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가브리엘 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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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Gabriel Suchet (1770.3.2 ~ 1826.1.3)
1. 개요
'''스페인의 여우.'''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때의 프랑스군 장군이자 나폴레옹이 임명한 26인 원수 중 한 명. 초대 알뷔페라 공작.[1]
2. 생애
리옹의 비단 방직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에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으려 했으나 1792년 국민 방위군 기병대에 자원해 프랑스 혁명전쟁에 참전하면서 군인이 되었다. 뛰어난 군사적 역량을 발휘해 빠르게 승진했으며 1793년 대대장으로 프랑스 툴롱 공방전에 참가했고 1797년 오스트리아 티롤, 1797년 스위스에서 복무해 기욤 마리 안 브륀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1799년 7월 이탈리아의 바르텔레미 카트린 주베르 휘하의 사단장과 참모장이 되었다. 1800년에는 앙드레 마세나에 의해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나폴레옹 알프스 산맥 횡단 작전에 이바지했고 1800년 6월 14일 마렝고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1805년에는 아우스터리츠, 잘펠트 전투, 예나, 푸우투스크, 오스트로우엥카 등지에서 복무했고 1808년 3월 19일 백작 작위를 받았다. 곧 스페인에 배속되어 1809년 6월 14일 마리아에서 영국군을 섬멸하고 1810년 4월 22일 레리다에서 다시 영국군을 패배시켰다.
1812년 스페인 발렌시아를 점령하고 알뷔페라 다 발랑시아 공작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의 점령지를 모두 내주고 프랑스로 후퇴했다. 왕정 복고로 루이 18세가 그를 귀족에 봉했으나 백일천하 때 나폴레옹을 지지하자 1815년 귀족 자리에서 박탈되었다.
한편 쉬셰는 나폴레옹의 원수들 중에서 몇안되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반도 전쟁 당시 다른 원수들이 매우 부진한 반면에, 그는 영국군에게 패배의 치욕을 수차례 안겨줘 '스페인의 여우'라고 불렸다.
여담으로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폴레옹은 오메라(o'mera) 박사에게 "가장 뛰어난 장군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굳이 꼽자면 쉬셰라고 답했다.또한 한때는 앙드레 마세나라고 생각했었지만 마세나는 백일천하때 나폴레옹을 따르는것을 거부했기에 그를 거의 죽은사람으로 간주할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 정식명칭은 1st Duc de Albuf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