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저스 FC/역사
1. 개요
스코틀랜드의 축구 클럽 레인저스 FC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
2. 창단과 초기 (1872~1899)
스코틀랜드의 가장 성공적인 클럽 레인저스 FC의 기원은 모지스 맥닐, 피터 맥닐, 피터 캠벨, 윌리엄 맥베스가 글래스고 웨스턴 엔드 파크(Western End Park)에서 그들의 팀을 구성했을 때로부터 시작된다. "레인저스"라는 이름은 영국의 럭비 클럽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872년 5월 레인저스의 역사적인 첫 번째 경기는 '콜랜더 FC'와의 맞대결이였다. 이 경기에서 레인저스는 무득점 무승부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레인저스는 창단 해에 단 2경기만을 치뤘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클라이드'[1] 를 상대로 11-0이라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 클럽의 공식적인 시작은 첫 연례총회가 열린 1873년으로 인식된다. 이 연례총회에서 구단의 첫번째 직원들이 선출되었다.
레인저스는 점차 프로 축구단 형태의 모습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1876년 모지스 맥닐이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면서 첫번째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게 된다. 1876년에는 새롭게 결성된 글래스고 축구 협회의 창립 멤버로 참여하였다.
1877년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 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두 번의 재경기 끝에 "베일 오브 리벤"에 3:2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1888년, 레인저스의 숙명의 라이벌 셀틱 FC가 창단되었다. 첫 번째 올드 펌 더비에서 레인저스는 셀틱에게 5:2로 패배하였다.
1890년,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의 첫 시즌이 시작되었다. 번 뱅크와 키닝 파크를 거쳐 아이브록스 파크를 홈구장으로 삼은 레인저스는 리그에 참가하였다.
클럽 최초의 리그 경기에서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을 상대로 5:2로 승리한 레인저스는, 공동 1위 덤버튼과 플레이오프를 치룬 끝에 우승 타이틀을 공유하기로 합의하였고, 이는 역사상 유일한 공동 우승으로 남게 되었다.
레인저스의 첫 스코티시 컵 우승은 3년 뒤인 1893-94 시즌 셀틱을 상대로 차지하였다. 이 경기에서 레인저스는 3:1 승리를 거두었다. 레인저스는 1887년 잉글랜드 FA컵 준결승에도 진출하며 우승에 근접하기도 했다.
레인저스는 1897년과 1898년 덤버튼과 킬마녹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다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898-99 시즌 레인저스는 역사적인 '''전승 우승'''을 달성하였다.
1899년은 윌리엄 윌턴이 레인저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고,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을 새롭게 건설할 수 있었다. 또한 구단은 당시 회장이였던 제임스 헨더슨의 주도로 첫 이사회도 선임하게 되었다. 세기가 바뀔 무렵, 신생팀 '''글래스고 자이언트'''는 리그 2회 우승과 스코틀랜드 컵 3회 우승을 거두면서 스코틀랜드의 명문구단이 되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3. 윌리엄 윌턴의 시대 (1899~1920)
레인저스는 1900년부터 1918년 사이에 7번[2] 을 우승하는 등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아이브록스 참사같은 재해를 겪기도 했고, 1902년부터 1910년은 셀틱이 리그를 지배하는 등 좋지 않은 기억도 있었다.
1919년에 리그 우승을 놓친 윌리엄 윌턴과 그의 수석코치 빌 스트루스는, 그 다음 해인 1920년 42경기에서 106골을 몰아치며 리그 우승을 되찾아왔고, 이는 클럽 역사상 최고의 시즌 중 하나로 남게 된다.
그러나 1920년 5월, 윌리엄 윌턴 감독은 보트 사고로 사망했고, 수석코치 빌 스트루스는 2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4. 리그의 지배자, 빌 스트루스 (1920~1954)
1920년 윌리엄 윌턴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감독직을 맡은 빌 스트루스는 레인저스에서 가장 성공적인 감독이였으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레인저스는 14번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1939년 1월 2일, '''118,567'''명의 팬들이 전통적으로 새해 첫 날 열리는 올드 펌 더비에서의 승리를 지켜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고, 영국 내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1920년부터 1954년까지 '''34년''' 동안 레인저스를 이끌었던 스트루스 감독은 스코틀랜드 축구 역사상 그 어떤 감독보다 더 많은 트로피를 차지하였다. '''리그 18회, 스코틀랜드 컵 10회, 2개의 리그 컵, 19개의 글래스고 컵'''을 획득하였다.
1948-49년 스코틀랜드 내 최초로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했던 이 황금기는 1990년대 레인저스의 또 한 번의 독주가 있기 전까지는 구단 역사상 유일한 최고의 황금기였다.
5. 스콧 시몬의 유럽 대항전 도전기 (1954~1967)
스트루스의 후임으로 부임한 스콧 시몬은 전임 감독의 성공을 이어가며 리그 6회 우승, 스코틀랜드 컵 5회 우승 스코틀랜드 리그 컵 4회 우승을 거두었고 1963-64 시즌에는 2번째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레인저스는 이 시기 유럽대항전에 출전하였는데, 1960년 유러피언컵 준결승에 진출해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12-4로 패하였고, 1961년과 1967년 각각 ACF 피오렌티나와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결승전에서 패배하는 등 유럽대항전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6. "아이브록스 참사"
1971년 1월 2일, 올드 펌 더비가 끝날 무렵 레인저스 팬들이 패배에 격분하며 경기장을 떠나려다 계단 출구에서 66명이 사망하였다.
조사 결과 이 참사는 최종 휘슬이 울리고 10분 뒤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누군가가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촉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윌리엄 와델 감독과 스코틀랜드의 모든 축구선수는 사건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 패배에 충격을 느꼈고, 새로운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을 짓기 위한 노력을 이끌었다.
희생자 가족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자선경기가 참사 이후 열렸는데, "81,405명"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인저스와 셀틱의 연합팀이 햄던 파크에서 스코틀랜드 XI를 구성했다.
7. 유럽에서의 성공
스콧 시몬의 후임 데이비드 화이트는 레인저스 역사상 처음으로 무관에 그치면서 경질되었고, 그 후임으로 윌리엄 와델이 선임되었다.
와델은 리그 우승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레인저스의 오랜 숙원인 유럽 대항전 우승을 거둘 수 있게 해주었다.
1971-72 시즌 누 캄프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디나모 모스크바를 상대로 3-2 스코어를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우승으로 레인저스는 조크 스타인이 이끈 셀틱의 그늘에서 한시름 벗어나게 되고, 조크 월리스 감독 아래 다시 국내에서의 성공을 거둘 준비를 마치게 된다.
8. 11년 만의 리그 우승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챔피언 윌리엄 와델은 1992년 사망 전까지 아이브록스에서 다양한 이사회의 역할을 맡았다.
그의 후계자 조크 월리스는 레인저스의 감독을 2번이나 맡은 최초의 남자였다.
그의 첫 시즌인 1972-73 시즌 클럽 100주년 기념식에서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 컵 우승을 차지했다.
월리스의 지도 아래 레인저스는 마침내 1974-75 시즌, 셀틱의 9년 간의 리그 지배기간을 끝내고 1964년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1975-76 시즌에는 팀 역사상 3번째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하는 성과를 달성하게 된다.
월리스는 1977-78 시즌 개인으로선 2번째, 팀의 4번째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하는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하였지만, 갑작스럽게 감독직에서 사임하고 만다.
그의 예상하지 못한 사임은 레인저스의 약 10년 간의 리그 무관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1983년에 다시 감독직에 복귀해 1986년에 해고될 때까지의 월리스의 두 번째 감독 경력은, 고작 리그 컵 2회 우승이라는 결과만을 거두고 만다.
9. 침체의 시대
레인저스의 주장 출신 존 그레이그가 5시즌 동안 감독직에 재임했지만, 레인저스는 리그 컵 2개와 스코틀랜드 컵 2개를 따면서 리그 우승에누 실패했다.
그레이그의 레인저스는 첫 시즌에 2위를 차지했지만 그것이 가장 높은 순위였다.
조크 월리스가 다시 팀에 복귀했지만, 1기 시절의 성공을 되풀이 할 수는 없었고, 그레이엄 수네스로 교체된다.
조크 월리스의 퇴장 이후 레인저스는 2번째 황금기, 국내 독주를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10. 9연속 우승
1988-89 시즌부터 1996-97 시즌까지 레인저스는 9연속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게 된다. 이 9시즌 중 첫 3시즌은 그레이엄 수네스 체제 아래 달성했고, 나머지 6시즌은 윌리엄 스미스에 의해 달성되었다.
11. 유럽을 향한 재도전
리그를 9연속 제패한 레인저스는 눈길을 돌려 유럽대항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는 과도한 투자로 이어졌고,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는 핵심 원인이 된다.
1998년 레인저스는 첫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딕 아드보카트를 선임했다. 9연속 우승 멤버에 확실한 투자까지 받은 아드보카트는 즉각적인 성과를 내면서 팀의 6번째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한다.
하지만 토레 안드레 플로같이 클럽 역사상 최고액 선수를 가지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아드보카트는 다음 시즌에 경질되고 만다.
후임 감독 알렉스 매클리시도 첫 시즌에서 7번째 "도메스틱 트레블"과 사상 최초 "50번째 리그 우승"을 기록하는 등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당시 회장이 유럽대항전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 허가했던 무리한 지출은 구단의 부채로 다가왔고, 많은 선수들이 떠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해 리그 타이틀을 다시 셀틱에게 빼앗기게 된다.
2004-05 시즌에는 착실한 선수보강을 이뤄내면서 레인저스는 다시 리그 우승을 위한 힘을 얻게 된다.이 시즌 리그 우승은 마지막 매치데이에서의 극적인 마무리로 절정에 달했다.
당시 리그 1위를 차지하고 있던 셀틱이 머더웰에게 늦은 시간 실점하면서 패배하였고, 레인저스가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에서 하이버니언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당시 셀틱을 향해 리그 트로피를 전달하려던 헬리콥터가 방향을 바꿔 아이브록스로 전달되는 해프닝이 있을 정도로 극적인 경기였다.
매클리시 감독의 후임으로 프랑스 출신의 폴 르귀엔이 감독으로 선임되었지만, 주장과의 불화설이 제기되는 가운데 상호 합의 하에 계약해지로 팀을 떠났다.
그의 후임은 90년대 말 팀의 성공을 이끌었던 월터 스미스가 재선임되었다.
그의 수석코치 알리 맥코이스트와 함께, 스미스는 레인저스를 3년 연속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또한 스코틀랜드 컵 두개와 리그 컵 세개를 우승했고 비록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2-0으로 패하긴 했지만 2008 UEFA컵 결승에 진출했다.
스미스는 2010-11 시즌 말에 레인저스 감독으로 예정되어 있던 알리 맥코이스트와 교체되기 위해 물러났다.
12. 법정 관리 체제와 1부 리그 퇴출
2011년 4월, 스스로 '골수 레인저스 팬'이라고 '''주장'''하던 사업가 크레이그 화이트와 파트너 찰스 그린이 2800만 파운드에 클럽을 인수했다. 화이트는 클럽의 빚을 청산하고 향후 5년간 2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스쿼드에 투자할 것이라고 하면서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레인저스의 구세주라고 생각했던 그는 알고 보니 '''스케일 큰 사기꾼'''에 불과했다. 그는 클럽을 인수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회사에 레인저스의 향후 4년간 시즌 티켓 판매 대금을 담보로 돈을 빌렸고, 실제로 인수를 위해서 자기 돈은 단돈 1파운드도 투자하지 않았다. 그리고 빚을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클럽 운영 이익이 고스란히 화이트의 주머니로 들어가면서 레인저스는 더 큰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하필이면 성이 '그린'과 '화이트'인지라 라이벌 팀인 셀틱 FC팬들은 "글래스고는 그린과 화이트(셀틱의 색)다! (Glasgow is Green and Whyte(White)!)"라며 비웃었다.
그리고 2012년 4월, 레인저스는 영국 정부에 약 900만 파운드의 법인세를 체납한 것을 이유로 법정 관리 체제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클럽의 빚은 무려 1억 3400만 파운드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팬들은 클럽을 살리기 위해서 모금 운동을 벌였고 선수단이 구단 스탭의 집단 해고를 막기 위해 자진해서 급료를 반납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했으나 빚의 양이 워낙 압도적이었고 주된 수입원인 시즌 티켓 대금을 이미 다 빼앗긴 상태라 갑자기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같은 중동 석유 갑부라도 나타나서 클럽을 인수하고 모든 빚을 떠안지 않는 한 사실상 파산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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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레인저스 상황을 비웃는 다른 팀 팬들의 짤방 밈. "우리가 한 푼을 건졌어!!"
결국 2012년 6월 14일, 영국 국세청이 레인저스가 세금 체납액을 회수하기 위해 대물변제 처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2012년 5월 29일, 찰스 그린이라는 사업가가 레인저스의 파산이 기정사실화될 경우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을 비롯한 시설을 550만 파운드로 인수하기로 합의했으며, 대물변제 처리가 발표된 6월 14일 곧바로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및 기타 시설의 소유권이 그에게 넘어갔다. 그린은 더 레인저스 F.C.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곧바로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레인저스의 자리를 차지하기를 기대했지만, 다른 클럽들의 강력한 반대로 새로운 레인저스는 스코티시 프로페셔널 풋볼리그 3(4부 리그)에서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자연스럽게 새로운 레인저스로 계약을 이전하여 넘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존 선수들이 대부분 이적(?)을 거부하였다.
심지어는 영국 기업청에서 새로운 클럽이 '레인저스'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태클을 걸었다. 엄연한 채권자인 영국 정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새로 나타난 회사가 엄청난 세금을 먹튀한 기존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인 브랜드 가치를 거저 먹으려고 하는 데에 반감을 갖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 그래서 그들이 등록한 이름은 'Sevco 5088 Ltd.'였고 지금도 많은 스코틀랜드 축구팬들이 탈세를 하고도 뻔뻔하게 기존 클럽이라고 주장하는 레인저스를 'Sevco' 혹은 'The Rangers'로 새 클럽을 호칭(기존 호칭은 Glasgow Rangers였다)하고 있다.
2012년 7월 13일, 새로운 레인저스의 4부 리그 참여가 확정되었다. 당시 다른 3-4개 세미 프로 클럽들이 4부리그 참가를 위해 기다리고 있던 것을 감안하면 특별한 조치였다. 이로서 레인저스는 아무리 연속 승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2014/2015 시즌까지는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일단은 스코틀랜드 출신 위주로 기존 선수들이 상당수 합류했고, 여기에 자유 계약 선수도 많이 영입했다. 카를로스 보카네그라(미국) 등 외국 선수들은 일단 타 리그로 임대시켜 주는 조건으로 수습한 듯.
2016년, 새로운 레인저스는 복귀 후 첫 올드펌 리그 경기를 가졌지만 셀틱에게 5-1로 관광당하고, 주요 라이벌인 하츠나 애버딘에게 크게 뒤쳐지며 리그 중위권을 달리고 있다. 다른 팀 팬들은 오죽하면 파틱 시슬과의 경기가 새 레인저스에게는 '진정한 글래스고 더비' 아니겠냐며 비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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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애버딘 원정에서는 애버딘 팬들이 전반 12분에 모두 기립하여 박수를 쳐서 '죽은 레인저스'를 애도하는 시간을 가질 정도로 크게 비웃음을 사고 있는 중이다.
13. 시련의 하부리그 시절
13.1. 2012-13 시즌
비록 재창단되긴 했지만, 스코틀랜드 축구를 주름잡던 레인저스가 역사상 처음으로 하부 리그에 발을 들였기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보다시피 1위와 2위의 차이가 넘사벽급이다. 사실 유럽리그도 중소클럽 정도의 입장관객이다. 스코틀랜드 축구 디비전 3(4부 리그)의 평균 관중은 1000명 이하인데, 레인저스의 이 시기 평균 관중은 '''46,324명'''. 심지어 디비전 3 개막전에서는 '''49,118명'''이라는, '''전 세계 4부 리그 역사상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지금까지 레인저스의 원정 경기가 열렸던 경기장은 당연하게도 만원 사례. 따라서 새로운 클럽에 대한 위와 같은 우려는 모두 기우가 되었다.
덧붙여 저기서 관중 동원력 4위로 기록된 퀸즈 파크 FC[3] 는 스코틀랜드 대표팀 경기에도 쓰이는 52,000석 규모 축구장 햄든 파크를 보유하고 있어[4] 졸지에 4부 리그판 글래스고 더비를 벌였다.
4부 리그인 스코티시 디비전 3에서는 35라운드까지 25승 8무 3패, 승점 83점으로 2위 퀸즈 파크를 24점 차이로 따돌리고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다음 시즌은 3부 리그인 디비전 2로 승격하여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컵 대회에서는 리그 컵 8강에서 인버네스에게 0-3으로 참패하며 탈락했고, 스코티시 컵에서는 32강에서 일찍 탈락했다.
13.2. 2013-14 시즌
디비전 2에서 역시나 폭발적인 위력을 선보이며(8-0, 6-0, 5-1, 5-0 등 9월 들어 아주 상대 팀들을 뭉개 버리고 있다) 압도적인 1위를 질주했다. 2014년 5월 초, 35차전까지 33승 2무, 승점 101점, 105득점 17실점이란 압도적인 성적으로 남은 경기랑 상관없이 3부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2위 던펌린 애슬레틱이 19승 5무 11패, 승점 54점으로 승점 차가 39점이나 벌어졌고, 3위와는 54점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남은 경기를 죄다 져도 상관없게 되었다. 이로써 이번 시즌에도 스코티시 챔피언십(2부 리그)로의 승격을 손쉽게 달성하여 다음 시즌엔 2부 리그에서 경기를 치르게 된다. 최종 순위는 33승 3무 무패, 106득점 18실점 우승.
2부 리그 우승도 1순위로 분석되었으며, 2년 뒤에는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서 드디어 셀틱과 대결을 벌일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스코티시 컵에서는 4강에 올랐으나 던디 유나이티드에게 1-3으로 패해 탈락했고, 리그 컵에서는 32강에서 3부 리그 팀인 포파 애슬레틱에게 연장전 끝에 1-2로 져서 탈락했다.
13.3. 2014-15 시즌
2부 리그도 승승장구하리라는 예상이 뒤엎어졌다. 개막전 홈경기에서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에게 1-2로 패한 것을 비롯하여 역시 홈 경기로 열린 리그 7차전에서 5위 하이버니안에게 1-3으로 패배, 초반부터 2패를 당해 똑같은 성적을 기록한 레이스 로버스에게 득실 차로 앞서 2위를 힘들게 지켰다.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가 무패 행진으로 1위를 달리던 것과 대조되었다. 비록 초반이었다 하더라도 4부 리그 시절 당한 3패가 모두 1실점 패배였다는 것, 그리고 모두 원정 경기 패배였던 것과는 달리 2부 리그에서는 홈 경기에서도 고전을 거듭했다. 2014년이 끝났을 때 총 22라운드 중 18라운드까지 진행되었는데,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가 계속해서 무패 행진을 이어 나가며 16승 2무 0패로 승점 50점 1위, 레인저스는 11승 2무 5패로 승점 35점 2위를 지켰다.
한편, 2014년 10월 EPL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구단주 마이클 애슐리가 레인저스의 지분 8.92%를 인수해 대주주로 급부상했다. 애슐리는 당초 지분 30%를 확보해 최대 주주가 되려 했지만, 2개 구단의 운영을 반대하는 스코틀랜드 FA에 의해 거절되었다. 아무튼 애슐리가 구단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며 겨울 이적 시장에서 뉴캐슬의 비주전 선수 5명이 한 번에 레인저스로 임대되는 등 점차 뉴캐슬의 위성 구단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애슐리 구단주는 뉴캐슬에서도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구단주로 여겨지는데, 애슐리에 대한 반발은 글래스고 현지에서도 매한가지라는 듯. 2015년 4월에 들어서 리그 6연패 수렁에 빠지며 강등 위기에 처한 뉴캐슬을 생각하면 레인저스에서 뻘짓을 한다고 비난이 거세다.
꾸준히 2위를 지켰기에 B 그룹 안착의 가능성은 매우 높았지만,[5] 2015년 3월 들어 3위로 미끄러졌다. 4위권 밖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낮았지만, 4위인 퀸 오브 사우스랑 2점 차이고 27차전 홈 경기에서 8위 알로아 애슬레틱에게 고전 끝에 2-2로 비긴 것이라든지 가끔 덜미를 잡히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정규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치며 지옥의 도장깨기 플레이오프를 첫 단계부터 밟게 되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은 총합 3-2로 4위 퀸 오브 사우스를 물리쳤고, 2차전에서 2위 하이버니언을 총합 3-0으로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지만, 프리미어십 11위 마더웰과의 결승전에서는 1-3, 3-0으로 거짓말 같은 두 차례 참패를 당하며 총합 6-1로 무너져 프리미어십의 벽을 체감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마더웰 FC는 셀틱의 전 주장 스티븐 맥마너스가 수비의 기둥으로 활약하는 팀으로, 맥마너스 역시 결승전에서 한 골을 넣으며 라이벌의 좌절에 힘을 보탰다. 이로서 연속 승격에 실패한 레인저스는 챔피언십에서 또 한 시즌을 보내야 한다.
리그 컵에서 강등, 재창단 이후 처음으로 맞붙은 셀틱에게 4강전에서 0-2로 패했다. 스코티시 컵에서는 2부 리그 팀인 라이스 로버스에게 1-2로 패해 16강에서 탈락. 리그 승격에 더 열중해서인지 컵 대회 성적은 12-13 시즌 이후 4강까지 오른 게 고작이다.
13.4. 2015-16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며 1부 리그로 승격에 실패하자, 풋볼 리그 원에서 승격한 팀인 브렌트포드 FC를 풋볼 리그 챔피언십 5위로 플레이오프까지 이끌고 승격 팀 돌풍을 일으킨 마크 워버튼 감독을 선임했다. 1라운드부터 11라운드까지 연승을 달렸다. 4월 2일 2위팀인 폴커크 와의 승점 차이가 벌어져 폴커크를 앞서게 되었으나, 이론적으로는 경기수가 적은 3위팀 히버니언이 전승하고 레인저스가 전패하면 2위로 밀려날 수 있게 되었다. 4월 5일 경기에서 승리하여 1위를 확정짓고 다음 시즌부터 드디어 스코티시 프리미어쉽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햄던 파크에서 열릴 스코티시 컵(스코틀랜드 FA컵) 4강전에서 셀틱 FC와 만나게되어, 지난시즌 리그컵에 이어 다시한번 올드펌 더비가 성사되었다. 리그에 전념할 필요가 없기에 남은 건 진검승부다!
그리고 올드펌 더비에서 2-2로 비겨 승부차기 끝에 5:4로 승리해서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에서 하이버니안에게 2-3으로 패해 준우승했다.
14. 1부리그 복귀 후
14.1. 2016-17 시즌
오랜만에 이뤄진 올드펌 더비에서는 오랫동안 하부리그에서 있던 탓인지 몰라도 셀틱 원정에서 1-5로 처발렸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21라운드 현재 11승 6무 4패 승점 39점을 기록하며 리그 2위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셀틱과 승점차가 19점차로 격차가 크다.
2017년 들어서 부진이 심각하다. 22라운드부터 26라운드까지 5경기에서 1승 1무 3패. 25년만에 던디 FC 원정에서 패배하는가 하면 17경기 무승의 늪에 빠져있던 인버네스 CT 상대로 4개월만의 리그 승리와 탈꼴찌를 조공해주는 등 말이 아니다. 결국 33라운드 상황에서 라이벌 셀틱과 승점차는 무려 23점이나 벌어져 리그 우승을 일찌감치 넘겨주고 2위인 애버딘과도 9점이나 승점이 벌어져 리그 3위에 그치고 있다. 셀틱과 리그를 나눠먹던 레인저스 이름값을 생각하면 부진인 셈이다.
게다가 컵 대회에서 모두 셀틱에게 져서 4강에서 멈췄다. 리그컵 4강전에서는 셀틱에게 0-1, FA컵 4강전에서도 셀틱에게 0-2, 2차전 홈 리그 경기에서 2-1로 졌고 마지막 4차전 리그 홈경기까지도 똑같이 1-5로 처발리며 34승 4무 무패로 셀틱이 리그 우승을 하는 걸 봐야만 했다.
셀틱은 승점 100점을 넘기며 넘사벽의 성적을 거두었고 2위 자리도 애버딘에게 내줄 것이 확실하지만, 리그 3경기를 남겨 두고 3위를 확정지으며 챔스와 유로파 모두 플레이오프에서 광탈했던 2011-12 시즌 이후 6시즌만에 유럽 무대에 복귀하게 되었다.
14.2. 2017-18 시즌
유로파리그 3차 플레이오프에선 룩셈부르크의 FC 프로그레스 니더컴에게 원정 0-2 패배로 홈경기 1-0승리와 상관없이 골득실차로 일찍 탈락했다.
리그 16차전까지 9승 3무 4패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올드 펌 더비 리그 1차전에서 또 셀틱에게 홈경기 0-2로 패했다. 시즌 후반부 뒷심 부족으로 애버딘에게 추월을 허용했고 결국 3위로 리그를 마쳤다. 시즌 후 감독인 그래엄 머티를 경질하고 리버풀 FC의 유소년 팀 감독을 맡고 있던 스티븐 제라드를 감독 자리에 앉혔다.
14.3. 2018-19 시즌
2018년 8월 31일 우파와의 유로파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두 명이 퇴장 당한 상황에서도 동점을 지켜내며 유로파 본선 그룹 스테이지 진출을 확정하게 된다. 17/18 시즌 마지막 리그 경기를 셀틱에게 0:4로 대패, 시즌이 끝나고 제라드가 부임한 후 공식 경기에서만 6승 6무로 12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 라이벌이자 제라드의 옛 감독 브랜던 로저스가 이끄는 셀틱과의 리그 4R 올드펌 더비에서는 0:1로 아쉽게 패배, 12경기 연속 무패 행진은 막을 내리고 제라드는 감독으로서 처음으로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되었다. 셀틱이 총 9개의 유효 슈팅을 기록할때 제라드의 레인저스는 유효 슈팅을 2개밖에 기록하지 못했고 점유율에서도 밀리며 스코틀랜드 리그 제패를 위해서는 아직 더 발전해야 함을 보였다.
유로파리그에서는 비야레알과의 1차전에서 2대2 무승부, 라피드 빈과의 2차전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순항중이다. 특히 레인저스보다 훨씬 강력한 비야레알을 상대로 원정 무승부를 거두며 조 1위로 올라선 것이 고무적이다. 하지만 11월 8일 있었던 4차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원정에서 3-4로 역전패하며 기세가 꺾였고 이후 1무 1패에 그치며 조 3위에 그쳐 아쉽게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후 애버딘, 킬마녹 등을 누르고 리그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며 2019년 5월 12일, 셀틱 FC과의 올드 펌 더비에서 2-0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결국 23승 9무 6패, 승점 78점으로 리그 2위에 올라 지난 시즌보다 리그 순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14.4. 2019-20 시즌
19-20 시즌을 맞이한 후, 2019년 8월 31일 현재 기준으로 12승 3무로 15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첫 시즌보다 한층 막강해진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리그 3경기를 연승했으나 현재 셀틱에 골득실차로 밀려 리그 2위, 셀틱과의 올드펌 더비 경기가 다음날 예정되어 있는 중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9월 1일, 셀틱과의 경기에서 0-2로 패하면서 우승 경쟁에서 한걸음 뒤쳐졌다. 2020년 3월 8일까지 리그에서 21승 4무 4패를 기록하며 역전 우승을 노렸으나 영국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리그가 조기 종료되면서 또다시 리그 2위에 그쳤다.
14.5. 2020-21 시즌
자세한 내용은 2020-21 시즌 문서를 참고할 것.
[1] 현 클라이드와는 다른 클럽이다.[2] 리그 4연패[3]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는 관계 없다. 원래 19세기 스코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명문이었지만,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하는 탓에 밑바닥 리그에 쳐져 있다. 근년에는 3, 4부 리그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꼬꼬마 시절 이 팀에서 데뷔했으며, 카디프 시티의 감독 말키 맥케이는 이 곳에서 자라 이 클럽에서 뛴 열렬한 서포터라고. 아마추어 클럽인 탓에 이 사람들 모두 투 잡을 뛰었다.[4] 19세기 최초의 스코틀랜드 국가 대표 축구 팀은 퀸즈 파크 선수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를 인정받아 클럽 규모에 걸맞지 않는 어마어마한 경기장을 보유하게 된 것. 구장 관리는 스코틀랜드 FA에서 한다.[5] B 그룹은 2부 리그 1~4위 팀과 1부 리그 9~12위 팀이 다음 시즌 1부 리그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스플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