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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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이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2018년부터 레인저스 FC 감독을 맡고 있다.
유스 팀부터 프로 생활까지 28년 동안 리버풀 FC에만 충성을 다한 리버풀의 레전드이자 2000년대 리버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이다. 사비 알론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페르난도 토레스등의 여러 주축 선수들을 내보내고 나서 맞이한 리버풀의 암흑기까지 함께 했던 선수.[6][7]
커리어 동안 총 11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FIFA FIFPro 월드 XI 및 UEFA 올해의 팀에 3번씩 선정되고 절정기였던 2005년에는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를 수상하고 발롱도르 3위에 오르는 등 눈부신 수상 이력을 가진 훌륭한 선수였다.
2. 클럽 경력
2.1. 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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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근교인 하이턴[8] 에서 태어나 8살의 나이에 리버풀 FC 유스 팀에 입단하였다.
1998년 18세의 나이로 리버풀 1군에 콜업되며 프로에 입문하였고, 2003년 23세의 어린 나이에 사미 히피아로부터 주장 완장을 물려받고 뛰어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데뷔 초창기에는 라이트백으로 시작하여 이런저런 땜빵으로 들어가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던 시절에는 투쟁적인 태클이 일품인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이후 점차 공격적인 롤을 소화하기 시작하였다. 특급 공격수와의 시너지가 매우 좋은 선수로, 2000년 대 초반에는 마이클 오언과의 호흡이 돋보였고 이후에는 페르난도 토레스를 보좌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같은 롤을 소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은 공격적인 롤을 맡는 중앙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도 일품인데, 종종 해결사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기로는 04-05 챔스 올림피아스코스 전과 05-06 FA컵 결승전이 있다.
04-05 챔피언스리그 당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올림피아코스전에서 리버풀은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2점 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히바우두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더욱 암울한 상황이 되었지만, 제라드는 코너킥 상황에서 어시스트를 하는 등 활약하였고 희망이 사라져 가던 86분에 본인 최고의 골로 자주 꼽히는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팀의 3번째 골을 넣어 리버풀을 16강에 진출시킨다.
이후 AC 밀란과의 결승전, 제라드는 0-3으로 뒤져 있던 상황에서 리세의 크로스를 환상적인 헤더로 연결해 만회골을 기록하며 분위기를 살려냈고 이후 2-3까지 따라붙은 상황에서 젠나로 가투소와의 경합 과정에서 넘어져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3-3 동점을 만들었다. 일명 이스탄불의 기적.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리버풀의 승리로 마감된 이 경기에서 제라드의 활약상은 절대적이었다. 또한 제라드는 역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주장들 중 두 번째로 어린 나이라는 기록을 달성하였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유지 중인 기록이다.[9] 이러한 활약으로 이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되며 발롱도르 3위를 기록한다.[10]
하지만 이 시즌 리버풀이 리그에서는 부진하면서 이적설에 휘말렸으며, 특히 시즌 전에도 제라드에게 구애했던 주제 무리뉴의 첼시가 그를 적극적으로 원했다. 이 이적설은 시즌 내내 화제가 되었는데, 제라드는 04-05 시즌 내내 첼시 이적설을 딱히 부인하지 않는 태도로 리버풀 팬들의 질타를 받았고 해설자들도 리버풀이 첼시와 경기할 때 마다 제라드의 첼시행 가능성을 언급했다. 오죽했으면 제라드가 리그컵 결승전에서 자책골을 넣어 첼시의 동점골을 만들었을 때 "저게 아마 첼시를 위한 제라드의 첫 번째 골일 겁니다!"라는 멘트까지 쳤을까. 일부 리버풀 팬들은 이 경기 패배로 리그컵 타이틀을 첼시에 내준 이후 방송 인터뷰에서 제라드에 대해 질문하자 "그 새X는 필요 없으니 첼시로 꺼져도 됩니다"라며 그를 비난했다. 거기에 첼시와 챔피언스리그 4강 대진이 형성되자 압도적인 여론이 당시 리그를 독주하던 첼시의 결승행을 예상하는 동시에 리버풀이 패해서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면 제라드가 첼시로 떠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버풀은 이 시즌 모든 예측을 뒤집고 첼시와 밀란을 차례로 꺾으며 5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 제라드의 이적설도 사그라드는 듯 했다.[11] 실제로 제라드도 우승 이후 이적설에 대해 "어떻게 이런 환상적인 밤 이후 떠날 수 있겠는가"라는 대답을 내놨다. 하지만 첼시의 계속된 구애에 우승 이후 제라드는 이적 요청을 했으며 이는 팬들의 폭동에 가까운 반응을 이끌었다.
2018년 10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 나온 제라드의 다큐멘터리 "Make Us Dream"에 따르면 제라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방황했다고 한다. 과연 자신이 이 팀에 더 기여할 수 있을까, 더 나은 클럽에서 리그 우승과 개인 수상을 노려도 좋지 않을까, 자신을 좋아하고 원하는 감독 밑에서 뛰어도 되지 않을까[12] , 리버풀에서의 엄청난 기대와 사랑이 결국 자신에게는 독이 되지 않을까[13] 하는 생각과 함께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특히나 아버지 폴 제라드의 말에 따르면 팬들이 제라드의 유니폼을 불태우는 장면을 TV에서 목격하자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당시 방황하던 제라드를 도와준 것은 그의 아버지였는데, "선택은 맡기겠지만 다른 팀으로 떠난다면 그곳에선 여기 팬들만큼 너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조언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아마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10명 중 9명이 내 상황이었다면 첼시로 떠났겠지. 하지만 나는 그 선택을 했다면 지금쯤 매우 후회했을 것이다. 나는 10명 중에 9명이 아니라 '''10명 중 1명'''이니까"라며 내레이션하는 장면은 간지폭풍. 결국 제라드는 4년 재계약을 맺고 리버풀에 헌신하기로 결심헀다.
05-06 시즌 FA컵에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에서 3-2로 뒤져 있는 상황에서 후반 45분이 경과하자마자 엄청난 중거리 슛으로[14]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고 리버풀은 우승했다. 제라드는 이 경기에서 환상적인 로빙 패스로 지브릴 시세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강력한 발리 슈팅으로 2번째 골을 터뜨렸으며 위의 중거리 슛으로 3번째 골까지 넣으며 리버풀의 3골을 모두 만들어 내는 맹활약을 했다. 결승전 임팩트가 크긴 했으나 해당 시즌 PFA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쥘 정도로 시즌 내내 우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이어지는 06-07 시즌에도 PFA 올해의 팀에 3년 연속으로 선정되고 2007 FIFA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는 등 리그와 유럽 대항전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고 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을 다시 한 번 견인하는 등 계속해서 에이스이자 주장으로서 맹활약했다.
07-08 시즌에도 제라드의 활약은 계속되었는데, 드디어 제대로 된 스트라이커인 페르난도 토레스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부터 들어오고 알론소 & 마스체라노가 3선에서 굳건히 자리를 잡으면서 2선에서 공격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유명한 '''제토라인'''을 형성하면서 팀의 리그 4위와 챔피언스리그 4강행을 이끌었다. 이 시즌 활약으로 PFA 올해의 팀에 5회 연속으로, FIFA FIFPro 월드 XI에 2년 연속으로 선정되며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로서 인정을 받았다. FA컵, 챔피언스리그, 리그컵, UEFA컵, UEFA 슈퍼컵을 모두 우승해본 스티븐 제라드에겐 이제 리버풀의 오랜 숙원이기도 한 리그 우승만 남았다.
08-09 시즌에는 제라드가 리버풀에서 뛴 이후로 최고의 스쿼드에서 뛰게 되었다. 이 스쿼드가 얼마나 강했냐면 아무리 쇠약한 상태였다지만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무려 챔피언스리그 16강 1-2차전 합계 5-0을 기록한 팀이었고, 맨유를 상대로도 리그에서 더블을 기록, 특히 OT에서 1-4로 맨유를 파괴시켜 버린 그 유명한 OT 대첩을 달성한 팀이다. 제라드는 이 팀의 중심으로서 커리어 최다 골(리그 16골, 시즌 24골 13어시스트)을 기록하고, 리그 우승까지 노렸으나 맨유에 승점 4점이 뒤져 리그 우승에 아쉽게 실패하고 만다. 첼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에 나왔지만 1:3으로 졌고, 2차전엔 명단제외였다.[15]
이 때의 제라드-토레스 라인은 막강한 파괴력으로 유명했지만, 정작 토레스가 부상 등의 이유로 리그에서 24경기밖에 뛰지 못하면서 은고그 등의 선수가 토레스를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가 30경기, 카를로스 테베즈가 29경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33경기,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31경기를 뛴 점을 감안하면 특히나 제-토 라인에 공격력이 집중된 리버풀에서 토레스의 부재는 타격이 매우 컸다. 리버풀은 단 2패밖에 하지 않은 반면 11회나 무승부를 거두었으며, 이 중 2번만 승리했다면 리버풀은 리그 우승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해 제라드의 발롱도르 순위는 9위. PFA 올해의 팀에 6회 연속, FIFA/FIFPro 월드 XI에 3년 연속으로 선정되며 여전히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 자리를 지켰다. '''이때 제라드의 실력이 어느정도였냐면, 19/20시즌 케빈 더브라위너의 주요스탯 대부분을 뛰어넘는 퍼포먼스였다.'''[16] 출처2 '''90분당 득점 : 제라드(0.5회) > 데브라이너(0.4회) / 90분당 스루패스 : 제라드(2.1회) > 데브라이너(1.0회) / 90분당 롱패스 성공 : 제라드(4.3회) > 데브라이너(3.9회) / 태클 성공률 : 제라드(69%) > 데브라이너(53%) / 볼 경합 성공률 : 제라드(52%) > 데브라이너(47%) / 90분당 어시스트 : 제라드(0.4회) < 데브라이너(0.6회)'''] 또한, 득점 기록 때문에 제라드의 최전성기라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단 가장 공격적인 위치에서 뛴 시즌이고 이 시기 제라드의 패스, 중거리 슛[17] 등 기술적인 부분과 주력, 민첩성, 판단력이나 반응력 등 30세를 코 앞에 둔 시점에 모두 이미 이전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 편이었고, 세컨드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본격적으로 뛴 것도 첫 시즌이었는데 그럼에도 저 정도로 한 걸 생각하면 대단하다. 여러 추문에도 불구하고 케니 달글리시나 이안 러쉬 등 레전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리버풀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선수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이 정도 선수임에도 만 30세가 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이 없어 이러다가 은퇴할 때까지 리그 우승도 못 해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고 이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베니테스 & 제라드, 토레스라는 막강한 척추와 함께 매우 강력한 시즌을 보낸 리버풀이었고 고질적인 스쿼드 뎁스 문제만 이적 시장에서 해결한다면 리그 우승은 계속 재도전할 수 있는 팀이지 않나 하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09-10 시즌부터 사비 알론소를 팔고 알베르토 아퀼라니를 영입한 리버풀은 충격적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구단주였던 질 & 힉이 그동안 빚을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팀은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고, 안팎에서 어수선했던 리버풀은 08-09 시즌 리그 우승에 대한 가능성만을 본 채 암흑기로 잠겨야 했다. 30대에 제라드의 리그 우승에 대한 꿈도 그렇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또한 그는 여전히 월드클래스였지만, 알론소가 빠지고 토레스가 데뷔 시즌 만큼의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부하가 걸려 부상을 자주 당하기 시작했다. 커리어 말년 내내 그를 괴롭힌 사타구니 부상도 이 시즌부터 발생. 챔피언스리그 트로피와 리그 트로피에서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개인 수상과도 멀어졌다. 그리고 2010년 5월 2일,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디디에 드록바에게 패스 미스를 범해 팀의 패배에 기여했다.[18]
이렇게 리버풀이 암흑기에 빠져들면서 2010년 여름 첼시와 인테르에서 제라드에게 구애했던 주제 무리뉴가 부임한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터졌고 한때 기정 사실이 되는 분위기까지 갔으나 결국 잔류를 선언, 2010-2011 시즌도 리버풀에서 뛰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즌에도 호지슨 감독의 전술에서 제라드가 짊어지는 부담이 커진 데다 토레스의 부진, 제라드의 부상까지 겹치면서 리버풀은 나락까지 떨어졌다. 케니 달글리시 부임 이후 제라드도 살아나고 토레스도 부활하나 싶었지만, 토레스가 첼시 FC로 이적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것은 이적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과의 인터뷰에서 제라드는 '''"토레스가 드록바보다 훨씬 더 잘하지"'''라며 끈끈한 애정을 과시했던 것. 그래도 새로 들어온 하울 메이렐레스가 좋은 모습을 보이며 제라드를 도왔다. 팀이 망하는 와중에도 리그 전반기 맨유 원정에서 토레스가 얻어낸 PK와 FK을 모두 득점으로 연결했지만 베르바토프의 헤트트릭에 패했다. 토레스가 나가고 앤디 캐롤이 들어온 후,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캐롤이 멀티골을 기록하며 반전하나 싶었지만 일시적 상승이었고 결국 6위로 리그를 마무리했다.
2011-2012시즌에는 리버풀이 폭망 상태라 큰 주목도 못 받고 부상으로 리그를 17경기만 출전해서 그냥저냥 괜찮게 플레이했다. 그래도 워낙 수준 높은 선수라 맨유와의 홈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 2012년 3월 13일 안필드에서 펼쳐진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을 3:0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 시즌부터 리버풀의 에이스 자리는 제라드가 아닌 지난 시즌 후반기에 들어온 루이스 수아레즈에게 옮겨갔다.
09-10 시즌부터 시작된 팀의 암흑기와 계속되는 부상에 제라드는 다시 정신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은 큰 힘이 되었고, "Make Us Dream"에서도 당시 축구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유로 2012 이후 하인케스의 바이에른 뮌헨에게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은퇴 후에 밝혔다.
12-13 시즌, 로저스 감독 체제에서 대대적인 전술 개편에 들어간 팀에 녹아들지 못하며 제라드 없는 리버풀을 생각해야 한다는 여론이 늘어났으나 리그 절반이 지난 2013년 1월 3일 기준 리그에서만 5골 10도움으로 클래스를 보여주는 중. 특히 중원에서 처진 자리로 내려간 후 얼리 크로스나 쭉쭉 뻗는 롱패스를 기가 막히게 선보이며 내가 제라드고 내가 곧 뻥글랜드니 이게 진짜 뻥축구라 말하고 계신다. 공미 자리에서는 부족해 보이던 창조성이 중원 아래로 내려가니 살아났다.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한 점유율 축구를 추구하던 로저스 감독 체제에서도 초반에 홀로 이질적인 뻥패스를 구사하며 삐그덕거리는 탓에 세월에 뒤처졌나 싶더니 어느새 점유율도 적당히 지키고 롱볼도 적당히 차는 축구 도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7라운드 기준 카를로스 테베스와 도움 공동 1위를 기록 중이다.
맨시티전에서 오랜만에 중거리 하프 발리 슛으로 골을 넣었다.
몸 상태가 회춘한 것인지 12-13 시즌 전 경기를 출장하고 있었으나, 결국 시즌 막바지 어깨 수술 때문에 전경기 출장을 기록하진 못했다. 하지만 팀 내 어시스트 1위를 기록하고 어깨 수술 전까지 리그 경기를 모조리 출전한 것으로 보아 포지션을 후방으로 옮긴 것이 상당히 유효했던 모양.
2.1.1. 2013-14 시즌
13-14 시즌 새로 영입된 콜로 투레가 리버풀에 오자마자 “제라드로부터 리버풀 정신을 봤다”라는 인터뷰를 했고 수아레스와 로저스의 화해 자리를 주선하는 등의 모습을 볼 때 주장으로서의 역할 이상을 해 주고 있다.
2013년 10월 19일 EPL 8라운드 뉴캐슬전에서 루이스 수아레스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프리미어리그 통산 100호 골을 달성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24번째로 100골을.돌파한 선수가 되었으며 디디에 드록바와 같은 기록이라고 한다.
또한 12-13 시즌부터 롱패스 성공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제라드 밑으로는 죄다 골키퍼들이 순위권이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기록. 국대에서도 롱패스로 뻥글랜드를 먹여 살렸고, 나이가 들면서 시야도 더 넓어졌기 때문인 듯. 사실 예전부터 롱패스는 기가 막혔는데 포지션을 밑으로 옮기면서 더욱 횟수가 늘어나서 눈에 띄는 것.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자리에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고 중추 역할을 하며 팀의 에이스라는 타이틀은 2011년에 들어온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넘겨 줬지만 주장이자 팀의 척추로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13-14 시즌 리버풀은 후반기에 역대급 페이스를 보이며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첫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원래 목표는 챔피언스리그 진출이었고 실제로 12월 막판에는 3~5위를 웃돌고 있었지만 후반기에 막강한 공격력을 앞세워 연전연승을 거두며 어느새 선두권에 위치했고, 그렇게 사그라들었던 제라드의 열망도 마지막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34라운드 경기에서 힐스보로 참사 25주년을 맞이한 안필드의 엄청난 분위기 속에 우승 경쟁 최대의 라이벌인 맨시티를 홈에서 극적으로 3:2로 꺾었을 때 제라드가 흘린 기쁨의 눈물은 거의 모든 축구 팬들의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35라운드 노리치 시티전까지 11연승을 달리며 남은 3경기에서 2승 1무만 해도 자력 우승이 가능한 상황이라 리버풀 팬들의 리그 우승을 향한 기대치는 최고조에 달했고, 그랬기에 다음 라운드 첼시와의 홈 경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는데...
36라운드 첼시전에서 0:0으로 팽팽한 균형을 맞추고 있던 전반 종료 직전, 사건이 터지고 만다.
SBS 중계버전
제라드가 사코의 패스를 받다가 퍼스트 터치에서 실수한 후 예상치 못하게 근처에 있던 뎀바 바에 당황해 급하게 볼을 점유하려던 도중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고, 뎀바 바가 볼을 낚아채 그대로 선제골을 득점했다.[19] 다급해진 리버풀은 후반전에 10백 형태로 나오는 첼시에게 맹공을 퍼부었으나 좀처럼 첼시의 방패는 뚫리지 않았고, 끝내 경기 종료 직전 페르난도 토레스의 패스를 받은 윌리안에게 추가골을 허용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이 패배로 자력 우승의 기회는 맨시티에게로 넘어갔다. 일정상으로 맨시티가 너무나도 유리한지라 만약 이대로 맨시티가 2연승으로 우승을 확정 짓게 된다면 이 실수는 리버풀 팬들에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라드 본인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을 뼈아픈 기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콥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그 누구보다도 리버풀의 리그 우승을 갈망했던 게 바로 제라드였고 13-14 시즌 그의 주장이자 핵심 미드필더로서의 공헌이 리버풀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라는걸 알기에 차마 그 실수로 그를 비난하지 못했다. 이 때 그는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정신적인 슬럼프에 빠졌다고 한다. 물론 첼시팬들은 바로 제라드를 까는 노래를 불렀고 이에 나온 게 바로 '제라드를 비웃어?'다.장지현: '''(제라드가 넘어지자) 자!! 이게 뭔가요!!'''
배성재: '''자 끊어내고 올라갑니다! 뎀바 바, 골키퍼와 1:1 기회!! 뎀바 바!! 뎀바 바!!'''
장지현: '''들어가요~!! 뎀바 바~!!!'''
배성재: 뎀바 바~!! 첼시가 선제골을 뽑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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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7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3골 차 리드에도 부족한 골득실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격 일변도로 나가다가 3:3 무승부를 기록하며 사실상 리그 우승은 좌절, 결국 맨시티에게 리그 우승을 내주게 된다.
2.1.2. 2014-15 시즌
14-15 시즌에는 폼이 매우 떨어져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비판을 받았다. 압박을 쉽게 풀어 나가지 못하고 나이에 따른 기동력 저하로 수비 가담에서도 한 발 늦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제라드를 빼자니 최근 상황이 상황인지라 팬들은 전문 수미를 배치하여 제라드의 수비 부담을 덜어 주고 제라드를 공격적인 역할에 치중하게 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실제로 수비적인 부담이 적은 역할을 맡았을 때 기존보다 향상된 경기력을 보여 줬다.
BBC에서 14-15 시즌이 끝나고 리버풀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BBC의 공신력을 생각해 보면 시즌이 끝난 후 제라드가 이적할 것은 기정 사실로 보인다. 결국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에 제라드가 떠난다는 내용의 기사가 올라오면서 유스 시절 포함 27년의 리버풀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2015년 1월 4일 ESPN 보도에 따르면 MLS LA 갤럭시와 연봉 66억에 1년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본인의 마지막 노스웨스트 더비였던 30라운드 경기에서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로 나왔는데, 경기장에 들어간 지 불과 '''38초''' 만에 안데르 에레라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밟아 퇴장당하고 말았다. 이 38초 퇴장 사건으로 제라드는 훔바훔바 + 관운장 = '''관훔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도 언급되면서 훔바훔바 사건과 함께 흑역사 양대산맥으로 취급받고 있다. 또한 이는 PL 역사상 최단 시간 퇴장이기도 하다.
FA컵 4강,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는 별다른 활약 없이 팀의 1:2 패배를 바라봐야 했으며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시즌도 결국 무관으로 마감하게 되었다.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 QPR전에서 PK를 실축하면서 역적이 되는가 싶었지만 필리페 쿠티뉴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받아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2:1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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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7일, 37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안필드 고별전에서 풀타임을 뛰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뛰어 다녔다. 하지만 팀은 1:3으로 패배했다.
리그 최종전이자 제라드의 리버풀/EPL 고별전인 스토크 시티 원정에서는 '''팀이 전반에만 무려 5골을 처먹는 결과를 봐야했다.'''[20] 제라드가 후반전에 골을 넣으며 EPL 마지막 골을 기록했지만 또 1실점을 당하며 팀은 1:6, 시즌 최다 실점 패를 당하며 제라드의 고별전을 말아먹었다. 같은 날, 리그 우승을 차지한 첼시가 마지막 선덜랜드전에서 3:1로 역전승하고 그 경기에서 골을 터뜨린 디디에 드록바가 찬사를 받으며 EPL 고별전을 끝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대부분의 기사에서도 <두 레전드의 극과 극인 EPL 은퇴 경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축구 인생의 전성기에 다른 팀으로 이적해서 더 많은 명성과 우승컵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는 끝내 리버풀을 지켰고, 이제 그 리버풀을 떠난다.'''
2.2. LA 갤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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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드는 LA 갤럭시로 가서도 등번호 8번을 달았다. 잉글랜드와 EPL의 레전드 미드필더 램파드와 제라드를 이제는 EPL이 아닌 MLS에서 볼 수 있다.
2015년 7월 12일, 멕시코 리그 소속 클럽 아메리카와의 기네스컵 경기에서 비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7월 14일 US 오픈컵 8강전에서 레알 솔트레이크를 상대로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46분 출장에 팀은 0:1로 패배.
7월 18일 산 호세 어스퀘이크전에서 MLS 데뷔전을 치뤘고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고작 1경기만 뛰고 2015 MLS 올스타에 선정되어 7월 29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1경기만으로 올스타에 선정된 것에 대하여 기존 선수들의 불만이 있었다.
2015 시즌 기록은 19경기 3골 4도움. 괜찮은 활약이었지만 투자한 만큼 좋은 활약을 기대했었던 팬들은 먹튀라고 욕하고 있다.
10월 8일 미러에서 위르겐 클롭이 제라드의 은퇴 후 코치진을 보장한 복귀를 추진한다는 기사가 났다.
하지만 본인은 아직 현역 생활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LA와 계약이 만료되는 2016년 12월 31일 현역 은퇴 후 리버풀의 코치로 돌아온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일단 MLS에서 최소 한 시즌 더 뛰는 건 확정인 듯.
결국 2016년 11월 15일 LA 갤럭시를 떠난다는 오피셜이 떴다.
LA 갤럭시에서 2시즌을 뛰고 계약이 만료된 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ADIOS, CAPTAIN'''
3. 국가대표 경력
2000년대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제라드와 램파드의 중앙 미드필더 조합은 서로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동선이 겹치는 바람에 영 신통치 않아서 딱히 좋은 맛은 못 봤다.[21] 잉글랜드 중원은 1 + 1 = 0이라는 농담이 여기서 나왔다.[22]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제라드 - 램파드 - 베컴 - 조 콜로 이어지는 막강한 미드필드진을 앞세워 유력한 우승후보로 점쳐졌으나... 정작 본선에서는 베컴의 발끝에만 의존하는 무딘 공격력으로 꾸역꾸역 승리를 챙겼고 결국 8강에서 탈락한다. 그나마 제라드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전과 스웨덴전에서 2골을 뽑아내며 체면치레는 했다.
UEFA 유로 2008에서는 예선 탈락하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존 테리의 삽질로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리오 퍼디난드가 부상으로 이탈함에 따라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 미국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제라드와 램파드의 조화를 이뤄 낼 중요한 카드였던 가레스 배리가 부상 후유증으로 폼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램파드와의 조합은 안습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슬로베니아와의 3차전에서는 램파드에게 볼 배급을 맡기고 본인은 측면에서 경기를 풀어 나가면서 둘의 조화가 제법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는 결국 상대적 약팀을 상대로 조화로움을 보여 준 것뿐이었다. 독일과의 16강 경기에서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나와 프리킥 상황에서 매튜 업슨에게 귀신 같은 크로스를 올려 1어시를 했다. 그대로 잘하는가 싶더니 램파드의 골이 오심으로 취소된 후부터 그야말로 탈탈 털리며 1-4로 참패. 또 다시 광탈하고 만다.[23]
UEFA 유로 2012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제라드는 3도움으로 도움왕에 올랐지만 잉글랜드는 8강에서 이탈리아에 승부차기 패하며 탈락하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하지만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서 이탈리아에게 패배했고, 우루과이전에서는 팀 동료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전혀 위화감 없는 킬패스(...)를 찔러 주는 뼈아픈 실책으로 패배에 일조하였다. 결국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2패로 조기 탈락이 확정되었다. 최종 성적은 1무 2패 골득실 -2.
2014년 7월 21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최종적인 국가대표 기록은 114경기 21골. 제라드의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은 8강으로 남았다. 팀 동료이자 국대 동료이기도 한 조던 헨더슨은 그에 대해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리더이자 선수였다며 극찬했다.
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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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거리 슛 뿐만 아니라 패스, 크로스, 돌파 모두 최상급인 전천후 축구머신이자 올라운드 플레이어.''' 거친 플레이도 불사하는 투지와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피치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누비는 활동량은 신인 시절이나 말년이나 변함이 없었고, 피지컬적으로도 매우 강인했다. 다만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창조성은 좀 아쉬운 부분.[24]
또한, 장점인 롱패스에서 피를로, 알론소, 스콜스 등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된 강점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공이 붕떠서 패스받는 선수에게 시간이 좀 걸리는 롱패스가 아닌, '''가장 빠르고 정확한 롱패스를 구사하며,''' 또한, 가만히 있는 선수에게 롱패스를 전달하기 보다는, '''패스받는 선수의 침투경로를 정확히 계산해서 침투하는 선수가 속력이 죽지않고 패스를 받을수 있게끔 롱패스를 구사하는 능력이다.''' 이는 크로스, 스콜스, 알론소와 구별된다.
선수 시절 제라드가 고평가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다재다능함'''. 높은 전술이해도, 지구력, 주력[25] , 패싱, 수비, 활동량, 슈팅, 프리킥, 피지컬, 헤더, 볼 터치, 빌드업 능력까지 축구선수에게 요구되는 능력들을 거의 다 A급 이상으로 갖추고 있는 꽉 찬 육각형 미드필더였다. 때문에 골키퍼나 전문 수비수를 제외하고, 그 어떤 포지션에 세워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26] 데뷔 초창기엔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가 이후 공격적인 재능을 살려 박스 투 박스 중앙 미드필더부터 정발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국가대표에서는 반댓발 윙어까지 뛰기도 하며 미드필드 전 지역에서 활약했다. 물론 제라드 스스로도 말했듯 본인의 최적 포지션은 박스 투 박스 '중앙 미드필더'이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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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거리 슈팅'''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선수이기도 하다. 슛 파워가 축구사를 통틀어 역대 최고 중 하나로, 근 20년간 호날두, 발락, 스콜스, 램파드, 반 페르시 등 내로라하는 중거리 슈터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중거리 슛'으로 가장 명성을 떨친 선수는 다름 아닌 제라드이다.[28] 발목 힘이 정말 강해서, 강력한 슛을 날릴 수 있었는데 그 슛이 정확도마저 좋았다. 중거리 슛 득점이 매우 많고[29] 단순히 정면에서 차는 일반적인 중거리 슛 뿐 아니라, 어려운 위치나 상황에서의 중거리 슛도 여러 번 성공시킨 선수이다. 세트 피스 키커도 은퇴 때까지 본인이 전담.[30] 2000년대 중·후반에는, 프리킥 상황에서 직접 슈팅을 하기보다는 동료가 공을 밀어주고 바로 강슛을 날리는 것이 특기였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슛은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와 묵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전처럼 강하게 차기보다는 예리하게 감기는 킥으로 득점을 노렸는데, 말년까지 EPL 최고의 프리키커 중 한 명이었다.
패스 능력도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롱 패스'''가 일품[31] 으로, 대단한 킥력과 시야로 정확히 볼을 배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완급 조절력이 뛰어나 엄청난 거리를 날아가면서도 마치 킬러 패스처럼 보일 만큼 빠른 스피드로 낮게 뻗어가는 비상식적인 궤적의 롱 패스도 잘 구사했다. 또한 중앙선 부근에서 한번에 기회를 창조하는, 엄청난 스피드와 정확도의 '''킬러 패스'''[32] 역시 중거리 슛과 함께 그의 유명한 장기였으며 이 패스로 여러 차례 도움을 기록했다. 리버풀의 중원을 제라드가 책임지던 시절, 그와 함께 뛰었던 공격수는 모두 침투에 능했기에[33] 활용도가 매우 높았다. 게다가 제자리에서 도움닫기 없이 하는 고난도의 아웃프런트 패스를 매우 능하게 사용하기도 했는데, 일반적 인사이드 패스와 경로가 완전히 반대였으므로 본인의 선택지를 크게 늘릴 수 있었다.[34] 그리고 주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임에도 크로스가 매우 뛰어나 얼리 크로스 어시스트가 상당히 많으며, 코너킥과 간접 프리킥도 거의 본인이 책임지다시피 했다. [35]
득점력도 뛰어났다. 프리미어 리그의 역대 중앙 미드필더 중 미들라이커로 불릴 만한 선수는 프랭크 램파드, 폴 스콜스, 야야 투레 정도가 있다. 델레 알리와 로베르 피레스는 사실상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뛰는 선수이니 논외. 이 중 스콜스는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경을 한 후엔 득점 수가 현저히 줄었고, 투레는 13-14 시즌을 반짝 빛낸 후 빠르게 저물었다. 10년 이상의 기간동안 꾸준히 많은 득점을 올린 중앙 미드필더는 램파드, 제라드뿐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제라드 역시 '미들라이커'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 선수였다. 램파드만큼의 골 수는 아니지만, 리버풀에서만 186골, 클럽 통산 191골이라는 수치는 어지간한 공격수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득점수이며 EPL 통산 기록을 봐도 램파드에 이어 '''미드필더 역대 득점 2위'''이다. 1:1 상황에서의 결정력이 상당히 우수하며, 각도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정확한 슈팅을 한다. 앞서 말한 중거리 슈팅 능력이 득점력에 지대한 영향을 준 건 물론이다. 왼발 슈팅도 준수하다.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는 주력이 매우 빠른 편이면서 뛰어난 침투능력과 박스 안에서 센터백과의 경합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돌성까지 보유한 덕에 1:1 찬스를 많이 만들어 냈다. 박스 앞에서의 2:1 패스를 자주 시도하며, 이것으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헤더 골도 꽤 된다.[36]
이렇게 중거리 슛, 거리와 방향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킬러 패스와 롱패스, 얼리 크로스 모두 월드 클래스 수준으로 갖췄기에, 공을 잡으면 한 번의 킥으로 큰 기회를 만들어 줄 것 같다는 팬들의 기대감이 특히나 높기도 한 선수였다.
게다가 한창 날아다니던 시절에는 상황에 따른 빠른 플레이 선택과 뛰어난 순간 판단력까지 갖춰서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제라드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빌드업 상황에서 빠른 반응속도와 정확한 터치로 단 한번의 정확한 퍼스트 터치 후, 아니면 논스탑으로 주저하지 않고 바로 패스, 직접 돌파, 슈팅 등으로 이어나가는 점도 부각되었으며, 빌드업 템포가 빠른 리버풀에서 특히 그러한 능력이 부각되어 그리 유연하지는 않은 턴 동작과 아주 세밀하지는 못한 볼 키핑에도 불구하고 볼을 잘 뺏기지 않고 중원 장악력이 뛰어나기도 했다.[37] 현대축구에서 제라드와 플레이스타일이 유사하다고 평가받는 케빈 더브라위너 역시[38] 매우 빠르고 합리적인 판단력과 본인이 선택한 플레이를 전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에 다이나믹함을 가미하고 있다.
수비력 역시 육각형 미드필더 답게 뛰어나다고 평가받았다. 대인 수비 능력이 우수하고, 경기의 모든 상황에 적극적인 모습으로 임한다. 거친 플레이가 잦아 카드도 많이 받는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태클 성공률이 굉장히 높다. 슬라이딩 태클도 거침없이 하곤 했다. 피지컬이 우월한 편이기에 수비를 안정적으로 잘 한다. 승부욕이 강해 경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덕에 공중볼을 따내는 비율이 높다. 또한, 제라드의 스태미너는 최고 수준이었으며, 몸의 내구성이 굉장히 좋아서 말년을 제외하면 잔부상 따위로 팀에 해를 끼친 일이 없다.
다만 수비적 역할이 많이 가중되는 위치의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될 경우 수비적인 장단점이 다소 명확해지는 편이다. 뛰어난 태클 능력, 강력한 저돌성과 투지, 공중볼 탈취 능력 등으로 수비 능력 자체는 뛰어나긴 한데, 그 플레이 스타일상 수비적으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지키기보다 끝까지 쫓아가 슬라이딩 태클을 하는 등[39] 포지션의 이탈이 잦았고 본인의 공격 가담률마저 매우 높아 특히 수비 시 포메이션이 붕괴되는 경우가 있는 등 '안정성'이 다소 아쉬운 면이 있었고 4-4-2에서 한 자리를 맡기에는 장점은 장점대로 많았지만 저런 위험이라 할 부분도 있었다. 오죽하면 한창 젊은 제라드를 소개하는 국내 기사에서 '활동량이 '''지나치게 많아''' 포지션 이탈이 잦다는 점은 단점이다' 라고 언급될 정도. 베니테즈 역시 이런 부분을 언급했고 마스체라노, 알론소 앞에 제라드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두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공격 시 본 위치를 이탈해 박스 침투, 측면 침투 등 가담률이 매우 높으며 수비적으로도 위치 이탈이 잦다는 것은 그만큼 공에 가까운 위치에서 팀 동료에게 선택지를 많이 주고 전체적인 공헌도도 높다는 큰 장점이 있으나 반대로 특히 역습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오면 아무리 스태미너가 우월해도 몸을 나눌 수 있는게 아닌 이상 한 자리는 비게 된다는 큰 부담이기도 하다.
완벽해보이는 제라드에게도 단점이 있으니, 드리블이 투박하다는 점이다. 제라드는 공격시 폭발적인 스피드와 우월한 피지컬로 위협적인 돌파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드리블이 길고 투박한 편이다.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부드럽게 압박을 피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고 때문에 방향을 많이 전환하고 상대의 수비를 피해다니며 찬스를 기다려 패스를 찔러주는, 그러니까 '보편적인 플레이메이커' 타입의 선수들이 하는 플레이를 하기 힘들다. 주력이 평범한 램파드가 제라드보다 좀 더 우위인 부분이 바로 이러한 부분. 지공 상황에서 천천히 확실한 찬스가 날 때 까지 공을 주고 받으며 템포가 몹시 느린 축구[40] 를 하는 경우에는 제라드 본인의 직선적인 움직임과 앞서 언급한 탈압박 등의 문제로 위협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제라드의 공격성이 가장 부각되는 상황은 팀의 공격 템포가 빠른 경우이다. 즉 '''역습 상황'''에서 공간이 많이 날 때 본인의 질주 후 최고 장기인 중거리슛을 하거나, 먼 거리의 쇄도하는 동료에게 파괴적인 킬러 패스를 하기도 하고, 피지컬과 스피드로 측면을 돌파해 크로스를 올리는 등의 장점들이 부각된다. 패스, 슈팅, 기동력이라는 최고의 장점들 뿐 아니라, 특히 젊은 시절의 제라드는 역습 상황의 빠른 템포에서 정확하고 효율적인 퍼스트 터치를 한 뒤 최소한의 움직임 후 빠르게 패스나 슈팅을 할 수 있는 순간적인 판단력에서도 출중함을 보였으므로 특히 템포를 살리는 축구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었다. 즉 볼 키핑이나 방향 전환이 잦을 수 밖에 없는 지공 상황에서보다는, 한번의 역습 찬스에서 빠른 판단으로 순식간에 공격을 해결 지어버리는 능력이 탁월하다.[41]
다만 드리블의 투박함과는 별개로 볼 터치 자체는 뛰어났다. 특히 언급한대로 퍼스트 터치가 매우 좋았다. 터치가 짧고 안정적이며, 상대 수비의 압박이 심한 공격 진영에서의 퍼스트 터치도 한방의 기발한 터치로 수비를 벗겨내 순식간에 결정적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 흑역사인 뎀바 바에게 볼을 뺏긴 실책 상황도 터치가 문제인게 아니고 바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점이 원인. 매우 빠른 판단력과 신체적 능력을 가진 전성기 기준으로는 상대방 선수의 압박을 순간적인 페인팅 동작, 공간을 잘 활용하는 효율적인 퍼스트 터치, 갑작스러운 턴 동작 등을 이용해서 한두명의 압박은 매우 쉽게 벗겨낼 수 있었고 그 빠른 판단력과 육체적 민첩함 덕분에 패스 미스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공을 뺏기는 일이 잘 없었다. 탈압박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상대 선수와 어깨 싸움을 하며 경합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순간 스피드와 피지컬의 결합이 우월한 수준이기 때문에 공을 거의 지켜낸다.
이런 다이나믹한 플레이스타일로 선수 생활 초기부터 리버풀의 로컬 보이로써 상당한 주목을 받았고, 그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히피아에게 완장을 물려 받은 후인 04-05 시즌에는 드라마틱하게 이스탄불의 기적을 이뤄내며 발롱도르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신체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절정에 올랐다 할 수 있는 2000년대 중·후반에는 토레스와 함께 '''제'''토라인을 구성하며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다. 월드베스트 3연속 수상과 같은 개인 수상도 굉장히 많았다.
중요한 경기에서 이따금씩 큰 실수를 범하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 이것에 대해서는 아래의 '흑역사' 문단에서 자세히 다룬다.
4.1. 제2의 전성기
제라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라이언 긱스처럼, 신체능력이 저하된 후에 포지션과 역할을 변경해서 성공한 대표적 사례이다. 기존의 폭발적 플레이스타일이 누적되면서 2000년대 후반에 완전히 만성화된 사타구니 부상 문제는 2010년을 기점으로 제라드를 전성기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 일단 폭발적이던 활동량이 줄어든 만큼 강력한 중거리 슛을 거의 시도하지 않게 됐다. 또 나이가 듦에 따라 속도가 느려진 부분도 있지만, 전력 질주도 잘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8년 연속으로 리그에서만 최소 30경기 이상 뛰던 엄청난 내구성의 선수가 사타구니 부상이 갑자기 자주 재발하기 시작한 후 10-11 시즌 21경기, 11-12 시즌 18경기 밖에 뛰지 못할 정도였다. 나이가 들며 반응 속도도 많이 떨어지고 패스 타이밍이 현저하게 떨어져 전성기에 볼 수 있던 강력한 킬패스도 거의 볼 수 없게 되는 등 에너지 넘치던 플레이 스타일이 노화와 부상으로 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렇게 선수 생활의 중요한 기로에 놓인 제라드가 세월의 흐름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이다. 체력 소모가 적은 편인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로 와서 샤비 알론소가 몇 년 전 담당하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을 맡았다. 이 포지션 변경은 대성공하여, 전성기만큼의 활약은 아니지만 상당히 잘 적응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좋은 위치 선정으로 포백을 보호했으며, 타고난 수비 능력으로 홀딩 역할도 잘 해주었다. 훌륭한 리더십은 덤이었다. 특히,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필수 기술인 롱패스는 원래부터 제라드의 장기였던 만큼 대단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12-13 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EPL 롱 패스 성공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거기에 전성기 시절에는 크게 돋보이지 않았던 조율 능력이 크게 좋아져서 리버풀의 빌드업을 지휘하면서 지공 상황에서도 존재감을 크게 발휘하기도 했다. 말년에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 리버풀에서 얼마나 중요한 선수로 자리잡았는 지는 아래의 통계를 보자.
- 2012-13 시즌 관련 통계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 2013-14 시즌 관련 통계
5. 지도자 경력
은퇴 이후 리버풀의 코치로 돌아오느냐, 아니면 다른 도전을 하느냐 하는 이야기가 많았고 MK 돈스에서 감독 제안을 했다는 뉴스도 흘러 나왔으나 리버풀의 유스팀 코치직 제안을 수락하며 선수의 꿈을 키웠던 커크비로 돌아오게 되었다. 17-18 시즌 시작 전 리버풀 U-18팀 감독인 마이클 비얼이 브라질로 떠남에 따라 U-18팀 감독을 맡아 팀을 디벨롭먼트 리그 3위에 올려놓는 등 유스 레벨에서 좋은 지도력을 보여줬다.
5.1. 레인저스 FC
2018년 5월 4일, 1년 6개월 남짓 몸담은 커크비를 떠나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의 레인저스 FC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취임하며 리버풀에서 동료로 같이 뛴 적이 있는 개리 매칼리스터[45] , 리버풀 아카데미 기초 단계 코칭 총괄 책임자인 마이클 비얼[46] , 리버풀 U-18팀 수석 코치인 톰 컬쇼와 피지컬 트레이너인 조던 밀섬을 같이 데리고 갔다.
2018년 8월 31일 우파와의 유로파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두 명이 퇴장 당한 상황에서도 동점을 지켜내며 유로파 본선 그룹 스테이지 진출을 확정하게 된다. 17/18 시즌 마지막 리그 경기를 셀틱에게 0:4로 대패, 시즌이 끝나고 제라드가 부임한 후 공식 경기에서만 6승 6무로 12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감독으로서 엄청난 데뷔 시즌을 출발하고 있다.
지역 라이벌이자 제라드의 옛 감독 브랜던 로저스가 이끄는 셀틱과의 리그 4R 올드펌 더비에서는 0:1로 아쉽게 패배, 12경기 연속 무패 행진은 막을 내리고 제라드는 감독으로서 처음으로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되었다. 셀틱이 총 9개의 유효 슈팅을 기록할때 제라드의 레인저스는 유효 슈팅을 2개밖에 기록하지 못했고 점유율에서도 밀리며 스코틀랜드 리그 제패를 위해서는 아직 더 발전해야 함을 보였다.
유로파리그에서는 비야레알과의 1차전에서 2대2 무승부, 라피드 빈과의 2차전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순항중이다. 특히 레인저스보다 훨씬 강력한 비야레알을 상대로 원정 무승부를 거두며 조 1위로 올라선 것이 고무적이다. 하지만 11월 8일 있었던 4차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원정에서 3-4로 역전패하며 기세가 꺾였고 이후 1무 1패에 그치며 조 3위에 그쳐 아쉽게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후 애버딘, 킬마녹 등을 누르고 리그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며 2019년 5월 12일, 셀틱 FC과의 올드 펌 더비에서 2-0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결국 23승 9무 6패, 승점 78점으로 리그 2위에 올라 지난 시즌보다 리그 순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19-20 시즌을 맞이한 후, 2019년 8월 31일 현재 기준으로 12승 3무로 15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첫 시즌보다 한층 막강해진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리그 3경기를 연승했으나 현재 셀틱에 골득실차로 밀려 리그 2위, 셀틱과의 올드펌 더비 경기가 다음날 예정되어 있는 중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9월 1일, 셀틱과의 경기에서 0-2로 패하면서 우승 경쟁에서 한걸음 뒤쳐졌다. 2020년 3월 8일까지 리그에서 21승 4무 4패를 기록하며 역전 우승을 노렸으나 영국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리그가 조기 종료되면서 또다시 리그 2위에 그쳤다.
20-21 시즌을 앞두고 지난 시즌 임대로 합류했던 이아니스 하지가 정식으로 영입되었으며 노장 공격수 저메인 데포 등을 보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코로나19발 시즌 조기 종료로 인해 인해 매치데이 수익이 급갑하면서 그 이상의 영입이 이루어지진 않았다. 개막전에서는 에버딘을 상대로 리버풀 FC 출신 라이언 켄트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며 기분 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20-21 시즌 리그 초반 12경기에서 10승 2무, 유로파 리그에서도 예선 및 본선 5경기 5승을 기록하며 17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17경기에서 14경기가 클린시트인만큼 공수 모두에서 안정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2021년 2월 말 기준으로는 리그 30경기 26승 4무에 9실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어 이에 무패우승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으며, 셀틱의 침체에 힘입어 승점 7점만 획득하면 자력우승을 확정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유로파 32강 로얄 앤트워프 원정에서 3:4로, 홈에선 무려 5:2로 이기면서 2시즌 연속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등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 리버풀 FC (1998~2015)
- FA컵: 2000-01, 2005-06
- 풋볼 리그 컵: 2000-01, 2002-03, 2011-12
- FA 커뮤니티 실드: 2001, 2006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4-05
- UEFA컵: 2000-01
- UEFA 슈퍼컵: 2001, 2005
6.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3위: 2005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DM 7위)
- FIFA FIFPro 월드 XI: 2007, 2008, 2009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2004-05
- UEFA 올해의 팀: 2005, 2006, 2007
- UEFA 올해의 궁극적인 팀: 2015, 2017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2012
- UEFA 유로 도움왕: 2012
-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5
- FIFA 클럽 월드컵 실버볼: 2005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1년 3월, 2003년 3월, 2004년 12월, 2006년 4월, 2009년 3월, 2014년 5월
-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 : 2013-14
- 프리미어 리그 20주년 베스트 XI (1992~2012)
- PFA 올해의 선수: 2005-06
-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2000-01, 2008-09
-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2001
- PFA 올해의 팀: 2000-01, 2003-04, 2004-05,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13-14
- PFA 메리트 상: 2015
- FWA 올해의 선수: 2008-09
- FWA 공로상: 2013
- MLS 올스타: 2015
- FA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6
- IFFHS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축구 선수: 2006
-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 2007, 2012
- 리버풀 올해의 선수: 2003-04, 2005-06, 2006-07, 2008-09
- 리버풀 팬 선정 올해의 선수: 2003-04, 2006-07
- BBC 올해의 골: 2006
- ESM 올해의 팀: 2008-09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17
6.3. 서훈
- 대영제국 훈장 5등급 (MBE): 2007
6.4. 출전 기록
7. 특징
7.1. 리더십
'''주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이며, 주장 생활을 24세부터 소화한 리버풀 FC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이다. 그의 리더쉽이 돋보이는 일화는 여러가지가 있다.'''구단을 향한 비난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구단주가 떠나고, 베니테즈와 알론소를 팔고, 마스체라노가 바르샤에 가고 싶어한대서 리그 우승을 못한다고 불평해봤자 소용 없어. 그것들이 구단의 방해요소일지도 모르고, 우승을 하지 못했다며 그들을 비난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2위로 끝을 맺었던 시즌에, 우린 분명히 우승을 할 수 있었어. 그 책임은 일부 나도 져야하지. 그런 불평을 하기 전에 자신을 반성해야 돼. 축구에서 남을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야. 물론 리그 우승컵이 없는 것은 내 경력에서 크나큰 구멍이고, 앞으로 절대 우승을 할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고, 후회따위 없어. 분명히 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하고 싶어. 나는 아직 배 고프니까. 하지만 현실적이어야지. 이 클럽이 다시금 우승을 이룩할 때쯤 이미 나는 현역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적하고 싶다고 말하는건 간단해. 충분할 정도로 이 클럽에서 뛰어왔지만, 아직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아직 이루고 싶은게 많으니까. 나는 이 클럽에서 최고의 우승컵을 따냈어. 남들은 내가 리그 우승컵이 없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리그 우승컵이 있어도 챔피언스 리그컵이 없는 선수도 무진장 많아. 나는 이 클럽의 주장이고, 여기서 이루고 싶은 것들의 90%는 이뤄냈어. 대표팀에서도 100경기 출장이 눈 앞이고, 대표팀 주장도 해봤으니까.'''
2012년,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
7.1.1.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AC 밀란과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3대0으로 뒤진 상태로 전반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때 라커룸에서 풀이 죽은 선수들을 분위기 살린 일화는 유명하다. 그 뒤에도 제라드는 몸소 최선을 다하며 선수들의 사기를 이끌며 파이팅을 외쳤고 직접 골도 넣고 페널티 킥도 얻어낸다. 특히 리버풀의 첫 골을 득점한 후 제라드의 세리머니는 선수들과 리버풀 관중들 모두에게 기죽지말고 아직할수 있다고 팔을 힘껏 위로 올리는 세리머니를 했다. 결국, 그에 대한 결과가 우승이었다.
[image]
그리고 트로피를 가장 맛깔나게 드는 주장 제라드였다. 이 사건을 이스탄불의 기적이라고 부른다.[47]
7.1.2. 감독들이 많이 좋아한다
물론 어느 포지션에서나 뛸수있다는 팔방미인적인 요소 때문일수도 있으나 그 정신적인 지주 역할과, 감독에 자기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스타일이 아닌 묵묵히 따르면서 자기의 의견을 조금씩 제시하면서 절충하는둥, '''감독과 같이 가는 동반자의 스타일''' 성향 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렇기에 감독과의 불화가 전혀없다.[48] 거기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꼭 제라드의 리더십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물론 그가 주장이라 립서비스를 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엔 다른 선수와 비교했을때 제라드의 리더쉽과 관련된 기사가 많이 나온다.
같은 리그 내 유명 구단들 정신적 지주들과 상당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첼시의 경우 존 테리가 정신적 지주인데, 인성 논란이나 구설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더쉽 하나만큼은 뛰어나다는 점이 제라드와 비슷하지만 감독과의 불화설이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맨유의 루니는 감독들이 꾸준히 치켜세워주긴 했으나 본인의 기량 하락과 더불어 7개월간 모예스와의 불화 등이 있었다. 아스날의 경우는 매 시즌마다 주장이나 정신적 지주가 떠나서 팀의 확실한 간판 선수를 내세우기 힘들다. 토트넘은 마이클 도슨이나 레들리 킹 같은 선수들이 정신적 지주를 맡았지만 제라드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했다. 그나마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이었던 뱅상 콤파니가 감독과의 불화설도 없고 오랜 기간 뛰어난 실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었지만, 외국인 이적생 출신이라 잉글랜드 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7.1.3. 선수들을 하나하나 챙긴다
주장으로서 당연한 거지만 입증이 되는 사진과 기사들이 많다. 갓 국가대표에 승선한 선수들이나 리버풀로 갓 이적해온 선수들은 새로운 선수로서 사진이 많이 찍히는데 그 옆엔 '''항상 제라드가 있다.''' 선수들을 적응시켜주려고 신입들을 잘 챙기는 듯하다.
2012년 9월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자서전에 의하면 페르난도 토레스의 첼시 이적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듯하다. 애초에 토레스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리버풀로 온 것도 챔피언스 리그 출전 등 유럽 대회에 나가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하필이면 우승을 위해 라이벌 클럽인 첼시로 가고 싶다고 한 것이다.[49]
당시 리버풀 보드진과 케니 달글리시 감독 대행이 토레스 이적에 반대하자 토레스는 제라드에게 '''자기가 이적할 수 있도록 말 좀 잘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것도 제라드에게 직접 '''"나는 충분히 했고 클럽을 떠나고 싶다.[50] 주된 라이벌팀 중 하나로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동안 리버풀의 주장으로서 자신을 포함해 많은 선수들의 사건 사고를 겪었지만, 그때만큼 충격적인 일은 없었던지 토레스의 그 말을 듣고 '''심장을 칼로 찔리는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어쨌든 이 말까지 듣고 나서는 자기도 포기했는지 케니 달글리시 감독한테 이적을 허락해 주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 전부터 조금씩 늘어나던 이마 주름은 이 때를 기점으로 선명해진다. 토레스 이적과 관련해서 많은 마음고생을 한 모양이다. 하기사 리버풀 로컬로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소년기와 청년기의 대부분을 헌신한 클럽의 주장이 저런 말을 듣고 상처받지 않을 수야 있겠냐만.[51]
웨인 루니가 힘들때 제라드와 상의했던 것도 유명하다. 제라드와 상의한 루니
그리고 수아레스도 이적설이 떴다. 토레스 만큼이나 파격이 컸으나[52] 결국엔 잔류를 했다. 거기엔 제라드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수아레스가 직접 말했다. 하지만 결국... 하지만 제라드의 조언은 역대급 조언이었다.
실수를 해도 격려를 해서 감싸준다고 한다. 엠레찬이 보는 제라드
# 제라드가 경미한 부상으로 후반전에 빠졌었다. 그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 선수들이 나가는 출구에 나가지 않고 기다리며 일일이 한명씩 고생했다고 챙기는 모습이다. 특히 그 시기에 부진했던 미뇰렛에게 격하게 챙겨주는 것이 포인트다.
7.1.4. 감독과 선수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잘 한다
수아레스가 이적 소동 때문에 브렌던 로저스와 사이가 무척이나 소원하고 어색해졌는데 제라드가 화해를 주선하며 둘의 사이를 잘 조절했다고 한다. 위의 토레스같은 경우도 같은 경우라 볼 수 있다.
7.1.5. 현지에서의 여론도 크게 지지받고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한때 존 테리가 주장일 때가 있었는데, 그 전에 누가 주장이 어울리는지 여론 조사를 했다고 한다. 거의 제라드와 테리가 양분하면서 압도적이었고 퍼디난드가 그 뒤를 잇다시피 했다. 당시 테리가 근소한 차이로 제라드를 앞섰다. 게다가 당시 감독인 파비오 카펠로는 수비수에게 주장을 주는 성향이 있어서 주장은 테리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테리의 어떤 이유 때문에 주장직이 박탈돼 제라드에게로 넘어갔고, 대표팀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현재까지도 잉글랜드의 주장 하면 제라드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선수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받는 듯하다.
7.1.6. 주장들의 주장
- 다니엘 아게르 - 덴마크 대표팀 주장
- 루이스 수아레스 - AFC 아약스 주장
- 루카스 레이바 -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 주장
- 조던 헨더슨 - 잉글랜드 U-21 대표팀 주장[53]
- 마르틴 스크르텔 - 슬로바키아 대표팀 주장
- 콜로 투레 - 아스날 FC 주장
- 마마두 사코 - 파리 생제르맹 FC 주장
- 안드레 위즈덤 - 잉글랜드 U-19 대표팀 주장
- 조던 로시터 - 잉글랜드 U-16 대표팀 주장
- 로비 파울러 - 리버풀 FC 전 주장[54]
- 페르난도 토레스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주장
- 크리스티안 폴센 - 덴마크 대표팀 주장
- 사미 히피아 - 핀란드 대표팀 주장, 리버풀 FC 전 주장
- 조 앨런 - 웨일스 대표팀 주장
- 아담 랄라나 - 사우스햄튼 FC 주장
- 리키 램버트 - 사우스햄튼 FC 부주장
- 엠레 찬 - 독일 청소년 대표팀 주장
제라드를 제외한 팀원들간이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싶은데 그런것도 전혀 없다. 오히려 팀 분위기는 매우 좋고 파벌같은 것도 없으며 '''두루두루 친하다.'''[55][56] 리버풀 팬들은 많이 봐서 잘 알겠지만 경기 전 트레이닝 사진들을 볼때 감독[57] 코치 포함해서 95%이상이 웃고 있다. 카메라 비칠 때마다 항상 찡그리는 표정의 제라드 마저도 그냥 잘만 웃는다. 하도 이런 좋은 분위기라 그런지 이적생이 14/15 시즌엔 8명이나 영입이 되었는데도 트레이닝 사진보면 어색한거 전혀 없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잘만 웃고 있다. '''이만 하면 팀 분위기 조성에도 한 몫하는 듯하다.'''
2014년 4월 13일 리그 우승으로 가는 길목 중 가장 중요한 맨시티전을 승리로 장식한 후, 제라드의 퍼포먼스(현장음 버전, 한국 중계 버전)[58] 는 전세계의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동시에 그의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박문성의 감탄사는 덤.
우승으로 가는 길목 중 '''제일 큰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승리로 장식하면서 복받치는 눈물을 금방 자제하며 승리에 흥분하는 선수들을 한데 모아놓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정신교육을 시켰다.
이 영상에서 볼 수 있는것은 선수들의 단합력과, 그가 팀에서 차지하는 위상, 팀 멤버들이 그에게 보내는 신념이다.
그리고 일단 영상을 보면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59] 그동안 그가 얼마나 리그 우승에 목말라했는가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가,[60] 그가 얼마나 리버풀을 사랑하는가를 볼 수 있다. 이런 리버풀을 위해 축구 인생을 바쳐왔으니 선수들이 굳이 그의 리더쉽을 안 보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을것이다.
또한, 상술하였듯 이 경기는 '힐스브로 참사 25주기' 헌정 경기였다.[61] 이 당시 희생된 96명의 희생자 중, 제라드의 사촌[62] 이 있었기에 제라드 본인은 힐스브로 참사를 겪은 유가족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 깊은 날에, 의미 깊은 승리를 거두어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곧 마음을 다잡고, 들떠있는 선수들을 진정시키는 리더십이 돋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제라드의 역대급 명장면이 된 씬이었고, 실제로 다음 경기인 노리치 전에서도 리버풀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첼시 전에서 다름아닌 제라드가 미끄러져 우승컵이 멀어진 실수를 한 후에는 타팀팬이자, 리버풀 안티들이 비웃는 의미로 이 씬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주로 제라드가 설레발을 떨었다면서 비꼬는데 이것은 사실 위의 제라드의 언급에도 보듯이 오히려 '''설레발을 자제하고 다음 경기에 신경쓰라는 뜻이다.'''
2015년 2월 20일, 베식타스전에서 부상당한 제라드를 대신해 주장으로 조던 헨더슨이 나왔다. 리버풀이 PK 골로 1:0으로 승리했지만 옥에 티가 있었는데, PK 차기 전에 헨더슨과 발로텔리 사이에 본인이 서로 PK를 차려는 신경전이 있었다. 로저스가 이 사건에 대해 말하길, 주장이 없으면 부주장이 주장을 하는 것처럼 PK도 그와 비슷하다는 규칙과 제라드가 없으면 발로텔리가 두 번째 키커라는# 규칙이 모순이 되어서 해프닝이 난 것이다. 제라드는 헨더슨의 손을 들어주며 발로텔리에게 일침을 가하였다.# 발로텔리가 PK 경험이 많지만 헨더슨이 주장이기에 주장에 힘을 더 실어주는 듯하다. 주장이 힘이 없어지면 리버풀 분위기를 잡을 구심점이 약해지기 때문에 주장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확실히 질서를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제라드가 경기 도중 직접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제라드가 없음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에, 그의 존재 유무의 차이를 보여준 해프닝이라 볼 수 있다.
7.2. 흑역사
7.2.1. 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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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제라드는 국내에도 굉장히 팬층이 두터운 선수이지만 2009년 연이은 스캔들로 그 위상이 많이 실추되었다. 평소의 모범적인 이미지와 상반되는 양면성이 드러났기 때문인데, 그는 시뮬레이션 액션 및 그런 행위를 일삼는 선수를 향해 일관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2006년 데일리 메일과 가진 인터뷰에서 "상대 선수가 근처에 있지도 않았는데 시뮬레이션 액션을 하는 것 만큼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축구를 망치는 길이죠. 만약 제 팀 동료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전 그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할 겁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히카르두 카르발류는 직접적으로 축구를 망치는 존재로 거론할 만큼 시뮬레이션 액션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본인이 그렇게 함으로써 비판을 받았다. 참고
특히 움짤에도 있는 07-08 시즌 11월 4일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AT 마드리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논란이 심한 헐리웃 액션을 보여주면서 그 비판이 절정에 달했고, 결국 '''위선자'''라고 무진장 까였다.
7.2.2. 구타 사건 및 기타 스캔들
술집에서 싸움을 벌여 시민을 구타해서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같이 싸움 벌인 사람들은 대부분 유죄 판결났는데, 혼자 무죄 판결나서 뭔가 의혹이 생기는 중이다.[63] 2010년 3월에는 위건에게 리버풀이 패배한 경기에서 심판에게 V사인[64] 을 보였고, 다음 경기인 포츠머스 FC와의 경기에서 상대편 주장 마이클 브라운에게 팔꿈치를 날렸지만, 두 사건에 대해 징계는 받지 않았다.[65]
[image]
덕분에 요새(08년도 기준)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들이 잔뜩 생겨났다. 스티'''붕 구라'''드, 스티븐 '''구타'''드, 스티'''범 죄'''라드 등.
평소에는 별로 말이 없지만, 다혈질인 성격으로 알려져있다. 비슷한 성격인 가레스 배리와는 둘도 없는 절친이다. 배리를 리버풀로 꼬셔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맨체스터 시티의 쇼미더머니에 버로우 당했다.[66] 그리고 배리가 빠꾸 먹인 09년 후반부터 리버풀의 악몽이 시작됐다.
다만 악동 이미지를 달고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예전에 비하면 요새는 나이도 그렇고 성격이 많이 죽은 듯 하다. 실제로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사진이나 인터뷰에서 웃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런 걸 보면 여전한 거 같기도 하다.[67]
7.2.3. 중요할 때 범하는 실수들
'''마가 끼었다.'''
물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그게 하필 결정적인 것들이라 여러모로 회자된다. 거기에 일반적인 선수면 욕을 실컷 하겠지만, 리버풀 팬들에게 매우 상징적인 선수라 차마 욕을 하지 못한다.
02-03 시즌 첼시전 -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이 걸린 시즌 마지막 경기[68] 에 팀이 2:1로 뒤진 상황에서 불필요한 파울을 범하며 퇴장당했다.
유로 2004 프랑스전 - 앙리에게 경기 종료 직전 치명적인 백패스 미스를 범하여 결승골이 되는 페널티 킥을 헌납했다.
2005 칼링컵 결승 첼시전 - 1대0으로 앞서던 상황에서 동점 자책골. 결국 2:2가 되어 연장전을 했는데 첼시가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3대2로 패배.
09-10 시즌 첼시전 - 드록바에게 백패스를 해서 맨유와 경쟁하던 첼시의 우승을 간접적으로 나마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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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시즌 첼시전''' - 하프라인 부근에서 패스를 받으려다 미끄러지면서 공이 흘렀고, 공을 낚아챈 뎀바 바는 이를 결승골로 연결시켰다. 리버풀 입장에서 이 경기만 잡았으면 자력우승이 가능했지만 끝내 뒤집지 못했고, 결국 제라드의 '''이 실수 한 번으로 24년만에 찾아온 절호의 우승기회를 날려버린다.'''[69] 이 사건으로 생긴 밈이 바로 그 유명한 위 고 노리치. 제라드에게 이 실책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는지, 자서전에는 자살 생각까지도 했다고 한다.#
2014 브라질 월드컵 - 우루과이와 1대1로 비기던 상황, 우루과이의 골킥에서 공중볼 다툼하다 공을 따냈지만 그게 하필 같은 팀 동료인 수아레스에게 연결되어 결승골을 헌납했다.[70]
14-15 시즌 맨유전 - 맨유와의 챔스 티켓을 경쟁하는 중요한 경기에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출전하였으나, 그라운드에 들어온지 '''38초'''만에 안데르 에레라의 다리를 밟는 파울을 범하며 퇴장당했다. 자서전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제라드는 터치라인에서 몸을 풀고 있을 때부터 맨유 서포터들이 첼시전에서의 실수와 리그 우승을 놓친 것을 조롱하는 챈트를 부르는 통에 교체 출전할 때는 이미 분노로 가득 찬 상태였다고 한다. 자제력을 잃은 채 시작한 경기에서 에레라가 두어번 연이어 태클을 걸어오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에레라의 다리를 향해 스터드를 뻗었고 주심이 꺼내든 것은 볼 것도 없이 레드 카드였다.#
결국 이런 웃긴 실수 장면들을 그냥 둘 수만은 없었는지, 유튜버 겸 스트리머 싸커러리 유튜브에서 이런 영상을 만들어 제라드와 여러 리버풀 선수들의 실수나 웃긴 장면들을 모았다.
8. 제라드에 대한 말, 말, 말
[image]
'''월드클래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램파드, 파브레가스, 이니에스타다. 제라드는 이 범주에서도 원 오브 더 베스트에 들어간다.'''
'''영리한 선수는 그 역할에 잘 적응할 수 있는데 제라드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 그는 훌륭한 패서이고 영리한 축구 지능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위대한 비전이 있다.'''
'''안드레아 피를로'''
'''AC밀란 시절 안첼로티는 내게 제라드와 함께 뛰는게 어떻냐고 물어봤고 나는 망설임없이 “그를 데려오자.”고 답했다. 전성기의 그는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미드필더였고 당연히 나는 그와 함께 뛰고 싶었다. 몇주 뒤 안첼로티에게 영입이 어떻게 돼가고있냐고 물어보니 “제라드는 AC밀란의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고 리버풀과의 강한 유대감을 도저히 깰수가 없다.”고 답했다.'''
'''안드레아 피를로'''
'''(리피 감독이 데 로시에게 제라드와 비슷한 선수라고 하자)로마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리피 감독의 칭찬이 매우 기쁘다. 제라드와 같은 대단한 선수와 비교되는 것은 당연히 기쁜 일이다.'''
'''델피에로는 언제나 나의 우상이었다. 그는 전설이다. 그치만 나의 포지션에서는 제라드에 닮기를 열중했다. 그만큼 완벽한 미드필더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유벤투스의 제라드가 되고싶다.'''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73]
'''나는 제라드를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로 꼽을 것이다. 물론 잉글랜드가 아닌 전 세계에서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제라드는 경기를 결정 짓는 선수였다. 더불어 그는 아직도 리버풀을 위해 헌신한다. 제라드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는 전설 그 자체이다.'''
'''프란체스코 토티'''
'''제라드 같은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오늘날 이런 감독이 될 수가 있었다.나는 내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상대팀 선수 중 최고의 선수들을 통해서도 많은 걸 배운다. 그들은 항상 내게 풀어야 할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제라드는 나를 생각하게 하고 철저히 분석하게 한 대표적인 선수이다. 내가 최고가 된 건 최고의 적인 제라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감독이 그를 영입하길 싫어하겠는가. 제라드를 데려오고 싶다.'''
'''제라드는 리버풀의 영혼이다. 제라드는 환상적인 선수다. 또 세계 최고 선수 중 하나다. 그는 너무나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팀 동료들을 돕고 이끌지도 잘 알고 있다. 제라드가 곧 리버풀이다.'''
'''라울 곤살레스'''
'''2010 남아공 월드컵 기간에 토레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토레스는 리버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리버풀을 사랑한다. 리버풀에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 토레스는 자신의 스트라이커 파트너로 제라드를 생각하고 있다. 그는 최고의 스트라이커 파트너는 제라드라고 나에게 말했다. 스페인 대표팀 다비드 비야보다도 훨씬 더 잘 맞는다고 했다. 토레스가 올시즌 리버풀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 역시 제라드가 있기 때문이다. 리버풀의 감독이 공격수 조합에 토레스와 제라드를 다시 생각하기를 바란다. 만약 실제로 그 조합이 이뤄진다면 성공적인 시즌이 될 것이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제라드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선수야. 스티븐 제라드! 그에 대해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나는 그의 이름에 r이 한 개 들어가는지 2개 들어가는지 모르겠거든.[75]
그래도, 그의 모든 것들과 그의 플레이를 나는 사랑해. 그는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리더야. 골을 넣고, 좋은 패스를 보내며, 파워풀하게 뛰어다니지. 그의 태클까지...모든게 훌륭해. 실로 완벽한 선수지.'''
'''다비드 비야'''
'''제라드는 메시나 호날두만큼의 주목을 받진 못하지만 그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팀의 엔진과 같은 존재인 제라드는 팀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레알은 클로드 마켈렐레의 도움이 없이는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제라드도 마켈렐레와 마찬가지로 팀에 중요한 선수다. 그는 패스, 득점, 태클 모두에 능하며 무엇보다도 자신감을 갖고 주위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갖췄다. 이러한 재능은 배울 수도 없이 그저 타고나야 하는 것이다. 월드 베스트(Best)는 호날두도, 메시도 아닌 제라드다. 제라드가 World Best다.'''
'''지네딘 지단'''
'''제라드는 나의 롤 모델이다. 그는 수년간 리버풀의 심장 역할을 해왔다. 또한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그는 매우 모범적인 선수다. 나 역시 그처럼 되길 원한다. 제라드는 위대한 선수다. 물론 나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이다. 그의 롱패스가 나보다 더 정확하다. 제라드가 리버풀에서 그랬듯이 나도 아스날의 승리를 이끌고 싶다.'''
'''잭 윌셔'''
'''제라드는 환상적인 선수다. 제라드는 충성심이 강하며 리버풀을 이끌고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제라드는 부상이 없을 때 항상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함께 뛰고 싶은 선수다. 또한 제라드는 기술이 뛰어나고, 경기에서 정교한 볼 터치를 보여준다. 난 그런 제라드를 존경한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스티븐 제라드가 되고싶다.'''
'''코케'''
'''내가 함께 뛰어본 선수 중 최고는 제라드이다.'''
'''페르난도 토레스'''
'''나는 항상 제라드에게 존경심을 품어왔다. 그는 다른 선수들을 돋보이게 한다.'''
'''프랭크 램파드'''
'''세계 최고선수 3명을 꼽자면 메시,호날두 그리고 제라드이다. 메시와 호날두는 빠른 스피드와 기술, 재능 등을 가졌지만 현대축구의 관점에서 제라드는 완벽한 선수이다. 나는 스티븐 제라드의 엄청난 팬이다. 그는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있으며 공수에 능한 현대 축구 선수의 아이콘이다.'''
'''카카'''
'''가장 소중한 자원은 잉글랜드 대표팀의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전 세계 선수들 중 한 명만 데려올 수 있다면 제라드를 데려오고 싶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Q) 제라드와 함께 하고 싶은가? (A) 정말, 정말, 너무나 하고 싶다. 제라드는 너무나 고무적인 선수다. 그는 하고자 하는 일을 이뤄내는 선수다. 제라드는 말 한 마디 없이 리버풀에 힘을 실어 준다.(2009년)'''
'''티에리 앙리'''
'''우리는 서로 많은 경기에서 상대했었고 난 늘 그에게 가서 말했다. ★너와 함께 뛸 수만 있다면 영광일거다★라고. 제라드는 모든 공격수들의 꿈이다. 그와 함께 뛰어본 모든 공격수들에게 물어보라. 페르난도 토레스, 루이스 수아레스 등등. 그는 여전히 그런 존재다. 그가 보내는 모든 패스는 공격수들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패스다. (2015년)'''
'''제라드와 같은 전설과 함께 뛸 수 있어 너무나 자랑스럽다. 그와 함께 뛴 건 내 축구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그가 리버풀에서 이룩한 모든 것에 존경을 표한다. 나의 친구. 무엇을 하든지 잘 되길. (2015년 리버풀에서의 고별경기를 앞두고)'''
'''루이스 수아레스'''
'''지구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축구선수임을 느끼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트로피를 들어 올리거나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경기를 뛰어야 한다.'''
'''알바로 아르벨로아'''
'''그는 세계 어느 팀을 가더라도 잘 할 것이다. 스티비는 잉글랜드의 빠른 템포에서도 뛸 수 있으며 기술적으로도 뛰어나다. 그는 분명 역사에 위대한 선수로 남을 것이다. 내게 있어, 그는 이미 위대하다.'''
'''샤비 알론소'''
'''제라드와 같이 못 뛴 건 유감이다. 모두 그와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길 원했기 때문이다. 제라드는 선수 시절 그의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 선수 중 하나였다. 레알에 오지 못한 건 아쉽지만, 리버풀로서 행운이다. 그는 많은 재능과 실력을 안필드에서 보여줬다.'''
'''루이스 피구'''
'''내 말이 좀 편파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리스트[76]
에 이름을 올린 선수 중 제라드가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가진 선수는 없다.'''
'''대니 머피'''
8.1. 헌정사
제라드의 안필드 마지막 고별경기가 있던 날 전, 수많은 현직 유럽축구 슈퍼스타들과 감독들, 유명인사들이 SNS를 통해서 제라드에게 헌정사를 남겼다.
스티븐 제라드를 향한 60명의 SNS 헌정사
위 헌정사를 올렸던 선수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지구방위대급이다. 현재 리버풀 소속인 선수들을 제외하면 아래와 같다.
'''<전 리버풀 소속 선수>'''
루이스 수아레스, 닐 멜러, 디트마어 하만, 루이스 가르시아, 디르크 카윗, 다니엘 아게르, 페르난도 토레스, 에밀 헤스키, 피터 크라우치, 필 톰슨, 알베르트 리에라, 앤디 캐롤, 막시 로드리게스, 요시 베나윤, 라이언 바벨, 이안 러시, 로이 에반스, 베가드 헤겜, 하울 메이렐레스, 욘 아르네 리세, 티티 카마라, 알바로 아르벨로아
'''<리버풀 소속이 아니었던 축구선수 또는 감독(대표 소속팀)>'''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유벤투스 FC)''', '''티에리 앙리(아스날 FC)''', 조이 바튼(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아르다 투란(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스테반 그라네로(레알 소시에다드), 주니뉴 페르남부카누(올림피크 리옹), '''알레산드로 네스타(AC 밀란)''', '''안드레아 피를로(AC 밀란, 유벤투스 FC)''', '''카카(AC 밀란)''',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아스날 FC), '''안드리 셰브첸코(AC 밀란)''', '''세스크 파브레가스(아스날 FC,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아스미르 베고비치(스토크 시티 FC), '''앨런 시어러(뉴캐슬 유나이티드 FC)''', 팀 케이힐(에버턴 FC), '''데이비드 베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레알 마드리드 CF)''', '''파올로 말디니(AC 밀란)''', '''프란체스코 토티(AS 로마)''', 루디 가르시아(AS 로마 감독), '''게리 리네커(FC 바르셀로나, 토트넘 핫스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동영상으로 헌사를 하였다. 밑으로 내리면 유튜브 동영상이 있다.
'''지네딘 지단'''도 제라드의 마지막 홈경기가 끝난 뒤에 헌사를 했다.
'''<축구선수가 아닌 유명인사>'''
캐롤린 워즈니아키[77]
이쯤되면 스티븐 제라드가 동시대를 뛰었던 선수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충분히 설명이 되리라 본다.
9. 여담
- 현역 시절 게리 네빌이 제라드에게 슬쩍 말해주길, 사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맨유로 영입을 원하던 선수였다고 한다. 다만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실제로 영입제의를 하진 않은 모양. 제라드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학을 뗐다. 라이벌 팀이라는 것만 빼고 생각하면 기쁘게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일이다. 주제 무리뉴의 첼시 1기 시절과 레알 마드리드 당시의 영입 제의는 퍼거슨의 건과는 달리 생각할 여지 정도는 있었다고 한다. 맨유와는 달리 딱히 라이벌팀이 아니었던 것도 있지만, 당시 우승경쟁을 포기한 듯한 리버풀의 구단 사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있었던 모양. 결국 거절했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 밖에도 여러 빅클럽에서 러브콜은 현역시절 내내 있었다고 한다.
- 몬톨리보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제라드라 하였고 브라질 월드컵 이탈리아 vs 잉글랜드 전에서 라치오의 미드필더 파롤로까지 제라드가 아이돌이라 밝혔다. 경기 후 제라드에게 유니폼을 요구했었는데 이미 다른 선수들과의 선약때문에 유니폼 교환을 못했다고...[78]
- 피오렌티나의 마누엘 파스쿠알이 제라드의 광팬이다. 아퀼라니를 통해 제라드의 주장완장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후 주장으로 출전하는 경기에는 반드시 그 암밴드를 차고 나온다고. 교체되어 들어갈 때에는 그후 주장을 맡을 선수에게 제라드의 암밴드를 넘겨주는 건 물론 아니고 교체 선수가 다른 주장완장을 배달해준다(…). 누가 봐도 EPL 주장 완장이다.
- 지네딘 지단은 선수 시절에도 제라드에 대해 극찬을 많이 하였다. 제라드가 리버풀 나가길 결심하고 또다른 도전을 한다고 하자, 덕담을 하면서 선수시절 레알 회장에게 제라드와 같이 뛰고 싶다고제라드 영입을 요구했다고 한다.
- 그외 제라드에 대한 지단 발언들.
'레전드' 지단이 꼽은 최고 MF
-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의 롤모델로도 유명하다. 아스날 시절 바로 앞에서 인증을 하였다.
- 리버풀 동료들과 함께 두바이로 휴가를 떠났을 때, 다같이 몸을 숙이고 "콜로, 콜로 콜로, 콜로 콜로, 콜로 콜로 투레" 거리다 다같이 몸을 들고 "야야, 야야 야야, 야야 야야, 야야 야야 투레!"하고 외치는 일명 "투레 송"(...)을 부르는 것이 유튜브에 올라와 화제가 되었고, 이는 후에 잉글랜드 여자 국가대표팀이 패러디하며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링크 카메라를 들고가다 직원에게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마마두 사코의 모습이 압권.
- UEFA 궁극의 팀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80] 당연히 공격수에는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선정되었고 제라드는 차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중원을 형성하고 있다. 관련 기사
9.1. 제라드 vs 램파드
2000년대 최고의 잉글랜드 미드필더 떡밥엔 빠지지않고 출석하며 악명높은 램파드 vs 제라드 논쟁의 주인공.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9.2. 풋볼(리버풀) 드립(13년 9월~ 기준)
해당문서 참고.
9.3. 기타
아디다스 CF에선 출연하지도 않았는데 데이비드 베컴을 관광보냈다.
소년의 무심한듯 시크한 대답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을 때 대충 고자되기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베컴: '''좋아하는 축구 선수가 누구니?'''
소년: '''제라드요.'''
리버풀이 한창 굴곡진 팀생을 보냈던 시기와 제라드가 선수로서 늙어가는 시기가 겹쳤던지라 제라드가 꼬꼬마 시절일 때부터 봐온 올드팬들은 내가 악동이 성자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며 감격인지 한탄인지 모를 하소연을 한다 카더라. 현재는 수아레스마저 팀을 떠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라 팀의 순위와 더불어 고통의 아이콘이 되었다(...) 수아레스마저 떠날까 봐 밤에 잠을 설쳤다고 한다. 아아... 결국엔 수아레스가 남아서 리버풀에서 골 잘넣고 잘살고 있다..가 14/15시즌전 나갔다.
# 수아레스를 붙잡기 위해 자신도 작년에 챔스를 나가는 팀에게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는데, 수많은 영국 언론들이 이 클럽을 뮌헨으로 추측했다.
1분 54초부터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한 바 있다. 2008-09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마르세유 원정 때 페널티킥을 넣는 장면으로, 지학사의 수학 적분과 통계 익힘책에서 등장했다. 정확히는 빨간 유니폼의 선수들과 하늘색 유니폼의 골키퍼가 나오는데 스폰서 칼스버그 마크가 없어도 그 경기와 이 교과서를 모두 본 리버풀 팬들은 기억이 떠오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 경기가 치뤄진 시기는 이 개정 교육과정의 첫 세대인 1993년생들이 중학교 3학년일 때였다. 또한 이 경기에서 제라드는 페널티 킥으로만 두 골을 넣었다. 페널티 킥이 삽화로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등장한 위치는 확률 쪽 단원.
최근 자서전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았는데, 선수로서의 일 외에 선수 영입 관련 업무(...)도 수행했다고 한다. 지금은 첼시의 선수인 윌리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의중을 묻기도 했다고. 물론 리버풀의 성적이 하향세를 그리며, 그리고 리버풀이라는 몰락 탄광 도시를 홈으로 삼고 있는 것 때문에 거절도 많이 당했지만 그에 대해서 이해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구단의 역사나 비전은 선수가 이적할 때 주로 고려되는 사항이지만, 클럽이 위치한 연고지의 치안이나 거주 문제도 중요시된다. 리버풀은 잉글랜드에서도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이 나 있어서, 외국 선수가 쉽게 터를 잡기엔 리스크가 있는 것. 선수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안전도 중요한 문제니까...스티븐 제라드 본인도 이것을 알고, 런던을 연고지로 하는 첼시로의 이적에 대해 이해한다는 식의 글을 자서전에 수록했다.
가장 충격적인 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브렌던 로저스 리버풀 감독의 요청을 따라 '''토니 크로스'''에게 리버풀 행을 권유한 것(...). 제라드는 로저스와 달리 현실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2014년 월드컵 우승팀의 주축을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인 레알 마드리드가 노리고 있는데 이건 미친 짓이다' 라며 만류했지만 로저스는 그냥 미소만 지어댔다고 한다(...). 당연히 크로스는 레알 마드리드로 가버렸고, 그나마 다행히 크로스는 제라드를 바보 취급 안 하고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한 모양. 제라드는 자서전에서 '크로스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지 않도록 나를 배려해 주었다.' 라면서 그가 훌륭한 인격자라며 감사를 표했다.
'''훔바훔바'''라는 멸칭이 있는데 일베저장소/축구 게시판에서 누군가가 "제라드는 이름빨로 뜬거지 이름이 스티븐 훔바훔바였다면 필시 듣보잡이었을것"이라는 발언이 유래다. 그때까지만 해도 디씨/일베의 리버풀까 일부를 제외하면 크게 주목받는 밈은 아니었지만 13/14 시즌의 실책때문에 해당 멸칭이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당연히 리버풀 팬 입장에선 금지어. 급기야 이를 기리는 시까지 등장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어린 시절 축구를 하다가 날카로운 철제 공구 같은 것에 발등을 완전히 관통당한 적이 있다. 공이 덤불로 들어갔고, 손은 안 닿여서 발로 공을 꺼내려고 시도하다가, 그 뾰족하고 거대한 기구를 발등으로 차버린 것. 난리가 나서 병원에 실려갔고 병원에서도 결과를 장담하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수술 결과도 좋고 잘 회복이 되었다.
2017년 3월 25일에 안필드에서 열렸던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 레전드간의 친선경기에서 혼자서 1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리버풀의 4대 3 승리를 이끌었다. 스코어도 스코어지만 경기 내용이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마이클 오언의 첫 번째 골에서는 우측면 돌파에 이은 머리만 대면 골로 이어지는 크로스 배달, 존 알드리지의 두 번째 골에서는 페널티 박스 밖에서부터 시작된 절묘한 뒷공간 침투에 이은 발만 대면 골로 이어지는 땅볼 크로스 배달, 로비 파울러의 세 번째 페널티 킥 골의 유도 과정에서는 루이스 가르시아, 로비 파울러와의 계속되는 패스워크를 통한 전형적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침투, 그리고 절묘한 라인브레이킹으로 최후방 수비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돌파하면서 골키퍼[81] 와의 1:1 찬스를 PK로 유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쐐기골은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퍼스트 터치만으로 정면의 수비수를 벗겨냄과 동시에 논스톱 발리슛으로 득점하였다.[82]
득점과 어시스트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골대를 강타했던 페널티 박스 밖에서의 호쾌한 중거리 슛, 그리고 13/14 시즌을 연상시켰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전형적인 역할인 대지를 가르는 롱패스, 16/17 시즌 아담 랄라나가 생각나는 피치 곳곳을 활동량으로 커버하는 등 전성기 시절 하이라이트를 한 경기에 모여서 보여주는 듯한 미친 활약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트레콰르티스타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가 보여줄 수 있는 교과서적인 플레이를 단 한 경기로 거진 다 보여주었다.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팬투표로 결정되었던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된 것은 덤.
16/17 시즌 종료 후 치러진 시드니 FC와의 친선경기에 제이미 캐러거, 다니엘 아게르, 스티브 맥마나만 등 과거 동료들과 함께 출전했다. 상대가 호주리그이긴 하지만 프로팀인데도 이를 상대로 은퇴전의 모습처럼 정밀한 장거리 롱패스와 좋은 움직임을 수차례 보여주었다.
[image]
15년 여름을 끝으로 리버풀을 떠났음에도 리버풀 FC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자체 GERRARD 8 마킹[83] 을 다른 현역 스쿼드와 동등하게 제공하고 있다. 아니, 동등한 수준이 아니라 '최우선'이라 해도 될 정도. 10번이 빠진 것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 선수 이적이 결정되면 공식 스토어에서도 마킹 서비스를 중단하게 마련이나, 리버풀 FC 공식 스토어에서는 떠난 지 3년이 되어가는 선수의 마킹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도 현역 선수단과 감독보다도 높은 위치에서 가장 먼저 보여줄 정도. 물론 이것은 U-19 유소년 감독으로 여전히 리버풀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17년 여름까지는 제라드의 은퇴 시점까지 쓰이던 프리미어리그 공식 프린팅까지 제공되어 15/16, 16/17 시즌 유니폼에 GERRARD 붙어다니는 광경이 목격되었으나, 17/18 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 프린팅 도안이 바뀌어서인지 프리미어리그 프린팅은 제공되지 않는 중. 리버풀의 팬들에게 제라드가 얼마나 소중하고 잊을 수 없으며 대신할 수 없는 존재였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둘째 딸인 렉시 제라드는 모델로 데뷔했다. 참고로 매우 미인이다.
게임 피파 시리즈에서 대단한 스탯을 자랑한다. 특히 최전성기였던 피파 2009~2010 시절 근처에는 총 스탯 합계가 전체 선수 중 압도적으로 1위일 정도로 만능 선수로서 게임에 구현되었다. 또한 역대급 중거리슈터라는 명성 다운 스탯을 갖고 있는데, 중거리슛 스탯이 전체 게임 선수 중 1위인 시리즈가 피파 07, 08, 09, 10이며, 슈팅력이 1위인 시리즈는 피파 10, 11, 12, 13이다.[84] 게임에서도 오랜 기간 압도적인 중거리슛 능력을 인정받았다. 절정은 중거리슛 96, 슈팅력 95의 피파 2009와 중거리슛 95, 슈팅력 95의 피파 10이다. 30대가 되고 중거리슛이 갑자기 적어지며 피파 11부터 중거리슛 스탯도 최상위권이긴 하나 상당히 떨어졌다.
국내에서는 리그 우승 및 국가대표 성과가 없고 결정적인 실수들을 이유로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하며 그의 실력과 명성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얘기까지 안티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지만 사실 이는 근거가 희박하다. 다른 건 다 필요없고 제라드가 만약 과대평가 되었다면 왜 주제 무리뉴가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에게 엄청나게 구애를 했으며, 왜 황금기 시절 AC 밀란이 피를로 - 가투소 - 세도르프 - 카카로 이어지는 황금 중원에 제라드를 영입해 주전 미드필더로 활용하려 했으며, 왜 제라드의 전성기가 사실상 지난 2012년에 21세기 구단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하인케스의 바이에른 뮌헨이 그를 영입하려 들었겠는가? 제라드는 명백히 자신이 뛰던 시기에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였으며, 개인 수상 면에서도 역대에서 그를 앞서는 미드필더들은 몇 없다.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리버풀 vs 바르셀로나 2차전 경기를 직관했으나, 리버풀이 이날 4-0으로 승부를 뒤집은 경기를 너무 떨려서 차마 다 보지 못하고 다음날 딸을 학교에 데려다줘야 한다며 일찍 자리를 떴다. 떨린 이유가 자신이 보기에도 메시, 수아레즈 등 바르샤 공격진의 플레이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란다.[85] 이후 토트넘과의 결승전을 보러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를 직접 찾아갔다. 리버풀의 6번째 챔스 우승이 확정되자 기쁨의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