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image]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
'''FC Spartak Moscow'''
'''정식 명칭'''
Футбольный клуб Спартак-Москва(Football Club Spartak Moscow)
'''별칭'''
'''Красно-белые(적백), Мясо(고기들)[1], Народная команда (인민의 팀)'''
'''창단'''
1922년 4월 18일
'''소속 리그'''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Российская премьер-лига)
'''연고지'''
러시아 모스크바(Moscow)
'''홈 구장'''
옷크리티예 아레나(러시아어: Открытие Арена)
(45,360명 수용)
'''라이벌'''
'''디나모 키예프''' - 소비에트 축구 더비[2]
'''PFC CSKA 모스크바''' - 메인 모스크바 더비
디나모 모스크바 - 가장 오래된 러시아 더비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 모스크바 더비
'''구단주'''
레오니드 페둔(Leonid Fedun)
'''회장'''
세르게이 로디오노프(Sergei Rodionov)
'''단장'''
드미트리 포포프(Dmitri Popov)
''' 감독'''
도메니코 테데스코(Domenico Tedesco)
''' 수석코치'''
안드레아스 힌켈(Andreas Hinkel)
'''주장'''
게오르기 지키야(Georgiy Dzhikiya)
'''공식 웹사이트'''

'''공식 팬사이트'''

'''우승 기록'''
'''소비에트 톱 리그/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
(12회) / (10회, 최다 우승)
1936,[3] 1938, 1939, 1952, 1953, 1956, 1958, 1962, 1969, 1979, 1987, 1989
1992, 1993, 1994,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16-17
'''소비에트 퍼스트 리그/러시아 풋볼 내셔널 리그 '''
(1회))
1977
'''소비에트 / 러시아 컵 우승 '''
(10회, 최다 우승) / (3회))
1938, 1939, 1946, 1947, 1950, 1958, 1963, 1965, 1971, 1992
1993-94, 1997-98, 2002-03
'''소비에트 페더레이션 컵 '''
(1회))
1987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휘스 틸 (Guus Til)
(2019년, From AZ 알크마르, 16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퀸시 프로머스 (Quincy Promes)
(2018년, To 세비야 FC, 2100만 €)
'''최다 출장'''
이고르 네토 (Igor Aleksandrovich Netto) - 368경기 (1949 - 1966)
'''최다 득점'''
니키타 시모니얀 (Nikita Pavlovich Simonyan) - 133골 (1949 - 1959)

Спартак!

1. 개요
2. 역사
2.1. 탄생
2.2. 비밀 경찰의 탄압과 재건
2.3. 황금시대와 몰락, 그리고 소련의 해체
2.4. 소련 해체 이후
2.5. 2012-13 시즌
2.6. 2013-14 시즌
2.7. 2014-15 시즌
2.8. 2015-16 시즌
2.9. 2016-17 시즌
2.10. 2017-18 시즌
2.11. 2018-19 시즌
2.12. 2019-20 시즌
2.13. 2020-21 시즌
3. 선수
3.1. 명단
3.2. 유명 선수
4. 기타


1. 개요


러시아에서는 민중의 클럽으로 불리우는 유명한 팀.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소속의 프로축구 팀.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클럽이며, 현재는 석유 회사의 후원을 받고 있다. 해당 팀은 FC 디나모 모스크바, PFC CSKA 모스크바처럼 '스파르타크'라는 이름으로 아이스하키, 체조, 권투, 농구[4], 핸드볼 팀 등을 운영 중이다.
소련의 관료 체계와의 독립을 상징하기 때문에 관료들의 후원을 받는 클럽들과 전통적으로 라이벌 관계였다. 이 중, 러시아 리그 출범 후에 강성한 모습을 자랑하는 PFC CSKA 모스크바와 최대 라이벌 관계를 이루며, 이 둘이 벌이는 더비는 러시아에서 가장 격렬한 매치로 손꼽힌다. 그 외에도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FC 디나모 모스크바와의 매치는 디나모가 소련 해체 이후, 상태가 영 좋지 않으면서 조금 시들해진 분위기. 하지만, 여전히 그 격렬함은 CSKA와 벌이는 것 못지않다.
모스크바 전체를 대표하는 성격도 있기 때문에, 비 모스크바 팀들과의 관계에서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데, 非 모스크바 지역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부딪힌다.
사실 원래 최대 라이벌은 소련 리그의 정상을 두고 자주 격돌한 우크라이나FC 디나모 키예프였지만, 우크라이나가 소련을 떠나 독립한 현재 이 두 팀이 만나려면 유럽 대항전을 기다려야 하는 수밖에 없다.
2018년 러시아가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면서 그들의 새 구장 건립 계획에도 탄력이 붙었다. 러시아 연방 정부의 지원과 루코일의 지원, 여기에 클럽 자체의 노력이 붙어 모스크바 투시노(Tushino) 비행장[5]에 새로운 홈 구장을 짓기로 하고, 2010년 12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4년 9월 완공했다. 이름은 옷크리티예 아레나.

2. 역사



2.1. 탄생


1922년에 생겨나 원래는 서클에 가까운 형태로 시작했다. 이 당시 러시아는 소련의 성립과 이에 반대하는 적백내전이 한창이었고, 이 내전이 갓 수습되고 신경제정책(NEP)이 채택되어 어느 정도 사회가 엄격한 스탈린식 경찰 국가가 아닌,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분위기의 체제였다. 이를 배경으로 축구 팀이 탄생했다.
이 팀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클럽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니콜라이 스타로스틴(1902~1996)과 그 형제들인데, 이들은 설립자이면서 동시에 소련 축구 최고의 스타로서 팀의 성장을 이끌었다. 니콜라이 스타로스틴(이하 니콜라이로 표기)은 클럽을 좀 더 키우기 위해 식품 공장 조합의 후원을 받으면서 경기장을 전전하면서 팀을 키웠고, 급기야 1934년 콤소몰(청년 공산주의 연합)의 알렉산드르 코사레프의 지지와 고기 공장의 후원을 받아 어떤 권력 기관에게서도 자유로운 클럽,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로 이름을 바꾸고 지역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스파르타크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는 세 가지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억압에 맞서 봉기한 로마 시대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에서 따왔다는 설. 다른 하나는 앞선 스파르타쿠스와 비슷하지만, 당시 인기를 끌던 소설 제목에서 따왔다는 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공산주의 봉기를 시도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스파르타쿠스 당에서 따왔다는 설이다. 다만, 세 번째 설의 경우, 뒤에 서술하겠지만 니콜라이가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 경력이 있기 때문에 공산당 정부에게 나름 잘 보이기 위한 일종의 제스처로서 설명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현재 정설은 첫 번째 설이 유력한 듯. 하지만 세번째 스파르타쿠스당도 첫 번째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에 결국 같은 설명이다.
어떤 권력 기관에게서도 자유롭다는 것의 의미는 당시 소련 리그의 주요 클럽인 디나모, CSKA, 로코모티브는 각각 비밀 경찰, 군대, 철도청 소속이었기 때문에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해당 소속의 공무원들이 응원하는 형태의 클럽이었다. 이와 반대로 스파르타크는 비록, 콤소몰의 지지를 받았지만 어떤 권력 기관과도 연계가 없는 순수한 노동자의 클럽이었으며, 이 때문에 소련의 통제에서 자유롭고 싶은 소련 인민들의 거대한 지지를 받아 급성장하게 된다. 소련의 체제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할 수 없던 소련 인민들은 스파르타크를 응원하고, 그들이 비밀 경찰과 군대를 쳐부수는 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이 무너진 후에도 스파르타크의 별명은 곧 ''''인민의 클럽''''이 되었다.

2.2. 비밀 경찰의 탄압과 재건


초창기 소련 리그에서 비밀 경찰이 후원하던 디나모 모스크바를 박살내고 우승을 차지하자, 당시 비밀 경찰의 총수였던 라브렌티 베리야는 스파르타크를 미워해서 니콜라이 스타로스틴과 3명의 동생을 스탈린 암살을 기도했다는 죄목을 붙여 모두 시베리아로 유형보낸다. 여기에는 사적인 감정도 개입했는데, 젊은 시절 스타로스틴과 축구 시합을 붙었던 베리야는 말 그대로 탈탈 털렸고, 그걸 끝까지 잊지 않고 복수한 거라고(...).
그런데, 이는 전화위복이 되어서 이 때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스타로스틴 형제들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형제를 죽였다가는 말 그대로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목숨은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스타로스틴 형제는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에서 유형 생활을 보내면서 교도소 축구팀을 지도했다고 한다. 소련 리그가 전쟁이 끝나고 1946년부터 재건되었지만, 그들 형제는 스탈린이 죽는 195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형제가 복귀하고, 전 소련 노동자들의 지원과 후원에 힘입어서 팀을 빠르게 재건, 1950년부터 황금 시대를 개막했다.

2.3. 황금시대와 몰락, 그리고 소련의 해체


1950년대부터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소련 리그를 제패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1950년대에 니키타 시모니얀을 축으로 4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황금기를 열었고, 1960년대에 시모니얀이 감독으로 팀을 지휘할 때도 어느 정도 실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팀이 흔들리더니, 결국 1976년 충격적인 강등의 수모를 당한다. 하지만, 이듬해인 1977년에 디나모 모스크바에서 감독을 지낸 콘스탄틴 베스코프가 감독직에 취임하여 바로 1부 리그로 복귀하고, 2년 뒤인 1979년 리그를 우승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1982년, 홈 구장이었던 레닌 중앙 경기장(지금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네덜란드 HFC 하를럼과 UEFA컵 경기를 벌이던 도중 압사 사고가 일어나 최소 60명 이상이 사망하는 비극도 일어났다. 이 때문인지 한 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다가, 1987년에 이르러 비로소 다시 우승을 차지한다. 1980년대에는 디나모 키예프와 소련 리그에서 쌍벽을 이뤘다.
전성기였던 1950년대에는 유럽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고, 1960년대 들어서 비로소 유럽 무대에 참가했다. 하지만, 별다른 실적은 없는 편인데, 가장 좋은 성적이 1990-91 유로피언 컵(지금의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4강에 오른 것이다. 당시 4강전에서 프랑스의 올랭피크 마르세유에게 패하면서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다. 그 외에도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에서 역시 4강, UEFA 컵에서도 4강까지 간 것이 최고 성적이다. 최전성기에 유럽 대회에 나가지 못한 것이 아쉬울 듯. 물론 이 당시에는 유럽 대회 자체가 발전하지 못했고, 소련도 폐쇄적이었던 시기였지만.

2.4. 소련 해체 이후


소련이 무너지면서 각 공화국이 일제히 독립, 자기들만의 리그를 꾸려가면서 소련 리그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신생 러시아 리그에 원년 멤버로 참가하게 된다.
초기 러시아 리그의 수준은 형편없었다. 유망한 선수들은 돈을 찾아 서방으로 떠났고, 팀들의 수준도 엉망이었다. 이 와중에 과거 소련 리그에서 정상권에 위치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올레그 로만체프 감독의 지휘 아래 말 그대로 리그에서 독주했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시즌 동안 1995년 한 해를 제외하고,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 그러나 이 영광의 10시즌을 지나 러시아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하고, 과두 재벌들이 본격적으로 축구판에 뛰어들면서 스파르타크의 영광의 시대는 저물었다.
물론 여전히 인기 팀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역시 과거처럼 노동자들의 대규모 지지는 받고 있지만, 이제 후원자는 새롭게 출현한 러시아의 과두 재벌에게로 돌아갔다. 1996년에 스파르타크의 정신적 지주였던 니콜라이 스타로스틴이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2003년 러시아의 석유 회사 루코일(Lukoil)의 레오니트 페둔이 팀의 새로운 구단주로 취임해 여전히 재임 중이다. 다만, 쓰는 돈은 꽤 되는 모양인데, 정작 리그 성적은 영 신통치 않는 상황. 그래도 인기를 바탕으로 러시아 리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팀으로 자리잡았다.
2011-12 시즌에는 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레기아 바르샤바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했다.

2.5. 2012-13 시즌


챔피언스 리그 3차 플레이오프에서 페네르바흐체를 (홈 2:1, 원정 1:1)물리치고 본선에 진출했다. 조 추첨결과 G조의 FC 바르셀로나, 벤피카, 셀틱 FC와 한 조가 되었는데 전력싸움으로는 2위을 놓고 싸워야 할판이다. 조별리그 1차전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2:3으로 선전했지만 패배했다. 하지만 2차전 안방 경기에서 예상을 뒤엎고 셀틱에게 2:3으로 지면서 조 꼴찌로 추락했다. 3차전 벤피카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2:1로 승리했지만 4차전 벤피카원정에서는 0:2로 패배했다. 조 4위로 밀려나긴 했는데 남은 2경기를 다 이기고 셀틱과 벤피카가 비긴다면 기적적으로 2위 자리로 16강에 올라갈 수 있긴 하다. 아니면 유로파 리그 진출권인 3위라도... 5차전 바르셀로나를 안방으로 맞이해서 0:3으로 패배하면서 남은 경기를 이겨도 4위로 탈락이 확정되었다.
리그에선 4위를 기록하면서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어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스위스 FC 장크트 갈렌에게 안방에서 2:4 참패를 거두면서 1무 1패로 허무하게 탈락했다.

2.6. 2013-14 시즌


리그에서 6위라는 매우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시즌을 마무리했으며, 컵 대회에서도 16강에서 탈락하는 등 벌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유로파 리그에서도 플레이오프에서 FC 생 갈렌에게 패해 탈락했다.

2.7. 2014-15 시즌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의 더부살이 생활을 끝내고 신축 구장 옷크리티예 아레나로 이전했다.그리고 개장 기념으로 가진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승리했다. 6위로 리그를 마무리했다.

2.8. 2015-16 시즌


감독과 구단주 교체 등 보드진 내에서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 중이다. 자세한 건 여기를 참조 바람.

2.9. 2016-17 시즌


자본을 투자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시즌을 연속으로 보내다 감독이 바뀌고 난 후 16년만에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하였다. 물론 그 중심에는 퀸시 프로머스, 알렉산드르 사메도프등 핵심 선수들이 활약한 덕분에 리그 1위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게 되었다.

2.10. 2017-18 시즌


전 시즌 우승한 후 카레라 감독과 2년 연장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카레라 감독 아래 시즌 초반 1위를 달려가다가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에 중간에 1위를 내주게 되었다. 시즌 후반기에 연승하면서 후반기에 들어서 2위를 달리고 있었고 실제로 1위를 거의 따라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막바지에 FC 아흐마트 그로즈니에게 홈에서 패배한 것을 시작으로 부진하게 되다가 2위싸움을 위해 라이벌 팀들과 겨루기를 했으나 결국 3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특히 리그 마지막 PFC CSKA 모스크바아르세날 툴라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리그 2위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라이벌 팀으로써는 매우 안타까워 했다. 러시아 컵에서 4강까지 진출했으나 강등당하더라도 컵에만 집중하고 있던 FC 토스노에 패배하면서 결승에는 좌절되었다.
챔피언스 리그에선 오히려 더욱 좋지않은 성적을 냈다. 리버풀, 세비야 FC, NK 마리보르와 한 조를 이뤘으며 의외로 NK 마리보르와 홈과 원정경기 두 경기 모두 비기면서 16강 진출에 빨간불이 걸렸으나 홈에서 세비야를 완파하면서 16강 가능성을 보았다. 리버풀과 비겼지만 원정에서 대패배를 맛보았다. 세비야와의 원정 경기서 비기기만 했더라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다른 러시아 축구팀과는 다르게 결국 유로파가서 아틀레틱 빌바오에게 총 4-3스코어로 유로파 16강도 좌절하게 되었다. 이걸로 인해 스파르타크의 라이벌이자 천적인 CSKA 모스크바 서포터들은 기쁨을 만끽하는 등 스파르타크에 욕설을 날리는 등 빅 엿을 먹였다. 더욱이 빌바오원정에서 스파르타크 팬들이 문제[6]를 일으키게 하여 유럽뿐만아니라 다른 러시아 팀들한테도 손가락질 받는 시즌이 되었다.

2.11. 2018-19 시즌


마시모 카레라 감독과의 연장합의가 되었고 선수층에도 변화를 주었다. 어쨋든 리그 시작은 연승으로 출발하였다. 물론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와의 경기에서는 비겼지만 나머지는 승리로 선전하고 있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예선 3차전에서 PAOK FC에게 발목 잡혀 결국 유로파 리그로 유럽 리그 대항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구단 내부에서는 안 좋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핵심 선수 한 명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퀸시 프로머스세비야 FC의 강한 의지로 인해 303억에 이적해버렸고 그 대신 PFC CSKA 모스크바소속이었던 로만 에레멘코가 이 팀에 이적되었다. 어쩌다보니 올해의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선수 상을 받는 선수를 다른 팀으로 가버리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카레라 감독 또한 당황스러운 시즌을 보낼 것임에는 틀림이 없고 초반기 시즌 2위를 달리고 있는 구단으로써는 영입한 에레멘코를 잘 활용하면서 경기를 임해야 할 듯 조심스럽게 경기를 임하려고 했으나 연패를 거듭하고 마시모 카레라와 계약을 해지하고 올레그 코노노프가 감독직에 오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파 리그에선 로만 에레멘코가 전반전 시작 몇 분만에 자책골을 넣는 바람에 6개월도 안돼서 계약해지 단계에 들어가는 등 부진한 모습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야노 아나니제, 이벨린 포포프 등을 경쟁 리그 팀에 임대보내버리고 새로운 어린 선수들을 1군에 등록시켰다. 이는 팬들이 우려하고 있으며 심지어 알렉산드르 사메도프 마저 야노 아나니제를 따라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로 이적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프리시즌에서는 상대 팀 상대로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줬으며 특히나 아야즈 굴리예프같은 어린 유망주들을 잘 이용한다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코노노프 감독을 경질을 원하는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3위라도 달성하여 챔피언스 리그 예선전이라도 참가하려고 했으나 리그에서 연패는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5위까지 떨어지더니 아르세날 툴라에 순위가 따라잡힐 위기까지 온 것이다. 막판에 승기를 잡아 4위를 달성하여 유로파 리그 본선에라도 진출하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마지막 경기인 FC 오렌부르크 원정 경기에서 2대0으로 패배하는 바람에 종합 5위를 달성하여 유로파 리그 3차 예선부터 참가하게 되었다. 아직 올레그 코노노프 감독의 거취는 정확하게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감독 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12. 2019-20 시즌


도메니코 테데스코 감독이 중도 부임했으나, 팀 성적은 그렇게 나아지지는 않았고 한 때 10위까지 추락하기도 했으나,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유로파리그 진출에는 실패했다.

2.13. 2020-21 시즌


테데스코 감독이 중도부임해서는 그렇다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시즌이 첫 풀타임인데 이제 능력을 보여줘야할 때이다. 개막전에서는 소치를 상대로 2대0으로 앞서나가 있었으나, 페널티 2개를 내주면서 2대2로 비겼다.
2라운드에서는 아흐마트를 상대로 2대0으로 승리하였다.
3라운드 우파 전에서는 이른 시간 선제골을 먹혔으나, 이후 우파 수비수의 핸드볼로 PK를 얻었다. 하지만, 벨레노프 골키퍼가 선방을 해냈고, 이후에 에세키엘 폰세가 동점골을 넣었다. 결국 1대1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5라운드 SC 로토르 볼고그라드 전에서는 선수단의 클래스 차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꾸준히 닥공을 펼치면서 두들겼지만, 로토르의 수비는 쉽게 점수를 내주지 않았고, 결국 페널티를 바카예프가 성공시키면서 1대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MOM은 골키퍼 알렉산드르 막시멘코가 받았다.
현재까지는 테데스코 감독이 결과를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으며, 1위 제니트와 단 1점차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6라운드에서는 FC 아르세날 툴라를 만났다. 전반 35분에 킹스 캉과가 박스 안으로 넣어준 공을 흘루세비치가 뒤통수로 헤딩을 해내면서 절묘한 골을 만들어냈고, 아르세날이 1대0으로 앞서나갔다. 이후 스파르타크는 물러서지 않았고, 5분만에 소볼레프가 예쁜 발기술로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44분에는 아르세날의 다닐 레소보이가 심판의 판정에 거세게 항의를 하면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아르세날에게 상황은 점점 안좋아졌다. 사뮈엘 지고가 프리킥 세트피스 상황에서 역전 헤딩골을 넣었고, 경기는 이후에 큰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서 스파르타크가 2대1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로, 1위로 올라섰다.
7라운드 경기는 PFC CSKA 모스크바와의 메인 모스크바 더비 경기였다. 전반 10분, 스파르타크의 에세키엘 폰세가 아크 정면에서 원더골을 터뜨리면서 1대0으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스파르타크의 리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30분에 코너킥 상황에서 스파르타크의 골키퍼 막시멘코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면서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까진 경기력 부분에서는 스파르타크가 우세했다고 평가받았다. 전반 32분 아이르통 루카스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넘어졌지만, 주심은 다이빙이라면서 아이르통에게 옐로카드를 건넸고, VAR 리뷰 이후에도 다이빙이라 인정되었다. 계속해서 스파르타크는 맹공을 퍼부었지만, 아킨페예프가 노련함을 과시하면서 안정적으로 선방을 해냈다. 전반 종료 직전부터 스파르타크의 수비 조직력이 헐거워지기 시작하더니, 전반 추가시간에 결국 가장 조심해야할 니콜라 블라시치가 또 다시 CSKA를 구원하는 골을 터뜨리면서 CSKA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후반전에 스파르타크는 지속적으로 공격적으로 나왔다. 특히, 풍부한 공격진의 뎁스를 자랑하며 교체카드를 통해 어떻게든 동점골을 넣어보려고 했다. 논란의 장면이 후반 추가시간에 나왔다. 분명히 CSKA의 선수의 팔에 공이 맞았는데도 주심은 핸드볼을 선언하지 않았으며, 이 장면이 그대로 치데라 에주케의 데뷔골로 이어지면서 경기가 막판에 과열되었다. 득점 선언 이후 스파르타크의 코치진이 과도한 어필로 퇴장당했으며, 감독인 도메니코 테데스코도 경고를 받았다. VAR 리뷰 이후에도 분명히 선수의 팔에 공이 맞았음에도 골로 인정되었고, 결국 CSKA가 홈에서 3대1 승리를 챙겼다. 물론, 골이 인정되지 않았어도 스파르타크는 2대1로 졌겠지만, 충분히 스파르타크의 팬이라면 화가 날 상황이었다. 이 패배로 이번시즌 무패행진도 종료되었다. 팀 순위도 1위에서 3위로 하락.
주중 로디나 모스크바와의 경기에서는 5대1 편안한 승리를 거두었다.
8라운드 루빈 카잔 원정에서는 황인범이 없는 루빈을 상대로 23슈팅을 허용하면서 두들겨 맞았지만, 꾸역꾸역 막아내었고, 공격에서는 단 1유효슈팅으로 상대 자책골과 합쳐 2득점에 성공하면서 운좋은 승리를 챙겼다. 이 경기에서 승점 3점을 챙겨내면서 선두 제니트와 다시 승점이 동률이 되었다.
9라운드에서는 탐보프를 만났다. 탐보프는 나름대로 단단한 수비와 날카로운 역습을 보였다. 코코린이 처음으로 선발 출장을 하였다. 탐보프의 역습에 후반 중반까지 고생하였으나, 74분 아이르통 루카스의 날카로운 프리미어 리그 데뷔골로 1대0으로 앞서나갔다. 이후 기세를 잡은 스파르타크는 계속 공격을 전개해나갔다. 프리킥 상황에서 83분 아이르통이 절묘한 중거리 슛을 골로 연결하면서 2대0으로 승리하였다.
10라운드는 홈에서 승점 동률의 우승 경쟁자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만났다. 말그대로 승점 6점짜리 경기. 전반 30분대부터 제니트가 계속 슈팅을 때렸으나, 막시멘코가 전부다 안정적으로 막아내면서 전반전은 0대0으로 종료되었다. 52분에 조르단 라르손이 선제골 기회를 만들었으나 골대 위로 슈팅을 날려버렸다. 이후에는 제니트와 스파르타크가 공격을 번갈아가면서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65분에 더글라스 산토스가 올린 크로스를 쥬바가 완벽하게 공중볼로 따냈고, 그 볼을 예로힌이 받아 슈팅으로 연결하면서 0대1로 제니트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79분에 에세키엘 폰세가 빈 골대를 놔두고 공을 하늘로 쏴 버리면서 기회를 날렸다. 86분에 알렉스 크랄이 제니트의 수비수들을 가볍게 드리블로 제쳐낸 뒤 폰세에게 공을 연결했고, 아까의 기회와 달리 폰세가 골대 구석으로 침착하게 밀어넣으면서 1대1 동점을 만들어냈다. 스파르타크는 이번에도 제니트를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승점차는 유지해냈다.
11라운드는 FC 힘키를 상대했다. 전반전 내내 힘키는 수비에 집중하였고, 날카로운 역습찬스도 수 차례 만들어냈으나, 알렉산드르 막시멘코의 슈퍼세이브 행진으로 득점에 실패하였다. 48분에 박스 바깥에서 레지우안 미르조프가 때린 슈팅이 절묘한 코스로 들어가면서 힘키가 1대0으로 앞서나갔다. 힘키로서는 다시 한번 이변을 연출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이후에 스파르타크가 각성하고 말았다. 54분 에세키엘 폰세의 헤더가 핸드볼 파울이 선언되면서 PK를 얻어냈고 코코린이 이를 동점골로 연결시켰다. 63분에는 에세키엘 폰세가 헤더로 득점을 성공하면서 점수는 2대1. 이후 77분에 조던 라르손이 골키퍼를 맞고 나온 리바운드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면서 3대1이 되었다. 이후, 80분에 빅터 모지스가 4번째 득점 기회를 잡았으나 욕심을 부리면서 득점에 실패하였다. 84분에 브라이언 이도우가 만회골을 득점하면서 3대2가 되었다. 이후에 동점골 기회를 잡았으나 득점에 실패하면서 3대2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주중 러시아컵 엘리트 그룹 라운드에서 예니세이 크라스노야르스크 원정을 가 1대0으로 패배하였다. 다행이도 득실차 덕분에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12라운드에서는 까다로운 FC 크라스노다르를 만났다. 빅터 모지스가 첫 선발 출장을 하였다. 12분에 에세키엘 폰세가 크라스노다르의 흔들어진 수비진을 뚫고 선제골을 넣었다. 33분에는 측면에서 데굴데굴 굴러온 크로스를 빅터 모지스가 받아 수비수 2명을 발기술로 제치고 골망 구석으로 집어넣었다. 스파르타크 소속 데뷔골. 59분에는 레온 사부아가 프로 소속 첫 출전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면서 점수는 2대1이 되었다. 63분에는 마르티노비치가 상대 선수의 발을 밟아 경고를 받았다. 81분에 코코린의 패스를 받은 조던 라르손이 터닝 슛 득점을 성공시키면서 점수는 3대1이 되었고, 이후에 91분에 마르티노비치가 아이르통에게 깊은 태클을 넣으면서 퇴장을 당했다. 이렇게 경기가 종료되었다.
13라운드에서는 홈에서 FC 로스토프를 상대했다. 26분에 로만 에레멘코가 박스 바깥에서 낮고 빠르게 깔아서 박스로 넣어준 공을 파벨 마마예프가 살짝 건드려서 방향만 바꾸면서 득점에 성공하였다. 이 경기는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경고가 많이 나왔다. 후반전에는 스파르타크가 알렉산드르 소볼레프를 교체로 투입하면서 공격에 날카로움을 더하려 했다. 공도 더 많이 만지려 하였고, 실제로 후반전 점유율만 보면 스파르타크가 80퍼센트 가까이 가져갔다. 75분에 소볼레프의 발목을 덴니스 하지카두니치가 밟으면서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였는데, 이 판정에 대해서 구설수가 많았다. 이 퇴장 이후, 로스토프는 더 꽉 잠그려고 하였다. 이에 성공을 하면서 로스토프가 승리를 거두었고, 스파르타크는 1위자리에서 다시 한번 내려오게 되었다.
14라운드에서는 FC 우랄 예카테린부르크를 상대했다. 전반 5분만에 알렉산드르 소볼레프의 득점으로 스파르타크가 1대0으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랄이 코너킥 상황에서 파벨 포그레브냐크의 골로 1대1 동점을 만들어냈다. 44분에 빅터 모지스가 순간적인 드리블로 페널티 박스로 침투하며 페널티킥을 유도해내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소볼레프가 성공하면서 점수는 2대1이 되었다. 60분에는 라파우 아우구스티니아크가 절묘한 궤적의 중거리슛으로 다시 2대2 동점을 만들어냈고, 이렇게 종료되면서 스파르타크는 선두를 다시 차지하는데 실패하였다.
15라운드는 FC 디나모 모스크바와의 모스크바 더비였다. 디나모와 스파르타크 모두의 레전드인 콘스탄틴 베스코프의 100주년 생일을 맞아 킥오프 전에 숫자 100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전반전은 디나모가 매우 많은 공격 찬스를 만들면서 경기를 지배했다. 43분 스파르타크의 로만 조브닌이 절묘한 감아차기를 했으나, 슈닌 골키퍼가 손가락 끝으로 튕겨내며 공이 골대를 맞게 했다. 후반전은 스파르타크가 초반부터 매서운 공격을 보였다. 아이르통과 조브닌이 계속 좋은 슈팅을 보여줬다. 이후에도 스파르타크가 공격을 주도했지만, 디나모도 매서운 역습으로 스파르타크의 골문을 노렸다. 79분 디나모의 드미트리 스코핀체프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슈팅을 25미터 바깥에서 감아 때리면서 디나모의 선제골을 넣었다. 이후 85분에 디나모의 수비가 걷어낸 공을 받아 모든 디나모 선수들을 제치고 슈팅까지 연결해 본인이 득점을 완성시켰다. 이후 이 골은 2020년 11월 이달의 골로 선정이 되었고, 점수는 1대1이 되었다.
16라운드는 홈에서 SC 로토르 볼고그라드를 상대하였다. 전반전부터 스파르타크는 승리를 위해 많은 공격기회를 만들었다. 전반 12분 주리코 다비타슈빌리알렉산드르 코코린에게 박스 안에서 파울을 범하면서 PK가 VAR을 통해 선언되었고, 순조롭게 스파르타크가 1대0으로 앞서나갔다. 이후에도 점수차를 벌리기 위해 스파르타크는 공격을 펼쳤다. 60분에 요시프 촌드리치의 태클로 조르단 라르손이 넘어졌으나, 주심은 라르손에게 시뮬레이션 경고를 주었다. 동작이 컸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컨택이 있었기 때문에 PK를 줄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논란이 있었다. 72분에 주리코가 찬스를 잡았으나, 골키퍼 정면으로 슈팅을 때려버렸다. 93분에 코너킥에서 사뮈엘 지고가 득점을 터뜨리면서 승리를 확정지었다. 2대0으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스파르타크가 승리하면서 1,2,3위 승점이 모두 같아졌고, 로토르는 최하위로 추락하였다.
17라운드는 FC 탐보프를 상대하였다. 26분, 알렉스 크랄이 박스안으로 조용하고 빠르게 침투한 뒤 따라오는 수비수들을 제쳤고, 이후 조르단 라르손이 완벽하게 마무리를 하였다. 60분 알렉스 크랄이 적극적은 대시로 공을 따냈고, 조르단 라르손이 드리블 돌파 이후 리지코프의 선방을 맞고 나온 슛을 다시 한번 에세키엘 폰세가 슈팅으로 연결하여 골라인 판독 끝에 득점으로 인정되었다. 이후 64분에 바로 게르만 오누그하가 강한 슈팅으로 바로 만회골을 터뜨렸다. 이후에 탐보프는 동점을 만들기 위해 여러차례 슈팅을 때렸지만 득점에 실패하였다. 82분에 아이르통이 컷백 이후 때린 슈팅을 리지코프가 불완전하게 선방하면서 조르단 라르손이 다시 선방에 성공하였다. 87분에 탐보프의 수비수들을 맞고 굴절된 공을 사뮈엘 지고가 다시 한번 골대로 밀어넣었다. 92분에는 젤림한 바카예프의 패스를 받은 박스 경계 부근의 폰세가 골대 구석으로 침착하게 밀어넣으면서 경기는 5대1로 종료되었다.
도메니코 테데스코 감독이 2020-21시즌 겨울휴식기 전 마지막 경기에서 올해를 마지막으로 종료되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구단의 결정으로 보인다. 일단 현재 러시아 언론에서 주요 후보로 언급하고 있는 후임 감독 후보들의 명단은 쿠르반 베르디예프, 레오나르두 자르딤, 마시모 카레라, 발레리 카르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마우리시오 사리, 유리 쇼민,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 세르게이 유란, 루치아노 스팔레티가 있다.
이후 키케 세티엔 감독이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차기 감독직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스포츠 디렉터의 말에 따르면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에서 감독을 물색하고 있으며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레오나르두 자르딤이라고 한다. 600만 유로라는 구체적 급료까지 나오고 있다.

3. 선수



3.1. 명단




3.2. 유명 선수



4. 기타


90년월드컵을 대비하는 한국대표팀에 방한하여 친선경기를 한적이있다
베리야가 스타로스틴 형제를 스탈린 암살 기도를 꾸몄다고 몰아갈 때, 그 증거는 스탈린이 직접 본 시합에서 축구공 모양의 차가 스탈린 근처에 주차했다는 것이었다고.
페네르바흐체와의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팬들이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배너를 불태우는 벙크를 터뜨렸다.[7] 하여튼 저 병크로 인해, 사이가 안 좋은 페네르바흐체, 갈라타사라이 서포터즈가 연합을 해서[8], 이 팀 서포터즈가 터키에 오기를 기다렸다가 한판 붙어서 털어버렸다. 하지만 경기는 모스크바와 비기고 상대 전적 1승 1무(2:1 승, 1:1 무)로 모스크바가 챔피언스 리그 본선에 진출했다.
이 팀 역시 엄청난 인종차별적인 문제도 심각하다고 하는데 사실 러시아에서는 FC 우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구단들이 팬들의 인식을 바꿔야 할 정도이다.[9]

[1] 초창기 고기 공장의 후원을 받았던 것에서 유래했다.[2] 극성 울트라들끼리의 충돌이 걱정되었는지, UEFA에서 러시아 팀과 우크라이나 팀간의 대결을 금지시키면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 지는 미지수.[3] 가을 시즌[4] 연고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한때 CSKA와 함께 소련 시절에 리그 우승을 2번 했던 명문팀이지만, 소련 해체 이후 성적이 엉망이어서 2014년에 재정난으로 해체했다가 재창단되었다.[5] 이 곳은 락음악 팬이라면 1991년 메탈리카가 'Monsters of Rock'이라는 락페스티벌에서 100여만 명의 관중 앞에서 공연을 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6] 스파르타크 훌리건들이 스페인 경찰과 대치하게 되었는데 스파르타크팬들의 난폭행동으로 결국 스페인 경찰 1명이 사망하게 되었다. [7] 터키에서 이 사람 관련해서 잘못 말하면 처벌도 가능하다고 한다.[8] 참고로, 페네르바흐체와 갈라타사라이의 연합은 중국의 국공합작급으로 비유해 볼 수 있다. 여기에 베식타쉬까지 끼면 2013 터키 시위급의 화력을 기대할 수 있다. [9] 자기 팀 선수 사진을 sns에 올려 '초콜릿이 어떻게 녹는지 보자'는 코멘트는 많은 유럽 팬들에게도 눈총을 받게되었는데 정작 스파르타크 관계자는 사과 한 마디도 없이 게시물만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