 이미 섞일 만큼 피가 섞인지라 유전자가 똑같아져서 생김새도 먹는 음식도 의상도 똑같아져 구분이 안 됐다. 그래서 투르크인임에도 기독교도면 그리스인, 그리스계 부계 혈통을 지녔음에도 이슬람이면 투르크인(...)으로 나뉘어 일방적으로 그리스-터키 인구교환이 이루어졌으며 대게 기독교도 투르크인이 '''그리스인'''으로 분류되어 생판 처음 보는 땅으로 강제이주해야 했다.[32] 그녀의 아버지가 진보적이고 개념적인 교육자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과거엔 이슬람 근본주의자였는데 나중에 온건 무슬림으로 전향한 인물) 남녀공학 고등학교 교장이었는데, 사비로 학교를 열고 여자들에게도 아무런 제한 없이 교육을 하고자 한 교육자이다. 말랄라가 태어날 때도 아들들과 똑같이 족보에 이름을 올렸다. (파키스탄 여러 주에서는 딸이 태어나면 족보에 안 올리는 게 허다한 걸 생각하면 아들딸 구별 없이 대한 거다) 탈레반에게 말랄라가 총에 맞을 때도 울면서도 "자랑스러운 내 딸, 용감하구나"라며 격려하고 찬양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탈레반에게 아버지도 살인 협박을 받았을 정도이다.[33] 결국 이들도 탈레반 테러를 걱정해 영국으로 같이 이민 갔다.[34] 숙부 한 사람은 "말랄라가 받은 노벨평화상을 자랑해야 하는데, 탈레반이라는 쓰레기는 자랑거리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알라의 이름을 왜곡하여 총 들이대고 어린아이를 쏘는 거나 자랑하며 횡포 부린다"며 인터뷰했는데, 얼마 뒤 '''집 앞에 칼로 "죽고 싶냐?"는 글귀가 섬뜩하게 새겨졌다고''' 한다. 이 숙부도 다른 식구와 같이 이민 가야 했다고.[35] 사살된 6명의 테러리스트는 '''특별한 요구도 주장도 하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을 인질로 잡으려는 시도도 없었다고 한다.'''[36] 수니파에서 시아파를 공격하는 이유는 수니파만이 진리라고 보는 극단주의자들인 탈레반의 입장에선 시아파는 모조리 도륙하고 박멸해야 할 이단들이기 때문이다. ISIL이 이라크에서 시아파 모스크를 폭파하고 다니는 것과 같은 이유다.[37] 이로써 파키스탄 탈레반 지도부는 절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잔존 세력들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38] 결국 아프간 정부에 의해 점령 뒤 며칠 후에야 원래대로 깃발을 고쳤다.[39] 아프간에 쏟아부은 자금이 아프간인 수백만명을 먹여살리고도 남는 수준이지만 그 돈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40]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침공하기 이전에는 아편 재배를 철저히 단속하여 사실상 아프간 내의 마약 생산을 파괴 직전까지 몰아갔다.[41] 양귀비꽃 재배로 버는 돈의 1/5도 안 된다고 한다. 국제 곡물 가격 상승에도 결국은 중간업자들, 해외 선진국들 일부만 이득을 차지했기에...[42] 다만 이쪽은 탈레반보단 알 카에다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게 정확하며 그 규모도 상대적으로는 작다.[43] 뜬금없이 왜 홍콩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홍콩도 싱가포르보단 덜하지만 홍콩에 거주하는 인도계 홍콩인은 무려 19세기 영국 해군을 따라 들어왔고 이들 중 무슬림 세포이들이 많았으며 육체노동자로 노동비자로 들어온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도 장난 아니게 많다. 주로 홍콩 섬보다는 구룡반도에 많이 보이며 구룡반도 중심지인 침사추이에는 재 홍콩 남아시아 무슬림이나 인도계 홍콩인들을 위한 커다란 모스크도 있을 정도다. 그 외에 홍콩 전 지역에 걸쳐 아파트 등에 입주한 자질구레한 마스지드도 많은데 그만큼 홍콩 내 남아시아인이 많다는 얘기다. 홍콩에 사는 파키스탄인들은 주로 트럭 운전이나 배달대행 등을 맡아서 트럭에 대문짝만하게 이슬람 신앙고백문인 샤하다가 적힌 타크피르를 붙이거나 이슬람 염주를 붙인 차량도 많다.[44] 덤으로 일본인 1명까지 살해한 적이 있다.[45] 그런데 탈레반과 함께했던 알 카에다는 9.11 테러 당시 실제로 공격 목표 중 백악관을 넣었던 것으로 추정된다![46] 사실 애초에 와하브파를 비롯한 아랍권 극단주의는 탈레반과 도찐개찐이다. 그 아랍인들이 더 무시무시한 ISIL을 만들었다.[47] 애초에 근본 자체가 다르다. 탈레반은 그냥 사람 죽이고 싶어 안달난 테러 단체이고, 독립운동가는 독립이라는 목적 아래 죽일 사람만 죽이는 것이다.[48] 참고로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했던 무자헤딘도 물론 집단들에 따라 성격이 달랐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 압둘 하크 등 온건한 지도층이 이끄는 조직도 있었고, 굴부딘 헤크마티야르와 같이 과격 이슬람주의를 내건 집단들도 있었다. 결국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소련의 후원을 받던 친소 독재정권이 붕괴되자 서로 성향이 다른 무자헤딘 파벌들끼리 내전, 분열을 일으켜 탈레반이 등장하여 정권을 장악하는 데 있어 이들도 실책이 존재한다.[49] 이는 대한민국 독립군 역사상 최악의 병크인 자유시 참변 이후 독립군이 일시적으로 와해되는 것과도 비슷하다.[50] 소련은 1989년 아프간 철군 이후 탈레반이 결성되기 이전인 1991년 12월 해체되었다.[51] 그들이 주장하는 그들만의 해석을 포함한 것.[52] 참고로 지하드를 통해 얻은 불신자 및 이교도 성노예들을 제외하고 무슬림 남성이 무슬림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그 여성이 어떤 신분, 어떤 상황이건 간에 샤리아 율법상 무조건 범죄다.[53] 이런 막장짓을 저지르는 대다수 탈레반들의 논리는 이렇다. 탈레반이 강요하는 극단적 해석을 따르지 않는 무슬림들은 무슬림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불신자이고 강간하고 죽여도 된다. 마찬가지로 여자는 서구식 교육을 받지 말라는 7세기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여성 무슬림들 또한 무슬림이 아닌 불신자다. 따라서 죽이고 강간해도 된다.[54] 참고로 할례 방법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방법이 동원되었다고 한다.[55] 무슬림의 5대 의무중 하나로 자선을 위해 자신의 1년 수입중 최소 1/40을 내는 개념이다. 물론 각자 형편에 따라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경우 안내도 되고, 자카트를 내는 대상에게 직접 주어도 무방하다. 단 자카트를 받는 사람이 부끄럽지 않게 주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때문에 이슬람권 여행중에 갑자기 대박을 맞는 여행자들도 드물게 있다(...). 여튼 20~30%은 원래의 자카트 비율보다 훨씬 높으며 자카트의 규정에도 어긋난다.[56]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사. 전직 드론 조종사들의 증언. #[57] 웃긴 건 위에서 언급되었듯 지들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에 결성된 조직이라는 점이다. 물론 창시자인 물라 오마르처럼 소련과 제대로 싸우던 이들도 많았지만, 굴부딘 헤크마티아르처럼 소극적으로 싸운이도 있다. 거기다가 헤크마티아르 이 인간은 진짜 심각한 게, 이후 탈레반 편에 붙어 아프간 정국의 패권다툼에는 열심이었다. 수도 카불에서 1만명을 학살할 정도로. 그리고 그 반소 게릴라 활동을 하던 소위 '1세대' 탈레반들은 이미 미군 침공 이전에 북부동맹과의 내전에서 사망하거나, 2001년 미군 침공 당시 및 이후에 미군에 의해 차례로 제거당했다고 한다. 특히 2010년 넵튠 스피어 작전으로 인해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및 그의 안전가옥에 있던 정보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프레데터의 헬파이어로 요단강 편도 티켓을 탔다고. 지금 남아있는 이들은 사실상 2, 3세대로 '반미'와 '이슬람 만세' 밖에 모르는 꼴통들이다.[58] 사실, 전세계 테러단체의 현대화는 2015년 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다. 이들도 전투를 경험하면서 좋은 장비와 현대적인 훈련을 받아야지 제대로 싸울 수 있다는 경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알 누스라 전선의 조직원들을 보면 이 테러단체의 조직원들도 매우 택티컬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