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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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시절
OB/두산, 롯데, SK, KIA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좌완 투수.
마쓰이 히데키가 1999년 한일 슈퍼게임에서 대한민국의 유명한 투수들을 상대로 8타수 8안타 홈런 1개를 치던 당시 인터뷰 때, 청소년 대회에 참가했을 적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어느 무서운 투수에게 '''4타수 4삼진'''을 당했다면서 그 투수의 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말했고, 그 투수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기자들이 '''이대진''', '''주형광'''같은 당대에 잘나가던 투수를 예상했으나 알고 보니 그 투수는 바로 김영수였던 것이었다.
경기고 시절부터 빠른 공으로 유명했던 좌완 투수였지만, 고질적인 문제인 제구력이 늘 문제였다. 150km/h를 던지는 건 그냥 식은 죽 먹기였지만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꽂지 못했던 투수였다. 똑같은 문제를 가진 후계자(?) '''고효준'''과도 비슷하다. 한때 같은 팀에서 김영수와 고효준의 공을 받아본 박경완이 말하기를, 김영수가 가니까 이번에는 고효준이 왔다면서 자신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볼을 받기 힘든 투수들 중 하나였다고 할 정도로 학을 뗐다. 여담으로 고효준은 '''롯데'''에서 데뷔를 하였고 김영수가 당시에 선배였기에 1년간 함께 한 적이 있었고, 이후 SK에서도 함께 뛰었던 바 있다.[1]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1997년 OB 베어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좌완 선발 투수의 갈증을 풀어줄 기대를 받으면서 2억 3,00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다.[2] 하지만 3년(두산 포함) 동안 단 1승도 기록하지 못하고 2패만 기록하면서 기대에 보답해 주지 못한 채 2000년 5월 7일 박보현[3] 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었다.
2000년 들어 좌완 불펜으로 활약했고, 8월 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5피안타 1사사구 완봉승을 기록했다. 그 해 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주형광에 이은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등 롯데 자이언츠의 좌완 에이스로 우뚝 섰다. 2000년 기록은 방어율 3.79, 7승 4패 1세이브. 당시, 선수협 사태로 난장판이었던 롯데 구단 선수들 대부분이 동요했던 시기이기도 하고 프랜차이즈 선수인 '''임수혁'''이 시즌 초에 쓰러졌을 때 만큼이나 좋지 못했다. 그리고 같은 좌완이던 주형광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2001년에도 좌완 선발 투수로서의 기대를 한껏 받아 왔으나 그 해 1승 6패 3세이브 4홀드에 그쳤고 2002년에는.... 그 전설의 2승 '''18패'''를 기록하면서 당시 시즌 최다 패전투수라는 불명예의 타이틀을 먹고 말았다.
결국 백인천 감독과 갈등을 빚고 2003년 6월 10일 이용훈을 상대로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나이로 30세가 된 이듬해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나이 30이 넘었기 때문에 군 팀에 가지 못한 채 강원도 고성군에서 '''현역'''으로 복무해야 했다. SK에 있던 2시즌 동안 기록이 좋지 못했고 2007년에 제대하여 복귀한 후 1승을 기록했지만....그 1승을 거둔 경기가 2007년 1군 등판 기록 전부였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좌완 투수를 좋아하는 김성근 감독에게도 답이 안 나왔다는 것.(이미 투수 출신의 김인식 감독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다....)
2007년 시즌 후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되고 롯데에 연봉 5,000만 원의 조건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1년 동안 1군 4경기에 등판하여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13.50을 찍고 2군에 머물다가 롯데에서 방출당했다. 이후 LG 트윈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으나 2009년 1월 KIA 타이거즈에 이적했다. 조범현 감독 밑에서 다시 기회를 잡으려 노력했지만, 1군 21경기에 등판해 1패 3홀드 평균자책점 8.31을 찍고 시즌 후 KIA 타이거즈에서도 방출당하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은퇴했다.
모교인 인하대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를 맡아 팀의 '12~'14년 3년 연속 대학야구대회 우승[4] 을 이끄는 등, 침체기에 빠져있던 야구부의 "제2의 전성기"에 일조했다. 윤강민, 박민호, 정정환[5] , 임서준이 그의 손을 거친 투수 제자들이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1. 소개
OB/두산, 롯데, SK, KIA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좌완 투수.
2. 아마추어 선수 경력
마쓰이 히데키가 1999년 한일 슈퍼게임에서 대한민국의 유명한 투수들을 상대로 8타수 8안타 홈런 1개를 치던 당시 인터뷰 때, 청소년 대회에 참가했을 적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어느 무서운 투수에게 '''4타수 4삼진'''을 당했다면서 그 투수의 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말했고, 그 투수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기자들이 '''이대진''', '''주형광'''같은 당대에 잘나가던 투수를 예상했으나 알고 보니 그 투수는 바로 김영수였던 것이었다.
경기고 시절부터 빠른 공으로 유명했던 좌완 투수였지만, 고질적인 문제인 제구력이 늘 문제였다. 150km/h를 던지는 건 그냥 식은 죽 먹기였지만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꽂지 못했던 투수였다. 똑같은 문제를 가진 후계자(?) '''고효준'''과도 비슷하다. 한때 같은 팀에서 김영수와 고효준의 공을 받아본 박경완이 말하기를, 김영수가 가니까 이번에는 고효준이 왔다면서 자신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볼을 받기 힘든 투수들 중 하나였다고 할 정도로 학을 뗐다. 여담으로 고효준은 '''롯데'''에서 데뷔를 하였고 김영수가 당시에 선배였기에 1년간 함께 한 적이 있었고, 이후 SK에서도 함께 뛰었던 바 있다.[1]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3. 프로 선수 경력
1997년 OB 베어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좌완 선발 투수의 갈증을 풀어줄 기대를 받으면서 2억 3,00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다.[2] 하지만 3년(두산 포함) 동안 단 1승도 기록하지 못하고 2패만 기록하면서 기대에 보답해 주지 못한 채 2000년 5월 7일 박보현[3] 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었다.
2000년 들어 좌완 불펜으로 활약했고, 8월 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5피안타 1사사구 완봉승을 기록했다. 그 해 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주형광에 이은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등 롯데 자이언츠의 좌완 에이스로 우뚝 섰다. 2000년 기록은 방어율 3.79, 7승 4패 1세이브. 당시, 선수협 사태로 난장판이었던 롯데 구단 선수들 대부분이 동요했던 시기이기도 하고 프랜차이즈 선수인 '''임수혁'''이 시즌 초에 쓰러졌을 때 만큼이나 좋지 못했다. 그리고 같은 좌완이던 주형광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2001년에도 좌완 선발 투수로서의 기대를 한껏 받아 왔으나 그 해 1승 6패 3세이브 4홀드에 그쳤고 2002년에는.... 그 전설의 2승 '''18패'''를 기록하면서 당시 시즌 최다 패전투수라는 불명예의 타이틀을 먹고 말았다.
결국 백인천 감독과 갈등을 빚고 2003년 6월 10일 이용훈을 상대로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나이로 30세가 된 이듬해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나이 30이 넘었기 때문에 군 팀에 가지 못한 채 강원도 고성군에서 '''현역'''으로 복무해야 했다. SK에 있던 2시즌 동안 기록이 좋지 못했고 2007년에 제대하여 복귀한 후 1승을 기록했지만....그 1승을 거둔 경기가 2007년 1군 등판 기록 전부였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좌완 투수를 좋아하는 김성근 감독에게도 답이 안 나왔다는 것.(이미 투수 출신의 김인식 감독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다....)
2007년 시즌 후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되고 롯데에 연봉 5,000만 원의 조건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1년 동안 1군 4경기에 등판하여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13.50을 찍고 2군에 머물다가 롯데에서 방출당했다. 이후 LG 트윈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으나 2009년 1월 KIA 타이거즈에 이적했다. 조범현 감독 밑에서 다시 기회를 잡으려 노력했지만, 1군 21경기에 등판해 1패 3홀드 평균자책점 8.31을 찍고 시즌 후 KIA 타이거즈에서도 방출당하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은퇴했다.
4. 지도자 경력
모교인 인하대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를 맡아 팀의 '12~'14년 3년 연속 대학야구대회 우승[4] 을 이끄는 등, 침체기에 빠져있던 야구부의 "제2의 전성기"에 일조했다. 윤강민, 박민호, 정정환[5] , 임서준이 그의 손을 거친 투수 제자들이다.
5. 역대 기록
[1] '''백인천''' 전 롯데 감독이 이 고효준을 보고 선수도 아니라는 말을 하다시피 고효준에게 악평을 날린 것과 거인의 미래인 '''이대호'''의 무릎을 박살낸 전적까지 있다. 여튼 롯데팬들에게 백인천 전 감독 평을 말하라고 하면 물어보다가는 죽을 수 있다....[2] 그 해 2차 1라운드에서 OB 베어스는 2명을 지명했는데, 함께 지명된 선수가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에서 함께했던 진갑용이다.[3] 2002년부터 두산 베어스를 시작으로 1군 매니저로 활동 중인 투수 출신 프런트. 전 NC 다이노스 1군 매니저.[4] '12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하계리그, '13년 KBO총재기 전국대학야구대회, '14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5] 1991년생 좌완투수로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인하대에 입단했다. KIA 타이거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빠르지 않은 구속 등 뚜렷한 장점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방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