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파키스탄 관계
1. 개요
영국과 파키스탄의 관계. 파키스탄은 인도와 함께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48년에 인도와는 분리독립했다. 역사적인 이유로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파키스탄 지역은 무굴 제국이 멸망하면서 19세기부로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 영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었다. 영국의 지배하에서 파키스탄도 인도와 함께 영국의 영향을 받았고 파키스탄인들이 영국에 이주했다.[1] 영국의 지배하에서 영어가 페르시아어를 대신하기도 했지만, 영국이 인도 지역을 대우하면서 무슬림 비중이 높았던 지역에선 반감이 커졌다. 게다가 영국이 와지리스탄을 탄압하면서 영국에 대해 반영감정이 높아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파키스탄과 인도를 독립시킨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1948년에 인도와 파키스탄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분리독립하게 되었다.[2] 파키스탄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에 영연방에 가입했지만, 수차례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영국 내 집시도 원조 파키스탄계 영국인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집시는 이주 역사가 오래된 관계로 파키스탄인으로의 분류를 거부하는 편이다.
2.2. 현대
현대에 들어서면서 파키스탄은 영국과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거기에다 파키스탄은 영국의 지배와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파키스탄은 영국에 대해선 반영감정이 높다. 영국 식민 지배 시절 우민화 교육과 산업 해체, 농산물 징발로 세계적으로 부유한 펀자브 지역은 빈곤 지방으로 전락하였다. 영국이 파키스탄과 아프간 사이에 있는 듀랜드 라인을 파슈툰족의 거주지를 따라 그어놓은 것도 있어서 영국에 대해선 감정이 안 좋은 편이다.[3] 카슈미르 분쟁 역시 영국의 책임이라는 의견이 강하다.
파키스탄은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영어가 우르두어와 함께 공용어에 포함되어 있다. 영국내에도 파키스탄계 영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파키스탄계 영국인들은 인도계 영국인들과 함께 영향력이 매우 큰 편이다. 일부 파키스탄계 영국인들중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종하는 경우가 있으나 주로 자영업(요식업, 택시 기사 등등)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세속주의 온건 성향이 더 많은 편이다.[4]
멕시코에서 8살~13살 여자아이들이 임신 출산하는 경우들이 많아 아동 성범죄에 엄격한 미국 사회 내에서 멕시코인 이미지가 안 좋아진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국 내 파키스탄인 커뮤니티 및 파키스탄 이미지도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논란으로 홍역을 치룬 적이 있다. 로더럼 아동 성착취 사건 때 일부 파키스탄계 영국인들이 성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었고 이후 체포된 범인들은 영국으로 송환되어 영국 법원에서 징역 10년 ~ 20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당시 영국에서 파키스탄에 대한 이미지가 더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다만 사디크 칸이 런던 시장으로 당선된 사례, 파키스탄계 글래스고 시 의원이 치킨 티카 마살라를 영국-스코틀랜드 요리로 등재하려는 사례 등에서 보듯 많은 파키스탄인들이 능력 본위의 영국 사회 내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역사적 감정 외 실리적인 이유로 양국 간의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