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팔메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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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레인저스 현역 시절. 멋드러진 콧수염을 자랑하던 강타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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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청문회에서 나온 약쟁이로...
쿠바 출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선수. 3000안타 - 500홈런을 동시에 기록한 단 6명의 선수[1] 중 한 명이자 30홈런 - 100타점을 10회 기록한 강타자[2] 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강타자들[3] 때문에 존재감이 바랬고, 이후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이 드러나 그동안의 활약마저 빛을 잃었다. 통산 기록은 타율 0.288, 출루율 0.371, 장타율 0.515, 3020안타, 569홈런, 1835타점.
쿠바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집안은 반 카스트로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결국 팔메이로가 어린 시절,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1982년 드래프트 8라운드 전체 189번으로 뉴욕 메츠의 지명을 받은 팔메이로이지만 메츠의 지명을 거부하고 미시시피 주립대에 입학한 후 1985년에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2번으로 시카고 컵스의 지명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시작하지만 컵스는 1988년 12월 5일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팔메이로를 트레이드한다.[4]
이 당시 팔메이로의 보직은 좌익수였고 흔히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거포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중장거리타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팔메이로를 1루수로 보직변경시켰고 보직변경 첫 해에 팔메이로는 부진하지만 그 다음해부터 팔메이로는 좋은 활약을 펼쳤고 장타력 역시 증가하며 20개의 홈런을 치기 시작, 1993년에는 37개의 홈런을 친다. 이 때는 도루도 22개나 기록, 20-20을 기록하면서 호타준족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레인저스는 팔메이로와의 계약을 연장하는 대신 새로운 1루수로 윌 클락을 영입했고 팔메이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
레인저스에서의 마지막 시즌부터 시작된 팔메이로의 전성기는 오리올스에서 계속되었고 이적 첫 해인 1994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30 ~ 40개의 홈런과 100 ~ 140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한다.
한편, 팔메이로 대신 클락을 영입한 레인저스는 다시 팔메이로를 영입하려 했고 팔메이로는 1999년부터 다시 텍사스 레인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레인저스에서도 팔메이로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간 47-39-47-43-38의 A로드를 충분히 받쳐줄 수 있는 홈런과 100 ~ 120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한다. 그리고 2003년에는 명예의 전당 보증수표라 할 수 있는 500홈런을 돌파한다. 2002년에는 43홈런을 치며 57홈런을 친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100홈런 콤비를 이루기도 했다.[5]
1999년에는 절정의 타격 능력을 발휘해 최전성기를 기록했다. 덕분에 MVP 투표 5위를 비롯해 갖가지 상을 싹쓸이하다못해 골드글러브까지 가져갔는데, 이 시즌에 출전한 기록을 보면 1루수로는 단 28경기만 출전하고 나머지 128경기는 지명타자로 출전했음에도 1루 골드글러브를 가져갔다는 것 때문에 감독과 코치들이 뽑는 골드글러브 투표의 신뢰도 하락에 본의 아니게 한 몫을 하기도 했다.
레인저스는 팔메이로가 장타력은 계속 보유하고 있었지만 나이가 이미 40에 가까웠고 정확도가 떨어져간다고 판단해 팔메이로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6]
2004년, 팔메이로는 다시 오리올스로 건너갔고 전성기의 기량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팀의 노장으로서 활약한다.
그리고 2005년[7] 에는 3000안타를 기록하며 역대 4번째로 3000안타 - 500홈런을 모두 기록한 선수가 된다. 비록 기량이 예전만 못했지만 은퇴를 해야할만큼 쇠퇴한건 아니었기 때문에 팔메이로는 장차 600홈런과 2000타점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3천 안타 달성 며칠 뒤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면서 몰락이 시작되었다.'''[8]
팔메이로는 동료 미겔 테하다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두 선수가 B12라면서 준 알약을 먹었기 때문[9] 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미 약물 복용자로 찍힌 팔메이로는 결국 후반기에는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자의와는 상관없이 은퇴해야 했다.[10]
비록 팔메이로는 약물을 고의로 복용하지 않았다[11] 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기까지 했지만 이미 주변의 시선은 싸늘히 식어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최근 기사에 따르면 팔메이로는 지속해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고 한다. 'ESPN'에 따르면 팔메이로는 2005년 은퇴 당시 "12년 뒤에도 내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면 메이저리그 복귀를 생각해볼 것이다. 그때 쯤이면 사람들도 나의 무고함을 인정해줄 것이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후 12년이 지난 가운데, 팔메이로는 자신이 언급한대로 메이저리그 복귀 의견을 밝혔다. 최근에도 현지 언론을 통해 "나는 단 한 번도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정말 그 점에 관해서는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나이가 53세인 만큼 팔메이로의 메이저리그 복귀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팔메이로는 12년 전 자신이 언급한대로 메이저리그 복귀 발언을 했고, 계속해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고 있다.#
라파엘 팔메이로는 정교함의 상징인 3,000안타, 파워를 수반한 500홈런, 그리고 오랜 시간 뛰어난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꾸준함까지, 이러한 능력을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전부 입증했고,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위대한 타자로 기억될 수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그의 신사적인 매너와 야구에 대한 진지한 자세, 팬들을 언제나 정중하게 대하는 성품은 기록 이상으로 중요한 '명예'의 조건에 부합하고 있었다. 따라서 팔메이로는 명예의 전당의 일원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보유한 이상적인 대선수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약물복용과 관련하여 거짓말과 책임 회피로 일관하면서 야구계에서 완전히 입지를 잃었다.'''
팔메이로는 청문회에서의 뻔뻔한 거짓말이 위증으로 밝혀지고, 약물의 적발 이후 동료인 테하다에게 책임을 떠 넘기면서 치졸하게 발뺌을 하는 태도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기품있는 대선수'라는 인식에서 '염치없는 거짓말쟁이'로 미국의 대중들에게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미국 사회가 공인들에게 절대 금기 시 하는 뻔뻔한 거짓말, 그것도 법정에서 선서까지 한 그가 태연하게 위증을 했다는 점에 대하여 대중들은 극도로 실망했으며, 한 술 더떠 동료인 테하다를 팔아서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추한 모습이 결정타가 되어 모두가 등을 돌린 것이다.
결국 명예를 잃은 그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었으며, 2011년 첫 해 투표에서 득표율이 고작 11%에 머물렀다. 얼마 안되는 득표율마저 조금씩 까먹다가 결국 2014년 4.4%의 득표율에 그치게 되어 영구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역사상 최초로 3000안타를 달성하고 명예의 전당에 탈락한 선수[12] 로 남게 되었다.
데드풀 만화에서는 데드풀이 전 세계 정보를 다 볼 수 있게 되자 하는 말이 "어? 이거 라파엘 팔메이로의 은행 계좌 기록이잖아? 역시 사실이었어!"다(...)
장남 패트릭 팔메이로는 2008년 22라운드로 피츠버그에 지명됐지만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지명받지 못하며 아마추어 FA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입단했지만 3년간 루키리그를 못 벗어나며 그대로 방출됐다. 2015년부터는 독립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2015년 9월 라파엘 팔메이로도 같은 팀에 입단해 잠시나마 부자가 한솥밥을 먹었다. 팔메이로는 딱 1경기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2016년 차남 프레스턴 팔메이로가 7라운드 211픽으로 볼티모어에 지명되었다. 부드러운 스윙과 배트 스피드가 돋보이지만 주 포지션인 1루수에게 바라는 수준의 파워는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2017년 12월, 갑자기 '''메이저리그 복귀를 추진'''한다는 기사가 떴다. 현재 그의 나이는 무려 53세. 그러나 믈브 팬들의 반응은... 출처
어쨌거나 본인은 여론에 굴하지 않고 미국 독립리그 어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싱글A 상위권 정도의 수준으로, 전직 메이저리거도 팀당 한 두명씩 있다) 클레번 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아무리 낮은 레벨이라지만 8월 중순까지 31경기에서 .301/.424/.495. 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만 53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수능력이 충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팬그래프에서는 2018년 볼티모어의 안습한 상황과 맞물려 볼티모어에서 데려가면 역대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크리스 데이비스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반농반진성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출처 출처 2
한편으로 마구마구에서는 2018년부터 재평가되어 99년 라파엘 카드가 가장 비싼 엘리트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잡덱 패치로 유행하게 된 잡덱 올스타의 팀컬러 2를 받으려면 1루에 엘리트를 넣어야만 하는데, 라파엘 카드가 1루 듀얼포지션이 가능한 지명타자 엘리트 카드 중 가장 능력치가 좋기 때문.[13]
텍사스 레인저스 현역 시절. 멋드러진 콧수염을 자랑하던 강타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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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청문회에서 나온 약쟁이로...
1. 개요
쿠바 출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선수. 3000안타 - 500홈런을 동시에 기록한 단 6명의 선수[1] 중 한 명이자 30홈런 - 100타점을 10회 기록한 강타자[2] 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강타자들[3] 때문에 존재감이 바랬고, 이후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이 드러나 그동안의 활약마저 빛을 잃었다. 통산 기록은 타율 0.288, 출루율 0.371, 장타율 0.515, 3020안타, 569홈런, 1835타점.
2. 초기 메이저리거 생활
쿠바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집안은 반 카스트로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결국 팔메이로가 어린 시절,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1982년 드래프트 8라운드 전체 189번으로 뉴욕 메츠의 지명을 받은 팔메이로이지만 메츠의 지명을 거부하고 미시시피 주립대에 입학한 후 1985년에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2번으로 시카고 컵스의 지명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시작하지만 컵스는 1988년 12월 5일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팔메이로를 트레이드한다.[4]
이 당시 팔메이로의 보직은 좌익수였고 흔히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거포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중장거리타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3. 텍사스 레인저스 ~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
텍사스 레인저스는 팔메이로를 1루수로 보직변경시켰고 보직변경 첫 해에 팔메이로는 부진하지만 그 다음해부터 팔메이로는 좋은 활약을 펼쳤고 장타력 역시 증가하며 20개의 홈런을 치기 시작, 1993년에는 37개의 홈런을 친다. 이 때는 도루도 22개나 기록, 20-20을 기록하면서 호타준족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레인저스는 팔메이로와의 계약을 연장하는 대신 새로운 1루수로 윌 클락을 영입했고 팔메이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
레인저스에서의 마지막 시즌부터 시작된 팔메이로의 전성기는 오리올스에서 계속되었고 이적 첫 해인 1994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30 ~ 40개의 홈런과 100 ~ 140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한다.
4. 텍사스 레인저스 2기 시절
한편, 팔메이로 대신 클락을 영입한 레인저스는 다시 팔메이로를 영입하려 했고 팔메이로는 1999년부터 다시 텍사스 레인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레인저스에서도 팔메이로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간 47-39-47-43-38의 A로드를 충분히 받쳐줄 수 있는 홈런과 100 ~ 120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한다. 그리고 2003년에는 명예의 전당 보증수표라 할 수 있는 500홈런을 돌파한다. 2002년에는 43홈런을 치며 57홈런을 친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100홈런 콤비를 이루기도 했다.[5]
1999년에는 절정의 타격 능력을 발휘해 최전성기를 기록했다. 덕분에 MVP 투표 5위를 비롯해 갖가지 상을 싹쓸이하다못해 골드글러브까지 가져갔는데, 이 시즌에 출전한 기록을 보면 1루수로는 단 28경기만 출전하고 나머지 128경기는 지명타자로 출전했음에도 1루 골드글러브를 가져갔다는 것 때문에 감독과 코치들이 뽑는 골드글러브 투표의 신뢰도 하락에 본의 아니게 한 몫을 하기도 했다.
5. 볼티모어 오리올스 2기 시절, 그리고 몰락
레인저스는 팔메이로가 장타력은 계속 보유하고 있었지만 나이가 이미 40에 가까웠고 정확도가 떨어져간다고 판단해 팔메이로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6]
2004년, 팔메이로는 다시 오리올스로 건너갔고 전성기의 기량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팀의 노장으로서 활약한다.
그리고 2005년[7] 에는 3000안타를 기록하며 역대 4번째로 3000안타 - 500홈런을 모두 기록한 선수가 된다. 비록 기량이 예전만 못했지만 은퇴를 해야할만큼 쇠퇴한건 아니었기 때문에 팔메이로는 장차 600홈런과 2000타점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3천 안타 달성 며칠 뒤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면서 몰락이 시작되었다.'''[8]
팔메이로는 동료 미겔 테하다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두 선수가 B12라면서 준 알약을 먹었기 때문[9] 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미 약물 복용자로 찍힌 팔메이로는 결국 후반기에는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자의와는 상관없이 은퇴해야 했다.[10]
비록 팔메이로는 약물을 고의로 복용하지 않았다[11] 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기까지 했지만 이미 주변의 시선은 싸늘히 식어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최근 기사에 따르면 팔메이로는 지속해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고 한다. 'ESPN'에 따르면 팔메이로는 2005년 은퇴 당시 "12년 뒤에도 내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면 메이저리그 복귀를 생각해볼 것이다. 그때 쯤이면 사람들도 나의 무고함을 인정해줄 것이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후 12년이 지난 가운데, 팔메이로는 자신이 언급한대로 메이저리그 복귀 의견을 밝혔다. 최근에도 현지 언론을 통해 "나는 단 한 번도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정말 그 점에 관해서는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나이가 53세인 만큼 팔메이로의 메이저리그 복귀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팔메이로는 12년 전 자신이 언급한대로 메이저리그 복귀 발언을 했고, 계속해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고 있다.#
6. 평가
라파엘 팔메이로는 정교함의 상징인 3,000안타, 파워를 수반한 500홈런, 그리고 오랜 시간 뛰어난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꾸준함까지, 이러한 능력을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전부 입증했고,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위대한 타자로 기억될 수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그의 신사적인 매너와 야구에 대한 진지한 자세, 팬들을 언제나 정중하게 대하는 성품은 기록 이상으로 중요한 '명예'의 조건에 부합하고 있었다. 따라서 팔메이로는 명예의 전당의 일원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보유한 이상적인 대선수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약물복용과 관련하여 거짓말과 책임 회피로 일관하면서 야구계에서 완전히 입지를 잃었다.'''
팔메이로는 청문회에서의 뻔뻔한 거짓말이 위증으로 밝혀지고, 약물의 적발 이후 동료인 테하다에게 책임을 떠 넘기면서 치졸하게 발뺌을 하는 태도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기품있는 대선수'라는 인식에서 '염치없는 거짓말쟁이'로 미국의 대중들에게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미국 사회가 공인들에게 절대 금기 시 하는 뻔뻔한 거짓말, 그것도 법정에서 선서까지 한 그가 태연하게 위증을 했다는 점에 대하여 대중들은 극도로 실망했으며, 한 술 더떠 동료인 테하다를 팔아서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추한 모습이 결정타가 되어 모두가 등을 돌린 것이다.
결국 명예를 잃은 그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었으며, 2011년 첫 해 투표에서 득표율이 고작 11%에 머물렀다. 얼마 안되는 득표율마저 조금씩 까먹다가 결국 2014년 4.4%의 득표율에 그치게 되어 영구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역사상 최초로 3000안타를 달성하고 명예의 전당에 탈락한 선수[12] 로 남게 되었다.
7. 기타
데드풀 만화에서는 데드풀이 전 세계 정보를 다 볼 수 있게 되자 하는 말이 "어? 이거 라파엘 팔메이로의 은행 계좌 기록이잖아? 역시 사실이었어!"다(...)
장남 패트릭 팔메이로는 2008년 22라운드로 피츠버그에 지명됐지만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지명받지 못하며 아마추어 FA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입단했지만 3년간 루키리그를 못 벗어나며 그대로 방출됐다. 2015년부터는 독립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2015년 9월 라파엘 팔메이로도 같은 팀에 입단해 잠시나마 부자가 한솥밥을 먹었다. 팔메이로는 딱 1경기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2016년 차남 프레스턴 팔메이로가 7라운드 211픽으로 볼티모어에 지명되었다. 부드러운 스윙과 배트 스피드가 돋보이지만 주 포지션인 1루수에게 바라는 수준의 파워는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2017년 12월, 갑자기 '''메이저리그 복귀를 추진'''한다는 기사가 떴다. 현재 그의 나이는 무려 53세. 그러나 믈브 팬들의 반응은... 출처
어쨌거나 본인은 여론에 굴하지 않고 미국 독립리그 어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싱글A 상위권 정도의 수준으로, 전직 메이저리거도 팀당 한 두명씩 있다) 클레번 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아무리 낮은 레벨이라지만 8월 중순까지 31경기에서 .301/.424/.495. 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만 53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수능력이 충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팬그래프에서는 2018년 볼티모어의 안습한 상황과 맞물려 볼티모어에서 데려가면 역대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크리스 데이비스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반농반진성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출처 출처 2
한편으로 마구마구에서는 2018년부터 재평가되어 99년 라파엘 카드가 가장 비싼 엘리트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잡덱 패치로 유행하게 된 잡덱 올스타의 팀컬러 2를 받으려면 1루에 엘리트를 넣어야만 하는데, 라파엘 카드가 1루 듀얼포지션이 가능한 지명타자 엘리트 카드 중 가장 능력치가 좋기 때문.[13]
8. 연도별 기록
[1] 그 외 5명은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에디 머레이, 알렉스 로드리게스, 알버트 푸홀스.[2] 테드 윌리엄스가 자신의 스윙과 가장 비슷한 스윙을 하는 선수로 팔메이로를 뽑은 적이 있다.[3] 마크 맥과이어, 켄 그리피 주니어, 배리 본즈, 새미 소사,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4] 이 트레이드에서 팔메이로와 함께 레인저스로 건너간 선수중의 한 명이 제이미 모이어. 하지만 이 당시 모이어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5] 이후 A-로드와 팔메이로는 2001년 12월에 열린 박찬호의 텍사스 입단식에서 박찬호와 함께 셋이서 기념 사진을 찍은 바 있다. [6] 당시 레인저스는 직전해인 2003년 시즌 MVP를 차지한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연봉을 감당할 의사가 없어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시켰고, 대학야구를 초토화한 거물 1루수 유망주 마크 테셰이라가 대기중인 상황이었다.[7] 이 해에 호세 칸세코의 <Juiced: Wild Times, Rampant 'Roids, Smash Hits & How Baseball Got Big>가 발간되며 제이슨 지암비, 이반 로드리게스, 마크 맥과이어 등과 함께 칸세코에게 스테로이드를 소개받아 복용한 선수로 지목된바 있고, 의회 청문회에서도 "Let me start by telling you this: I have never used steroids, period. I don't know how to say it any more clearly than that. Never"라는 발언으로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을 일축한바 있다.[8] 구단 측에서 3000안타 달성 축하 행사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팔메이로 본인이 취소해 줄 것을 요청했다.[9] 이 비타민(이라는) 알약은 테하다가 도미니카에서 들여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2007년 테하다 역시 미첼 리포트에서 스테로이드 복용자로 언급되었다.[10] 부상까지 겹친데다 감독과 구단측으로부터 사실상 전력외 통보를 받았으며, 시즌 마지막 날 동료들과 코칭 스테프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아침 일찍 혼자 구장에 와서 사물함을 비웠다고 한다.[11] 2003년 비공개 도핑 테스트 결과가 공개되어 자신의 누명이 벗겨졌으면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당시 적발된 104명 중에는 데이빗 오티즈, 매니 라미레즈, 새미 소사, 알렉스 로드리게스만이 드러났다.) 비타민이든 뭐든 준다고 넙죽 받아먹은 자신이 멍청했다고 자책하기도.[12]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뛰었던 캡 앤슨이라는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기자단 투표로는 들어가지 못했고 베테랑 위원회로 들어간 사례(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이 활성화될 당시 이미 고인이었고, 애초에 당시에는 자격 대상 선수가 너무 많아 끼어들기가 힘들었다는 것을 감안하여야 한다.)도 있고,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피트 로즈가 있었다. 피트 로즈는 3,000안타를 넘어 4,000안타도 넘긴 선수긴 하나, 그는 명예의 전당에 투표를 받은 적이 없었다. 승부 조작 행위로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을 얻기 이전에 영구 제명을 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예의 전당 입성 투표를 받아서 탈락한 선수는 팔메이로가 처음이다.[13] 원포지션이 1루인 카드는 모두 수비형인 반면, 원포지션이 지명타자인 카드는 수비를 할 일이 없기에 능력 배분에 상관없이 스피드형이라 훨씬 유용하다. 같은 이유로 김봉연 엘리트도 재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