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2002년

 


'''롯데 자이언츠 시즌별 성적'''
2001 시즌

'''2002 시즌'''

2003 시즌
'''롯데 자이언츠 2002년 페넌트레이스 월별 진행 결과'''
'''시범경기'''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롯데 자이언츠 2002 시즌 성적'''
'''순위'''
''''''
''''''
''''''
'''승률'''
'''1위와의 승차'''
'''8''' / '''8'''
'''35'''
'''1'''
'''97'''
'''0.265'''
'''48.5'''
1. 개요
2. 시즌 전
2.1. 감독선임
2.2. 선수이동
3. 시즌 초
3.1. 선수이동
4. 시즌 중반기
4.1. 감독 교체
4.2. 트레이드
5. 시즌 후반기
5.1. 관중 514명 사건
5.2. 관중 69명 사건
7. 총평


1. 개요


롯데 자이언츠의 2002 시즌을 정리한 항목이다.

2. 시즌 전



2.1. 감독선임


김명성 감독이 2001 시즌 중에 사망하면서 우용득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는데, 우 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2. 선수이동


김민재가 FA로 SK 와이번스에 이적했다.
보상선수는 없이 현금만 수령했다.
호세가 재계약하면서 최초의 연장계약에 성공한 용병타자가 됐...었으나 애리조나와의 이중계약 파동으로 인해 용병최초로 kbo 영구제명을 받게된다. 나중에 풀어지긴 했지만...
이러면서 용병영입에 차질이 빚어졌고, 타자에서는 한물간 제로니모 베로아[1]를 뽑았다. 또다른 타자로 98년 용병 트라이아웃에서 주목받던 캔자스의 크리스 해처[2]을 영입했으며, 투수로는 좌완 대니얼 매기를 영입했다.
하지만 용병영입은 엄청난 실패로 돌아가게된다.

3. 시즌 초


시즌 초부터 상황이 좋지못했다.호세의 이중계약파동으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영입한 베로아는 개삽질을 하고, 해처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나마 투수인 매기가 좋았으나 고질적인 제구력문제로 아쉬운점을 보여주었다. 결국 용병타자 둘은 형편없는 성적을 기록하고 퇴출되었다.
먼저 퇴출된 베로아의 대체 용병으로 SK에서 뛰기도 했던 호세 에레라를 데려왔고, 그나마 에레라가 50경기동안 .305의 타율에 6홈런 20타점으로 선방한 편이었다.
거기에 마무리였던 강상수등 불펜들이 선발투수의 승리를 없애는등 불펜이 제몫을 못해주었으며 몰빵야구식으로 김장현,가득염,김풍철등 일부 투수의 혹사도 있었다.
결국 이런점이 복합적으로 엮이면서 일찌감치 최하위로 가게된다.

3.1. 선수이동


외야수 임재철[3]을 삼성으로 보내고 내야수 김태균[4]이명호를 받아왔다. 트레이드의 목적은 내야진 강화.

4. 시즌 중반기



4.1. 감독 교체


우용득 감독을 경질시키고 으로 영입했다. 백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일찌감치 시즌 포기 선언(...)을 하고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내년을 기약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나마 3할 타율로 선방하던 에레라가 7월말 경추부 디스크 증상으로 한달간 결장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고, 이미 시즌 포기를 했던 롯데는 내친김에 에레라마저 퇴출시켜 버렸다.

4.2. 트레이드


외야수 조경환과 투수 매기를 묶어서 SK로 보내고 SK 투수인 에르난데스, 내야수 박남섭,[5] 외야수 윤재국을 받아왔다.

5. 시즌 후반기



5.1. 관중 514명 사건


2002년 9월 14일에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서 참가국을 응원하는 시민 서포터즈가 결성되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 행사가 사직 야구장에서 열렸다. 롯데는 프로야구 붐을 살리겠다고 사직에서 개최하도록 시와 합의하고 결성식이 끝나고 경기를 무료로 관람하게 할 계획이었다. 이날은 토요일이라 17시에 경기를 시작했는데 행사에 참석한 인원들에게 경기를 보여줄 생각이었던 것. 그러나 발대식이 끝나기 무섭게 행사인원들은 앞다퉈 사직구장을 빠져나갔고, 결국 관중은 514명이라는 희대의 병크가 터져 버렸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각종 시민단체와 강제 동원된 학생들이 였고 오후 12시부터 입장을 해 땡볕에 26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사람들은 지쳤고 그래서 4시쯤 행사가 끝나자 마자 바로 나가버린 것이였다.

5.2. 관중 69명 사건


2002년 10월 19일에 한화 이글스와의 홈경기가 사직 야구장에서 열렸다. 한화나 롯데나 둘다 도찐개찐으로 7위와 8위인지라 상황이 나빴는데 이 날 관중은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유료관중이 69명이 오면서 구단 역사상 최소관중 기록을 썼다. 하지만 이날 롯데에서는 유니폼, 모자, 스트라이프 티 등을 입고 있는 팬에게는 무료 입장을 하는 이벤트를 해서 유료관중 최저 기록을 세웠다. 그래도 무료입장한 사람들을 합쳐도 200명 남짓한 정도 였다.

6. 페넌트레이스




6.1. 시범경기


문서 참조.

6.2. 4월


문서 참조.
4월 1일 신임 단장으로 이상구 기획부장을 겸직 발령하였다. 전임 이철화 단장은 31일자로 면직 해임되었다.
4월 3일 내야수 서한규를 현대 유니콘스로 보내고 투수 노승욱을 영입하였다.
4월 29일, 외야수 임재철과 현금 8천만원을 삼성에 내주고 내야수 김태균, 이명호를 데려오는 1대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6.3. 5월


문서 참조.

6.4. 6월


6월 참조.

6.5. 7월


문서 참조.

6.6. 8월


문서 참조.

6.7. 9월


문서 참조.

6.8. 10월


문서 참조.

7. 총평


상대팀
상대전적
승률
우열
비고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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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
'''열세'''
09.07 열세확정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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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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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3
'''열세'''
08.24 열세확정
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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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3
'''열세'''
09.12 열세확정
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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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8
열세
09.10 열세확정
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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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
'''열세'''
09.03 열세확정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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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
'''열세'''
07.24 열세확정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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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8
'''압살'''
07.28 열세확정
'''롯데 자이언츠 사상 차악의 시즌'''[6]
  • 시즌 성적은 35승 1무 97패(승률 0.265)로 압도적인 꼴찌였다. 7위인 한화가 승률이 0.461이라는걸 생각해보자... 참고로 이 기록은 82삼미(승률 0.188) / 99쌍방울(승률 0.224)에 이은 3위이며 허구연이 세운 86청보의 (승률 0.273)을 능가하는 기록이다. 또한 패배수는 97패로 99쌍방울과 타이 기록이다.
  • 투수진은 폭망했다. 가득염은 방어율 5.61, 김사율은 4승 11패 2홀드 방어율 5.48, 김영수전설의 2승 18패 방어율 4.79를 찍으며 폭망했다. 팀내 최다승이 8승 14패염종석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스탯티즈 기준 팀 선발진 sWAR은 8개 팀 중 4위였다.[7] 물론 불펜은 8개 팀 중 압도적인 최하위였지만...
  • 타자진은 풀타임 3할타자가 없었다. 그나마 0.285의 최기문이 팀내 타격 1위를 했으며 0.284의 김응국은 베테랑으로서의 면모를 보였으나 나머지 타자들은 전부 2할 7푼을 넘지 못했다. 역대로 봐도 WRC+ 기준 뒤에서 3위인 처참한 타선을 보유했다.

  • 통상적으로 월간 7승 이하를 따내면 역대급 처참한 한달로 평가받는데, 롯데는 아예 이 시즌에, 내내 한달에 3~5승을 하였다. 말 그대로 크보 역사상 최악의 시즌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끔찍한 시즌이다.

[1] 96년 오클랜드에서 28홈런을 때려내면서 강타자로 주목받았으나 노쇠화등으로 롯데에 오게되었다. 나중에 '''약물 복용선수'''로 밝혀졌다.[2] 다저스의 투수와는 관련이 없다.하지만 한국포탈에서 검색하면 무조건 투수가 나오며 구글에서도 헷갈리는 모양(...)[3] 결국 임재철은 13년간 타팀을 떠돌다가 2015년에 롯데로 돌아왔다.[4] 2016년에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진으로 돌아온다.[5] 후에 박준서로 개명[6] 성적만 봤을 때는 최악이었으나 이로부터 17년 뒤, 이를 능가하는 흑역사를 쓰면서 차악의 시즌이 되었다.[7] 8위는 LG. 전형적인 김성근의 운형 방식에 따라 LG는 그 해 장문석, 이상훈, 이동현 트리오를 대단히 혹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