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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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3. 문화 교류
4. 관련 문서


1. 개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의 관계. 아프가니스탄의 최다 민족인 파슈툰인은 파키스탄 북서부의 카이베르파크툰크와의 주 거주 민족이기도 하다.

2. 역사적 관계


영국령 인도 제국 시절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처참히 실패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바라크자이 왕조는 독립을 유지하고 파슈툰족 거주지는 영국이 그어놓은 듀랜드 라인에 의해 양분되었다. 사실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처럼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에서의 지역분쟁은 곧 민족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은 1893년에 영국이 멋대로 설정한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데, 골 때리는 건 이 경계선이라는 게 애초부터 아프간의 주류민족인 파슈툰(Pashtun)을 분할시켜 그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데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간의 3분의 1 가량의 영토랑 절반 이상의 파슈툰족 인구가 파키스탄에 편입되어버렸다.''' 즉 탈레반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북부지방의 주민들인 파슈툰인들은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파슈툰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대뜸 외세에 의해 파키스탄 사람이 되버렸으니 펀자브인들로 이루어진 파키스탄 중앙정부를 좋아할리도 없고 그들의 압제를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파슈툰족이 주류인 테러단체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양국 관계가 갈등이 심해진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탈레반'''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진보파 입장에서는 '''파키스탄 군사 독재자들이 어용 정당 자마아티 이슬라미가 탈레반의 기원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파키스탄에서도 북부 국경을 넘어오는 탈레반 때문에 자국 치안이 불안해져 해외 투자가 안 이루어진다고 불만이다. 실제 아프가니스탄인이나 파키스탄인들에게 물어봐도 양국 사이의 국민 감정이 대단히 좋지 않다는 점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와중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파키스탄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들을 원조하였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이슬람주의가 아프가니스탄으로 유입되었다는 점이다.[1]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엄청난 수의 전쟁 고아들이 발생했는데 이들을 거두어주고 수용한 마드라사에서는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극단적인 여성 혐오 사고방식[2][3]을 포함한 이슬람 극단주의를 교육하였다는 점이다. 가족과 분리된 상태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만 교육받은 소년들은 탈레반 멤버가 되어 모하마드 오마르를 따라 아프가니스탄에서 폭정을 일삼았다.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반 탈레반 성향의 타지크인, 하자라인, 우즈베크인 등등 입장에서는 파키스탄 이슬람 회의만한 원수도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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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입장에서는 북쪽에 탈레반이 활동한다는 점이 있다는 점이 국가 치안과 발전에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된다. 원리주의 성격이 강한 파키스탄 북부로 들어온 탈레반이 아예 북부 지역의 행정을 장악해버려 위기다. 더욱 황당한 것은 '''사령부가 분대 규모의 적에게 불과 두어 시간만에 유린당했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군의 소탕작전에는 무려 20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바로 옆이 아예 정부의 통제보다 탈레반의 통제가 더 잘 먹히는 파슈툰족 지역이니 답이 없다.
이런 판이라 세계, 특히 서구와 인도에서는 걱정이 많다. 무엇보다도 알 카에다와 친한 탈레반이 파키스탄을 장악할 경우 '''핵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서방과 협력하는 파키스탄 정부를 불신자로 간주하여 파키스탄탈레반운동(TTP)를 구성해 반정부 무력 투쟁에 나섰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 정부는 2014년부터 탈레반에 대해 대대적인 소탕전에 들어갔다.

2.1. 21세기


파키스탄과 아프간 사이에는 2006년부터 파키스탄-아프간 장벽이 있어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파키스탄에도 북부지역에 파슈툰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파슈툰족의 절반 영토가 파키스탄땅이라 아프간에서 고토회복을 요구하며 갈등이 있는 경우도 있고 2016년 6월 13일에 국경분쟁이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2017년 2월 16일에 수피즘 사원에서 다에쉬에 의해 일어난 테러로 인해 88명이 사망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파키스탄 탈레반과 다에쉬 등 테러조직원 100여명을 소탕했다고 밝혔고 이 과정에서 아프간 국경에서 2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자 아프간 정부가 항의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2017년 3월 6일에 파키스탄군의 포격으로 아프간인 4명이 사망하자 양국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2017년 3월 6일에 파키스탄 외무부는 아프간 국경통행을 다시 재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간과의 화해표시로 국경통행을 전격 재개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이 아프간과 접한 국경지역에 철조망을 세우기로 결정하면서 아프간 정부가 반발했다.#
파키스탄에는 소련-아프간 전쟁과 아프간 내전당시에 파키스탄으로 이주한 난민들도 있어서 140만명의 난민들과 100만명의 비등록난민들이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에서는 난민단속을 펼치고 있고 파키스탄측에서는 일정 기한을 주고 파키스탄을 떠날것을 통보했다.## 그러다가 2017년 7월 21일에 파키스탄 정부는 파키스탄내 100만명이상의 아프간 난민들에게 체류증을 발급하겠다고 밝혔다.#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가 아프가니스탄과의 (거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4] 현지 기업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많이 수출을 하고 있다. 주로 시멘트가전제품 등.
2018년 4월 7일에 아프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파키스탄의 아바시 총리는 카불에서 아프간-파키스탄 평화와 연대를 위한 행동 계획을 체결하기 위한 7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그리고 임란 칸 총리는 파키스탄내 아프간 난민들에게 시민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2019년 9월 7일에 이슬라마바드에서 중국,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3국의 제3차 외무장관 회의가 개최되었다.#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서 파키스탄은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0년 10월 20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 비자 신청을 위해 수천명이 몰려든 통에 15명이 압사했다.#

3. 문화 교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모두 순니파 주류 국가이며 하나피파 법학파가 주류이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식자층(특히 율법학자들)의 상당수가 우르두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안다.[5] 하나피파는 원래는 온건 성향 학파인데 남아시아의 하나피파는 현대 이슬람주의의 영향으로 근본주의화되었고 이 여파는 양국의 사회/경제/문화 발전을 크게 지체시키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제작된 드라마, 영화, 음악 등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4. 관련 문서


[1] 이 때문에 파키스탄과 인접한 파슈툰인들이 가장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다.[2] 마우두디는 여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집 밖으로 외출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로 이는 히잡으로 가리지 못한 손이나 얼굴, 혹은 눈 등이 부도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여성의 참정권이나 정치 참여를 이슬람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3] 원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주류 법학파인 하나피파는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을 허용하지만, 탈레반은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반지성주의적 해석을 바탕으로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조차 금지시키는 등 갖가지 황당한 폭정을 펼쳤다.[4]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때 괜히 파키스탄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 물론 반협박이었지만.[5] 아프가니스탄 일반인들 중에서도 볼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으로 힌디어/우르두어로 간단한 회화 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