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타키아

 

아랍어 اللَاذِقِيَّة‎ (알 라디키야)
프랑스어 Lattaquié (라타키에)
영어 Latakia / Lattakia / Latakiyah
1. 시리아의 주
2. 시리아의 도시


1. 시리아의 주


시리아 서부 지중해안에 위치한 주로 면적은 2,297㎢이다. 북쪽으로는 터키와 국경을 접한다. 인구는 내전 직전에 99만명이었고 알라위파의 비중이 라타키아 시에 비해 높아 70%까지 올라간다. 한마디로 알라위파의 본진. 하페즈 알 아사드, 수헤일 알 하산 같은 상당수의 알라위파 인물들도 라타키아 주가 고향이다.

2. 시리아의 도시


시리아 서부의 항구도시. 시리아 내전 이전의 인구는 40만명으로, 시리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자 최대의 항구도시였다.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385km 떨어져 있고 알레포에서는 서남쪽으로 180km, 하마에서 서북쪽로 120km, 타르투스에서는 북쪽으로 70km 떨어진 라스지야라 곶에 위치해 있다. 도시에서 북쪽으로 25km 올라가면 터키와의 국경이 나오며, 안타키아(안티오키아)와도 멀지 않다. 포도, 목화 등이 생산되며, 알레포의 외항 역할을 하였다. 라타키아산 담배도 시리아 내에서는 명성이 높다.
중세 시대부터 기독교와 이슬람 공동체가 공존하던 도시이다. 거주민 중 알라위 무슬림이 50%, 기독교 신도가 30%, 수니 무슬림이 20%였다. 사실 라타키아, 타르투스를 비롯한 해안 지대는 2011년 초기의 소요사태를 제외하고는 시리아 내전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기에 지금도 그럴 확률이 높다.
고대 이름은 라오디케아였고 셀레우코스 왕조 시절에 건설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자유 도시로 선정되어 번영하였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건설한 개선문, 극장 등의 유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십자군 전쟁기에는 안티오키아 공국령에 속했으며, 여러 교회가 지어졌다. 그중 예수의 성스러운 심장 성당은 지금도 남아있다. 당시 이름은 '라 리셰 (La Liche)' 였다. 다만 13세기의 지진과 14세기 키프로스의 습격 등으로 라타키아는 중소 도시로 남았다. 그러다 오스만 제국의 해체 이후 이어진 프랑스 위임 통치기에는 알라위 국가의 수도가 되어 재차 번영하기 시작하였다. (1920 ~ 1936년) 시리아 내전 시에는 러시아 공군 기지도시 근교에 위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