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트 다사예프
1. 개요
러시아의 前 축구선수로 현재 FC 스파르타크 -2 모스크바의 골키퍼 컨설턴트다.
소련에 등장한 수많은 레프 야신의 후계자 중에서도 실력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사나이로 198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이며, 역대를 통틀어서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꼽힌다. 흔히 생각하는 러시아인과는 좀 다른 느낌인데, 이는 그가 타타르족 혈통이기 때문이다.
2. 클럽
1975년 고향팀인 볼가 아스트라한에서 데뷔했다. 데뷔한 지 2시즌 만에 다사예프는 명문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로 이적하게된다. 감독이었던 콘스탄틴 베스코프는 그의 스로잉 능력에 주목했고, 이를 빠른 역습에 이용했다. 이곳에서 그는 11년간 활약했고 이 기간동안 소련 올해의 골키퍼에 6회나 선정되는 등 전성기를 달렸다. 또한 리그 우승 2회, 준우승 5회를 달성했다. 스파르타크 시절의 다사예프는 시즌마다 5~6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보여주었고 총 출장한 335번의 리그 경기에서 279실점만을 허용했다.
1988년에는 스페인의 세비야 FC로 이적하며 소련 선수로는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한 선수가 되었다. 첫 두 시즌은 주전 선수로 활약했지만 두번째 시즌 중반부터 부진하기 시작했던 다사예프는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이 겹치며 세번째 시즌에는 FC 바르셀로나에서 이적한 후안 카를로스 운수에에게 밀렸고 리그에서 1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세비야는 다사예프에게 다른 클럽으로 이적할 것을 권고했으나 본인이 거절했고 시즌이 끝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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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부터 1990년까지 91경기에 나서 70실점을 기록했다. 91경기 출장은 러시아를 제외하고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 2번째로 많은 출장 기록이다. 국가대표팀 데뷔전 상대는 동독이었으며 1-0으로 승리했다. 메이저 대회로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 1986년 멕시코 월드컵, UEFA 유로 1988,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다. 자국에서 열린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도 참가했으며 동메달을 따는데 일조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1차 조별리그에서 브라질, 스코틀랜드, 뉴질랜드와 한 조가 되었고 1승 1무 1패, 6득점 4실점을 기록하며 2차 조별리그에 진출했다. 벨기에, 폴란드와 한 조와 묶인 소련은 1승 1무를 거두었으나 폴란드에게 골득실차가 밀려 탈락했다. 다사예프는 2경기에서 모두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프랑스, 캐나다, 헝가리를 상대로 1실점만을 기록하며 철통같은 방어력을 과시했지만 16강 상대인 벨기에에게 4골을 내준 끝에 3-4로 패배했다.
UEFA 유로 1988은 다사예프를 세계에 이름을 알린 대회라 할 수 있는데, 우선 조별리그에서 아일랜드, 네덜란드, 잉글랜드를 맞아 2실점만을 기록하며 조 1위로 4강에 진출하는데 일조했으며 4강전 이탈리아를 상대로는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결승전 상대는 이미 조별리그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는 네덜란드. 그러나 루드 굴리트에게 선취골을 얻어맞은 뒤 마르코 판바스턴에게 대회 역사상 최고의 골을 허용하면서 우승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다사예프는 이 대회 활약을 발판으로 1988년 IFFHS 선정 최고의 골키퍼에 이름을 올렸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는 해외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승선했다. 그러나 첫 경기인 루마니아를 상대로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다음 경기부터는 우바로프에게 밀렸고 팀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대회가 끝난 뒤 다사예프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4. 플레이스타일
189cm의 장신을 활용한 공중 장악 능력이 역대 최고 수준이며, 전 영역에 걸쳐 완성된 기량을 보여주었다. 시대를 앞선 플레이를 많이 보여주기도 했는데, 어마어마한 공중 장악력을 앞세워 페널티 박스 가장 바깥 쪽까지 튀어나가 공중에서 스위핑을 해버리는가 하면, 포환던지기 선수를 연상케 하는 막강한 어깨 힘을 이용해 하프라인을 심심찮게 넘겨버리는 드로잉 능력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