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카닐리아
1. 개요
아르헨티나국적의 축구선수 출신의 축구 감독. 1978년부터 1979년까지 FC 지롱댕 드 보르도의 감독직을 맡았었다.
1.1. 선수 생활
선수 시절 그는 자신의 고향을 연고지로한 아르헨티나 4부리그의 CA 올리보스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다만 멕시코로 건너가 CA 티그레에서 프로 데뷔를 이루었으며, 3시즌정도를 뛴후 어릴적부터 자신이 꿈꾸었던 클럽인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하여 금의환향한다. 여기서 특이할만한 점이, 당시 보카로 막 이적했던 카닐리아는 친선전에서 첫 경기를 뛰었는데 전반 3분만에 골을 넣었지만 5분 뒤 왼팔이 골절당하는 부상을 입고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을 입은 채로 경기를 뛴 카닐리아 덕분에 팀은 3-0으로 이기며 독특한 신고식을 치루게 된다.
이후 5시즌을 활약하지만 마지막 시즌 CA 산 로렌소와의 경기에서 다리부상을 당한 직후 폼이 급속도로 하락하여 슬럼프가 오고만다.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다시 멕시코로 건너가지만 10년전과는 달리 차카리타와 아틀라스에서는 부진한 모습만 보여주게 되었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프랑스의 OGC 니스로 이적하여 말년에 리그 1, 쿠프 드 프랑스 우승에 성공한다. 은퇴 직후 니스의 영국인 감독이던 조지 배리의 뒤를 이어맡으며 감독으로서 두번째 축구 인생이 시작된다.
1.2. 감독 생활
감독이 된지 첫시즌만에 니스를 리그 1의 정상에 올려놓는다. 그리하여 1956-57시즌엔 프랑스 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유로피언 컵에 출전하게 되었고, 덴마크의 AGF 오르후스와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 FC를 연달아 꺾으며 8강 진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8강에서 만나게된 상대가 그 당시 유럽을 호령했던 '''저승사자 군단''' 레알 마드리드 CF였고, 그런 레알에게 니스도 호기롭게 도전해봤지만 총합 2-6으로 참패하며 탈락하게 된다.
결국 그 시즌에서는 리그에서 13위, 챔피언스리그 8강, 쿠프 드 프랑스 준결승이라는 다소 아쉬운 성적과 함께 무관으로 끝났지만, 마침 호세 비야롱아의 후임을 찾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와 레알 마드리드 보드진이 평소에 눈여겨본 카닐리아에게 오퍼를 날렸고, 이를 받아들인 카닐리아는 1957년, 레알 마드리드 CF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이후 라리가에서 보낸 첫시즌에서 호세 산타마리아를 영입해 수비를 강화시키며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고, 유로피언 컵에서도 마침내 우승을 하여 더블을 기록한다. 이는 비유럽 출신 감독이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하는 기록도 된다. 카닐리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질주하는 소령''' 페렌츠 푸스카스를 영입하여 1958-59시즌에도 우승을 하여 2연패를 달성하며 비야롱아의 2연패를 이어받아 총 4연패라는 대기록을 만들어낸다.
니스, 레알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ACF 피오렌티나와 SSC 바리, AS 로마와, 당시 유럽에서 레알과 쌍두마차를 이루던 AC 밀란까지 지휘하였지만, 로마에서 인터-시티 페어스컵을 들어올린것을 빼면 명성과 걸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는 네레오 로코에게 물려받아 디펜딩 챔피언인 밀란을 이끌었지만 1963-64시즌 유로피언 컵에서 레알에게 4-3 석패를 당하면서 카닐리아는 점점 저물어가는 감독이 되어갔고, 1969년 유벤투스 FC를 제외하면 중위권 클럽들만 맡다가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8년만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FC 지롱댕 드 보르도를 끝으로 감독직에서 은퇴한다.
2. 여담
루이스 카닐리아는 '''2020년''' 현재까지 챔스에서 우승한 40명의 감독들중 '''유일한 비유럽 국적'''의 감독이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