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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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3] 프로이센이 존재했을 때는 프로이센 제2의 도시였다.[4] 그리고 독일의 미디어 수도이다. 공영방송인 ARD의 중추 멤버인 WDR과 독일 주요 민영방송국인 RTL그룹 본사가 위치해있다. 수십 년동안 인구가 정체되어 있다가 최근에 인구가 100만명을 돌파했다. 도시의 상징으로 쾰른 대성당[5] 이 있고, 현대 향수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또한 도시의 풀네임은 프랑크푸르트와 비슷하게 쾰른 암 라인(Köln am Rhein, 라인 강의 쾰른)이다. 공문서에는 모두 이 풀네임이 표기되어있다.
2. 인구
- 쾰른/인구 참조.
3. 역사
게르만족의 한 일파인 우비족이 이 일대에 거주하였으나 서기 1세기 무렵 로마 제국이 국경선을 라인강 일대로 확정짓는 과정에서 이 일대에 군사 기지를 세웠고 이것이 오늘날 쾰른이라는 도시의 출발점이 된다.[6] 라인강 국경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도시는 빠르게 성장해나갔고, 로마가 이 일대에 설립한 속주인 저지 게르마니아의 주도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한 때 쾰른을 로마의 최북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이 지역은 프랑크 왕국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9세기 프랑크 왕국의 분할 당시에 체결된 베르됭 조약에 의해 동프랑크 왕국의 영토로 넘어간다. 라인강의 수운을 이용한 동서간 무역의 거점지 역할을 차지한 쾰른은 중세 시기에도 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 중의 하나로 살아남는다. 서기 13세기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일곱 선제후 중 하나이기도 한 쾰른 주교를 몰아내고 자유 도시로 지정받으면서 자치권을 획득했고, 이후 한자동맹에 가입하면서 더더욱 번성해나간다. 무역의 거점지였던만큼 각종 상공업도 빠르게 성장해나갔고, 장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길드를 형성했던 것도 이 시기 얘기.[7]
쾰른은 이미 인구 수만 명을 보유한 도시였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1683년에도 인구가 40,000명[8] 으로 유지되었다. 이런 자치권은 거의 600년간 유지되다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프랑스 제1공화국의 의용군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이 패배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 측은 라인강 이서 지방을 모두 프랑스에게 넘겨줘야 했고 이 과정에서 쾰른도 프랑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이 당시였던 1804년에는 인구가 40,000명으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전쟁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이후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의 정식 영토로 편입된다.[9]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빈 회의를 통하여 쾰른과 그 일대는 프로이센 왕국의 통치를 받기로 결정된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세력이 강성했던 쾰른 지방과 프로테스탄트가 우세한 프로이센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았고, 1837년에는 쾰른의 주교가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 사이의 결혼을 인정할 것을 거부하다가 체포되기도 했으며 1870년대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가톨릭 탄압 운동인 문화투쟁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 터져나오면서 이 일대에서는 프로이센에 대한 반감이 뿌리깊게 자리잡는다.[10]
어쨌든 프로이센의 통치 하에서 쾰른 일대는 빠르게 산업화되면서 1900년대 초반에 이미 인구 70만 명의 도시로 성장한다. 프랑스와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상 1차대전 시기에 폭격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당시 공군이 워낙 원시적인 수준이어서 피해는 경미한 수준에 그쳤다. 1차 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라인강 서안 지방은 연합군이 진주하게 되면서 쾰른 역시 1920년대 후반까지 영국군의 지배를 받는다. 이 시기 쾰른의 시장이었던 아데나워는 연합군 측과의 효율적인 의견 조율 및 그린벨트 조성 등을 통해 안정적인 행정을 펼쳤지만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망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폭격기 사령부 지휘관이였던 아서 해리스가 밀레니엄 작전을 통해 1,046대의 폭격기를 동원하면서 쾰른 일대는 말 그대로 쑥을 재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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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쾰른. 왼쪽 중앙에 보이는 대성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박살났다. 이때 쾰른의 95%가 파괴되었다. 지금 쾰른의 건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새건물이고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탑들은 전쟁 후 재건된 것들이다.
고딕 양식의 대성당들은 위에서 본 모습이 십자가 모양인데,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영국군은 '십자가는 성당이니 그 일대는 폭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쾰른 대성당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12]
종전 이후에도 쾰른은 여전히 라인란트 일대에서 최대 도시로 남아있었지만 신설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주도로 뒤셀도르프가 선정된다. 거기에 서독의 수도로는 뜬금없이 본이 선정되며 쾰른은 망했나 싶었는데, 새옹지마로 뒤셀도르프와 본 사이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하면서 오늘날까지도 굳건히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4. 이모저모
- 라이벌 도시는 뒤셀도르프. 인지도, 인구, 기타 등등을 따져봐도 주도 간판을 단 뒤셀도르프보다는 쾰른이 확실히 앞서간다. 맥주는 이게 30분거리에 있는 동네인가 싶을 정도로 다르지만. 둘 다 박람회가 유명하고 카니발이 유명하다.
- 원래는 대성당 근처의 성벽 내의 작은(?) 도시였지만 20세기 이후 주변 소도시(뮐하임이나 포어츠 등)을 쾰른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하고 나서도 면적이 405.15㎢으로, 411.74㎢인 경상북도 경산시보다 작다.
- 정치적으로는 사민당과 녹색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구마다 있는 기민당 지부 사무실을 보면 동네 미용실만도 못하게 허름하다. 기민당이 강세를 보이는 뒤셀도르프와는 정반대. 괜히 라이벌이겠냐만. 뒤셀도르프 북쪽인 루어 지역은 전통적인 사민당의 텃밭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은 전통적인 공업지역인 만큼 노조가 강력하고 노동자들이 많은 도시라 대부분은 사민당 텃밭인데 뒤셀도르프가 이질적인 건 맞다.
- 쾰른 중앙역 근처가 모두 구도심이라서 걸어다니면 아기자기하고 좋다. 다만 2차세계대전 때 드레스덴 다음으로 가장 처참하게 폭격맞은 도시이기 때문에 성당들 말곤 전통적인 건축물은 남아있는게 거의 없다. 지금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시청인 쾰른 시청(Rathaus)도 근처에 있고, 특산품인 쾰른의 자존심 쾰쉬 맥주를 파는 집과 18세기에 만들어져 나폴레옹도 애용했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향수인 Farina 1709는 구시청 바로 맞은편에, Eau de Cologne (오 드 콜로뉴 : 쾰른의 물) 《4711》 본점은 오페라 하우스 옆에 있다. 오 드 콜로뉴는 부향도가 낮은 향수 제품군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사실상 보통명사화되었다. 또한 1898년부터 시작한 캐리어로 유명한 브랜드 리모와의 본점도 쾰른에 있다.
- 쾰른의 중심쇼핑가 쉴더가세(Schildergasse)와 노이마크트(Neumarkt)는 독일에서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쇼핑가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브랜드가 모두 입점해 있어서 그런지 관광객을 포함하여 쇼핑객들이 굉장히 많고, 별로 유럽 분위기가 나지 않으며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하다.
- 도시가 크다보니 도시가 9개의 구(Stadtbezirk)와 그 구는 또 여러 개의 구역(Stadtteil)로 나뉘어져 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구와 동과 비슷하며, 각 구에는 구청이 따로 있어서 일처리가 매우 수월하다. 9개의 구는 인넨슈타트(Innenstadt), 로덴키르헨(Rodenkirchen), 린덴탈(Lindenthal), 에렌펠트(Ehrenfeld), 니페스(Nippes), 코어바일러(Chorweiler), 포어츠(Porz), 칼크(Kalk), 뮐하임(Mülheim) 등이 있다. 어떤 구는 예전에 독립된 소도시였으나 쾰른에 흡수당했다. 구마다 특색이 있는데, 남쾰른(대체로 로덴키르헨)이나 린덴탈 쪽은 항공기의 소음이 적고 조용하여 대체로 집값이 비싸고 내국인 부자들이 많이 살며, 뮐하임 구에는 터키인이 많이 살고 이스탄불 거리라는 특이한 거리가 있어서 터키 식당과 상점들이 매우 많다, 또 코어바일러 구에는 아랍인들이 많이 살고, 칼크 구 또한 집값이 저렴해서 외국인이 많이 사는데, 순진해보이는 10대 초반의 어린아이들에 의한 소매치기 같은 범죄가 많다.
- 2017년부터 외국인은 비자를 받기 위해 별도의 약속을 잡을 필요없이 준비물만 들고가서 바로 찾아가면 처리해주는데, 성에 따라 A~Z까지 몇 개의 사무실로 나뉘어져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성씨의 사무실로 찾아가면 된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구의 구청으로만 찾아가야하며 널럴한 구청이 있고 까다로운 구청이 있다. 거주등록(Anmeldung), 거주이전(Ummeldung), 퇴거신고(Abmeldung)도 마찬가지로 그냥 가서 할 수 있지만 비자에 비해 굉장히 오래 기다려야하니, 약속을 잡고 가는 게 편하다.
- 에렌펠트(Ehrenfeld)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살며, 영어만 해도 살 수 있는 지역이다. 전세계에서 몰려온 젊은이들이 많이 살며 영어가 유창하다는 것을 알면 마구 말을 걸어온다(..). 개인 카페, 갤러리, 여러 특수 샵, 클럽과 술집들이 에렌펠트에 밀집해있으며 베를린에나 있을 법한 DJ들이 여기에도 많이 있고, 쾰른 내에서 가장 힙한 곳이다. 그래서 집값이 연이어 상승 중이며,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해서 Paris, New York, London, Ehrenfeld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나 후드, 에코백, 깃발, 머그잔(..) 등등의 온갖 아이템들을 볼 수 있다. 밑동네인 본에서도 그대로 따라한 아이템이 있으나 존재감이 희박하다.
- 대한민국에서는 카니발 하면 브라질을 떠오르는데, 카니발 축제의 기원은 바로 쾰른이다. 유럽 최대 축제이며, 옥토버페스트보다 몇배는 규모가 크다. 매년 11월 11일 11시 11분에 카니발 시작을 알리는데, 이 날부터 노는게 아니고,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로젠몬탁(퍼레이드)은 2월 초중순에 열린다. 다만 11월 11일에도 도시 곳곳에 코스츔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며 시내에서는 평범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오히려 놀림받거나 린치의 대상이 된다. 미국의 할로윈을 방불케하는 코스튬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관중이고 행렬이고 쾰른 시내 전체를 매운다. 퍼레이드 행렬 구경하며 Kölle Alaaf!(쾰른 만세)를 부르면 사탕과 초콜릿등을 뿌려준다. 이 날은 숙박값이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니 주의.
-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박람회인 ART COLOGNE가 열리는 도시라 그런지, 볼만한 박물관이 많다. 중세미술에서 인상파까지 다루고 있는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슈뉘트겐 중세박물관, 루트비히 현대미술관, 독일 사실주의화가인 케테-콜빗츠 미술관, 동아시아미술관 등(한국 고미술도 소장되어 있음)이 있다. 그 외에도 린트(Lindt)사에서 지원하는 세계적으로 제일 큰 임호프-초콜렛박물관(Imhoff-Schokoladenmuseum)이 있고, 그 근처에 겨자 박물관(Senfmuseum)도 있다.
- 독일의 가장 큰 공영방송 서부독일방송(WDR, Westdeutscher Rundfunk)이 쾰른에 소재해있다. ARD이 사실상 서부독일방송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독일 공영방송의 중심도 쾰른인 셈. 또한 독일의 제일 큰 민영방송사인 RTL의 본사가 있다.[13] 미니멀틱한 테크노, 하우스음악을 만드는 레코드사로 유명한 KOMPAKT가 있다. 그래서인지 Intel Extreme Masters의 개최지 중 하나이기도 한데, 쾰른이 독일의 미디어 수도라고도 하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 또한 루프트한자의 본사도 있다.
- 현대음악의 한 장르인 전자음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1951년 쾰른 라디오 방송국에서 슈톡하우젠에 의해 전자음악 실험이 시작되었다. 또한 유명한 현대음악가인 리게티는 쾰른 국립음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브람스도 쾰른 시립 교향악단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 다른 부분과도 인연이 깊은 부분이 많지만, 게임과도 인연이 깊은 도시이다. 유럽의 굵직굵직한 메이저급 e스포츠 이벤트는 대부분 쾰른에서 치뤄지며, 유럽 LCS 역시 쾰른에서 치뤄지고 있다. 아무레도 미디어의 중심지인데다 도심에 대규모 박람회장이 있다보니 이점으로 작용한 듯하다. 매년 거대한 메세(Messe)에서 게임스컴 행사가 열려, 이 기간동안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쾰른을 찾으며, 게임관련 굿즈나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는 양덕들을 볼 수 있다.
- 독일의 게이 수도라 불리며 독일 게이들의 올림픽이라는 게이 게임즈도 쾰른에서 열렸다(#). 독일의 유명한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이자 녹색당 국회의원인 폴커 벡이 쾰른 지역구 출신이다.[14] 매년 여름에 열리는 CSD(크리스토퍼 스트릿 데이) 퍼레이드는 독일최대 급 규모다. 카니발의 고장 답게 CSD도 수많은 코스튬으로 거대하게 열리는데, 겨울엔 카니발 여름엔 CSD 퍼레이드를 구경하면 한해가 다간다.
- 분데스리가에서 활동중인 1.FC 쾰른의 연고지이다. 홈구장인 라인 에네르기 슈타디온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 경기장으로도 쓰였다. 이 외에 축구팀은 3부리그인 3. 리가 에서 활동중인 FC 빅토리아 쾰른과 4부인 레기오날리가 서부지구에서 활동중인 SC 포르투나 쾰른이 있고 독일 아이스하키팀 쾰너 하이에와 야구팀인 쾰른 카디널스 쾰른의 주요 스포츠 팀. 아이스하키 팀인 쾰너 하이에는 리그가 처음 생긴 72년부터 90년대까지는 우승도 여러 번 하는 등 강팀이었으나, 21세기 들어서는 2001년 딱 한 번 우승한 것 말고는 몇 번의 결승전 말고는 이렇다할 성과가 없다. 최근인 17/18시즌에는 8강에서 탈락하여 6위를 기록.
- 도시 규모에 걸맞지 않게 지하철이 없다. 하지만 경전철의 규모가 총연장만 200km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규모라[15] 딱히 필요성을 느끼진 않는 듯 하다. 뒤셀도르프, 에센 등과 마찬가지로 달리 트람이 지하와 지상을 오가며 지하철 역할도 수행한다. 아예 역마다 U표시가 되어 있다. 그래도 트람은 트람인지라 DB앱에는 STR(Straßenbahn, 즉 트람)으로 표기된다.
- 경전철이 16,18번 노선이 본과 이어져 있는데, 풍경은 좋지만 이걸 타고 본에 가려면 한 시간 가량이 걸린다. 마찬가지로 S반이 다닌다고 이걸 탔다간 뒤셀도르프까지 40분이 넘게 걸려 지겨워 죽을지도 모른다. 그냥 RB나 RE를 타자.
- 울프럼알파에 따르면 쾰른의 평균 해발 고도는 43m로 서울과 같다. 주변에 산이 없는 평야지대이다. 가장 가까운 산은 남쪽으로 약 35km 떨어진 쾨니히스빈터의 지벤게비르게.[16] 본의 라인강 건너편 남쪽이다. 쾰른 대성당 건설에 필요한 석재도 이 산에서 캐온 것.
- 독일 드라마 알람 포 코브라 11(Alarm für Cobra 11 - Die Autobahnpolizei)의 배경이기도 하다.
- 비정상회담의 패널 다니엘 린데만의 고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같은 주의 랑엔펠트(Langenfeld) 태생인데 워낙 작고, 인지도가 낮은 도시다 보니 그냥 이야기하기 편하게 잘 알려진 쾰른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그 이름답게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골프장과 말 농장, 논밭이 많은 아름다운 소도시이다. 하지만 랑엔펠트는 쾰른보다는 뒤셀도르프에 훨씬 더 가깝고, 담당하는 교통공사도 VRS(NRW 남부, 쾰른-본과 그 주변)가 아닌 VRR(NRW 중서부, 루르 공업지대)구간이다. 따라서 뒤셀도르프 출신이라 하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한국인들에게 뒤셀도르프는 쾰른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냥 쾰른으로 한 듯. 본 대학의 한국어학과를 나왔기에 더더욱 뒤셀도르프 다음으로 쾰른에 대해서도 익숙했을것이다.(RE를 타면 20분 밖에 안걸리니까..)
- 크라우트록의 전설인 캔(밴드)도 여기서 결성되었다.
- 한글로는 쾰른으로 ㅚ를 쓰지만 정확한 발음은 사라진 이중모음인 ㆉ이다.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인 셈. 현지에서 한국발음으로 '쾰른'이라고 얘기하면 거의 알아듣지 못하며, 차라리 영어식 발음인 '콜론'이라고 하는게 더 잘 통한다.
- 쾰른 고유의 사투리인 kölsch(쾰른의- 라는 형용사)가 있으며 소문자로 써야한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도 있고, 서점에 가면 Kölsch-독일어 사전도 있다. 일반적인 독일어만 배운 사람이 봤을 때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고 바이에른 사투리와 같이 독일어를 많이 닮은 별도의 체계의 언어다. 쾰른 사투리로 쾰른은 Kölle라고 하며, 현대 독일어로는 Köln이라고 쓴다. 참고로 쾰른 남자는 Der Kölner이며, 쾰른 여자는 Die Kölnerin, 그리고 쾰른의 맥주는 Das Kölsch라고 한다. 모두 명사이며, 정관사가 붙고 첫글자는 대문자로 써야한다. 카니발 때 외치는 Kölle Alaaf!도 마찬가지로 쾰른 사투리이다. 옛 독일어로는 Cöln이었다.
- 쾰른 사람들은 다른 지역의 맥주나 전국구 맥주에는 관대하지만 유독 뒤셀도르프의 지역맥주인 알트(Alt)에게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쾰른 사람에게 쾰른 사람들은 알트를 마시지 않냐고 물어보면 마구 흥분하면서 그러한 일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들 대답하는데, 쾰른 사람은 절대 알트를 마실 일이 없다는 것과, 알트라는 맥주 자체가 생기지 말았어야 한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 쾰쉬 맥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쾰른 대성당에서 10km 이하의 거리에 양조장이 위치해야 한다. 쾰쉬를 만드는 브랜드만 26종이나 있으며 1-3위 브랜드의 연간 생산량만 해도 총 150만 헥토리터(리터의 100배)가량으로 쾰른 사람들의 쾰쉬 사랑은 대단하여 엄청나게들 마셔댄다. 대부분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쾰쉬를 주문하면 굴곡없이 길쭉한 모양의 전용잔인 슈탕에 잔(Stangeglas)에 따라주는 생맥주를 저렴하게 마실 수 있다. 사실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별다른 말 없이 맥주 주세요 하면 보통 쾰쉬를 준다. 200ml 잔이 표준이며, 브랜드에 따라 3~400ml 잔도 있다. 구시가지 내에 파펜(Pfaffen)이라는 맥주 브랜드도 있는데 쾰쉬 맥주의 메이커 중 하나인 페프겐(Päffgen) 가에서 수백년 전에 분가한 가족이 만든 양조장으로 사람에 따라 쾰쉬들보다 이것이 훨씬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쉽게도 대성당에서 20km 넘게 떨어진 클라스베르크(Klasberg)라는 도시에 양조장이 있어서 쾰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쾰쉬 맥주의 브랜드가 한 때는 100개가 넘었으나 현재에는 라이스도르프(Reissdorf, 생산량 1위), 프뤼(Früh), 헬러스(Hellers), 페프겐(Päffgen), 뮐렌(Mühlen), 쭌프트(Zunft), 슈레켄스캄머(Schreckenskammer), 쥐너(Sünner), 트라우곳 지몬(Traugot Simon), 콜로니우스(Colonius), 비쇼프(Bischoff), 가데(Garde), 뷔어거(Bürger), 길덴(Gilden), 지온(Sion), 돔(Dom), 라츠(Rats), 기즐러(Giesler), 그레나디어(Grenadier), 한자(Hansa), 퀴퍼스(Küppers), 제스터(Sester), 간서(Ganser), 페터스(Peters), 가펠(Gaffel) 등의 26개 브랜드만 남아있다. 대성당 인근에 각 브랜드에서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으니 골라서 가보자. 이런 직영 레스토랑들은 손님이 늘 많아 회전율이 빨라 맥주들이 늘 신선하다. 어떤 것은 청량하고 어떤 것은 바이에른 맥주처럼 쌉사래하고 고소한 맛이 진한 등등 브랜드 별로 맛이 천차만별로 다르며, 역시 병이나 캔보다는 가게에서 생으로 먹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가펠과 프뤼가 들어오는데, 쾰쉬 중에서는 향이 적고 청량한 스타일이다.
- 2016년 난민들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서 독일 내에서 난민에 대한 논쟁이 불을 뿜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1] 실제 발음은 쾨에서 ㄹㄴ받침을 동시에 발음하는 것에 가깝다. 가끔씩 '''퀼'''른이라고 발음하거나 표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물론 틀린 표기이다. 그리고 현지 사투리"쾰쉬"로는 '''꾈른'''처럼 들린다고 한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리푸리아 사투리(Ripuarische Dialekte)는 역사적으로 프랑크족의 영역이었기 때문인지 표준독일어와 다르게 무성파열음이 된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사투리 들어보기 이 명칭은 쾰른 밖의 교외지역에서도 쓰이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는 거고 실제로는 맥주 이름과 비슷한 쾰쉬이다. 그래서 관련 농담도 있다.[2] 움라우트를 표기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대신에 K'''oe'''ln으로 풀어쓰기도 한다.[3]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다음이다.[4] 1위는 당연히 베를린.[5] 1.FC 쾰른의 로고에 솟아있는 탑이 바로 쾰른 대성당의 첨탑이다.[6] 오늘날까지도 로마시대의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 2007년에는 서기 1~2 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로마인들의 선적이 발굴되어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쾰른 대성당 옆에 (법을 바꿔서) 로마 유적지 박물관이 세워졌고, 돈을 안 내도 바깥에서 유리창 아래로 엄청나게 큰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7] 14세기 무렵 인구수가 당시 도시로서는 최고 수준이었던 5만명 가량이었다.[8] 쾰른/인구 참조.[9] 나폴레옹 헌법 도입 등을 통해 중세적 봉건 신분 구조가 철폐되는 계기가 되었던 점에서는 어찌보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10] 이 시기 쾰른 지방 사람들이 프로이센에 대해 지닌 반감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초대 독일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이다. "엘베 강 동쪽을 지날때마다 나는 문명의 유럽에서 야만의 아시아로 넘어가는 것을 느낀다."라는 그의 발언은 아주 유명하며, 중립국 조건으로 스탈린이 제안한 독일 통일을 거부하고 서구권 세력하의 서독을 고수한 아데나워에게 일부러 프로이센을 엿먹이려고(...) 그런 거 아니냐는 음모론을 일각에서 제기했을 정도.[11]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5호 전차 판터 vs M26 퍼싱의 격돌이 벌어진곳도 이곳의 대성당 앞.[12] 화마를 완전히 피해가진 못했다. 당장 1942년 밀레니엄 작전 당시 영국 항공대의 선발기가 맨 먼저 폭탄을 떨어뜨려 폭격개시를 알린 타겟이 쾰른 대성당의 첨탑이었다.[13] 쾰른메세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SUPER RTL의 건물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을 정도[14] 폴커 벡은 공개적 동성애자로,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와 동서독의 동성애자 처벌에 대한 정부 사면 및 사죄, 시민결합 제도와 동성결혼 합법화에 중추적 기여를 하였다.[15] 전 세계적으로 총연장 200km를 넘기는 경전철 시스템은 멜버른, 모스크바 정도를 빼면 딱히 없다.[16] 봉우리가 7개라 붙여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