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콜린스(정치인)

 


'''Michael Collins'''
<colbgcolor=#169b62> '''본명'''
<colbgcolor=#169b62> 영어
Michael John Collins (마이클 존 콜린스)
아일랜드어
Mícheál Eoin Ó Coileáin (미할 오인 오 킬랸)
'''국적'''
'''아일랜드''' [image]
'''출생'''
1890년 10월 16일
'''사망'''
1922년 8월 22일
'''학력'''
킹스 칼리지 런던
'''직업'''
정치인, 군인, 독립운동가
'''서명'''
[image]
'''마이클 콜린스의 흉상'''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아일랜드정치인, 군인이자 독립운동가.

2. 생애


1916년 영국의 지배에 대항하여 들고 일어난 부활절 봉기를 주도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대부분의 주동자가 처형당했지만 에이먼 데 벌레라와 함께 천운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다.[1]
다른 신페인 당(Sinn Féin)의 주요 간부와 마찬가지로, 1918년 있었던 영국 하원의 아일랜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이들은 다른 신페인 소속 영국 하원의원들과 함께 의회 등원을 거부하고 아일랜드 국민의회(Dáil Éireann)를 차렸으며 아일랜드의 독립과 아일랜드 공화국 건국을 선포했다.
1919년 여름 마이클 콜린스는 아일랜드 공화동맹의 단장으로 추대되었고, 9월에는 아일랜드 공화국군 정보부장으로서 IRA 사실상의 중요 지도자로 활약하게 되었다. 또한 대통령인 데 발레라에 의해 재무장관직도 맡게 되었다.
마이클 콜린스가 이끄는 IRA의 전략은 게릴라전 및 주요 요인의 암살 및 테러였다. 그는 영국의 주요 인사에 대한 암살을 노리는 특수부대를 창설하였으며, 미국 등에 이주한 아일랜드인을 중심으로 일종의 애국 공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였다. 또한 주로 외교 활동을 독립 수단으로 삼은 대통령 데 발레라[2]가 부재할 때 아일랜드 공화국을 이끌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마이클 콜린스가 자신의 위치를 위협한다고 여긴 에이먼 데 벌레라에게서 끊임없는 견제를 받아야만 했으며, 둘의 사이는 좋지 못했다.
1921년 아일랜드 독립 전쟁의 휴전 후 협상에서 데 발레라는 마이클 콜린스를 대표로 내세웠다. 이유는 당시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회담에 참석하지 않는데, 그와 동급인 대통령인 자신이 참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일랜드 측에서는 마이클 콜린스와 아서 그리피스를 중심으로 한 대표단이 협상에 참여하게 되며[3], 1921년 12월 6일 최종적으로 협상안이 체결되었다. 이 협상안은 아일랜드 국민의회에 의해 최종적으로 비준되어 아일랜드 자유국(Irish Free State, Saorstát Éireann)이 탄생했다. 이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으며, 이 협상안에 반대하여 대통령 데 발레라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당시 IRA 대원의 70%가 이 조약에 반대하여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군에 대해 다시 게릴라전을 일으키게 되었다.
조약의 주요 내용 중 문제가 된 것은 영국군은 얼스터 지방의 6개 카운티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철수하나,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자유국이라는 이름으로 대영제국자치령으로 남으며, 아일랜드 의회 의원들은 영국과 국왕에게 충성 서약을 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또한 이 조약은 결국 아일랜드의 남북 분단을 영구화한 조약이 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아 있다.
물론 당시 콜린스도 좋아서 이런 협상안에 서명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가 데 발레라를 비롯한 조약 반대파 의회 의원들을 설득할 때 한 말도 '이 조약을 발판으로 더 완전한 독립을 이룩하자'는 식의 점진론적 관점에서의 찬성이었다. 1차대전으로 영국이 국력을 크게 소진하고 경제난으로 휘청거리고 있었던 덕이 컸지만, 제국주의가 굳건했던 당시에 IRA가 이 정도 자치권을 얻어낸 것도 놀라운 성과였다. 일각에서는 당시 영국IRA의 게릴라전과 연이은 영국군 간부, 정치인 저격 암살에 당황하여 IRA 병력과 무장 수준을 실제보다 훨씬 과대평가해 상당한 양보를 했다는 설도 있다.[4] 이처럼 비정규전 게릴라전에서 마이클 콜린스의 군사 지휘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일부에서 현대 게릴라전의 선구자라고 찬양받기도 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동원력, 군사력으로 따지면 당시 아일랜드는 현실적으로나 잠재적으로나 도저히 영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IRA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마이클 콜린스가 당시 한계에 다다른 IRA 조직의 상황을 알고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 가장 일반적인 평가이다. 지금도 이 조약에 대해서는 당시 아일랜드의 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며, 후에 완전히 독립된 아일랜드의 대통령이 된 데 발레라도 "당시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으며, 나는 틀렸고, 콜린스가 옳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되었으며, 사임한 데 발레라의 뒤를 이어 아서 그리피스가 대통령으로, 마이클 콜린스는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데 발레라와 로리 오 코너등의 강경파는 그들을 따르는 IRA 조직과 함께 아일랜드 자유국을 부정하였고 이를 타도하기 위한 무장 투쟁에 돌입했으며, 아일랜드 자유국 또한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이리하여 아일랜드 내전이 발생하게 되었다. 콜린스는 전쟁을 끝내려고 영국과의 협상안의 체결로 인해 IRA 강경파들에게 배신자로 주요 타깃이 되었으며, 결국 1922년 8월 22일 매복하고 있던 IRA 단원의 총격에 의해 살해당했다.

3. 평가


마이클 콜린스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나, 너무나도 극과 극의 평가를 달리는 인물이다. 아일랜드에서 콜린스에 대한 의견은 이견이 많으나, 대체적으로는 독립의 아버지, 독립운동가로서 추앙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지방, 특히 현 IRA 조직[5]을 중심으로 한 북아일랜드 가톨릭 교도들에게 마이클 콜린스는 배신자이자 영구 분단의 원흉으로 지탄받기도 한다. 제4차 중동전쟁을 일으켜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고, 이후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잃었던 국토를 되찾았지만, 과격파들에 의하여 암살당한 고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어느정도 비슷한 인물.

4. 대중매체에서


1996년 워너브라더스에 의해 리엄 니슨이 주인공 마이클 콜린스 역을 맡아 그의 일대기를 그린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동년 제 53회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북아일랜드 출신인 리엄 니슨은 대학생들과의 대담에서, 자신이 찍은 영화 중 가장 명예로운 배역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살인마를 영웅시했다' '중대한 역사 왜곡'이라는 등의 주장으로 상영금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같은 아일랜드 독립전쟁 및 아일랜드 내전 시기를 다루는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도 이름이 언급된다. 그만큼 아일랜드 독립사에서 그의 존재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당시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살펴볼 수 있다. 강화조약 찬성파인 등장인물은 '영웅'으로 치켜세우지만, 강화조약 반대파 측의 등장인물은 '영국의 향응에 놀아났다' '배신자'라는 식으로 매도한다.
2016년 부활절 봉기 100주년 기념으로 아일랜드 방송국 RTE에서 방영한 리벨리온에서도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높은 비중으로 출연한다. 봉기 실패 후 포로가 되어 무기를 반납하면서 이름을 드러냈고, 영국군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부동 자세를 유지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7][8] 2019년 방영한 시즌 2에서는 해외 도피 중인 아일랜드 공화국 대통령 데 발레라를 대신해 재무 장관과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으며, 아일랜드 독립군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활약하며 영국군 및 매국노 스파이들을 제거하는 등 각종 공작을 기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9]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가 파견한 스파이들의 암살 시도를 간발의 차이로 여러 번 피하기도 했다. 크로커 파크에서 영국 경찰이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던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10]으로 반영 감정이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자 결국 영국 정부가 몇가지 조건을 내걸어 강화를 제시하자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반대파들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국과 전면전을 할 수는 없다는 콜린스의 호소로 의회에서 강화 조약이 가까스로 통과되고[11] 주인공들이 조약 찬성과 반대파로 갈라진 모습을 보이면서 시즌 2가 끝난다. 곧이어 나올 마지막 시즌 3에서는 아일랜드 내전에서 데 벌레라와 부딪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해당 드라마가 대체역사물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그대로 고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운명 또한 이미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국산게임 엘라의 2048에서는 마이클 콜린스의 DNA로 탄생한 클론소녀 조안이 등장한다. 힐러로 만들어졌는데도 마이클 콜린스의 유전자 탓에 자꾸만 전선 앞에서 싸우고 싶어한다는듯...
[1] 정확히 말하면 콜린스는 지도자 중 한 명인 플렁킷 백작의 전속부관이었다. 플렁킷 백작의 아들 조지프 플렁킷은 다른 지도부와 함께 총살당했다. 그 외에 에이먼 데 발레라는 미국 시민권자라서, 마르키에비츠 백작부인은 여자라는 이유로 처형을 면했다. 그러니까 이 때 콜린스가 목숨을 건진 것은 지도부급의 이름값이 없는, 아직 듣보잡이었기 때문.[2] 아일랜드 공화국은 독립 선포 당시에는 대통령이 없었지만 1921년에 대통령직이 창설되고 대통령으로 데 발레라가 선출되었다.[3] 영국 측 대표는 자주 바뀌었으며, 후에 영국 총리가 되는 네빌 체임벌린이 고정 멤버로 참여하였다. 영국 측 대표 중에는 유명한 윈스턴 처칠이 포함되기도 했다.[4] 영국 정부에서는 협상안 통과 전까지 타결을 자신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영국 측에서는 협상 당시 이 협상이 결렬된다면 단기적으로는 승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내외 조건이 맞물려 폭발해 아일랜드 전역을 상실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었다. 신생국 소련의 아일랜드 독립운동 세력 지원, 진압으로 더 분노하게 될 아일랜드인의 재봉기, 거듭되는 전쟁 동원에 반감을 품은 영국 본토 민중의 저항 등등...[5] 무장 투쟁 노선은 포기했지만[6] 근데 그 물마저도 영국 병사가 침을 뱉어 버렸다. 안습...[7] 이 때 영국군 병사가 포로들에게 돈을 받고 물을 파는데 자존심 때문에 아무도 돈을 내지 않자 혼자서 돈을 내고 옆에 있던 지미에게 물을 준다.[6] 실리를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콜린스의 성격을 표현한 듯.[8] 봉기 주동자들을 가려내는 도중 마이클 콜린스에 대해 묻는 영국군 장교에게 친영파 아일랜드 경찰이 마이클 콜린스의 이름을 말하며 그냥 별볼일 없는 놈이라 평하는 깨알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이 역시 실제 역사를 잘 고증한 부분.[9] 실제로 1920년 9월부터 12월까지 콜린스가 이끄는 IRA가 더블린 일대에 암약 중이던 영국 스파이 다수를 제거하는데 이것이 시즌 2의 주요 사건이자 배경이다.[10] 실제로 벌어진 사건으로 1920년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도 불린다.[11] 조약이 간발의 차이(64:57)로 통과되자 콜린스는 내전을 예견하고 기뻐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된다.