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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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로, 정식명칭은 Die Hansestadt Lübeck이다. 인구는 2018년 기준 약 22만명.
2. 역사
11세기경 슬라브인들이 세운 촌락인 리우비체(Liubice)가 도시의 기원이며 현재의 뤼베크는 리우비체에서 남쪽으로 약 4km 지점에 1143년 홀슈타인 백작인 아돌프 2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1158년부터 작센 공작 하인리히 사자공이 뤼베크를 지배하게 되었다. 대화재로 도시가 폐허가 되었지만 사자공에 의해 재건되어 작센 공국의 발트해 무역의 중심도시로 성장한다. 북해/발트 해 교역에서 한때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한 한자동맹의 맹주이기도 했다. 이후 13세기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하여 자유도시로 지정됐으며 함부르크, 브레멘과 함께 오랫동안 독립 자유시로 있었지만, 17세기 독일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30년 전쟁의 여파로 큰 타격을 입은 데다가[3] 대항해시대 이후로 유럽에서 무역의 중심지가 뒤바뀐 탓에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과거부터 이미 인구 수만 명을 보유한 도시였지만 이후에 인구가 조금 줄기 시작해서 전쟁이 완전히 끝난 1683년에는 인구가 20,000명[4] 으로 유지되었다.
이후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프랑스 제1제국의 영토로 합병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5] 이 당시였던 1804년에는 인구가 20,000명[6] 으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전쟁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공군에 의해 잿더미가 된 도시이기도 하다. 이는 대전 말기의 베를린 대공습, 드레스덴 폭격과는 달리 영국 본토 항공전 직후의 사건이다. 독일 공군이 영국의 소도시 코번트리를 잿더미로 만들며 '코번트리시켰다'는 은어를 만들어내자, 영국 공군이 보복으로 뤼베크를 홀라당 태워버리고 '뤼베크시킨다'는 은어를 만들어낸 것. 특히 이 뤼베크 공습은 이후 쾰른 대공습의 예행연습 격이 된다.
전후 독일 동부에서 피난민 및 추방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도시의 인구가 15만 명에서 22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영국군 점령 지역에 속하게 되면서 서독의 일부가 되었다. 이 때 동서독 국경이 마치 6.25 전쟁 이전까지의 개성시처럼 뤼베크 시가지 바로 옆에 있었다!
3. 인구
- 뤼베크/인구 참조.
4. 출신 인물
5. 여담
- 이 도시에 자리잡은 대성당의 벽화 복원작업을 둘러싸고 스캔들이 발생해 독일 전역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뤼벡 성모 마리아 성당 벽화 위조 사건 항목으로.
- 이곳에 있는 성모 마리아 교회(Marienkirche) 는 13세기에 완공된 로마네스크 건축물이지만 대항해시대3에선 그냥 동네 교회로 나온다.
-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주활동무대였던 곳이기도 하다.#
- 이 도시를 연고로 하는 축구구단으론 VfB 뤼베크와 1. FC 푀닉스 뤼베크가 있다
- 타 국가로 가는 여객선들이 아직도 많이 운항한다. 헬싱키, 말뫼, 리가, 리예파야 등.. 물론 엄밀히 말하면 뤼베크 시가지 옆 강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에 와서 외항역할을 하고 있는 트라베뮌데에서 착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