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제14회 아시안게임
2002 부산 아시안게임
XIV Asian Games''' '''Busan 2002

[image]
[image]
''' 대회기간 '''
2002년 9월 29일 ~ 10월 14일
''' 개최국 '''
대한민국/부산광역시[1]
''' 슬로건 '''
'''새로운 비전, 새로운 아시아'''
'''New Vision, New Asia'''
''' 주제가 '''
Frontier#
''' 마스코트 '''
두리아
''' 참가국 '''
44개국
''' 경기종목 '''
48개 종목
''' 개회선언 '''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
''' 선수 선서 '''
문대성
''' 성화점화 '''
하형주, 계순희
''' 개·폐회식장'''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
1. 개요
2. 유치전
3. 주제곡
4. 역대 조직위원장
5. 정식 종목 및 경기장
6. 마스코트
7. 최종 순위
7.1. 대한민국 메달 현황
7.1.1. 세부 종목 메달 현황
7.1.1.1. 금메달
7.1.1.2. 은메달
7.1.1.3. 동메달
8. 한국측 스폰서
9. 기타

[clearfix]

1. 개요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부울경 3개 지역에서 분산개최된 아시안 게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1999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에 이은 대한민국 세번째 아시안 게임이다. 같은 해 여름에 2002 한일 월드컵을 치렀던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을 주경기장으로 하여 실시되었다.

2. 유치전


아시안 게임 역사상 최초로 경선이 벌어진 대회였다. 올림픽과 달리 경쟁이 덜했던 아시안 게임은 그동안 주로 단독 입후보를 통한 승인의 과정이 있었고, 심지어 1970년1978년에는 하겠다는 나라가 안 하겠다고 막판에 발을 빼는 통에 태국이 뒤치다꺼리를 다 하는 진통도 있었다. 그런데 이 대회는 2000년대 첫 대회라는 상징성도 있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올림픽처럼 경쟁이 벌어졌다.
부산에 맞선 경쟁 도시는 대만가오슝이었다. 대만이 처해 있는 외교적인 고립을 국제 스포츠 행사 개최로 만회하려는 대만 정부의 노력으로 인해 상당히 적극적으로 유치전에 나섰는데, 가오슝의 공약은 1,000만 달러의 발전기금 OCA 기부 및 선수단 전원의 무료 숙박. '''이를 리덩후이 당시 총통이 직접 나서서 보증을 하겠다고 인증까지 하시면서''' 상당히 인기를 몰았다. 당황한 부산이 내걸은 공약은 1,200만 달러의 발전기금 제공이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오늘날 아시안 게임에 걸리는 무수한 선심성 원조 및 발전기금 제공은 일종의 전통이 되어버렸다(...).
한편, 부산 유치를 도운 진짜 1등공신은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과 대만은 남북한처럼 원래 같은 나라지만 이념으로 분단된 나라다.[2] 중국은 대만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려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존재감이 높아져 "하나의 중국"이라는 메시지가 퇴색할 것을 우려했고, 자기네들 TV에 청천백일만지홍기가 휘날리는 꼴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대만에서 개최되면 전면적으로 보이콧할 것을 시사하면서 국제적인 외교압력을 가했다.
그래도 대만 가오슝이 내건 현질이 제법 파격적이었는지, 투표로 들어가면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예측이 적지 않았는데, 중국이 이 때 친중국가인 파키스탄을 통해서 엽기적인 제안을 내걸었다. '''거수 표결로 개최지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아시안 게임 불참도 불사하는 중국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거수 투표가 되면 어느 나라가 중국에 반대를 하는지 뻔히 보이고, 그리고 나중에 중국이 보복할 것이 보였으므로 유권자들은 어쩔 수 없이 부산을 찍어야 했다. 결국 1995년 5월 22일에 거수 투표가 강행되었고 개최지 투표에 참가한 41개국 중에 37개국의 지지를 얻은 부산은 이렇게 해서 어부지리로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확정되었다.
[image]
부산광역시가 유치도시로 결정된 이후,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에 들이닥친 대만인들.
거수 투표로 결정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당연히 대만은 노발대발하면서 반발했지만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자진 포기를 권유했고, OCA 위원장도 대만의 자진 포기를 권유하기도 했다.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 결국 부산은 이렇게 21세기 최초의 아시안 게임 유치에 성공했다.
물론 부산이 아무것도 안 하고 유치에 성공한 것은 아니라, 부산 유치 성공에는 유치위의 열성적인 노력도 있었다. 개최지 선정 장소가 롯데호텔 서울이었는데, 홈그라운드에서 개최지 선정을 이끈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3. 주제곡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 공식 주제가
양방언(Ryu Kunihiko) - Frontier'''

4. 역대 조직위원장


  • 김운용 (1995~1999 / 1999~2001)
  • 정순택 (2001~2003)

5. 정식 종목 및 경기장


총 38개 종목이 치뤄졌다.

6. 마스코트


[image]
2002년 아시안 게임의 공식 마스코트는 부산광역시의 시조(市鳥)인 갈매기를 디자인한 두리아이다. 두리아에는 영원한 아시아(Durative+Asia)라는 뜻의 복합어, “둘이(두리) 함께”라는 의미도 있다. 갈매기는 부산시의 새이기도 하며, 역동적이고 순수한 것을 상징한다.

7. 최종 순위


순위
국가명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총계
1
중국
150
84
74
308
2
대한민국
96
80
84
260
3
일본
44
73
72
189
4
카자흐스탄
20
26
30
76
5
우즈베키스탄
15
12
24
51
6
태국
14
19
10
43
7
인도
11
12
13
36
8
중화 타이베이
10
17
25
52
9
북한
9
11
13
33
10
이란
8
14
14
36
11
사우디아라비아
7
1
1
9
12
말레이시아
6
8
16
30
13
싱가포르
5
2
10
17
14
인도네시아
4
7
12
23
15
베트남
4
7
7
18
16
홍콩
4
6
11
21
17
카타르
4
5
8
17
18
필리핀
3
7
16
26
19
바레인
3
2
2
7
20
쿠웨이트
2
1
5
8
21
스리랑카
2
1
3
6
22
파키스탄
1
6
6
13
23
미얀마
1
5
6
12
23
키르기스스탄
1
5
6
12
25
투르크메니스탄
1
2
1
4
26
몽골
1
1
12
14
27
레바논
1
0
0
1
28
타지키스탄
0
2
4
6
29
마카오
0
2
2
4
30
아랍에미리트
0
2
1
3
31
방글라데시
0
1
0
1
32
네팔
0
0
3
3
32
시리아
0
0
3
3
34
라오스
0
0
2
2
34
요르단
0
0
2
2
36
브루나이
0
0
1
1
36
아프가니스탄
0
0
1
1
36
예멘
0
0
1
1
36
팔레스타인
0
0
1
1

7.1. 대한민국 메달 현황


종목



합계
태권도
12
3
1
16
정구
7
3
2
12
펜싱
6
5
3
14
레슬링
6
5
0
11
요트
6
2
2
10
사격
5
11
11
27
유도
4
5
4
13
근대5종
4
1
1
6
사이클
4
0
6
10
복싱
3
2
5
10
체조
3
2
4
9
배드민턴
3
2
3
8
육상
3
2
1
6
볼링
3
1
1
5
보디빌딩
3
0
2
5
승마
2
4
0
6
탁구
2
3
3
8
양궁
2
1
2
5
핸드볼
2
0
0
2
럭비
2
0
0
2
테니스
1
3
3
7
수영
1
2
9
12
당구
1
2
0
3
우슈
1
1
0
2
농구
1
1
0
2
배구
1
1
0
2
하키
1
1
0
2
역도
1
0
4
5
세팍타크로
1
0
3
4
야구
1
0
0
1
카누/카약
0
4
2
6
골프
0
2
2
4
조정
0
0
3
3
축구
0
0
1
1
공수도
0
0
1
1
합계
96
80
84
260

7.1.1. 세부 종목 메달 현황



7.1.1.1. 금메달

메달
종목
세부종목
이름

근대5종
남자 릴레이
김미섭 정태남 한도령

근대5종
여자 단체전
박정빈 신은미 정창순

근대5종
남자 단체전
김덕봉 김미섭 양준호 한도령

근대5종
남자 개인전
김미섭

핸드볼
여자
김은경 김정심 김차연 김향기 김현옥 명복희 문경하 손명희 우선희 이남수
이설희 장소희 정은희 최임정 허순영 허영숙

핸드볼
남자
강일구 김태완 남광현 박민철 박정진 백원철 윤경민 윤경신 이병호 이재우
이준희 임성식 장준성 정서윤 한경태 황보성일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
이신미

펜싱
여자 플뢰레 단체
남현희, 서미정, 오태영, 임미경

펜싱
여자 에페 개인
김희정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
이승원

펜싱
여자 에페 단체
김미정, 김희정, 이금남, 현희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김두홍, 서성준, 이승원, 이혁

하키
남자
강건욱 강성정 김경석 김용배 김윤 김정철 김철 서종호 송성태 신석교
여운곤 이남용 임종천 전종하 지성환 황종현

태권도
여자 -72kg
최진미

태권도
여자 -51kg
임수정

태권도
여자 -67kg
김수옥

태권도
남자 -58kg
김대륭

태권도
남자 -78kg
오선택

태권도
남자 -54kg
박희철

태권도
여자 -63kg
김연지

태권도
남자 -67kg
남연식

태권도
남자 +84kg
문대성

태권도
남자 -84kg
김경훈

태권도
여자 -59kg
윤성희

태권도
여자 -55kg
윤경림

테니스
여자 복식
김미옥, 최영자

체조
남자 마루
김성일

체조
남자 링
김동화

체조
남자 철봉
양태석

탁구
남자 복식
유승민, 이철승

탁구
여자 복식
석은미, 이은실

양궁
여자 단체전
김문정, 박성현, 박회윤, 윤미진

양궁
남자 단체전
김경호, 김석관, 임동현, 한승훈

역도
남자 -85kg
송종식

요트
남자 레이저급
김호곤

요트
남자 420급
박종우, 이동우

요트
남자 오픈 엔터프라이즈급
전주현, 정권

요트
남자 오픈OK딩기급
진홍철

요트
남자 레이스보드급
옥덕필

요트
남자 470급
김대영, 정성안

사이클
남자 메디슨
서석규, 조호성

사이클
남자 30km 포인트 레이스
조호성

사이클
여자 포인트 레이스
김용미

사이클
여자 개인도로
김용미

세팍타크로
남자 원형 경기
곽영덕, 김종훈, 유동영, 윤주형, 이명철, 이준표

수영
남자 자유형 50m
김민석

승마
마장마술개인
최준상

승마
마장마술단체
김정근, 서정균, 신창무, 최준상

야구
남자
김동주 김민재 김상훈 김종국 김진우 김한수 노장진 박명환 박재홍 박진만
송진우 이병규 이상훈 이승엽 이승호 이영우 이종범 임창용 장성호 정재복
조용준 홍성흔

우슈
남자 태극권
양성찬

유도
남자 -73kg
최용신

유도
남자 -66kg
김형주

유도
여자 -52kg
이은희

유도
여자 -78kg
조수희

육상
남자 마라톤
이봉주

육상
남자 멀리뛰기
이진택

육상
여자 창던지기
이영선

정구
남자 단식
김경환

정구
여자 단식
박영희

정구
여자 복식
김서운, 장미화

정구
남자 복식
유영동, 이원학

정구
혼합 복식
김서운, 유영동

정구
남자 단체전
김경한, 김희수, 유영동, 이원학, 황정환

정구
여자 단체전
김명희. 김서운, 김현주, 박영희, 장미화

복싱
남자 -54kg
김원일

복싱
남자 -48kg
김기석

복싱
남자 -67kg
김정주

볼링
여자 5인조
김수경 김여진 김효미 김희순 남보라 차미정

볼링
여자 3인조
김수경 김여진 차미정

볼링
여자 개인전
김수경

사격
여자 스키트 개인전
손혜경

사격
여자 스키트 단체전
곽유현 김연희 손혜경

사격
남자 50m 소총 복사 단체전
강승균 남형진 최병우

사격
남자 더블트랩 단체전
김병준 박정환 정윤균

사격
여자 더블트랩 개인전
이상희

농구
남자
김승현 김주성 문경은 방성윤 서장훈 신기성 이규섭 이상민 전희철 조상현
추승균 현주엽

당구
남자 3쿠션 단식
황득희

럭비
남자 15인제
백인성 조철형 최창열 최성환 천종만 한영훈 김동선 김형기 김재성 김광재
김광모 김영남 이진욱 이관희 이명근 박창민 박진배 박광수 박노영 박용돈
신우식 성해경 엄순길 용환명 유민석 윤희수

럭비
남자 7인제
최창열 천종만 김형기 김재성 이진욱 이명근 박창민 박진배 박노영 성해경
용환명 유민석

레슬링
남자 자유형 -74kg
조병관

레슬링
남자 자유형 -66kg
백진국

레슬링
남자 자유형 -84kg
문의제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4kg
김진수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60kg
강경일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66kg
김인섭

배구
남자
신진식 김세진 박재한 여오현 최태웅 김상우 방신봉 신선호 이경수 석진욱
권영민 장병철

배드민턴
여자 복식
라경민 이경원

배드민턴
혼합복식
김동문 라경민

배드민턴
남자 단체
김동문 박태상 손승모 유용성 이동수 이재진 이현일 임방언 장영수 하태권

보디빌딩
남자 -85kg
강경원

보디빌딩
남자 -60kg
조왕봉

보디빌딩
남자 -70kg
한동기

7.1.1.2. 은메달


당구
남자 3쿠션
이상천

당구
남자 포켓 9볼 복식
김원석 정영화

사격
여자 50m 소총 3자세 단체전
공현아 김정미 이선민

사격
남자 25m 센터파이어 권총 개인전
이상학

사격
여자 50m 소총 복사 개인전
이미경

사격
남자 10m 러닝타겟 단체전
조세종 허대경 황영도

사격
남자 10m 러닝타겟 개인전
허대경

사격
남자 25m 스탠더드 권총 단체전
김성준 박병택 이상학

사격
남자 50m 권총 단체전
김선일 이상도 진종오

사격
남자 50m 소총 3자세 단체전
남형진 박봉덕 차영철

사격
남자 25m 속사권총 개인전
이상학

사격
여자 10m 러닝타겟 단체전
김득남 김문선 박정윤

사격
여자 더블트랩 단체전
김샛별 손혜경 이상희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
이규영

펜싱
남자 플러레 개인전
김상훈

펜싱
여자 플러레 개인전
임미경

펜싱
남자 플러레 단체전
김상훈 김영호 이관행 최병철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김희연 이규영 이신미 조경미

하키
여자
기숙현 김성은 김윤미 김은진 박용숙 박정숙 오고운 유희주 이미성 이선옥
이은영 임주영

테니스
남자 단체전
김동현 윤용일 이형택 정희석

테니스
남자 단식
이형택

테니스
남자 복식
이형택 정희수

카누
남자 K-2 1000m
남성호 정광수

카누
남자 K-1 500m
정광수

카누
남자 C-1 500m
박창규

카누
남자 K-1 1000m
남성호

탁구
남자 복식
김택수 오상은

탁구
혼합 복식
유승민 유지혜

탁구
남자 단체전
김택수 류승민 오상은 이처승 주세혁

태권도
여자 -72kg
윤현정

태권도
남자 -62kg
김향수

태권도
남자 -72kg
이재진

육상
여자 포환던지기
이명선

육상
남자 높이뛰기
김태회

정구
남자 단식
김희수

정구
남자 복식
김희수 황정환

정구
여자 단식
김현주

체조
남자 개인종합
김동화

체조
남자 단체전
김대은 김동화 김승일 양태석 양태영 이선성

수영
남자 자유형 1500m
조성모

수영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개인전
장윤경

승마
장애물 비월 개인전
이진경

승마
마장마술 개인전
서정균

승마
종합마술 개인전
전상용

승마
종합마술 단체전
김규섭 김형칠 김홍철 전상용

양궁
여자 개인전
김문정

요트
여자 420급
김숙경 허정은

요트
남자 오픈레이저 레이디얼 급
김정곤

우슈
남자 산타 -60kg
김귀종

유도
여자 -48kg
김영란

유도
여자 -70kg
배은혜

유도
여자 +78kg
최숙이

유도
남자 -81kg
안동진

유도
남자 -100kg
장성호

배구
여자
강혜미 구민정 김사니 최광희 박미경 구기란 정선혜 이명희 김미진 장소연
정대영 김남순

레슬링
여자 자유형 -72kg
강민정

레슬링
여자 자유형 -55kg
이나래

레슬링
남자 자유형 -60kg
송재명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96kg
박명석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120kg
양영진

배드민턴
남자 단식
이현일

배드민턴
여자 단체전
권희숙 김경란 라경민 배승희 신자영 이경원 이혜영 이효정 전재연 황유미

복싱
남자 -60kg
백정섭

복싱
남자 -81kg
최기수

볼링
남자 5인조
김경민 김명조 김재훈 변호진 서국 조남이

골프
남자 단체전
권기택 김병관 김현우 성시우

골프
여자 개인전
김주미

근대5종
남자 개인전
양준호

농구
여자
김계령 김영옥 김지윤 박정은 변연하 이미선 이언주 이종애 장선형 전주원
정선민 홍현희

7.1.1.3. 동메달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개인전
박은영

사격
남자 10m 공기소총 단체전
김병은 이우정 임영섭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단체전
김형미 박은경 서선화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
진종오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 단체전
강은라 고진숙 박정희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
박정희

사격
남자 더블트랩 개인전
정윤권

사격
여자 스키트 개인전
곽유현

사격
남자 25m 센터파이어권총 단체전
박병택 이상학 장대규

사격
남자 50m 소총 3자세 개인전
박봉덕

사격
남자 25m 스탠더드권총 개인전
박병택

펜싱
여자 플러레 개인전
서미정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김두홍

펜싱
남자 에페 단체전
구교동 김명관 양뢰성 이상엽

테니스
여자 단체전
전미라 정양진 조윤정 최영자

테니스
남자 복식
권오희 김동현

테니스
여자 단식
조윤정

태권도
여자 -47kg
강지현

탁구
여자 복식
김무교 유지혜

탁구
남자 단식
오상은

탁구
여자 단식
유지혜

카누
남자 C-2 1000m
이병탁 이승우

카누
남자 C-2 500m
박창규 전광락

축구
남자
김동진 김두현 김영철 김용대 박규선 박동혁 박요셉 박용호 박지성 변성환
이동국 이영표 이운재 조병국 조성환 최태욱 현영민

체조
여자 마루
김지영

체조
남자 도마
김대은

체조
남자 평행봉
김승일

체조
여자 리듬체조 단체전
유성은 이지애 조은정 최예림

조정
여자 싱글 스컬
이은화

조정
여자 무타 페어
김경미 백순미

조정
남자 더블 스컬
김달호 김정관

정구
혼합 복식
김희수 박영희

정구
혼합 복식
김명희 박영희

육상
남자 110m 허들
박태경

유도
남자 -90kg
박성근

유도
남자 -60kg
최민호

유도
여자 -57kg
김화수

유도
여자 무제한급
조수희

요트
여자 유럽급
홍진영

요트
남자 레이스보드급
홍아람

역도
남자 -62kg
조효원

역도
남자 -94kg
이응조

역도
여자 -75kg
김순희

역도
여자 +75kg
문경애

양궁
남자 개인전
임동훈

양궁
여자 개인전
윤미진

수영
남자 4x200m 계영
고윤호 김방현 최원일 한규철

수영
여자 4x200m 계영
김예슬 김현주 심민지 하은주

수영
남자 4x100m 계영
고윤호 김민석 성민 한규철

수영
남자 400m 자유형
한규철

수영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듀엣
김민정 장윤경

수영
여자 4x100m 계영
김현주 류윤지 선소은 심민지

수영
남자 4x100m 혼계영
고윤호 성민 손성욱 유정남

수영
여자 4x100m 혼계영
구효진 박경화 선소은 심민지

수영
남자 10m 싱크로나이즈드 다이빙
권경민 조과훈

세팍타크로
여자 원형경기
김미진 김미현 김신정 나유미 박정현 이명은

세팍타크로
남자 단체전
곽영덕 김대희 김재민 김형일 윤주형 이명철 이준표 정성화 정연홍

세팍타크로
여자 단체전
김건선 김미진 김미현 김신정 나유미 박금덕 박미리 박아람 박정현 안순옥
이명은 정지영

사이클
여자 도로독주
이은주

사이클
여자 500m 독주
이정애

사이클
남자 1km 독주
김지범

사이클
여자 3km 개인추발
임황준

사이클
여자 스프린트
구현진

사이클
남자 경륜
현병철

볼링
남자 2인조
김명조 조남이

복싱
남자 -71kg
송인준

복싱
남자 -63.5kg
신명훈

복싱
남자 -75kg
문영승

복싱
남자 -51kg
김태근

복싱
남자 -91kg
이현성

보디빌딩
남자 -80kg
이진호

보디빌딩
남자 +90kg
최재덕

배드민턴
여자 단식
김경란

배드민턴
여자 복식
이효정 황유미

배드민턴
남자 단식
손승모

근대 5종
여자 단체전
고애리 박정빈 신은미 정창순

공수도
남자 쿠미테 -75kg
김병철

골프
남자 개인전
김현우

골프
여자 개인전
박원미

8. 한국측 스폰서




9. 기타


  • 이 문서가 처음 작성된 때는 리그베다 위키 시절이던 2012년인데, 1년도 더 전에 하위 문서인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야구가 먼저 작성되어 있었다.
  • 성화는 백두산 천지한라산 백록담에서 채화되어 임진각에서 합화되었다. 성화의 최종점화도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남한의 하형주 선수와 북한의 계순희 선수가 공동 점화했다. 북한 성화 봉송자들이 채화하고 금강산에서 만나 남한에 인계했다. 이후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되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때 당시에 한창 활발히 진행되던 햇볕정책을 위시한 남북관계 개선사업에 기인해 가능했던 것.
  • 이 때까지만 해도 생존해 있던 대한민국 스포츠의 영웅이자 원로인 손기정 선생이 점화자로 검토되기도 했는데, 이미 건강이 상당히 악화되었던 터라 점화자로 발탁되지 못했다. 그래도 2002 아시안 게임을 끝까지 보고 타계하였다.
  • 개/폐막식 총연출은 유명 사극 PD 김재형이 맡았다.
  • 북한이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열린 스포츠 대회에 참가한 대회이기도 하다. 북한은 그 동안 1988 서울 올림픽에 불참한 것을 비롯해서 대한민국에서 열린 수많은 스포츠 대회에 전부 불참했으나, 이 대회에 사상 처음으로 선수단을 파견한 것. 대한민국에서 인공기 게양과 북한 애국가 연주를 허락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인공기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게양되고 북한 국가가 처음으로 정식 연주되었다.[3]
  • 북한은 선수단 외에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응원단을 파견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미녀 응원단'이란 별명이 붙어 당시에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북한 선수들의 참가와 공식적인 자리의 인공기 게양 같은 것보다는 이 응원단이 더 많은 관심을 끄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미녀 응원단으로 불렸던 이 응원단은 가는 곳마다 관중을 불러모았다. 그 외에도 북한은 스스로를 '북한'이 아닌 '조선'으로 일컫기 때문에 북한 응원단을 환영한다는 플랜카드에 있는 '북한'이란 문구를 보고 항의해서 철거하는 일도 있었다.
  • 대만이 개회식 때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게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부산광역시 관계자에 의해 저지되었다. 아시안 게임에서도 올림픽처럼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내걸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 결국 올림픽에서 그렇듯 중화 타이베이의 깃발인 매화기를 달아야 했다.
  • 남자 농구 대표팀이 중국을 102:100으로 이기고 20년 만에 AG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국내 농구 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영광의 순간이다.[4]
  • 이 대회의 공식 음악은 양방언이 작곡한 Frontier라는 곡이다. 원래 이 곡은 2001년에 발매된 Pan-O-Rama라는 이름의 앨범에 수록되어 있던 퓨전 국악곡이었는데, 부산 아시안 게임 관계자가 우연히 이 곡을 듣고 공식 음악으로 선택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데 이 곡이 당시 유난히 흥해서 현재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 축구의 경우 몇 달 전에 치러진 월드컵 신화에 힘입어 16년만의 금메달을 노렸으나, 4강전에서 이란승부차기로 패해 3위 결정전으로 밀려나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승부차기 때 이영표가 날린 슛이 골대를 맞는 바람에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는데, 세간에서는 이 골을 보고 일명 이동국 군대가라 슛이라는 별칭이 붙어졌고, 실제로 이동국은 바로 다음해인 2003년부터 광주 상무에 입대하여 병역의무를 수행했다.[5] 그리고 이 대회를 통해 지도자 첫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박항서는 우승 실패를 이유로부임 석 달 만에 전격 해임되는 어처구니가 없는 사태까지 벌어졌다.[6] 이 때 이란 대표팀은 자바드 네쿠남, 알리 다에이, 골모함마디, 바헤디, 카에비, 알리레자, 에브라힘 등 전력이 상당했다. 특히 와일드카드로 공격수와 골키퍼를 뽑는 등 준비가 철저했기 때문에 상당히 전력이 강했다.
  • 부산 도시철도 3호선은 원래는 아시안게임 개최에 맞춰 개통할 계획이었다. 주경기장 바로 옆을 종합운동장역이 지나가도록 지어지기도 했고, 노선에 아시아드선이라는 애칭을 붙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와 계획 변경[7] 등 이런저런 이유로 공사가 늦어져서, 실제 개통은 아시안게임이 끝나고도 3년이나 더 지나서야 가능했다. 그래도 아시안 게임 기간동안 원활한 교통 흐름을 대비하기 위해서 미남역~거제역 구간의 경우 토목공사에 한해서는 예정대로 진행하였다.[8][9][10]
  • 부산 아시안 게임의 경기 진행장소를 보면 창원, 양산, 마산, 울산 등 모두 그 당시 영남권에서 중소~대도시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양산시의 경우 본 아시안 게임을 대비해 양산종합운동장이 계획, 조성됐다.

[1]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분산 개최[2] 일부 대만인들은 원래 같은 나라였다는 부분도 부정하기도 하지만, 일단 대만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여전히 중국과 대만은 분단국가라는 것이다.[3] 대한민국이 먼저 여유를 보여줌에 따라서 이후 북한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도 태극기 게양와 애국가 연주가 뒤늦게 허용되었다.[4] 단 이 경기는 논란이 상당히 많았던 경기이다. 이 이후에 중국이 한국과 경기를 할 때 대놓고 편파판정을 할 때가 늘었다.[5] 이동국 외에도 김용대, 김영철 등이 이 경기의 패배로 인해 병역특례에 실패했지만, 아무래도 네임밸류가 높은 이동국의 이름을 따서 불린다.[6] 이 때의 자세한 정황은 박항서 항목에 서술되어 있다.[7] 미남 - 안평 구간을 지선으로 하려던 것을 경전철로 바꾸면서 4호선으로 분리된 것 등.[8] 그 증거로 해당 구간의 역사 출입구와 환풍구 디자인을 들 수 있다. 출입구의 경우, 다른 구간에 속한 역사의 그것과는 다르게 전체적인 형태는 2호선 2단계 구간과 거의 같고 마감재를 검정색 화강암으로 마무리 하는 등의 차이를 보여주었고 난간 장식도 부산 아시안 게임 공식로고를 금색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환풍구도 2호선 2단계 구간의 그것과 형상이 거의 유사하고 측면에 장식을 놓고 상부 마감은 검정색 화강암으로 마무리 하였다.[9] 다만 출입구에 계단을 설치한 것은 종합운동장역 5,7,9,11번 출구를 제외하고 대회 이후 2005년에 마무리 공사동안에 설치하였다.[10] 앞서 언급한 해당 번호의 출입구는 미남~거제역간 출입구 중에서 가장 먼저 2001년에 완공되었고 외부 마감조차도 2호선 출입구랑 완전히 똑같은 형태이다. 게다가 이 출입구는 3호선 개통 이전까지는 지하도 출입구로 임시로 활용한 전적이 있다. 다만 5번, 7번 출입구는 이후에 에스컬레이터 설치 공사로 인해 철거하고 다시 만든 전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