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판토스
1. 개요
'''방정식의 아버지'''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다. 출생과 사망의 연도는 불명이지만 84살까지 살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왜 죽었을 때의 나이가 알려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밑의 묘비 문단 참조. 대표적인 저서로는 "산수론"('Arithmetica')[1] 이 있다.
2. 생애
생애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당장 상술했듯 출생과 사망의 연도조차 불분명하다. (246?~330?)이라고 추측하나 확실하지는 못하다. 3세기에 주로 활동했으며 고향은 이집트였고 알렉산드리아가 주 활동 무대였던 수학자다.
2.1. 묘비
디오판토스 하면 굉장히 유명한 것이 그의 묘비명이다. 그의 추종자가 묘비에 새겨 넣었다는데, 간단한 일차방정식으로 풀 수 있다.
디오판토스의 나이를 $$x$$라고 놓고 방정식을 세우면신의 축복으로 태어난 그는 인생의 1/6을 소년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인생의 1/12이 지난 뒤에는 얼굴에 수염이 자라기 시작했다. 다시 1/7이 지난 뒤 그는 아름다운 여인을 맞이하여 화촉을 밝혔으며, 결혼한 지 5년 만에 귀한 아들을 얻었다. 아! 그러나 그의 가엾은 아들은 아버지의 반 밖에 살지 못했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깊은 슬픔에 빠진 그는 그 뒤 4년간 정수론에 몰입하여 스스로를 달래다가 일생을 마쳤다.
$$\displaystyle \frac{1}{6}x+\frac{1}{12}x+\frac{1}{7}x+5+\frac{1}{2}x+4=x$$
$$14x+7x+12x+420+42x+336=84x$$
$$14x+7x+12x+42x-84x=-336-420$$
$$-9x=-756$$
$$x=84$$
가 된다.[2]
또한, 1/12와 1/7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서 디오판토스의 나이는 12와 7의 공배수라는 걸 알 수 있고 이를 이용해 최소공배수의 개념으로 그의 나이를 유추할 수도 있다. 실제로 디오판토스의 나이인 84세는 12와 7의 최소공배수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비문의 내용을 보면 디오판토스의 아들이 요절한 것처럼 보이지만 고대인들의 평균 수명이 대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을 왔다갔다 한 걸 감안하면 디오판토스의 아들이 요절했다기 보다는 디오판토스가 굉장히 오래 살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3] 비록 디오판토스의 아들이 아버지처럼 장수하지 못하긴 했어도 당시의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당대의 보통 사람들이 사는 만큼은 살았다고 볼 수 있겠다. 단, 전근대 시대는 현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7세 이하 유아 사망률이 높았고,[4] 이 때문에 전근대인들의 평균 수명이 현대인들보다 낮게 나올 수밖에 없었으므로, 당시의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 나이만큼 살았다고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디오판토스의 결혼 당시 나이가 33세나 되고[5] 아들도 38세에 태어난걸 보면 디오판토스의 아들은 당시로서는 굉장한 늦둥이였을 것이다.
3. 업적
- 방정식을 최초로 미지수로 나타낸 수학자다. 이러한 그의 업적이 없었다면 간단한 이차방정식도 '뭐시기'를 2번 곱한 거에 2를 곱한 거 더하기 '뭐시기'를 1번 곱한 거에... 이런 식으로 나타냈어야 했을 수도 있다.
- 대수학의 체계를 다졌다. 음의 부호 마이너스, 등호, 거듭제곱 등을 말로 나타내던 것에서 기호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 후대의 수학자들에게 끼친 영향도 대단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페르마인데, 페르마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만들게 된 건 "산수론"에 실린 제곱수를 두 개의 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내라는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걸 보니...
- 디오판토스 방정식으로 유명하다. 디오판틴 방정식이라고도 하며, 정수로 된 해만을 허용하는 부정 다항 방정식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4. 저서
"산수론"이 있으며 "산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3권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페르마 등의 중세 수학자들이 찾아낸 것은 6권에 불과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가 정복당할 때 많이 소멸되었다.
5. 관련 문서
[1] 1차부터 3차까지의 정수 계수를 가지는 부정방정식의 풀이 방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2] 이에 근거하여 디오판토스의 간단한 일대기를 보면 21세에 결혼하고 38세에 아버지가 되었으며 80세에 그 아들이 42세의 나이로 죽었으며 본인은 84세까지 살았다는 얘기다.[3] 불과 70년대까지만 해도 80세가 넘으면 노인정에서도 어른 대접 받을 정도였다.[4] 신생아 10명중 9명이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돌잔치가 생겨난 이유.[5] 보통 전근대에는 10대에 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