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어 Ltd.

 


'''Xbox Game Studios'''
'''RARE Ltd.'''
[image]
<colbgcolor=#e6e6e6><colcolor=#2d2f34> '''유형'''
자회사
'''업종'''
비디오 게임 사업
'''설립일'''
1985년
'''소재지'''
영국 트와이크로스
'''모회사'''
엑스박스 게임 스튜디오
'''스튜디오 헤드'''
Craig Duncan
(크레이그 던칸)
공식 사이트
1. 개요
2. 역사
2.1. 초창기 (1985 ~ 1993)
2.2. 닌텐도의 세컨드 파티로서 (1994 ~ 2002)
2.3. 엑스박스 게임 스튜디오 산하의 자회사로서 (2002~)
4. 발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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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게임 개발 회사. 1985년에 Ultimate Play The Game이라는 이름으로 크리스 스탬퍼와 팀 스탬퍼가 세운 회사로, 1988년부터 기존에 Ultimate Play The Game 산하의 IP들을 U.S. 골드 사에 팔아넘긴 이후 레어 또는 레어웨어라는 이름을 사용해 왔다. 1993년부터 2002년까지는 닌텐도의 세컨드 파티였으며, 2002년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자회사가 되었다. 친근하고 귀여운 그래픽 밑에 복잡하고 섬세하며 때로는 흉악하기까지 한 게임을 숨겨놓는 것으로 잘 알려진 개발사다.

2. 역사



2.1. 초창기 (1985 ~ 1993)


UPTG 시절에는 ZX 스펙트럼, 코모도어 64 등 영국에서 주로 사용하던 플랫폼으로 이런저런 게임들을 만들다가, 레어로 이름을 개명할 때 즈음 해서 본격적으로 패미컴 쪽으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시절의 작품들을 보면 게임을 정말 닥치는대로 찍어내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슬라롬이나 R.C. 프로-암 같은 고전 게임들도 있지만 휠 오브 포춘이나 타부와 같이 게임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희한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도 했고, 심지어 저질 게임 배급사로 악명높았던 '''LJN'''이 배급한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엘름 가의 악몽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1]
하지만 이 시절에 레어가 오늘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해 준 첫 번째 작품, '''배틀토드'''가 나오게 되었다. 훌륭한 조작감과 그래픽 및 개성적인 캐릭터성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이 게임은 세 번째 레벨인 터보 터널부터 극악한 난이도를 내두르며 당시 수많은 아이들에게 좌절감을 선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터보 터널을 넘어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배틀토드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 시점부터 레어가 게임 공장을 벗어나 몇 가지의 타이틀을 집중해서 만들기 시작했다.[2]

2.2. 닌텐도의 세컨드 파티로서 (1994 ~ 2002)


1993년 당시 레어는 실리콘 그래픽스의 워크스테이션으로 만든 3D CG를 이용하여 복싱 게임을 연구 중이었다. 이런 그들의 작업을 닌텐도는 인상깊게 지켜봤고, 다케다 겐요의 추천에 의해 당시 닌텐도의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레어에 투자하기로 결정해 지분을 49% 매입하고 세컨드 파티에 등록했다. 닌텐도의 세컨드 파티로서 있던 시절에는 '''레어웨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후 닌텐도에게 동키콩의 라이센스를 받아 동키콩 시리즈의 리부트라 할 수 있는 동키콩 컨트리(슈퍼 동키콩)를 개발하게 된다. 동키콩 컨트리는 일본에 300만장, 세계적으로 900만장 판매라는 대박을 터트리며 북미에서 슈퍼패미컴메가드라이브와의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후속작인 동키콩 컨트리 2동키콩 컨트리 3도 좋은 평가와 판매량을 보여줬다. 캐릭터, 세계관, 게임 방식 등 현재 동키콩 시리즈의 전반적인 기틀은 사실상 이 시기에 모두 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때문에 동키콩 시리즈 팬들에게 있어 레어는 지금까지도 큰 의미를 가진 회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 다음 세대인 닌텐도 64에서도 레어는 두각을 나타냈는데,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게임은 현대 FPS의 기틀을 확립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골든아이이다. 007 골든 아이를 게임으로 옮긴 영화 기반 게임인데다가 당시 콘솔에서는 흔치 않았던 FPS 장르라서 기대치가 낮았지만, 상당히 서둘러서 만들었던 게임임에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3] 하지만 이후 007 시리즈의 라이센스를 받지 못했고, 이에 007 시리즈와는 별개의 세계관이지만 명맥을 잇는 정신적 후속작퍼펙트 다크가 나오게 되었다.
이외에도 레어는 닌텐도 64 플랫폼에서 제트 포스 제미니, 블라스트 코어 같은 실험적인 게임들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보다도 N64 시절 레어 하면 골든아이와 함께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게임이 '''반조-카주이'''다. 한국에서는 닌텐도 팬들조차 잘 모를 생소한 시리즈지만, 레어 하면 플랫포머고 플랫포머 하면 반조-카주이라 할 정도로 회사의 정체성과 가장 단단하게 붙어 있는 시리즈다.
반조-카주이는 원래 '프로젝트 드림'이라고 알려진 미완성 게임에서 뻗어 나왔는데, 어린 소년이 해적단과 맞서 싸우는 내용이었던 프로젝트 드림에 나오던 반조라는 곰 캐릭터를 가져와 게임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이 곰이 어떻게 더블점프를 한다고 설명할까 생각하다가 등 뒤에 메고 있는 가방에서 카주이라는 새가 튀어나온다는 괴이한(...)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면서 거기서부터 게임이 뻗어나왔다. 굼뜨고 잉여스러운 반조, 츤데레끼 넘치는 카주이, 카주이하고 맨날 싸우는 NPC 보틀즈 등의 캐릭터가 정립되고 슈퍼 마리오 64에 영향을 받은 3D 플랫포머 게임플레이가 차례대로 붙으면서 반조-카주이는 훌륭한 유머감각과 탄탄한 게임플레이가 받쳐주는 완벽한 플랫포머 게임이 되었고, 발매 후 평단의 호평 속에 30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N64 막바지에 나왔던 속편인 반조-투이 역시 N64의 성능을 끝까지 끌어내 거대한 맵을 구현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3. 엑스박스 게임 스튜디오 산하의 자회사로서 (2002~)


2002년 9월에 닌텐도가 레어의 지분을 마이크로소프트로 매각하면서 레어는 엑스박스의 퍼스트 파티 개발사가 되었는데, 이 이후로는 오랫동안 성과가 그리 좋지 못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MS가 레어를 망쳤다고 말하지만 내막을 살펴 보면 레어가 예전같지 않은 건 딱히 누구 잘못이라고 따지기가 힘들다. 사실 N64 시절 레어의 굵직한 게임들 중에서는 개발과정이 혼란스럽지 않았던 게임들이 거의 없었다. 반조-카주이는 상기한 대로 프로젝트 드림이 너무 커지면서 거기서 게임을 잘라내서 만든 결과물이였고, 퍼펙트 다크는 개발 도중에 골든아이 007의 핵심 개발진이 대거 퇴사했으며,[4] 컨커 최악의 날은 N64 극초기에 나오기로 되어 있던 게임이 98년으로 한번 발매일이 연기된 이후 같은 해 나온다는 반조-카주이와 컨셉이 겹친다는 이유로 성인향으로 마개조되어 N64의 황혼기가 돼서야 나왔다. 이처럼 레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비정상적일 정도로 복잡하게 게임을 만들어 왔지만, N64 때만 해도 게임 개발사들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복잡한 중간과정 없이 유동적으로 방향을 바꿔가면서 게임을 만드는 게 가능했고, 레어는 이 과정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질 좋은 게임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N64 이후로는 개발진의 규모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고, 그만큼 게임을 만드는 데에 드는 비용도 늘어났기 때문에, 게임을 만들다 말고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더욱이 개발사가 커질 수록 기존의 유동적인 개발 환경에는 상하 구조가 생길 수밖에 없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개발자들도 많았다.[5] 이 와중에도 레어는 콘커: 라이브 앤 리로디드[6]나 카메오, 비바 피냐타와 같이 개성이 살아 있는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게임들을 내놓았지만 전성기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했으며, 퍼펙트 다크 제로처럼 전작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게임들이나 반조-카주이: 너트와 볼트 처럼 오랜 시간 고민해서 내놓았던 게임들이 팬층의 부정적인 반응을 받기도 했다. 이에 더해 2008년에 창립자인 크리스 스탬퍼와 팀 스탬퍼가 퇴사한 이후 회사가 꽤 오랫동안 방향성을 잃은 것도 한몫 했다. 이 즈음 해서 레어는 키넥트를 사용해 다양한 게임들을 내놓으려 했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에게 거의 잊혀지게 되었다.
한동안 이렇다할만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레어는 엑스박스 원 발매 이래로 새로운 기대를 얻기 시작했다. 런치 타이틀인 킬러 인스팅트는 레어가 과거에 만들었던 유명한 격투 게임의 속편인데, 마침 당시 닌텐도와 레어를 오가면서 시리즈를 이끌던 직원인 켄 롭이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스튜디오의 감독직으로 올라가면서 킬러 인스팅트를 부활시키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오면서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레어의 감독 하에 그 악명 높은 '''지아이조 게임'''의 개발사였던 더블 헬릭스 게임즈[7]가 만들었는데, 의외로 상당한 퀄리티를 보여주며 격투 게임 커뮤니티의 좋은 호응을 받았고 한 동안 대회에서도 자주 등장했었다. 컨텐츠 업데이트가 사실상 끊긴 지금도 팬들의 서명운동이 일어날 정도.
한편 레어 본진은 2015년 E3에서 레어 리플레이라는 궁극의 추억팔이 컬렉션을 공개했는데, Ultimate Play The Game 시절부터 반조-카주이: 너트와 볼트에 이르는 총 30개의 타이틀을 30달러 가격에 내놓으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지난 몇년간의 레어 게임들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레어 리플레이는 무엇보다도 게이머들이 기억에서 사라졌던 레어를 다시금 기억하고, 레어의 과거를 재평가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배틀토드나 반조-카주이 같은 기존의 고전들에 새로 입문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간 MS가 레어를 죽였다고 하던 사람들이 비바 피냐타를 해보고 깜짝 놀란 경우도 많았으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N64 타이틀인 블라스트코어나 제트 포스 제미니의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에 놀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레어는 이 분위기를 몰아 차기작으로 Sea of Thieves를 준비했다. MMO의 외양을 가진 해적 테마의 게임이지만 육성 요소가 전무하고 사용자 간의 의사소통을 통해 내용을 만들어낸다는 컨셉으로 제작된 게임인데, 발매 초기에는 전통적인 육성 요소가 없고 맵이 작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미국에서 발매 당시 판매량 1위를 기록하는 등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콘솔을 자주 사용하지만 비교적 가볍게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유지했으며, 지속적인 컨텐츠 추가를 통해 2018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조용히 트위치 순위표를 역주행하며 한창때는 미국 기준으로 트위치에서 포트나이트리그 오브 레전드와 경쟁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이후에도 사용자 수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순항하고 있으며, 닫을 뻔했던 회사를 건실하게 되살리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앞으로 레어가 기존 IP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미 베테랑들의 상당수가 플레이토닉으로 빠져나가 유카-레이리를 만들었고, 엑스박스 게임 스튜디오 측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레어의 과거 IP들을 살리고 있지만 정작 레어 본사가 관여한 기획은 배틀토드 신작의 감독 수준이다. 오히려 소규모의 팀이 에버와일드라는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X019에서 발표하기도 하는 등 앞으로도 기존 IP와는 무관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대신에 레어의 IP자체는 매우 잘 활용되는 중이며 킬러 인스팅트외에도 배틀토드나 퍼펙트다크등의 게임들이 엑스박스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3. 게임 음악


레어는 N64 시절부터 사내 작곡가가 4명이나 있을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음악에 집착을 많이 해 왔는데, 그 작곡가들이 하나같이 역량이 뛰어나서 훌륭한 사운드트랙을 많이 뽑아냈다.

1대 작곡가였던 데이빗 와이즈의 가장 전설적인 BGM은 역시 배틀토드다. 그중에서도 터보터널 BGM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는데, 게임은 화딱지나는데 음악은 좋다(...).

배틀토드 하면 역시 일시정지 BGM도 빼놓을 수 없다.


동키콩 컨트리, 동키콩 컨트리 2 역시 훌륭하며, 은근히 심오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BGM이 많다. 특히 Stickerbush Symphony는 비디오 게임 최고의 명곡으로 자주 화자된다. 이 시리즈의 전담 작곡가인 데이비드 와이즈는 이후 프리랜서로 나와 동키콩 컨트리 트로피컬 프리즈의 BGM을 다시 맡았다.


동키콩 컨트리 시리즈 때 즈음 들어온 작곡가들 중 하나인 그랜트 커크호프는 반조-카주이에서 N64의 훌륭한 음향 성능을 사용해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는 중독성 넘치는 BGM을 내놓았다.

골든아이 64의 음악과 DK Rap(...) 역시 커크호프가 맡았다.

4. 발매 작품



[1] 이 둘은 모두 AVGN에서 리뷰했다.[2] 비슷하게도 별의 커비 이전의 HAL 연구소 역시 AVGN한테 이름찍힌 회사라고 한다.[3] 사실 골든아이는 나이를 그렇게 잘 먹은 게임은 아니라서 오늘날 다시 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데, 난이도가 올라갈 수록 정확한 지시가 주어지지 않는 어려운 임무 목표를 수행해야 하고, 길찾기도 그렇게 수월하지 않기 때문에 하다 보면 약간 헷갈린다. 하지만 당대의 PC FPS들에 비해서 전투에 많이 집중을 했고 상당히 쫄깃한 조작감을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멀티플레이가 크게 성공하여 당시 미국에서 N64가 있던 집은 친구들을 불러서 패드 4개 꽂아놓고 골든아이 4인 대전을 하는 게 기본으로 여겨졌을 정도였다.[4] 이들은 나가서 프리 레디컬 디자인이라는 회사를 세웠고 타임스플리터즈라는 자체적인 시리즈를 만들었다. 프리 레디컬 디자인은 스타 워즈 배틀프론트 3이 엎어지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가 크라이텍의 멀티플레이 전담 개발사가 되었고, 다시 크라이텍의 재정위기 때문에 딥 실버에 인수되어 댐버스터 스튜디오로 개명을 했다.[5] 이는 닌텐도가 레어의 지분을 MS에 전부 매각한 이유이기도 하다.[6] 닌텐도의 세컨드 파티였던 시절 발매했던 콘커 최악의 날의 리메이크이다.[7] 현재는 아이언 갤럭시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