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1. 개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 FLT[1] )는, ''''방정식 $$x^n + y^n = z^n$$ ($$n \geq3$$[2] )에는 자명하지 않은[3] 정수 해의 쌍 ($$x$$, $$y$$, $$z$$) 값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수학정리'''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마지막(Last)'이란 것은 페르마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정리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증명하지 못했'던' 정리'''라는 의미다.Quaestio VIII.
Propositum quadratum dividere in duos quadratos.
Imperatum sit ut 16. dividatur in duos quadratos. Ponatur primus 1Q. Oportet igitur 16. - 1Q. aequales esse quadrato. Fingo quadratum a numeris quotquot libuerit, cum defectu tot unitatum quod continet latus ipsius 16. esto a 2N. - 4. ipse igitur quadratus erit 4Q. + 16. - 16N. haec aequabuntur unitatibus 16. - 1Q. Communis adiiciatur utrimque defectus, et a similibus auferantur similia, fient 5Q. aequales 16N. et fit 1N. 16/5. Erit igitur alter quadratorum 256/25. alter vero 144/25. et utriusque summa est 400/25. seu 16. et uterque quadratus est.
''Observatio domini Petri de Fermat.''
''Cubum autem in duos cubos, aut quadratoquadratum in duos quadratoquadratos, et generaliter nullam in infinitum ultra quadratum potestatem in duos eiusdem nominis fas est dividere cuius rei demonstrationem mirabilem sane detexi.'' ''' ''Hanc marginis exiguitas non caperet.'' '''
문제 8.
제곱수를 두 제곱수로 나누기 위해.
문제가 16을 두 제곱수로 나누는 것이라고 하자. 먼저 x²을 둔다. 그러면 16-x²이 제곱수여야 한다. 임의의 수에서 제곱해서 16이 되는 수를 뺀 것을 2x-4라고 가정하고 여기에 제곱의 형태를 취하자. 2x-4의 제곱은 4x²-16x+16인데 이를 16-x²과 같다고 한다. 양쪽에서 공통으로 모자란 부분을 더하고 같은 양만큼 없애면, 즉 양변을 정리하면 5x²=16x가 되고 x=16/5가 된다. 따라서 하나를 256/25로 하고 다른 하나를 144/25로 두면 그 합은 400/25, 즉 16이 되고 둘은 각각 제곱수다.
''피에르 드 페르마 경의 관찰.''
''하지만 세제곱수를 두 세제곱수로, 혹은 네제곱수를 두 네제곱수로, 또 일반적으로 제곱보다 큰 거듭제곱수를 동일한 지수의 두 거듭제곱수로 나눌 수 없는데, 나는 이에 대한 실로 놀라운 증명법을 발견했다.'' ''' ''이를 적기에는 여백이 부족하다.'' '''
2. 소개
페르마(1601년 8월 17일 ~ 1665년 1월 12일)의 증명 방법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n=4승인 경우는 당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무한강하법을 통한 증명방법이 남아있다) 엄밀히 말하면 '페르마의 추측'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러나 페르마가 자신이 증명해 냈다는 주장을 존중하여 일반적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고 부른다. 이 정리는 20세기를 넘기기 직전인 1995년, 영국 수학자 앤드루 존 와일스 경(Sir Andrew John Wiles)이 증명했다.
수학 역사에 존재했던 여러 난제 중 가장 유명하다. 누가 봐도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논제임에도 불구하고[4] 장장 4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모든 수학자들이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수학계에서 난제는 수도 없이 많지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굉장히 간단명료한 수식과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일반인들에게도 이해가 쉬워 다른 난제들보다도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간단한 수식 하나를 증명하는 데에는 페르마 이전의 수학부터 페르마 사망 이후 350여 년 동안 전 세계 인류가 이거 하나를 증명하기 위해, 심지어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던 다른 연구를 위해 추가로 쌓아 올린 수학까지[5] , 수학이라는 학문의 정수가 총동원되어야만 했고, 결국 현대 수학의 최전선에서 간신히 이 난제가 증명되었다.[6]
3. 증명의 과정
3.1.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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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는 원래 직업은 변호사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출판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수학은 취미상 스스로 알아낸 것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그가 다른 수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소개한 일부의 내용에 포함된 내용 이외에는 그의 연구 내용이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사후 그의 장남인 클레망 사뮈엘(Clément-Samuel)은 페르마가 디오판토스의 정수론 책인 <아리스메티카>에 낙서처럼 달아놓은 주석을 정리해서 책으로 출판했고, 이를 통해서 페르마가 한 연구가 밝혀졌다. 수학사적의 의의로는 정수론 서적인 아리스메티카에서 피타고라스의 정리인 임의의 제곱수를 서로 다른 두 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문제를 더욱 확장하여 n을 세제곱수부터 무한 제곱수의 영역까지 정수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확정해서 달아놓은 주석이 바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다.
이 문제는 피타고라스의 삼각수와 관련된 문제, 즉 방정식 $$x^2 + y^2 = z^2$$을 만족하는 해 (x, y)를 z에 관하여 나타내는 문제다. 위 방정식을 만족하는 해는 어떤 정수 a, b 에 대해서 $$(x, y, z) = (a^2 - b^2 , 2ab , a^2 + b^2 )$$ 혹은 그들의 $$k$$배라는 것을 고등학교 수준에서 비교적 쉽게 풀어서 알 수 있다. 따라서 $$(x, y)=(\displaystyle \frac{a^2 - b^2}{a^2 + b^2}z , \frac{2ab}{a^2 + b^2 }z)$$로 나타낼 수 있다. 아리스메티카에서 제시하는 해는 여기서 $$b=1$$을 대입한 값인 $$(x, y)=(\displaystyle \frac{a^2 - 1}{a^2 + 1}z , \frac{2a}{a^2 + 1}z)$$다.
$$a$$와 $$b$$는 임의의 정수이므로, 이 해는 무한히 많게 된다. 그런데 페르마는 이 문제 부분에 지수가 3 이상일 경우에는 유리수 해[7] 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이것을 증명하는 대신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버림으로써 장장 300년에 걸친 모든 천재 수학자들의 어마어마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물론 정수론,군이론,대수학 계열이 아닌 수학자들은 (미분학,적분학,기하학,해석학,위상수학,조합수학,전산학,편미방 등등) 페르마의 대정리의 악명을 눈치채고는 운좋게 모두들 비껴갔을 것이다. 낚인 사람 중에는 자살한 사람, 정신이상이 생긴 사람, 심지어는 결투를 벌인 사람도 있었다.[8] 당대의 수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근현대의 전공자들과 아마추어 수학 연구가들도 역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실패했다. 페르마의 정리가 아니더라도 수학에는 수많은 난제가 많은데, 굳이 페르마의 정리가 300년간의 학계 내외의 꾸준한 어그로를 끌 수 있었던 이유를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페르마는 어려운 문제를 증명하고는 동료들에게 증명에 대한 설명은 없이 '나 이거 증명했으니 풀어 봐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페르마와 동시대를 살았던 당대의 수학자들은 '뭐 페르마가 그렇다고 하니 그렇겠지.'하고 금방 증명 과정이 밝혀지리라 생각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페르마가 죽을 때까지 아무리 해봐도 풀리지가 않았던 것. 게다가 일부 경우에 대해선 페르마 자신이 사실상 증명을 해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본인이 준 힌트까지 있는데 설마 풀지 못하겠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도 더 큰 어그로를 끄는데 공헌했다.
-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익히 아는 피타고라스 정리와 비슷한, 대단히 간단해 보이는 외형. 당장 밀레니엄 문제 중 아무거나 이해하려고 해보자. P-NP 문제만 빼면 어지간히 수학을 공부하지 않고선 문제가 뭔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9] 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일단은 간단한 자연수와 제곱 계산으로 문제 설명이 끝나며, 오늘날의 중등 수학 과정만 거쳐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따라서 '내용이 어렵지 않으므로 쉽게 증명하는 법도 있는데, 다만 우리들이 바보처럼 못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든다.
- 17세기의 변호사 겸직 수학자가 푼 문제를 내가 못 풀 게 없다는 착각.[10]
3.2. 초창기
문제가 알려진 후 한동안은 아무도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유명한 당대의 수많은 대수학자들이 손을 댔지만 누구도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페르마 사후 약 100년 뒤, 첫단추의 단서를 발견한 수학자가 나타났다. 18세기에 명성을 떨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였다.[11] 오일러는 본격적인 연구를 들어가기에 앞서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곧 페르마 본인이 n=4일 때의 증명에 대한 풀이를 해 놓았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수록된<아리스메티카>에 'n=4에 대한 증명은...'이라고 형식을 맞춰 풀이한 것은 아니었고, 지나가는 길에 심심하다는 듯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기록된 주석과는 완전히 다른 텍스트 옆에, 무한강하법을 이용한 중간 정리 과정을 간략히 휘갈겨 놨던 것이다. 이러니 FLT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널리 연구되기 전인 초창기엔 다들 그걸 못 보고 지나쳤던 것. 페르마가 직접 기록한 n=4에 대한 정리는 일정 수준의 수학자라면 누구나 증명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풀이가 되어있었다.
오일러는 이걸 토대로 n=3이 성립한다는 걸 복소수를 활용한 귀류법의 일종인 무한강하법으로 증명했다.[12] 이 방법은 n=4일 경우에 쓰인 증명법과 본질적으로 같다. 그러나 비슷한 방법으로 n=5일 때의 증명을 시도했으나 끝내 못 했고, 추가로 페르마의 옛 집을 동료들까지 동원해서 샅샅이 뒤졌지만 모든 n값에 대한 증명의 정리는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오일러는 n=4와 n=3의 경우에 대한 증명을 발표하는 데 그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오일러는 그동안 명확히 정립돼 있지 않던 복소수의 개념을 다듬었으며 허수 단위 i를 창안하는 업적을 만들게 되었다.[13]
이후 또다시 많은 수학자들이 도전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때 오일러 다음 세대에 소피 제르맹(Marie-Sophie Germain, 1776~1831)[14] 이라는 여성 수학자가 등장했고, 놀라운 성과물을 내놓았다. 오일러가 해결하지 못했던 n=5의 경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소피 제르맹의 발상은 간단했다. 모든 자연수는 소수와 합성수의 합으로 이루어지고, 다시 합성수는 소수들의 곱으로 이루어진다. 즉 어떤 자연수 X(N*M) = (XN)M 으로 간단히 변환되는 것을(편의상 N,M등을 소수라고 한다면 N*M은 합성수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이용한 것이다. 따라서 FLT에서 n의 자리에 들어가는 소수값에 대한 증명을 밝혀낸다면, 합성수 부분에 대한 증명도 성립되고 자연수를 구성하는 '소수+합성수'의 두 항에 대해 밝혀내게 됐으니 모든 자연수에 대한 FLT의 증명도 손쉽게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소수에 대해 주목했던 소피 제르맹은 가우스에게[15] 자신의 소피 제르맹 소수 p [16] 를 인용하며 안전소수(2p+1)가 FLT의 n일때 FLT가 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디리클레와 르장드르가 소피 제르맹의 정리를 바탕으로 n=5일때 FLT가 참이라고 증명해냈다.[17] 소피 제르맹도 100이하의 소수들에 대해 FLT가 참임을 증명하는데 성공한다. 소피 제르맹에 의해 n=소피 제르맹 소수인 경우의 상당부분이 증명되며 FLT에 대한 증명 과정이 급속도로 진척되었다.
그러나 결국 원론적인, 모든 n값이 성립한다는 것은 증명되지 못했다. 만약 'n=소피 제르맹 소수가 아닌 소수'라면 답이 없다는 거다. 수학자들이 어떻게든 노력해서 n=모든 소수인 경우에도 증명이 가능하도록 하는 규칙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소수답다면 소수답달까, 그게 안 먹히는 소수가 역시 있었다. 이런 예외가 유한했다면 수작업으로 밤을 새든, 몇 년간 붙잡든, 몇 대에 걸쳐 인해전술을 하든 어떻게 근성으로 증명할 수 있겠지만, 그런 소수가 무한하다는 문제가 있었다.[18] 이 불행한 진실은 에른스트 쿰머(Ernst Eduard Kummer, 1810~1893)가 증명했는데, 쿰머는 n이 정규소수일 경우의 증명을 완성했지만 동시에 n이 비정규소수일 경우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게다가 비정규소수는 무한하고 정규소수의 무한성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19]
3.3. 침체기
쿰머가 불편한 진실을 발표한 뒤 점점 수학계에서 FLT에 대한 관심은 멀어져갔다. 일부 수학자들은 이에 대해서 아예 "이렇게 안 풀릴리가 없다. 페르마가 틀렸다." 까지 생각하게 되었지만 이미 위에서 말한것처럼 n이 웬만한 소수들과 그 소수들로 이루어진 무한한 합성수들인 경우가 증명되었기 때문에 파울 프리드리히 볼프스켈이라는 의사이자 아마추어 수학자가 나타나며 명맥을 이어가게 된다. 볼프스켈이 이 난제를 증명하는 사람에게 현상금 10만 마르크를[20] 주겠다고 공표하면서 재야의 아마추어 수학자들에게도 FLT가 알려지게 된 것이다. 볼프스켈은 연인에게 실연당한 후 자살할 생각이었는데, 자살할 시간을 정해놓고 책장을 뒤져보던 중 페르마의 정리를 발견하고, 페르마의 정리에 대해 전율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고 한다. 이에 그는 경의를 담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사람에게 10만 마르크를 출연하겠다고 결정했고, 이 상금은 괴팅겐의 왕립과학원에 기탁되어 '볼프스켈 상'이라고 정식 명명되었다. 수많은 이들이 상금을 위해서 해법을 투고하기 시작했지만 모든 증명이 오류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매우 설득력 떨어지는 논리를 적어서 보낸 유사수학자들도 많았다.[21]
이 시기 대다수의 전공자들은 자신들의 분야에 몰두하며 FLT를 도외시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유명한 수학자인 다비트 힐베르트에게 왜 이 문제를 안 푸냐고 사람들이 묻자, "적어도 2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실패할 게 분명한 일에 그럴 순 없다."고 답한 바가 있다.
한편 인류의 통신 기술이 발전하고 19세기에 들어서며 점차 하나의 교통권으로 묶이자, 국가별로 고유의 수학체계를 가지고 있던 나라들이 유럽의 수학과 접촉하게 되면서 전체 수학 인구가 폭증, 학문 발전 속도가 과거와는 비할 바 없이 빨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100년이 흘러 20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만큼은 그 어느 대륙과 국가의 수학자들도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FLT의 명성이 차차 높아지면서 대중매체에서도 '절대로 풀릴 수 없는 난제'로서의 출연도 많아졌다. 아서 포기스가 1957년도에 출판한 단편소설 <악마와 사이먼 플래그>에서는 악마와 외계인이 이 문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는데, 이 외계인은 편미분방정식을 암산으로 푸는 가상의 외계종족이었다.[22] 당시 사람들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
20세기 중후반에 개발된 컴퓨터로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 숫자 n은 무한히 많아서 하나하나 계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정말 아무도 풀지 못하는 미지의 문제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그렇게 페르마의 정리는 <아리스메티카>에 수록된 17세기 그 상태로 새천년의 시대인 21세기를 맞이할 것만 같았다.
3.4. 전환기
페르마의 정리가 지난 두 세기 동안 항상 부분적으로만 증명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페르마의 정리가 원론적으로 증명되기 위해선 말 그대로 현대수학의 '''모든 것'''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앤드루 와일스(1953~ )의 증명법에는 1957년도에 발표된 모듈러성 정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23] 이 모듈러성 정리는 수학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분야들의 다리 역할을 함으로써 당시에는 '만약 모듈러성 정리가 사실이라면' 이라는 전제 하에 나온 논문들이 많았다. 따라서 모듈러성 정리를 증명하는 것은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는 것 뿐만이 아니고 사상누각과 같았던 새로운 수학 분야의 근간이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모듈러성의 정리를 증명한다면 대통일 수학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한 첫 번째의 업적이 될 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독일의 수학자 '''게르하르트 프라이'''(Gerhard Frey)가 모듈러성 정리를 이용하여 페르마의 정리를 타원곡선의 형태로 변형을 시키면서 점차 단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식은 페르마의 정리가 틀렸다는 가정 하에 유도된 식이었다. 프라이는 모듈러성 정리가 맞는다면 자신이 유도해낸 타원곡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따라서 페르마의 정리를 만족하는 정수인 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선보였다. 즉 프라이는 모듈러성 정리를 증명하면 페르마의 정리 또한 부록으로 증명된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다만 프라이의 증명 과정에는 일부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이 증명은 엡실론 추측(Epsilon conjecture)으로 명명되었다.
프라이가 1985년도에 이 사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프로 수학자들은 침체기에 활동했던 자신들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어렵기만 하고 수학적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관심이 없는 척 했지만, 프라이가 발표한 엡실론 추측을 통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정복할 가능성이 보였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빛의 속도로 달려와서 논문 내용을 복사해갔다.[24] 만 3세기에 걸친 이 난제를 해결하기만 한다면 학문적 성취는 물론이거니와 막대한 명예까지 거머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기다렸다는 듯이 풀리지 않아''' 모두를 좌절시켰다.
그러던 와중 '''케네스 리벳'''(Kenneth A. Ribet)이 만 1년간의 고생 끝에 1986년에 엡실론 추측을 증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증명이 발표되자, 전 세계 수학계는 드디어 페르마의 대정리를 정복할 수 있다며 흥분했다. 이를 통해 엡실론 추측은 리벳의 정리(Ribet's theorem)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으며, 리벳은 이 추측을 증명한 업적으로 1989년에 페르마 상(Fermat Prize)을 수상했다.
이제,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만 증명되면 모든 게 완료되는 모든 밑그림이 마련되었다.
3.5. 최초의 발표
드디어 지난 400년간의 좌절을 끝낼 한줄기 희망 앞에, 수많은 수학자들이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FLT를 한 쾌에 해결해줄 모든 준비물이 갖추어졌지만 막상 30여년이 흐른 그때까지도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이 증명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학계의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듯 식기 시작했으며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는 것을 포기하기 시작했고 엡실론 추측의 주역인 켄 리벳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케임브리지 출신의 영국의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였다.
와일즈는 원래 1974년에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졸업논문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연구하고 싶어했으나, 증명하지 못하면 졸업을 못할 것이기 때문에 지도교수가 추천한 '타원곡선'을 연구하여 1980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타원곡선론을 연구하는 세계적 학자가 되었다. 그때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타원곡선은 아무런 관련이 밝혀진 바 없었으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기 위한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이 타원곡선론 그 자체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원래 하고 싶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했던 셈이다. 1986년 친구와의 대화 중 이것을 알게 된 와일즈는[25] 그때부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도전하여 7년동안 자기 집 다락방에 처박혀서 FLT 연구에만 몰두를 시작했다.[26] 거기에 다른 수학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다른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할 목적으로 비교적 사소한 주제들을 다룬 논문을 미리 작성해 놓고 6개월 간격으로 제출했다.[27] 다만 그의 아내와 논문의 검토를 맡았던 동료 교수 닉 카츠(Nick Katz)는 앤드루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각고의 연구 끝에 앤드루는 듣기만 해도 정신을 11차원으로 보내버리는 현대수학을 총동원하여 시무라의 추론을 증명했고, 결과적으로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해냈다. 다만 와일즈 교수가 이때 증명한 것은 준안정 상태의 경우뿐이었으나 이것만으로도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기에는 충분했다.[28]
이후 와일즈는 자신의 증명을 한 번 더 검증한 후 발표하려고 했는데, 마침 케임브리지에서 학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모교이기도 한 그곳에서 증명을 발표하기로 했다. 증명이 너무 길어서 강연 기회를 더 달라고 자신의 은사인 존 코즈에게 부탁을 하여 3번의 강연 기회를 얻어낸 후 차례대로 증명 과정을 발표했다. "와일즈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정말로 증명하기 시작했다."라는 소문이 퍼져나갔고, 마지막 강연에서는 구름처럼 청중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강연의 마지막 시간, "이로써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증명을 끝마칩니다."라는 앤드루의 멘트와 함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장대한 역사가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3.6. 첫 증명의 오류
케임브리지에서 와일즈가 증명을 발표한 후, 수학자들은 검증을 위해 와일즈의 논문에 달라붙었다. 이 작업에 참가한 사람 중에는 와일즈가 앞서 검증을 부탁했던 닉 카츠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증명에서 오류가 발견되었다!'''
닉 카츠는 과거에 자신이 검증할 때는 못 찾았던 오류를 찾아내고 뒷목을 부여잡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매의 눈으로 검증 작업을 지켜보던 수학자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 과정에서 엄청난 소동이 벌어졌고 전 세계의 수학자들이 열심히 설전을 벌이는 동안, 와일즈 본인은 다시금 은톨이 상태로 연구에 돌입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해 연구를 포기하려고도 했다. 이때 와일즈의 제자인 테일러가 콜리바긴-플라흐의 방법을 검토했는데 이것이 결정적인 힌트가 되었다.
1994년 9월 19일, 와일즈는 자신이 이용했던 이와사와 이론과 콜리바긴-플라흐의 방법이 서로를 보완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두 가지 방법을 한데 합쳐놓으니 문제점이 해결됐다. 와일즈는 당시를 떠올리며 울먹거리며 말했다.
결국 와일즈는 첫 증명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정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위에서 언급한 증명한 사람에게 10만 마르크를 지불한다는 상금도 수령했다. 다만 당시 10만 마르크가 여러 번의 디노미네이션을 거쳐 1997년에 와일스가 수령한 것은 약 4만 달러 정도였다."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간결하면서 또 우아했어요. 왜 이 사실을 진작 발견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정말 기쁘면서도 넋이 나가서 계산 결과를 한 20분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수학과 건물 내의 복도를 이리저리 거닐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는 제가 발견한 것이 아직 그대로 있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꿈을 꾼 건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그런데 그 아름다운 녀석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더군요. 저는 너무 흥분해서 정신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제 연구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지요. 앞으로 제가 어떤 발견을 한다해도 그런 정도의 환희는 두 번 다시 느껴보지 못할 겁니다."
3.7. 와일즈의 최종 증명
그 내용은 여기 있으니 보고 싶은 사람은 다운로드보기
와일즈 교수는 이 증명 논문을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보여줬으며, 아내는 크게 기뻐했다. 국내에 번역된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서는 "그렇게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은 처음 봤다"고 되어 있는데, 와일즈가 증명을 완성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옆에서 지켜본 아내이니 당연했을 것이다.
사실 와일즈가 석사과정에 입문할 때부터 매우 극적인 우연들이 겹쳐서 만들어낸 걸작이다. 예를 들자면, 왠지 모르게 베리 마주르가 여러 차례 활약을 했다. 리벳이 엡실론 추측을 증명할 때나, 와일즈가 모듈러가 아닌 소수의 타원곡선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다른 프라임을 사용하게끔 영감을 준다거나 식으로. 물론 와일즈의 7년간의 집념과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뿐더러 사실 학문이란 것은 주변이나 우연이나 운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발전해왔다.
증명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이를 위하여 논문의 서론 처음 두 줄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이 논문은 '타원곡선(elliptic curve)', '모듈러(modular)', '모듈러 곡선(modular curve)의 유한 덮개(finite covering)', '하세-베유 제타 함수(Hasse-Weil zeta function)의 해석적 연속(analytic continuation)', '표준형의 함수방정식(functional equation of the standard type)' 같은 표현이 '''당연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쓰여 있다'''. 거기에 수많은 로마자 기호와 수식은 덤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본문도 아닌 12쪽 짜리 서론(introduction)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즉, '''지극히 기본적인 것'''들이다.Introduction.
An elliptic curve over $$\mathbb{Q}$$ is said to be modular if it has a finite covering by a modular curve of the form ''X0(N)''. Any such elliptic curve has the property that its Hasse-Weil zeta function has an analytic continuation and satisfies a functional equation of the standard type.
(후략)
실제 증명이 시작되는 Chapter. 1 은 13쪽 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부터 본격적인 증명에 해당하는 난해한 내용이 100쪽 넘게 이어진다. 또한 수없이 많은 정리와 증명들, 예를 들어 L-함수, 갈루아 이론, 이와사와 이론[29] , 유수 공식 등 괴이쩍은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는게 문제. 대수적 정수론으로 수학과 석사 학위를 받는 정도는 되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와일스 교수의 고향이자 발표가 있던 케임브리지가 있는 영국에서도 당연히 성대한 축하와 기념 행사들이 있었다. UKTV에서는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나중에 〈'''The Proof'''〉라는 제목을 달게 되었다. 다른 수식어 없이 '그 증명'이라고 불리는 것만으로도 와일스 교수가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해낸 것인지 알 수 있다. 영상 초반에 그 영광스러운 때를 떠올리며 결국 눈물을 터트리는 와일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참인 것으로 드디어 증명되었다!'''
3.8. 증명
와일즈 교수 이전과 이후에 여러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증명 들.
4. 와일즈의 수상 이력
- 볼프스켈 상: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상이며, 당연히 수상했다. 그런데 처음 상금이 걸렸을 때보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져서 실제는 원래가치의 1/3 정도에 해당하는 액수를 받았다고 한다.
- 필즈상 특별상: 1995년 5월 증명이 완성되자 와일즈는 수많은 상을 받았다. 하지만,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만한 필즈상 수상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필즈상은 '40세 이하의 젊은 수학자에게만 수여된다'는 조건이 달려 있는데, 와일즈 교수가 완벽한 증명을 낼 때 그의 나이는 41세, 수상 당시의 나이는 44세였다.[30] 그렇다고 상을 안 주기에는 그의 업적이 너무나 대단했기 때문에 국제 수학자 연맹에서 1998년에 특별상 형태로 기념 은판(IMU Silver Plaque)[31] 을 제작하여 수여했고, 필즈상 수상자 공식 명단에는 그 사실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관련 pdf 문서
- 울프상(수학 부문): 1995년에 수상하였다.
- 2000년에 와일즈는 대영제국 훈장 2등급[32] 을 받았으며, 왕립학회 회원도 되었다. 그래서 그의 현재의 이름은 Sir Andrew John Wiles, KBE, FRS이다. KBE는 위에서 설명한 대영 제국 훈장 2등급이고, FRS는 왕립학회 회원(Fellow of Royal Society)이라는 뜻이다. 1등급이 아니라는 점에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대영 제국 훈장은 정원수가 존재한다. 즉 1등급 정원이 꽉차서 어쩔 수 없이 2등급을 받은 것. 1등급 TO가 날 경우 1등급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사람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그리고 2등급을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 당장 월드 와이드 웹라는 것을 만든 팀 버너스리가 2등급 훈장을 받았으며, 빌 게이츠가 PC 보급의 공로를 인정받아 2등급 명예훈장을 받았다. 기사작위만 빼고 훈장만은 외국인도 준다.
상은 아니지만 9999 Wiles라는 이름의 소행성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다른 과학자(천문학자)들이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헌정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5. 페르마는 정말 증명하였는가
페르마가 말한대로 이 증명은 증명되었다. 하지만 페르마가 '''여백이 부족하다며 생략한 그 놀라운 증명법'''이 앤드루 와일스의 증명법과 같았을지는 의문이며, '''현대수학의 최전선에서 간신히 증명된''' 이 정리는 현대수학의 해석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음을 생각해보면 17세기 당시의 수학으로는 증명이 불가능했다고 여겨진다. 페르마가 무슨 미래인이라서 미래의 수학적 개념을 알고 풀어낸 것은 결코 아닐 것이기에 당대 수학에 기반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당대 수학의 수준은 현대 수학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다만 만일 '페르마의 대정리'가 성립하지 못했다면, 페르마의 '나는 이거 증명해냈음'이라는 말이 거짓말이거나 착각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었겠지만, 페르마의 말대로 '대정리가 성립한다'는 것이 증명되어버렸기 때문에, 페르마가 어떤 방법으로 풀었는지에 대한 떡밥이 도마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페르마의 대정리의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n=4인 경우는 무한강하법으로 책의 다른 여백에 증명되어있다.
아무리 페르마가 천재라지만, '''FLT를 증명하려다 실패한 수학자 중에는 수학계에서 존경받는 세기의 위인이나 천재들도 가득하다.'''[33] PDF파일로 1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저 증명을 다 읽고 이해하려고만 해도 대수적 정수론에서 석사 졸업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하물며 저런 증명을 직접 해낸 현대의 수학자들도 최고의 천재들일 것이며, 그들이 해볼 수 있는 시도는 거의 다 해보고 최대한 간결하게 적어서 정리한 결과물이 100페이지를 훌쩍 넘어가니 '''적어도 여백에 적어서 증명할 수준은 절대 아닐 것이다.'''[34]
하물며 수백 년 전 당시 수준의 수학 이론을 가지고 여백에 적을 수준으로 간결하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할 것이고, 수백 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의 노력이 쌓인 현대수학으로 겨우 증명되었기에 4백 년 전 인물인 페르마는 증명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쪽이 학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증명을 했든 안 했든 페르마가 생각한 방법을 이제는 알 수 없겠지만, 페르마가 현대에 증명된 현대수학의 증명법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증명법'''으로 페르마의 대정리를 증명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있다. 이 때문에 페르마가 획기적인 다른 방법으로 실제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는 사람도 있으며, 아직도 페르마가 증명했을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Simmons, George F. (2007)의 Calculus Gems에서 뉴턴조차 미적분에 관해서 페르마의 성과에 의해 도움을 받았다고 자신의 논문에 적었다고 한다. 뉴턴을 제외하고도 과거 뛰어난 수학자들이나 과학자들도 생각보다 많이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심지어 페르마의 업적은 많이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것들만으로 웬만한 뛰어난 수학자들의 업적을 능가했다.[35]
가장 일반적인 관점은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고 증명했다고 착각했다'''는 것. 실제로 n=4인 경우에 대한 증명은 페르마 자신이 책에 적어놓았고, 이 아이디어를 이용하면 n=3인 경우도 풀 수 있다. 때문에, 이 일부의 경우를 증명한 것으로 모든 경우를 다 증명되었다고 착각(추측)한 것일 수 있다. 만약 페르마가 모든 n에 대한 정리를 진짜로 증명했다면 개별 n에 대해 따로 증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취미로 수학을 했던 페르마는 증명에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는 편[36] 이었고, 거기에 동료 수학자들에게 문제를 풀어보라며 장난을 치던 성격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했을 때 대충 맞는 것 같으면 맞는가보다 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굳이 글로 남기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오류도 그의 직관에 따라 머릿속으로 적당히 증명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했고 오류를 모르고 넘어갔다는 주장이다.
혹은 페르마 본인이 메모를 적는 순간에는 옳은 증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게 아님을 발견했지만 따로 수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애초에 페르마가 정식으로 그 정리를 증명하여 학계에 발표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책 여백에 끄적여놓은 낙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수정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라도 그 증명에 대해 기술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n=4에 대한 증명을 서술한걸 봐선 이쪽도 신빙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처음엔 생각한 증명법이 맞는 것 같아 저 메세지를 적어놓았는데 나중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n=4일 때 부터 증명을 찬찬히 다시 시도했으나 단순 낙서에 지나지 않는 해당 글귀는 그대로 남겨놓았다는 추측이다.
현대수학 없이도 간단히 증명되는 '$$n^x + n^y = n^z$$ ($$n > 2$$인 정수)일 때 자명하지 않은 정수해 ($$x, y,z$$)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와 혼동했을 거라는 얘기도 있지만, 페르마 스스로 n=4일 때의 증명을 적어놓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다. [37]
6. 우리의 문제를 돌려줘!
와일즈 교수는 증명을 끝낸 후 "제발 새 문제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부탁에 시달렸다.
수학계의 오랜 난제인 페르마의 대정리가 증명되었고, 와일즈에 의해 반쪽만 증명된 타니야마 시무라의 추론도 와일즈 교수의 제자들이 완전히 증명해 버렸다. 그 외 케플러의 추측 같은 것도 2000년이 되기 전에 해결되어 버렸다. 몇몇 굵직한 문제들이 20세기 후반에 다 해결되면서, 이를 증명하려던 수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잃고 좌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7개의 '''밀레니엄 문제'''다. 문제의 선정에는 와일즈 교수를 포함한 여러 석학들이 참여했으며, 난제를 해결한 수학자들을 치하하기 위한 '''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상금까지 걸어 두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수학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떡밥으로서 이런 상금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증명에 성공한다면 백만 달러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수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 문제를 푼 사람이라는 매스컴의 보도가 쏟아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니, 이 문제를 푼 사람에겐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셈이다. 수학에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보자.
참고로, 와일즈 교수가 선정한 문제는 버츠와 스위너톤-다이어 추측이라고 한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타원곡선, 하세-베유 L-함수 등등 와일즈의 증명에 나오는 용어들이 다시 튀어 나온다.
7개의 문제 중 1개는 증명이 완료되었다. 푸앵카레 정리가 해결되었는데, 이를 해결한 그 사람은 상금을 거절하면서 오히려 그 덕분에 더욱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7. 어록
워낙 악명높은 정리여서 많은 이들이 이 정리에 대해 말을 남겼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기 전에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물론 그럼 증명 못한 거다.
ㅡ 마지막 문제[38]
그런 정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도 안 되는 명제 따위는 나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ㅡ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Johann Carl Friedrich Gauß)[39]
이 문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증명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ㅡ 존 코츠(John Coates)[41]
8. 기타
- 뉴욕의 8가-뉴욕 대학교 역에는 다음과 같은 낙서가 있다. 이것은 와일스 이전에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했다고 주장한 미야오카의 기사가 나왔을 무렵에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탈 기차가 오고 있기 때문에 여기 적을 시간이 없다!!
- 나무위키의 특징적 표현으로 자주 쓰이는 문구로, 너무 내용이 길어져서 분리하여 새롭게 문서를 만들거나, 다른 문서를 링크할 때 사용한다.
- 여러 난제 중에 가장 유명해서 그런지 중2병이 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학교를 졸업하면 이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증명된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문제가 아직 안 풀린 줄 알고 있다는 게 포인트. 한동안 블로그에 학교 졸업 후 계획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첫 번째로 밝히겠다는 이야기를 넣은 한 네덕의 짤이 유명해져 인터넷상에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 다른 수학적 난제들처럼 이 문제도 틈만 나면 자기가 훨씬 더 쉽게 풀었다고 주장하는 유사수학자들이 등장한다. 증명이 미묘해서 잘 뜯어봐야지 겨우 논박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절대다수는 수학을 몰라도 한국어만 잘 알면(...) 논박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떤 증명이 돌아다니는지는 직접 검색 바람.
9.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 각종 매체에서 수학정리 중 많이 언급되는 명제 중 하나다. 다른 명제는 '리만 가설', '골드바흐 추측'이 있다.
- 수백 년 동안 증명이 안 되었었고, 가장 대중매체에 많이 언급된 탓이 큰 듯하다. 증명이 됐다고 발표한 날과 제대로 된 증명이 성공한 날 뉴욕 타임스 대문을 장식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신문에 작게 기사가 난 것일 뿐이지만.
- 최종 증명 발표 이후에도 그는 계속 상을 받고 있으며, 대중매체에서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사람'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스타 트렉에도 나왔을 정도.[42]
- 수학과 우스갯소리로 자연수의 세제곱근 이상의 제곱근이 일반적으로 무리수[43] 임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증명할 수 있다. 보통은 $$\sqrt[n]{2}$$에 대해 증명하는 편. 물론 실제로 이렇게 증명하는 것은 아주 비효율적이다.
- $$2$$가 $$n\geq 3$$이상의 수에 대해서 $$\sqrt[n]{2}$$가 무리수임을 보이자.
$$\sqrt[n]{2}=\displaystyle{\frac{a}{b}}$$이라고 둔 뒤, 양 변을 $$n$$제곱하여 정리하자. 그러면 $$2=\displaystyle{\frac{a^n}{b^n}}$$이 되어 정리하면 $$a^n=2b^n$$이 된다. 우변을 조금 정리하면 $$a^n=b^n+b^n$$이 되는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의하여' 3 이상의 $$n$$에 대하여 이 식을 만족시키는 a, b의 쌍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2의 n제곱근은 무리수다. - 당연하겠지만 굳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사용하지 않아도 위 명제는 쉽게 증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복잡한 현대수학이 총동원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문자 그대로 '닭 잡는데 단분자 커터를 쓰는 격'이다.
- $$2$$가 $$n\geq 3$$이상의 수에 대해서 $$\sqrt[n]{2}$$가 무리수임을 보이자.
- 유키 히로시의 수학 교양소설인 '수학 걸 2권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내용 중 하나가 주인공들이 정수론에 대해 공부하면서 n=4일 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보조정리(Lemma)를 증명하는 내용이다. 보조정리는 의외로 간단한데, '넓이가 제곱수인 직각삼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수학 걸 2권의 부제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인 만큼, 원시 피타고라스 수가 무수히 많음을 증명하는 중고등학교 수준의 수학부터 시작해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증명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모듈러성 정리에 대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자. 국내 정식 발매명은 '수학 홀릭: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다.
- 만화 금색의 갓슈벨에서는 응가 뿡뿡이 우마곤에게 문제로 냈다가 타카미네 키요마로에게 역관광당했다.[44]
- 유희왕 ARC-V에서도 등장. 20화의 퀴즈 듀얼에서 라이프를 100, 300 같이 적게 걸고 나오는 수학 및 넌센스 퀴즈가 나오는데 뜬금포로 라이프 5,000을 걸고 나오는 "페르마의 대정리를 증명하시오". 여기서 상대인 큐안도 에이타는 그런건 자기는 바로 푼다며 시청하던 이과생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다.[45] 수학과 이과 관련 문제는 지지리도 모르는 유우야는 당연히 모른다고 답했고, 그대로 유우야의 패배가 되는 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 데미지를 에이타가 받게 한 후 역관광을 시전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에서 미나모토 코이치는 어렷던 시절부터 아주 똘똘하고 수재였던 터라 초등학교 5학년 동급생인 와카미야 나나코가 내는 수수께끼 퀴즈를 무심결에 전부 맞히고는 했다. 이에 화가난 와카미야는 아주 어려운 문제라고 하는 페르마의 대정리에 대해 물었고 미나모토는 또 그것을 덜컥 풀어버려 난리가 났고, 아메리... 아니 코메리카로 유학가는 처지가 되었다.
- 러키스타 15화에서 히이라기 카가미의 가족들이 모여서 퀴즈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제를 푸는 장면이 나오는데, 페르마의 대정리를 다루는 나름대로 어려운 문제가 나오자 어려워서 가족들이 아무말도 안 하는 모습이 나온다. 카가미는 이걸 보면서 "왜 아는 문제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잘 대답하면서 자신이 없으면 일제히 입을 다무는 걸까?"라고 묻는다.
- 11대 닥터가 5시즌 1화에서 자신이 페르마에게 1줄을 알려주지 않고 잠들어버린 탓에 페르마가 증명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언급한다.
- 2011년, 페르마의 생일인 8월 17일에 페르마의 대정리가 구글 두들이 되었다.
- 다음 만화속세상 웹툰인 셜록: 여왕폐하의 탐정 53화에서는 셜록 홈즈가 이 문제를 이용해 악당을 엿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이것 이외에도 몬티 홀 문제 등 다양한 수학 개념들이 악당과 심리전을 펼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 네이버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 Ep. 29, 원한의 편도 편에서 편도염에 걸려 골골대던 가스파드에게 수학 선생이 풀어보라고 제시한 문제가 이거다.
- VOCALOID 카가미네 린·렌의 오리지널 곡인 우리들의 마지막 정리라는 곡은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온 곡이다. 수학 공식이 가득한 곡이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한 강압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은 곡. 이 세상이 잘못됐음을 당장은 고칠 수 없으나 후일 고쳐내겠다는 의지를 '우리의 마지막 정리도 틀리지 않았을 거라고, 지금 당장 증명할 수가 없을 뿐'이라는 가사로 담아냈다.
- POWER MOVIE에서 김민수라는 인물의 단골 대사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과VS이과' 라는 영상에서는 서울대 물리학 교수 유준호의 대사로 등장했다.
- 가즈 나이트 BSP 편에서는 BSP의 일원이 되기 위해 치르는 수학 필기시험의 일부로 등장한다. 기본 점수 300점에 1000점 만점. 수학 천재 소녀인 중국 출신 오퍼레이터 류페이는 980점을 받았는데 마지막 문제가 바로 페르마의 대정리에 관한 것이었다고. 유일하게 만점을 받은 자가 오퍼레이터로 위장 취업한 피엘 플레포스였다. 참고로 지크 스나이퍼는 100점을 받았는데 이유는 마구잡이로 찍어서 감점을 당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